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어느 날
- 해괴한 동작들
“똑바로 안 합니까! 고개 듭니다. 방탄 땅에 닿지 않습니다!”
PT 8번. 8번이 PT의 최고봉인 줄 알았으나, 웬걸 뒤로 갈수록 더 난해하고 해괴한 동작들이 나온다. 계속되는 PT체조에 조교 분대장도 시범하면서 달달달. 우리도 교육받으면서 달달달. 모두 달달달.
그렇게 오전 내내 좌로 데굴, 우로 데굴하니 내 전투복과 전투화가 뿌옇다. 3시간 여의 오전 교육이 끝나고 오후엔 본격적인 장애물 극복 훈련이 이어졌다. 코스는 대략 이십여 개. 한 코스당 15분씩이라고 하니 얼추 계산해보니 여기 있는 모든 인원이 다 훈련받기엔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
장애물 극복 훈련 땐 기존 소대별로 훈련이 진행되었다. 오전 내내 생이별을 했던 우리. 다시 만나니 괜히 울컥한다. 잃었던 가족을 되찾은 기분이다. 분대 애들과 함께 우리 소대의 분대장도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고 심지어 착해 보이기도 한다.
아 이것이 유격의 힘인가-
다 모이고 나서 기초 장애물 코스로 이동하였다. 훈련장에선 이동할 때 항상 구보를 하라고 한다. 구보시 구호는 “유-격-자-신-”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 있게 하라는 뜻인가? 여하튼 코스별로 이동할 때 꼭 뛰어야만 하고, 꼭 크게 구호를 외쳐야만 한다. 천천히 뛰고 구호 소리가 작으면 장애물 도착 후 다시 PT체조를 시켰다.
첫 코스엔 통나무 두 개가 놓여있었다.
“본 코스에 오신 교육생분들 환영합니다. 본 코스는 기초 장애물 코스로서 통나무 건너기이며, 산악지형에서의 균형감각과 대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럼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조교 위치로-”
“유격~유격~ 보고!!”
“보고-”
“0번 훈련병- 도하준비 끝!!”
“도하-”
“유-격-.. 유-격-.. 유-격-.. 보고!!”
“보고-”
“0번 훈련병 도하 완료!!”
“위치로-”
“위치로!! 유격~유격~”
단순히 통나무 건너는 건데도 절도 있게 건너니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필히 장애물 훈련 전 본 교관에게 보고 하여야 하고 이동 중엔 유격이란 구호를 붙이며 구보로 이동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일 좌측 1열부터 앞으로 나옵니다.”
“유격! 유격!”
현재 내 위치는 제일 우측 제일 뒷줄. 왠지 좌측부터 시킬 것 같아 제일 우측으로 이동했는데 예상이 적중했다. 덕분에 기다리는 동안 좀 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조교 한 명이 다가오더니 외쳤다.
“전원 PT 8번 준비-”
.. 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훈련병들은 체조 실시합니다. 장애물을 실시하고 나서도 다시 원위치 후 체조 계속해서 실시하면 됩니다. 온몸 비틀기 4회- 몇 회??”
“4회!”
“2회 반복 시~작-”
삐삐 삑 하나!! 삐삐~삐비 빅 둘!!
“반복구호 나왔습니다. 정신 안 차리지? 온몸 비틀기 8회- 몇 회???”
“8회!!!!!”
“7회 반복- 시~작-”
괜히 머리 썼다가 첫 번째 코스에선 PT 8번만 15분간 주야장천 했다. 배 근육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이어 계속해서 장애물을 이동하며 훈련을 받았다.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뛰어넘는 것도 있었고,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있었고, 3 줄타기도 있고, 구름사다리도 있고 별에 별게 다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높은 게 싫고 빠른 게 싫다. 근데 여긴 다 높다. 장애물들은 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는 거 이거나 높은 데서 높은 데로 건너는 거뿐이다. 그래도 너무 어려운 장애물은 없었다. 악랄하게 우리를 굴릴 때와는 달리
장애물을 할 땐 분대장이 상세히 알려주어서 그대로만 하니 원만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장애물 중 내게 제일 어려웠던 건 11M 레펠. 처음 보았을 땐 그냥 벽이겠거니 했는데 저기에 사람이 매달려 줄 하나만 타고 내려올 거라곤 정말 상상을 못 하였다. 훈련에 앞서 숙달된 조교의 시범은 화려했다. 11M의 절벽을 단 세 번의 제동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무슨 007인 줄.
