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언젠가
- 각개전투
다시 시작된 월요일. 이번 주는 4주 차이다. 각개전투를 준비하며 마음이 좋지 않다. 이번 종교행사 때
30 연대의 한 훈련병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던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받을 과자 생각만 하고 앉아 있다 그 소식을 접하곤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30 연대면 바로 옆 연대인데.’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건 이 두 가지입니다. 기억하고 기도 합시다.”
정확히 어디가 얼마나 아팠고, 어떤 과정이 있어 그분이 세상을 떠났는지 나는 듣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친구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 나와 같은 훈련병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조금씩 겁도 나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난 정말 겁이 났다.
그전까지는 훈련 하나하나 아무 생각 없이 버텼는데 이번 소식을 듣고 나니 괜히 움츠러든다. 신경이 쓰인다. 이 죽음이 내가 군대를 통해 본 첫 번째 죽음이다.
- 2011년 5월 2일 월요일
군장을 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구성이다. 숙영을 하게 되어 텐트도 넣고 지주핀도 넣고, 옷과 모포와 실제 군장 구성 품목으로 꽉꽉 넣었다. 다 넣어 두고 살짝 들어봤는데 겁먹었던 것보단 가볍다. 방탄을 착용하고 총도 꺼냈다. 우리 모두 군장을 맨 체 침상 끝에 걸터 누워있다.
군장이 동그랗게 튀어나와 다들 거북이가 뒤집혀 있는 꼴이다.
“이게 드디어 마지막이네?”
“그러게. 진짜 빨리 끝나라 끝나라.”
“근데 우리 어떻게 밖에서 자지? 자다 죽는 거 아냐?”
“이렇게 있다 눈 떴는데 토요일 저녁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어찌 되었거나 각개전투가 우리의 마지막 영외 훈련이다. 힘든 훈련이겠지만 마지막이라는 사실 덕분에 다들 조금씩 들떠있다.
위잉---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전 병력은- 지금 즉시 막사 앞 연병장으로 집합-”
우리는 힘차게 일어나서 서로를 보며 무사히 잘 끝내자는 맘으로 손을 꽉 맞잡았다. 이젠 줄 정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작은 행군이다. 이번엔 저번처럼 실수 안 하려고 방독면도 꽉 조여 놨다.
1소대부터 각개장으로 출발. 다행히 날씨는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딱 훈련받기 좋은 날씨다. 줄줄이 이어져 드디어 우리 4소대도 출발이다. 소대장님께서 대열 앞에서부터 걸어오시며 말씀하셨다.
“4소대!”
“xxx번 훈련병!!!!!! xxx”
모두 각자의 번호와 이름을 힘차게 소리쳤다.
“얘들아 마지막 영외 훈련이다. 그간 고생 많았고 이걸로 이 지긋지긋한 훈련도 끝내자! 4소대 할 수 있나?”
“예! 그렇습니다!”
“오케이- 이 소대장도 너희들 믿고 간다. 자 내가 하면 복명복창한다. 4소대~ 파이팅!”
“4소대! 파이팅!”
“한 번 더 4소대~~~ 파이팅!”
“4소대! 파이팅!”
---한 시간 후 각개장 도착---
죽을 것 같다. 모두 파이팅 있게 출발했는데 출발한 지 30분 만에 다 쳐지기 시작했다. 햇볕은 정오로 갈수록 더 강렬해진다. 구름은 갈수록 옅어지고 태양은 갈수록 뜨겁게 불탄다.
1시간 남짓한 거리라 다행이지 조금 더 멀었으면 다들 각개전투 하기도 전에 쓰러졌을 테다. 각개장에 도착해 먼저 총부터 바꾸었다. 각개훈련을 받을 땐 흙도 들어가고 물도 들어가고 해서 미리 훈련 총으로 바꾼단다.
한 사람씩 순서대로 들어가 창고에 자기 총을 거치시키고 훈련 총을 지급받았다.
