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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Feb 11. 2016

돼지국밥 4+ (with. 형)

#아버지 #당신과 내가 따뜻했던 순간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그 날까지,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다들 설 명절, 가족들과 행복한 시 보내셨나요?

저도 엄마랑 동생이랑 드라마도 보고, 책도 보고,

또다른 아버지를 인터뷰도 하며 그렇게 보냈답니다.

설 연 푹 쉬었으니, 다시 힘을 내서 글을 올리도록 할께요!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힝...ㅠ 한 살 더 먹었따...ㅠㅠㅠ)




그와 난 밀양에서 처음 만났다.

더 정확히는 청도.    

  

난 밀양으로 농활을 갔다 우연히 청도 대집행의 현장에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밀짚모자를 쓰고 다닌다.      

내겐 약간 루피 같은 사람.


난 해적왕이 될꺼야



루피가 원피스를 찾는 사람이라면,

그는 '현장의 '사람'을 찾아가는 사진사.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밀양에도 있었고,

팽목에도 있었고,

사람이 있는 거리라면,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그에게, 난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맞추어도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았기에, 우린 카톡과 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서면 인터뷰는 처음이지만, 이것도 나름 재밌었다.      


지금까진 인터뷰 순간의 대화, 고민하는 그 숨소리까지 담으려 했는데


질문을 눈으로 보고 적은 정제된 답변도,

그 나름의 고민과 깊이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내용은 쪼금 짧답니다.

여유롭게 읽어주세요.


 


   

I:자제분은 몇 분이신가요?

H:아들 1명(만 29세/87년생)입니다.


I:당신은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쁜가요? 아버지인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H:저는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때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가장 기쁩니다.      


I:다큐멘터리 사진가요?

H:네. 우리 사회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제겐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I:어찌보면 불합리하고, 답답한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혹 아버지이길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나요?

H:전 한 번도, 한 시도, 아버지이길 포기하고 싶던 적이 없습니다.

힘들 때나 어려울 때 모두, 아버지란 사실에 오히려 용기를 받았으니까요.  

         

I:당신이 어렸을 적, 막연히 동경하던 대상은 무엇인가요?

H:사제였습니다. 1970년대를 관통하며 제가 본 불의에 저항하던 사제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택한 것도, 그 영향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나의 자식에게 '결혼'에 대해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H:‘초대’로 설명하려 합니다. 아들에게 동반자로서의 부부관계를 자주 말합니다.

     


I:당신의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H:아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늘 무거운 고민으로 느껴지지요. 힘겨운 현실 속에서 아버지로서의 삶이 쉽지 만은 않아요. 

특히 아들 녀석이 첫 돌을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직장(교사)을 잃었기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요.  

싹둑




I:흔히 자식은 부모에게 잘 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H:우리들의 삶은 개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내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 그리고 내 아들의 세대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코 분리될 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서로에게 잘 해야 하는 겁니다. 


자식 세대였던 우리가 부모의 세대가 되었고, 자식 세대인 이들이 곧 또 다른 누군가의 부모 세대가 될 테니까요. 자식이 부모에게 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일처럼 보이나, 이것은 우리 존엄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뿌리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고,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냐의 문제까지 될 테니까요.        

    


I:그렇다면 아들 세대에게 따로 바라는 것은 있으신가요?

H:저는 아들 세대에게 특별하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리라 믿으니까요.      

저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을 즐겨라’고 말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장 무섭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한국의 이 현실이 너무 가혹할 테니까요.          

 


I:당신과 자식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습관이 있나요?

H:글쎄요.... 습관이라기 보단 현실에 대한 삐딱한... 생각?....         

 


I:당신이 겪었던 것들 중 내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이 있나요?

H:제가 처음 실직을 당했을 때. 그 날의 경험이죠. 그땐 어리숙하게도 제가 그냥 받아들였지만.. 아들에겐... 


싸울 때 포기하지 말고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웃음)      

     


I:그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H:이 험난한 시대에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묵묵히 뚜벅뚜벅 살아가는 것, 그뿐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I:아버지도 노력이 필요한 일인가요?

H: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어요. "사랑도 기술이다"는 것이지요. 사랑을 위해선 숱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도 당연히 노력해야겠지요. 그런 노력 안에서 눈물도 참 많이 나지만.. 아버지이기에 웃음이 나는 일도 많이 있곤 합니다. (웃음)



I:지금의 삶에 만족하나요? 만약 만족을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만족을 하게 되었나요? 만족하지 못했다면 언제쯤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H:만족하는 삶이란 없지요. 단지 자족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족’이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많이 소유했지만 만족할 줄을 모르잖아요.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뿐이지요.  

    

      

지금의 사회에서 만족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합니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내 동료들을 내몰아야 하는 거거든요... 저도 30대 40대를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동료들을 내몰고, 또한 내몰리지 않게 노력하며...      

물질에 대한 유혹은 언제나 뿌리치기 힘든 것이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자족하며, 가난을 선택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불행하게 될 뿐인 것 같아요.      

     

더 많은 것.. 더 많은 것....




I:아버지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왜 그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H: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더 일찍 사진가의 길을 걷고 싶어요. 그냥 하고 싶어요. 거기에다가 신이 내게 재능까지 조금 더 주신다면 더욱 감사한 일이지요. 저는 재능보다는 노력형이니까요.    


           

I: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정말 이루고 싶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아버지로서 당신이 정말 이루고 싶던 것은 또 무엇이었나요?      

H:개인적으로는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어요. 처음엔 사제가 되고 싶었고,  그다음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죠. 지금은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로서도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그런 사진을 찍는... 진짜 사진가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I:아들과 둘이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나요? 기분이 어떠셨나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H:우린 술을 자주 마셔요. 아들 녀석은 저만큼 술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언젠가 아들과 술 시합을 했던 적이 있답니다.  수능시험을 마치는 날, 둘이 술집에서 끝까지 마시기로 했지요. 결국 아들 녀석이 항복했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전 아들에게 네가 행복한 삶을 선택하라고 말해줬지만, 항상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말만 하는 것 같네요.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자식에게 구체적인 삶 보다는, 추상적인 행복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직접 뵙지 못해 카톡으로 그의 별명과 마지막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청년시절, 그의 별명은 '형'.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글을 보는 누군가의 아들/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도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열정을 잃지 말자."






*흑백사진은 모두 네번째 인터뷰이 '형'의 사진입니다.





사진출처- 사제 손 :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MBlN&articleno=766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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