감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되어 안전띠를 허리에 매야했다. 레펠장 밑에서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는 교육생에게 안전띠를 전달받으며 물었다.
“저기요- 어때요..??”
“진짜 뒤져요. 뒤져. 어후.”
내 차례가 되어 올라갔다. 소대장이 손짓으로 날 재촉한다.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 내 배에 있는 안전띠 고리에 바클을 연결하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왼팔로 줄을 잡고 오른팔로 제동을 하는 거야. 오른팔을 풀면 내려가고 허리에 붙이면 멈춘다. 간단해. 준비-”
참 간단하게도 설명한다. 절벽 쪽으로 엉덩이를 내민 채 뒤로 이동하는 거라 첫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너무 어렵다. 벽과 90도로 만드는 게 시작 자세인데 자신의 두려움과 싸워야만 한다. 그렇게 레펠을 끝으로 나의 첫 번째 유격훈련은 끝이 났다.
막사로 돌아오는 길, 분대장으로부터 수고했다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격려와 함께 무시무시한 소리도 들었다.
“4소대- 모두 수고 많았다. 훈련 간 열외 인원 없이, 부상인원 없이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너희들을 담당하는 나도 마음이 가볍다. 오늘 했던 체조와 각 장애물들을 모두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라. 너희들이 자대로 가게 되면 다시 유격 훈련을 가게 된다. 그땐 4박 5일 동안 오늘과 같은 훈련을 하게 되니까 잘 기억하고 있으면 훨씬 수월하겠지. 당일은 기초유격이었단 사실을 명심할 수 있도록.”
--일발필중! 일격필살!
드디어 3주 차 마지막 훈련이다. 정말 지옥 같았던 훈련소 3주 차. 어떻게 한 주 안에 화생방이랑, 유격이랑, 수류탄이랑, 사격이랑 다 할 수가 있는지. 그래도 어떻게 버텨 버텨 금요일이 되었다. 이제 다음 주만 하면 훈련소도 끝이 난다.
오늘은 기록사격이 있는 날이다. 이번에도 어젯밤에 열심히 총기 수입을 했다.
“너희들 이번엔 열심히 닦아라. 만발하는 인원들은 수료식 때 연대장님 표창을 받는다. 그럼 자대 가서 남들은 신병 4박 5일 나갈 때 너희들은 5박 6일 나가니까 그 차이는 말 안 해도 잘 알거라 생각한다.”
그 말을 듣곤 다들 총에 가지고 있는 기름이란 기름은 다 쏟아부었다. 총알이 미끄러지듯 나가 과녁에 꽂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애들 사이에선 영점 때처럼 간식 몰아주기 내기가 벌어졌다. 하지만 나는 지난 영점 때 이미 탈탈 털린 몸이라 자본도 없고 자신도 없다. 이미 이번 일요일에 열심히 종교행사 두 탕 뛰어서 갚아야 한다.
기록사격은 13발이 합격이라는데 내가 잘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합격자는 주말에 다시 가서 훈련한다는데 만발은 꿈도 안 꾸고, 그냥 함격만 했으면 좋겠다. 금요일 아침,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내 번호가 적힌 방탄을 눌러쓰고 5개의 탄알 집도 빵빵하게 챙겨 놓고 사격장으로 출발했다.
사격장에 도착해선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또! PRI를 했다. 대체 왜 사격 전에 PRI를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이미 팔이 달달 떨려오는데 이 떨리는 팔로 사격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기록 사격은 영점과 다르게 입사호에서 10발, 엎드려쏴로 10발을 사격한다. 그러니까 총 20발의 사격.