‘너는 2박 4일간 여기서 쉬고 있겠구나’
진심으로 내가 총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
3 교육대대 전 인원이 각개 훈련장에 왔기 때문에 총을 교환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총교환이 모두 끝나고 우리에게 지정된 숙영 장소로 이동하였다. 나는 그냥 흙바닥에서 잘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멘트로 텐트 자리를 다 만들어 놓았다. 다행히 돌과 나무뿌리에 부대끼며 잘 것 같진 않다.
우리 조는 나랑 범규랑 형석이. 분대장이 텐트 설치하고 정리하는데 30분이란다.
“형석아 너 A텐트 칠 줄 알지?”
“아니?”
“범규야 넌?”
“나도.”
각개전투 첫날. A텐트 치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제한 시간은 30분. 따로 연습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보낸 시간이 있는지 호흡이 곧잘 맞는 우리다.
“형석아 우리 핀은 다 박혔나?”
“잠만- 내 쪽은 다 박혔는데? 범규야 그쪽은?”
“어- 나도 다 박혀있다-”
“동준아 됐다. 일단 이렇게만 해놓고 또 자기 전에 또 하면 되지 뭐."
“알았다. 근데 설마 그 사이에 우리 집이 무너지거나 하진 않겠지?”
30분이 끝나고 각자 군장은 텐트 속에 집어넣은 채 훈련 복장으로 다시 집합했다.
각개전투 첫날. 오늘 오전엔 포복자세 교육이다. 각개전투도 유격 때처럼 숙달된 조교의 시범이 있었는데
기어가는 포복에도 여러 자세가 있었다. 앞으로 기어가는 것이 있고 옆으로 기는 게 있고 뒤로 기는 게 있다.
숙달된 조교의 포복 실력은 상상 이상이다. 무슨 지네처럼 기어가는 데 과장을 조금 보태 내가 걷는 속도보다 빠른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포복 훈련은 오후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3개 그룹으로 나뉘어 평가도 들어갔는데 한 번의 평가마다 2명씩만 쉴 수 있다고 했다. 소대장님의 그 한마디에 갑자기 열의 상승. 어떻게든 한 번에 소대장님의 눈에 들어 이 지옥 같은 순간을 벗어나리라는 부푼 꿈으로 모두 팔꿈치를 땅에 박아 가며 열심히 기어 다녔다.
나는 네 번째로 탈출했다. 열심히 하는데도 왜 안 뽑아주지라는 생각에 다른 동기들의 모습을 보니 답은 표정과 살아있는 리액션. 마치 영화를 찍는 듯 리얼한 표정으로 훈련을 받는 친구가 통과하는 것을 보고 나도 혼신의 표정연기와 리액션으로 네 번째로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
훈련의 마지막 40분. 우리의 포복훈련 마지막은 릴레이였다. 선수는 아까 잘한다고 뽑혔던 애들. 상품은 그 팀 전원 휴식. 그 말에 애들은 모두 나를 선수로 추천했다.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그렇게 시작된 포복 릴레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영웅이 되어보자는 생각에 뱀처럼 흙바닥을 기어 다니니 팔꿈치가 남아나질 않았다. 그렇게 수업은 우리 팀의 승리와 함께 18시로 종료되었다. 물론 내 팔꿈치도 함께 종료되었다.
여긴 쉬는 시간도 너그럽게 주질 않았다. 저녁을 대충 반합에 받아먹은 뒤 시작된 야간 훈련. 짙은 푸른빛을 띄며 어두워져 가던 하늘은 이젠 완전한 어둠이 덮어버렸고 정확하게 달빛, 그 하나에만 의지해 야간 기동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달빛에 의지해본 적 없던 내가, 오직 달빛에만 의지해 걷고 있다. 은은하다는 형용이 이럴 때를 쓰는구나.
너무나 피곤하고, 지치고 짜증 나지만 아침과는 또 다른 고요다.
밝지 않으나 선명하게 은은한.
달빛을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다.
