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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Feb 04. 2016

돼지국밥 3+ (with.촌놈)

#아버지 #당신과 내가 따뜻했던 순간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그 날까지,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토요일. 오후 1시.

나는 인터뷰를 위해 그의 집 근처로 갔다.


그는 토요일은 집에만 있는 날인데 왜 굳이 토요일이냐며,

끝까지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나 또한 거부를 거부했다.      


그는 내게 점심을 사준다고 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난 돼지국밥이라고 했다.

그는 사준다고 할 때 비싼 거를 먹으라고 했지만,

난 끝까지 돼지국밥이라고 했다.      


돼지국밥이다.


그와 난 근처에 있는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왜 내게 프로젝트 이름이 "돼지국밥"이냐고 물었고,

난 아버지와 내가 함께 먹은 마지막 음식이

돼지국밥이 했다.


그는 나와 아버지가 헤어진 줄 몰랐다며, 잠시 말이 없더니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난 내가 힘든 건 별로 없었고, 어머니가  힘들었죠-라고 말했고,

그는 엄마가 뭐가 힘들어, 너가  힘들었지-라고 말했다.


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좋은데이를 시켰다.


Aㅏ... 낮술이라니...


그때 시간은 오후 1시 20분.    

의도치 않게

낮술 대담이 되어버렸다.


       


I:20대 일 때 별명이 뭐였어요? 인터뷰가 익명으로 진행되는 거라.

H:별명? 별 거 없었는데..

음.. 촌놈?



I:촌놈이요??  

H:내가 부산을 87년도에 왔는데 고향이 경북 상주거든.

지금은 억양이 많이 변했지만, 그때만 해도 고향이 강원도랑 가까워서 신입생 오티나 이런 거 가면 친구랑 선배들이 "니 북에서  왔냐?"라고 물어봤어 (웃음) 그땐 강원도 억양이 좀 쎘거든.      


했드래요. 언제까지 어깨 춤을 추게 할꺼 드래요.


I:자제분은 어떻게 되세요?

H:1녀 1남. 연년생이고 97.98년 생


I:어.. 이제 고3인가요?

H:아니지. 하나는 이제 20되고, 하나가 이제 고3이고.

방금 딸내미 운전면허 시험 치러갔다.

내가 시험 치는 코스 한 바퀴 돌아주고 왔어.     

 

(그러면서 그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마 딸의 카톡을 기다리는 것 같다)      


I:아저씨의 청년 시절은 어땠어요? 아버지가 되기 전에 아저씨 모습.      

H:지금 하고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은데? 그냥 고민 많고. 음...

세상 걱정 많이 하고. 또 정의롭게 살라고 했고.

내가 대학교를 부산으로 처음 오면서 시골 생활을 벗어난 건데... 대학교 와서 처음 접한 게...

가만있자.. 그때가 87년 이었어. 그땐 한국사회가 엄청나게 소용돌이였지.

그리고 난 그 한복판에 영문도 모른 채 서있었고.      

   

I: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었어요?     

H:내가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군대 갔는데 그때까진 실컷 놀다가 (웃음)

3학년 마치고 나서 슬 공부하는 분위기였어. 그땐 그래도 될 때였으니까.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연합회장을 했어. 내가 전역하고 3학년 때 그 짓을 한 거야.

남들은 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그때.(웃음)


그리고는 4학년 들어가서 고민하기 시작했지. 아 이제 나도 직업을 가져야 되는데 하는.      

내가 그때 당시만 해도 직업활동가로 갈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직업활동가는 쫌 자신이 없더라고....


가정을 위해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었고...


뭐 내가 3학년 때 전공 공부를 안 했으니까, 전공은 못 살렸고. 그래서 부랴부랴 4학년에 준비를 해서 지하철공사에 취직을 했지. 뭐 나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을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그런 시간은 없었어.

취업이 썩 잘 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땐 어디든 갔어.


내가 지하철공사에 취직했을 때도, 대학 나와서 왜 거길 가냐. 거긴 고졸이 가는 덴데. 이런 말 되게 많이 들었거든. 지금은 바뀌었지만 그땐 공기업 공무원은 대학생들이 선호하던 그런 곳은 아니었으니까.



I:한 번쯤은 저도 80년대에 대학생이 해보고 싶었어요. 뭐랄까요?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달까.