40분이 의 PRI 훈련 후 드디어 우리 11조가 부사수의 위치로 올라갔다. 부사수 자리에 올라와서 본 기록 사격장. 25M였던 영점 사격장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길었다. 10조의 사격에 앞서 중앙에서 각 사로 별로 타깃을 한 번씩 보여주었다.
100M는 그럭저럭 보이는데 200M와 250M는 왜 이렇게 작은 건지. 두 눈으로 봐도 잘 안 보이는데 한 눈을 감고 조준 구멍으로 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실제 타깃을 보고 나니 더 자신감이 떨어진다. 괜히 잘 잡아놓은 영점도 틀려져 있지 않은지 걱정도 된다.
나보다 앞서 사격을 하는 10조의 동기는 정말 잘 쐈다. 뒤에서 한 발씩 격발 한 탄의 수를 헤아리는데 탄의 개수를 말함과 동시에 전방에 있던 타깃도 넘어간다. 10발의 사격이 다 끝나고 입사호에 들어가 있던 10조는 호 밖으로 나와 엎드려 쏴 준비 자세를 취했다. 지금까지는 10발을 다 맞추었다.
보통 입사호가 더 어렵다고 하니까 얘는 잘하면 포상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엎드려 쏴 준비가 끝이 나고
사수에게 탄창이 인계가 되었다. 괜히 나도 긴장이 된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각 사로로부터 격발이 되었다. 한 발 한 발 이어졌고 마지막 100사로만 남겨둔 순간. 사수도, 옆에서 안전통제하던 분대장도, 뒤에서 탄을 세던 나도 모두 긴장한 채 타깃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20번째.
100사로의 타깃이 올라왔고 그 타깃만큼은 넘어가질 않았다. 너무 안타까웠다. 스스로도 긴장이 많이 되었나 보다. 분대장도 잘했다고 토닥토닥해주었다. 총 20발 중 19발.
‘그래도 저 친구는 합격이네. 부럽다..’
10조의 사격이 모두 끝나고 이젠 11조가 사수의 위치로 이동했다. 거치대에 총을 두고 부사수에게 탄창을 인계받았다. 탄창을 결합하고 사격 개시를 알리는 중앙 통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이크의 지직대는 소리와 함께 사격 개시란 말이 들렸다. 그동안 훈련한 대로 어깨에 견착도 확실히 하고 접용 점도 정확히 맞추고 조준점도 정확히 맞추었다.
‘좋아-좋아- 배운 대로만 가자! 한 번에 합격!’
250사로의 표적이 올라왔다.
‘습-.....’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숨을 참았다.
‘하나.. 둘... 셋...’
빵!!!!
아. 안 넘어갔다. 첫 발이 빗나가니 그다음부턴 줄줄이 빗나갔다. 말 그대로 한 번 말리니까 그대로 돌돌 말려버렸다. 이런 유리멘탈 이라니. 그렇게 기록사격 1차에선 12 발이라는 처참한 기록과 함께 내려와야 했다.
내려와서 보니 분대 애들 중엔 벌써 합격한 애들도 많다. 괜히 더 조급해진다. 다음 2차 사격은 25조 15사로. 한 시간 뒤 다시 기회가 왔다.
‘이번엔 꼭 해내자!’
다시 한번 신중하게 탄창을 결합하고 사격 개시를 기다렸다. 이윽고 올라온 250사로.
빵!
또 안 넘어갔다. 너무 맘이 앞섰나? 시간이 충분함에도 급하게 쏴버렸다. 항상 일을 그르치는 건 이놈의 조급함이다. 첫발이 빗나간 이후엔 그냥 마음을 접었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싶어 마음을 접고 그냥 퉁퉁 쐈는데 어라
?
놓친 첫 발을 빼고 10발 중에 9발을 모두 맞췄다. 마음을 비우니까 그냥 쏘는데도 과녁이 촉촉 넘어간다. 이어 엎드려쏴 자세에서도 퉁퉁 쏘는데 다 넘어간다. 이제 마지막 100사로! 이것만 맞추면 나도 19 발이다.