밤 9시까지 이어진 야간 기동 훈련이 끝나고 다시 텐트로 이동했다. 텐트들이 있는 언덕 위에는 큰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밤이었지만 많이 어둡진 않았다.
“각자 자기 텐트로 위치하고 개인장비 이상 유무 확인해서 텐트별로 번호가 제일 느린 사람이 보고 할 수 있도록.”
형석이와 범규와 함께 텐트에 도착한 나. 텐트에 도착하니 아침에 대충 만들고 나간 탓일까 언덕의 경사면을 따라 기울어져 있는 텐트.
다른 동기들은 각자의 텐트에 들어가서 전투화도 벗고 총도 넣어놓고, 흙이 잔뜩 묻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우리는 밤 9시가 넘어 다시 야삽을 집어 들고 지주핀을 박고 있다. 지주핀도 밤이라 땅이 얼었는지 아침처럼 잘 박히지도 않는다.
역시 한 번 한다 했을 때 끝까지 해놓아야 하는 법. 대충 했다간 결국 일을 두 번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린 9시 40분이 되어서야 늦은 보고와 함께 텐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제일 안쪽에 우리 셋의 군장을 잘 세워두고 방독면과 총과 방탄, 탄띠를 두고 입구 쪽에 전투화를 벗어두니 크기가 딱이다. 정확하게 우리 빼고 짐만 넣으니 딱이다.
그래서 세명이 텐트 밖으로 나와 긴급회의를 가졌고 우리의 최종 결론은 소파처럼 군장에다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자자고 했다. 정확히 10시가 되자 언덕 위에 있던 조명 빛이 꺼졌고 분대장의 소리가 들렸다.
“1소대 첫 번째 불침번 지금 즉시 언덕 위로 위치하도록!!!”
분대장의 소리를 듣고 형석이가 놀라 말했다.
“야 여기서도 불침번이 있나 본데?”
“그럼-여기서도 총이 있는데 해야지.”
“한 시간씩 하려나?? 잠깐만 그럼 이제 1소대니까 우리까진 안 올 수도 있겠네?”
“그런가?”
“아- 제발 제발. 각개전투까지 와서 불침번은 진짜 제발.”
텐트 밖으로 작은 불빛이 흔들리더니 분대장이 돌아다니며 말했다.
“내일 이상 없이 06시 기상이다. 쓸데없이 떠드는 텐트 있으면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걸로 간주하고 추가 야간 훈련이다. 불침번 또한 떠드는 텐트 있는데도 보고 안 하는 게 적발될 시 가차 없이 그 인원도 취침 없이 훈련이니까 제대로 근무 설 수 있도록.”
가지고 왔던 활동복을 꺼내 안쪽에다 껴입고 우리도 얼른 잠을 청했다. 난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 아람단, 우주소년단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꼬꼬마라 밖에서 생(生)으로 자는 건 처음이다. 씻지도 못해 굉장히 찝찝하고 맨바닥에 누우니 등도 배기고 남자 세 명이 어떻게든 밖으로 안 나가려 딱 붙어 있지만 뭐.
생애 첫 야외취침이라는 사실에 이마저도 설레긴 하다. 안경을 벗어 방독면 안에 넣어두고 잠을 청했다.
“기상-----------”
마지막 불침번이 텐트 여기저기를 돌며 기상이라고 전달한다. 기상 전달 소리를 듣고 뒤척이는 범규 덕에 나도 눈을 힘겹게 눈을 떴다.
허리가 많이 아프다. 아무래도 잠을 잘못 잤나 보다. 어젯밤에 방독면에 넣어두었던 안경을 꺼내 쓰고 텐트 밖으로 기어서 나왔다.
‘어디 보자~ 하늘은?’
맑다. 너무나도 맑다. 참으로 훈련받기 좋은 날씨다.
“아윽...동준아...손..손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보니 텐트 안에서 웬 좀비가 기어 나온다.
“형석아. 니 왜 좀비가 돼서 나오노.”
