돼지국밥_당신과 내가 따뜻했던 순간
61년. 당신의 출생 연도.
1096. 매일 해질 녘이면 집 앞 큰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당신의 차 번호.
1년. 당신이 내게 돌아오겠다며 처음으로 약속했던 시간.
15년. 결국 당신과 내가 멀어져있던 시간.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이 이야기는 나와 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와 다른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돼지국밥이란 이름으로 지금부터 총 60분의 아버지를 인터뷰하려 합니다.
어려운 주제였지만,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제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하게 되어 여유가 조금 생기기도 했고,
아직은 아버지가 건강하시기에 맘 놓고 미워할 수 있는..
바로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합니다.
제가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유- 가령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이나 용서, 화해, 가령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이죠.
직면
이 작업은 내 아버지인 당신을 제대로 직면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를,
당신과는 또 다른 아버지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려는 것이지요.
제가 아버지인 당신을 제대로 직면했을 때야만,
지금까지 우리가 다르게 살아왔던 그 간극을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은 평행선입니다.
서로를 마주 보고 뻗어가나 결코 만나지 않을 바로 그 평행선.
반드시 서로를 마주 보고 뻗어가야만, 결코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바로 그 평행선.
온전히 한 사람만을 미워한다는 건,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상대방이 내게 잘못했다는, 자신만의 감정적 이유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그렇게 미워만 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기에, 이 작업을 시작하며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 작업이 끝날 때쯤 괜한 감성적인 이유가 생겨,
혹시나 내가 당신을 이해해 버리진 않을까..라는 두려움 말이죠.
제가 바라는 대로 이 이야기의 끝이 우리들의 평행선이 될지,
아니면 당신만의 그 삶을, 또 다른 방식으로 내가 이해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뭐 어느 쪽이든, 시간이 흐른다면 결국 도착할 곳이기에
지금부터 아주 천천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람꽃, 2016년 첫 번째 작업입니다.
ps.1) 나의 작은 과정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이유가 있겠죠.
이해하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제게 그렇게 말했을 때도 저 역시 엄청 짜증 났으니까요.
그래도 당신에게 전하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미워하더라도- 제대로 바라보며 미워합시다.
아버지로서의 당신의 세계는 어떠한지 바라본 채 미워합시다.
그제야 우리의 미움은 '후회하지 않을 미움'이 될 테고, 그렇게 해야만 우린,
각자가 만들어낸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미워할 수 있으니까요.
ps.2) 제가 일을 벌이는 것은 참 잘하지만, 마무리를 잘 못합니다.
지금까지 되돌아보면 힘차게 시작했던 일은 참 많으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그 나름의 아픔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은 제 개인적으로도 꼭 마무리를 지어야만 하는 일이기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관심과 지치지 말고 해나가라고 응원도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이 작업이 잘 마무리되는 날, 제가 따뜻한 돼지국밥 한 그릇 사겠습니다.
사진 1 - 출처 http://www.globaldenso.com/en/innovation/story/object-detection/
사진 2 - 출처 http://www.artpool.hu/Galantai/ego/mirrore.html
사진 3 - 출처 http://www.photographersgallery.com/photo.asp?id=2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