H:내가 학생 때는 선배들이 x자로 강의실 문에 못을 쳐놨었어. 그렇게 교실 앞에 서 있다가 선배들이 점심 먹자고 하면 밥 먹고 저기 시위하러 가는 거지. 그땐 밥 먹고 가서 막 이러고 있는 거야.

(그는 오른손을 꽉 쥔 채 앞뒤로 힘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최루탄 맞고 끝나면, 끝났다고 또 막걸리 마시러 가고... 재밌었지.      


 

84-89학번까지 386 뒷다리들. 우리들은 격변기에 살았어.

우리의 젊은 시절은 그래서 뭐 처져있거나 우울해하거나 그럴 새가 없었어.

너무 바빴어.      

술 먹느라고 바빴고. 고민한다고 바빴고. 치고받고 싸움한다고 바빴고...      




I:아저씨가 원래 하고 싶던 일은 무엇이었어요?     

H: 음.....  직업으로서 하고 싶은 거는 고민해본 적이 없어. 직업은 그냥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냥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내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큰 일을 못하더라도, 적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어.

그럼 썩지는 않겠구나... 그럼 그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내가 나이가 들더라도 좀 나태해지거나 썩지는 않겠구나 싶었지.


직업활동가는 포기했으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거, 그게 중요하지.      



I:다른 아버지들은 쉽게 하는데, 나에게는 참 어렵다 하는 일이 있나요?     

H:그냥 가만히 못 있는 거? 자꾸 뭐라도 해야 돼 

(공감 중)      


일종의 이것도, 어쩌면 강박 내지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는데... 어린 시절 내가 그렇게 형성된 거 같애. 항상 뭔가 남으로부터 인정받아야 되고... 칭찬받아야 되고... 내겐 그런 강박이 있는 거 같아.


남들은 그렇지 않고 잘 사는 거 같은데...

그냥 쉽게 사는 거 같은데, 근데 나는....  항상 뭔가 할 일을 찾았던 거 같애.

할 일 없으면 그냥 쉬면 되는데...

 

내께 아니다 싶고, 쉬고 싶다 이러면 탁 뿌리치고 쉬면 될 것 같은데.. 난 그게 잘 안돼.

내 같은 사람하고 사는 사람이 피곤한 거지.. 마누라랑.. 가족들이...           



I: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좋은 아버지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H:그냥 친구 같은 아버지? 나도 내 또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참 쉬운 게 아닌 것 같더라고.

물론 자식 입장에서는 아빠가 백 프로 친구가 될 순 없겠지.

나도 내 아버지를 보면 너무 멀단 말이야.


난 글쎄.. 애들이 크면 클수록 자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고, 아빠도 아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의 동반자랄까?

크면 클수록 지나 내나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거지 뭐. 내가 낳긴 했지만. (웃음)  그런 아빠가 좋은 아빤거 같애.                     



I:만약 지금 저처럼 아저씨도 내 자식을 인터뷰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질문은 있으세요?      

H:뭐가 이래 어렵노. 한 번도 생각 안해 본 건데...      




...... 엄마 아빠에게 상처받은 게 있는지?...




엄마 아빠가 본인을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는지... 그런 걸 물어보고 싶지... 엄마 아빠가 잘해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잘한다는 것들 때문에 애들이 상처를 받기도 하거든. 엄마 아빠가 널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는지... 그걸 물어보고 싶지.      


     

I : 내 자식을 세 가지 단어로 설명한다면?     

H:딸은 음.... 신비함? 원래 세상의 빛을 볼 애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감사함. 또.. 활발! 거리낌이 없어 우리 딸은. (웃음) 활발해 아주.

항상 즐거워 쟤는. 인생이 즐거운 가봐.      

I:아들은요?

H:아들 하면 떠오르는 게.. 우선 걱정. 그리고 음.. 건강. 그리고...

기대.      



I: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또 아버지로서 내가 해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H:아버지로서도 그렇고 내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음 내가... 내가 잘 살아야지. 애들한테 뭘 얘기하기 전에.

내 인생을 내가 즐겁게 살고, 의미 있게 살고, 감사하면서 살고.     

 

아버지로서는 애들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잘 케어해주는 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게 뒷받침해주는 거.      


그리고 자식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일단 우리 부부가 잘 살아야 해그것만큼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물론 경제적으로 애들 밀어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애들은 우리 엄마 아빠가 어떤 관계로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정서적으로 많이 달라지거든.      