“아 못 자겠다 여기서. 온몸이 쑤신다. 내 손 좀 잡아줘.”
형석이에 이어서 범규도 기어 나온다. 얘는 제일 먼저 일어난 놈이 제일 늦게 나온다. 언덕 위에서 분대장이 소리쳤다.
“전원 07시 40분까지 언덕 위로 집합”
왜 한 시간이나 뒤에 집합인가 싶어 시계를 보니 07시 25분이다. 깜짝 놀라 마지막 불침번에게 가서 물으니
아침에 간부들끼리 회의가 길어져서 한 시간 더 잤다고 한다.
‘무슨.. 일이지?’
오전에 시작된 장애물 훈련. 각 단계별로 분대장들의 시범을 먼저 보았다. 총을 들고 다다다닥 뛰어가서
푸다닥하고 장애물을 넘고 엎드리는데 이건 진짜 멋있었다. 분명 팔꿈치 하고 무릎하고 아플 텐데도 하나도 아픈 척하지 않고 뛰는 모습이 처량하긴 했지만 다음 장애물로 다다다닥 뛰어가서 푸다닥하고 엎어지는 모습이 절도 있게 끊어져 멋있긴 했다.
시범 후 내 차례가 되었고 먼저 통나무를 건넌다. 분대장조와 부분대장 조로 나눠 우리 분대가 건너간다. 분대장 조인 영호가 먼저 말했다.
“분대장조! 약진 앞으로! 우와아아앙!!!”
힘차게 소리 지르며 뛰어간다. 부분대장 조인 우리는 엄호 사격을 해주었다. 입으로.
빵~!! 빵~!! 빵~!! 빵~!! 빵~!! 빵~!!
큰소리로 해주었다.
빵~!! 빵~!! 빵~!! 빵~!! 빵~!!
다음 우리 부분대장 조 차례. 내가 힘차게 외쳤다.
“부분대장 조! 약진 앞으로! 우와 아아아 앙!!!”
그러자 분대장 조가 힘차게 우리를 엄호해주었다. 입으로.
빵~!! 빵~!! 빵~!! 빵~!! 빵~!! 빵~!!
더 큰소리로 해주었다.
빵~!! 빵~!! 빵~!! 빵~!! 빵~!! 빵~!! 빵~!!
멋진 전우애다.
그렇게 우린 장애물을 하나씩 넘었다. 철조망도 뒤로 해서 넘고 물도 건너고 포복으로 통도 건넜다. 장애물들을 쭈욱 통과하고 다시 원위치로 뛰어오며 우리 소대는 외쳤다.
“훈련은 전투다! 각! 개! 전! 투!!!”
오전은 반복해서 장애물 훈련을 하였고 오후엔 지형지물 훈련이 이어졌다. 지형지물 훈련은 장애물 훈련과는 다르게 장애물을 극복하고 건너가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 시에 각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하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이었다.
교육장으로 이동했고 소대장님의 사전교육이 있었다.
“이번 훈련은 너희들이 실제 전투 시에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사격을 잘해서 적들을 쓰러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너희들이 죽지 않는 것이다. 장애물 훈련할 때는 너희들끼리 조금 장난스럽게 해도 넘어갔지만 이번 훈련만큼은 진지하게 임해라. 쉽게 얘기해서 훈련 중에 이빨 보이면 그대로 훈련 종료하고 남은 시간 동안 얼차려 시킬 테니까 명심하고. 그럼 먼저 조교들의 시범부터 보자-”
이번에도 조교들은 빠른 속도로 다다다다 뛰어가서 통나무 2~3보 앞에서 미끄러진 다음, 포복으로 통나무로 다가가서 엎드려 쏴 사격 자세를 취한다. 저렇게 뛰다가 바로 엎드리면 팔꿈치랑 무릎이랑 아플 텐데.