엄마 아빠가 각자의 삶도 잘 살아가야 되지만, 부부로서 서로 아끼고 잘 살아가는 게 애들한테는 가장 큰 유산이고 가장 큰 교육이야.

부부가 자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처럼 해서도 안되고.

그런 관계도 자식한테는 분명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어. 부모로서 우리의 역할은 그런 거지.          


 

I:자식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인가요?      

H: 애들이 내한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라..




일찍 와



그리고 술 마시지 마.(웃음) 합치면 술 마시지말고 일찍 와가 되겠네.    

   

I: (웃음) 그렇겠네요. 그럼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엇인가요?     

H:음... 밥 먹어. 밥 먹어라. 더 먹어라. 좀 더 먹어라.           




I: 지금까지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당신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H: 나도 가정을 유지하지 못할뻔한 때가 있었거든.

그러니까 우리 부부도 22년 차인데 애들이 9-10살 일 때 그때 참 힘들었어, 나와 아내의 사이가.

그땐 심각하게 생각했을 때도 많았는데, 이대로 가정이 깨지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애들한테 가니까... 


그냥 내 식대로 살고 싶고. 너무 안 맞다 싶고 그랬지. 10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말이야.      

내겐 이 가정이  깨지는 데에 대한 그 두려움이 있었어. 그때 아마 우리애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야.


상처도 있을 거고... 물론 나도 직장에서 해고된 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적도 있지만, 그것보단 우리 부부가 깨지는 거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애들한테 주는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지.  

         


I:내 딸의 결혼식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세요?      

H:있지. 점마도 언젠가는 결혼하겠지란 생각은. 그 얼마 전에 했던 응팔에 보라가 나하고 같은 학번이야.

나랑 똑같은 나이인데, 그 보라가 시집을 가더라고.



그런 거 보니까 아 좀 있으면 나도... 우리 딸이 저렇겠구나 싶지.(웃음)      



I:손잡고 입장하는 것도 상상해본 적이 있으세요?

H:상상해봤지. 울 것 같애 난. 하하.      




I:다들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H:싫고 좋고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그냥 감동이지...      

서운해서 울거나 기뻐서 울거나 그렇다기보다는, 내 새끼가 커가지고 또 결혼까지 한다는 게...


남자애가 장성해서 장가가는 거 하고 딸애가 커서 시집가는 거 하고는 아빠 입장에서는 좀 뉘앙스 차이가 있어.  

차별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아빠하고 딸아이하고의 관계는..

더 애틋한 그런 게 있는 거 같애.     


그 장면을 보고 내가 다 울컥하더라고.

극 중의 보라하고, 보라 아빠하고 예물 준비하고 그러는데 -



그 무뚝뚝한 아빠와 무뚝뚝한 딸.. 그 사이에 말은 안 하지만 느껴지는 속 깊은 정.

그거 보면서 나도 울컥하더라고.

우리 딸도 내를 너무 좋아하고 하하.           




I:스스로 난 아버지란 역할에 얼마나 적합하다고 생각했었나요?     

H:생각 안해봤어

I:한 번도요?

H:응. 한 번도.  

자식을 내가 자격이 돼서 낳는 건 아니니까.      


I:그래도 요즘엔 '너가 책임 못질 거면 애를 놓지 말아야지'란 말도 하고....      

H:그렇게 생각하면 그 질문도 성립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부부로서 사랑하고 살면, 자식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를 따져서 고민할 거면     

우선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 되나부터 물어야 되는 것같애..

근데 다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해서라고 하잖아

좋은데 어떻게 하냐고.     


그러니까 요즘 기준으로 하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

사실 워낙 애 낳고 키우는 게 어려우니까....      

힘들어서.....요즘은 애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게 너무 힘든 사회구조니까...


그렇지만 거기에 무슨 자격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실 요즘 아이들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도,

내가 인격적으로 자격이 될 것인가를 묻는 거 보단, 경제적인 부분이 클거자나.



슬프지



어쨌든 내가 아버지가 되기에 적합한지를 고민하진 않았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기에 내가 책임을 지려 했고,

그렇게 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거야.       






OFF THE RECORD


이번에도 이 글을 보는 누군가의 아들/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받았다.

  

촌놈 : 힘이 되어줄테니, 용기와 자신을 갖고 많이 도전하고 기쁘게 살자!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내게 말했다.

언제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말하라고.


나도 인터뷰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저 말, 언젠가 들어본 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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