눈에 가시 같은 조교들이지만 시범을 보일 때만큼은 조금 존경스럽기도 하다. 조교들의 시범이 끝이 나고
이젠 우리의 차례가 되었다. 지형지물은 통나무도 있고 돌무덤도 있고 나무 그루터기도 있고 벽도 있다. 여러 개의 지형지물에 몸을 숨기며 이동하다, 마지막 지형지물에선 벽 뒤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나는 코스였다.
소대장님께서 진지하게 하라고 하셨지만 '약진 앞으로'를 외칠 때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고지전'의 주인공처럼 다들 두 눈 부릅뜨고 뛰어다녔다.
첫날, 포복훈련보단 훨씬 재밌었다.
훈련을 잠시 쉬고 20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나무 그늘에 걸터앉아 방탄을 벗고 땀을 닦았다. 어느덧 5월이 되었고 이제 여기도 조금씩 햇빛도
봄 햇살답게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훈련장이 산속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꽃도 조금씩 보인다. 부산은 3월만 되어도 봄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충청도로 올라오니 5월이 되어야 꽃이 만발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단 뜻이겠지. 처음엔 가족 생각도 많이 나고 바깥 생각도 참 많이 났는데, 훈련이 연달아 이어져서 그런가 지금은 신기할 정도로 바깥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늘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돌아보니 내 옆에서 나와 똑같은 머리를 하고 땀을 식히며 동기들이 웃고 있다. 씻지 못해 꼬질꼬질 해진 얼굴로 웃고 있는 동기 애들을 보니 왜 바깥 생각이 안 났는지 알 것 같다. 여기에서도 다른 위로와 기쁨을 찾게 되었다. 징글징글한 남자들이지만 함께하니 위로가 된다.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라 어리둥절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 한 번씩 해본 일들이 된 터라 마음의 부담이 그렇게 크진 않다. 이런 과정을 적응이라고 하나보다.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나도 했다. 적응.
분대장들이 각 소대 분대장 훈련병과 부분대장 훈련병을 부르더니 가나 초코바와 포카리스웨트를 나누어 주었다.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울었다. 그렇게 껍질에 남아 있는 조금의 초코라도 더 먹으려고 핥고 있는데 애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5시에 복귀한단 말이 들리더니 갑자기 쉬는 시간이 끝나는 대로 바로 복귀라는 말도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분명히 2박 4일 훈련으로 출발했는데 1박 후 복귀라니...
계획되었던 훈련을 안 한다는 것엔 대체로 좋은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수군수군하던 아이들의 얘기와는 다르게 훈련은 쉬는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고 오후 훈련 또한 종료 시간인 5시까지 이어졌다.
5시에 훈련이 종료되고 숙영지로 돌아오니 텐트가 사라졌다. 소대장님이 말씀해주셨는데 기상청에서 내일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너무 거세서 야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황사경보를 내렸고 그래서 육군 훈련소장이
야외훈련 중인 부대를 전원 복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황사로 최초 2박 4일간의 훈련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1박은 텐트, 1박은 생활관에서 하게 되었다. 전혀 의도치 못하게 어젯밤이 훈련소 마지막 야외취침이 되어 버렸다. 단단히 마음먹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해진 각개전투 훈련에 가벼운 마음으로 군장을 싸고 대대로 복귀하는 걸음을 시작했다.
훈련용 총기를 반납하고 다시 내 총을 받았다. 역시 좀 무겁긴 해도 내 총이 낫다. 이젠 내 총 아니면 어색하다. 약 2시간의 이동 끝에 대대로 복귀했다.
각개전투 3일째. 오늘은 첫날에 했던 포복 훈련과 둘째 날에 했던 장애물 훈련, 지형지물 훈련의 최종판!! 이름도 무시무시한 -종합 각개훈련- 이 있는 날이다.
대략 30여 개의 코스와 500M의 코스 길이, 45도의 산 경사를 뛰어 올라가서 최종 고지를 점령하는 고지 점령훈련이란다. 어쨌든 숙영은 피하게 되었지만 야간행군은 피할 수 없는 훈련소의 꽃이기에 우리는 다시 군장을 싸기 시작했다.
기본은 군장 안에 텐트를 넣는 것이 정석이지만 우리는 텐트를 연대 자체에서 미리 수거해 갔기 때문에 텐트가 없어 대신 모래주머니 2개를 넣었다. 하나가 10KG짜리였다.
텐트와 개인 물품 빼고 양말하고 모래주머니만 넣으라는 분대장 말에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간행군은 밤 새 걷고 8시간은 족히 걸을 텐데 모래주머니 2개라니.
“야 뺄까?”
“저번에 주간 행군할 때 누가 뺐다가 걸려서 영창 갈 뻔했다던데?”
“야 그럼 이걸 어떻게 해?”
아이들 사이에선 모래주머니를 그냥 넣고 가느냐, 아니면 몰래 빼고 가느냐에 대해 심각하게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번 15KM 주간 행군할 때도 거의 하늘나라 근방까지 갔다 왔었는데 그땐 겨우 모래주머니 하나만 넣었었다. 물론 모래주머니 외에 텐트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 번 해보니 2개는 영 부담스럽긴 하다.
그렇다고 또 확 빼버리자니 저번 주간 행군 때 모래주머니 뺐다가 걸린 다른 소대 애가 기억이 난다. 그때 그 동기는 정말 영창까지 갈 뻔했다. 이제 다음 주만 하면 퇴소인데, 잘못 걸려 다시 이 짓을 반복할 순 없다.
그때 형석이는 잠잠히 있다 무릎을 탁 치더니 말했다.
“야- 난 뺀다-”
그러더니 얼른 군장에서 모래주머니를 빼 관물대 깊숙이 숨겨둔다. 그렇게 난 하나가 끝인 줄 알았는데 남은 하나도 마저 빼서 관물대에 넣는 것이 아닌가?
“형석아- 니 미쳤나? 두 개 다 빼면 우짜노?”
“동준아- 괜찮아- 삘이 왔어! 촉! 남자면 못 먹어도 고! 분명 밤이라서 안 걸릴 거야-”
씩 웃는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가만히 있는데 형석이를 본 몇몇의 애들도 “몰라! 죽이기야 하겠어?”라며 다들 모래주머니를 빼버린다. 이젠 흐름이 바뀌어 다수가 모래주머니를 빼는 선택을 한 상황. 미리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모래주머니를 빼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빼지를 못했다. 왜냐면 나는 소심하고 생각이 많아서 모래주머니를 빼면 분명 엄청 긴장하고, 분대장들 눈치 보고, 들키지 않을까 염려할 걸 알기 때문에 빼고 나서도 마음이 안 편했을 것이다.
그렇게 난 모래주머니 2개를 넣은 군장을 메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이어진 종합 각개훈련. 산을 깎아 놓은 훈련장이라 정말 넓어 실제 전장처럼 소대별로 훈련을 받았다. 벽도 뛰어넘고 철조망도 건너고 장애물 밑으로 포복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면 숲 속에선 M60 기관총으로 공포탄을 사정없이 쏘고 머리 위에선 전투기 소리와 실제 전쟁 소음이 쩌렁쩌렁 울리고 방금 지나 온 장애물 앞에선 모형 폭발물도 터졌다.
훈련장에 날리는 흙가루를 얼굴로 맞으며 생각했다.
‘실제 전투라면 총 한 번 못 쏴보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기관총 소리와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나오는 전쟁 소음으로 옆에 있는 동기들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냥 뛰어가는 동기를 보고 나서야 나도 다음 장애물로 뛰어가는 꼴이다. 너무나 약식이었고 말 그대로 체험인 훈련이지만 나는 이번 훈련을 받으며 전쟁이 나면 다들 너무 쉽게 죽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코스 밑에서 볼 땐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여기에 들어와 철조망 밑을 기어가고 있으니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
‘실제 전투라면 난 정신이나 제대로 가눌 수 있을까?’
지금은 적 참호 진지 안이다. 오전과 다르게 이젠 공수가 바뀌어 다른 중대가 올라오고 우리는 고지를
사수한다. 고지 사수 훈련을 하니 분대장들이 공포탄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공포탄은 항상 하늘을 향해서 쏴야만 하고 쏘고 나선 약실을 열지 않는다!’
잊어버릴까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뇌었다. 진지 안에 몸을 숨기고 다른 중대 동기들이 올라오는 코스에 총을 겨누고서 있는데 공수가 바뀌어 올라오는 이들을 쏘기 위한 상황도 기분도 이상했다.
별로 다시 느끼고 싶진 않은 기분이었다. 찜찜한 기분. 동물을 잡는 것처럼 길목에 총구를 겨누고 올라오는 사람을 쏘기 위해 기다리는 것. 괜한 생각이 너무 많은 걸까.
--18시 53분
오전, 오후 이어졌던 종합 각개훈련도 끝나고 이제 군장을 정리하고 있다. 출발하기 앞서 다시 한번 어깨끈을 몸에 맞추어 본다.
--18시 55분
“복창한다- 출발 5분 전!!”
“출발 5분 전!”
모두 군장을 맨 상태로 일어난다. 다른 애들을 보니 괜히 분대장들 눈치를 보며 무거운 척을 한다. 나도 빼고 올 걸 그랬나? 이번 행군이 마지막이어서 그런가 엄청 허술하다. 난 진짜 무거운데 얘내들은 딱 봐도 그냥 가벼워 보인다.
그때 앞에서 호각 소리가 들렸고 소대장님께서 소리치셨다.
“4소대 파이팅! 낙오하지 마라. 낙오하는 놈은 나랑 한 달 더 할 줄 알아.”
앞에서부터 조금씩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침 한번 꼴깍 삼키고 1열로 서있던 우린 앞 뒤로 손을 맞잡았다.
“야- 막사에서 살아서 보자.”
“뒤에서 보고 있으니까 딴 길로 세지나 마라.”
“거봐. 내가 모래 빼도 안 걸린다고 했지? 촉이 왔다니까.”
시바. 뺄걸.
1소대부터 출발하여 이제 우리 4소대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대장님과 분대장들의 구호에 맞춰 쩌렁쩌렁하게 파이팅을 외친다. 이번 행군이 5주 간의 훈련소 그 마지막 훈련이다. 이것만 무사히 마치면 드디어 나도 끝이다.
막막하고 설렌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별 탈 없이 이번 야간 행군을 마칠 수 있길 기도한다
---20시 20분
지지직--
“현 위치에서 모두 10분간 휴식-”
“4소대 입감-”
소대장님의 무전기를 통해 반가운 무전이 왔다.
“4소대 현 위치에 군장 내려놓고 10분간 휴식-”
“10분간 휴식!!”
야간 행군이 시작된 지 1시간 20분째. 현재 상태. 정신 양호. 발바닥 아직까진 양호. 어깨 통증 있지만 아직까진 양호. 체력 양호. 도착 예정 시간은 새벽 4시.
아직 8시간이나 남았다.
주간 행군도 했고 수류탄이나 화생방 교장 갈 때도 한 시간씩 군장을 매고 걸어서인지 1시간 20분이 지나가는 지금까진 큰 무리 없이 견딜만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저녁 8시 반.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지만, 제법 어둡다. 봄이 오긴 했어도, 아직 낮은 밤보다 짧다. 야간행군이라 괜히 긴장하고 겁을 먹었었는데 오히려 해가 지니 땀도 나도 금방 식고 괜찮다. 무엇보다 열이 금방금방 식는다.
다른 애들은 잘 하고 있나 싶어 돌아보니 형석이 이 자식은 군장 위에 드러누워 콧노래를 흥얼 댄다.
시바. 뺄걸.
“4소대 출발 5분 전- 모두 기상해서 방탄 착용해라.”
“출발 5분 전!”
다시 출발이다.
--- 22시
주님. 살려주십시오. 어깨가 부서질 것 같습니다.
모래주머니 2개 진짜 오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군장이 더 무거워진다. 빈틈없이 조인 어깨끈이 이젠
내 어깨 틈으로 점점 파고든다. 발바닥도 느낌이 이상한 게 조금씩 물집이 잡히는 것 같다.
현재 상황
- 정신 멘붕 직전
- 체력 15프로
- 어깨 뿌아지기 시작
- 발바닥 물집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
한참을 걸은 것 같아 왼쪽 손목을 들어 시계의 라이트를 켜 보면 겨우 3분 지나있다. 이젠 날이 더 어두워져 앞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고개를 들 힘도 없어 그저 내 발만 보고 가다 앞에 가는 범규와 부딪힌 것도 수십 번이다.
그렇게 고개만 푹 숙인 채로 걷고 또 걷다 고개를 들어 보면 멀리 있는 빨간색 경광봉만 반짝인다.
빨간 경광봉 불빛들이 이어져 마치 꾸불꾸불한 뱀처럼 보인다.
힘겹게 고개 하나를 넘으니 저수지가 나온다. 왼쪽으론 높은 저수지가 있고 오른쪽 저 끝엔 고속국도가 보인다.
가로등 하나 없는 행군길. 저기 보이는 고속국도와 너무 대조되는 내 현실이다. 고속국도의 가로등 불빛은 너무 블링 블링 하게 빛나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마치 별똥별 같았다.
너무 밝게 빛나는 고속국도를 보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나 싶다. 괜히 서럽다. 이 어두컴컴한 길을 걸으니 한없이 내가 처량해 보인다.
--- 새벽 1시
대 휴식이다. 큰 훈련장에 들어가 중대별로 앉았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논산 어딘가의 산이다. 뜨거웠던 몸이 새벽바람에 금세 식어버리고 이젠 으슬으슬 추워진다. 다들 군장 안에 가지고 있던 판초우의를 꺼내 덮어 입고
모포를 가져온 애는 모포를 뒤집어쓴다. 형석이와 애들은 가지고 온 게 없어 덜덜 떤다. 그래서 어떻게든 엉겨 붙어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고 있다.
분대장들과 소대장님이 나눠주신 포카리와 가나 초꼬바. 대 휴식 시간은 30분. 그 사이 양말도 갈아 신고 어깨도 푼다. 군화를 풀고 양말을 보니 이미 땀으로 젖어있다. 양말을 벗으니 물집이 내게 안녕하고 인사한다. 보고 나니 다시 군화를 신기가 너무 무섭다.
---- 새벽 4시 58분
멀리서부터 팡파르가 들린다. 드디어 도착했다. 정겨운 내 막사. 정겨운 나의 집. 광개토 연대여 영원하라. 장장 9시간에 걸친 야간행군. 드디어 끝이 났다. 내가 해냈다니. 어깨와 발과 체력은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
우리 소대에서도 발을 접질리고, 어두운 밤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중간에 행군을 못 하게 된 애들도 있었다.
쉽지만은 않았던 야간행군이다. 그만큼 우리를 맞이해주는 군악대의 노래가 더 신나게 울려 퍼졌다. 정말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걸릴까 봐 겁이나 빼지 않았던 모래주머니 2개. 이젠 덕분에 자대에 가서도 어떤 무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을 계기로 느꼈다. -처음을 정석으로 하자- 첫 경험을 제대로, 정석대로 하면 앞으로 어떤 걸 하던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행군이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가 짐을 풀고, 활동화로 갈아 신어 병사식당으로 갔다. 우리 모두 활동화로 갈아 신고는 뒤뚱뒤뚱 걷는다. 발이 군화에 익숙해져 몇 시간을 버티다 편한 활동화를 신으니 통각이 다시 살아난다.
새벽 5시.
우린 지금 병사식당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다. 야간행군으로 4주 차 모든 훈련이 끝나고 우린 지금 삼계탕을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