빵!
넘어갔다. 총 20발 중에 19발.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쏘니까 너무도 수월하게 넘어간다. 그렇게 진지하게 긴장하고 쏠 때는 넘어가지도 않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다 넘어갔다. 이전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던 탓일까.
이윽고 해가 지고 야간이 되었다. 오늘은 야간사격도 함께 있었다. 나는 야간 16조 9사로. 야간사격은 총 5 발이었다. 1초의 표적 확인 시간과 함께 이어지는 완전한 암흑. 그 암흑 속에서 표적의 잔상을 찾아 사격을 해야 한다. 실제 전쟁 상황 시엔 오히려 밝을 때 보다 이처럼 새벽이나 밤에 많은 전투가 벌어진다고 한다.
축축한 밤공기와 짙은 화약냄새.
그렇게 3주 차의 마지막 훈련은 늦은 밤까지 총성이 울리고서야 끝이 났다.
-오른 팔만 앞으로 파이팅!
야간사격을 마지막으로 훈련소 3주 차도 끝이 났다. 3주 차는 정말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가만히 지나온 훈련계획표를 바라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 가능했지, 다 아는 지금은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훈련 계획표를 보니 어느덧 시간도 많이 지났다.
3주 차까지 끝이 났고, 5주간의 훈련소 일정도 이제 반을 넘어섰다. 어떻게 내가 이걸 다 했을까. 아마 동기 애들 덕분일 테다. 힘들어도 내 옆에서 누군가가 같이 힘들고, 기쁠 때도 내 옆에서 누군가가 같은 이유로 기뻐하고.
혼자였다면 이미 예전에 나가떨어졌을 거다.
낯을 가리고 서글서글하지 못한 나지만 동기 애들이 너무 좋아서 참 다행이다. 한 주간 어머니의 인터넷 편지도 많이 왔다. 승희의 편지도 왔다. 뭐 별다른 내용은 없다. 그 성격에 나한테 편지를 쓴 것만으로도 고맙다.
오늘은 주말이고 소대장님과의 면담이 있는 날이다. 입소대대에서 개인별로 작성한 신상을 참고해 소대장님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부르셨다. 180번 명호부터 쭈욱 가서 방금 185번 범규가 들어갔다. 이게 뭐라고 괜히 긴장이 된다.
소대장님이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해 보기도 하면서 나도 어떤 질문을 할까 고민을 했다.
“다음- 186번-”
소대장님 실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똑똑똑-
“소대장님 186번 훈련병 우동준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충성!!!! 186번 훈련병 우동준! 소대장님께 용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래- 보자.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있어. 앉아!”
“예! 알겠습니다!”
“됐어. 목소리는 여기서 작게 하고. 소대장실 작아- 다 들려. 그러니까 크게 하지 마.”
소대장님은 내가 작성한 글들을 하나씩 천천히 읽어 보셨다. 그러곤 정말 이랬느냐, 힘들진 않았었냐, 이땐 왜 그렇게 했느냐 하시며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나는 형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형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밖에서도 남자 선배나 형 하고는 가깝게 지내기가 힘들었다. 그랬던 내가 소대장님 앞에서 내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으니 나로서도 생경한 경험이다. 가만히 앉아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듣고만 계시는 소대장님을 보니 왠지 형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짧은 이십여 년에 대한 내 얘기가 끝이 났고 정말 조용히 들어만 주시던 소대장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음... 뭐 잘 살아왔네. 그래 여기까지 살았으니 또 계속 그렇게 어떻게든 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질문은 있나?”
조금 의외였다. 나는 나에 대한 엄청난 질문공세를 받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힘든 건 없느냐. 분대장 중에 너희에게 폭언하는 애는 없느냐. 동기들끼리 사이 안 좋은 애는 누구냐. 뭐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닫고 들어갔었는데.
나의 얘기를 들어만 주고 또 나의 생각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 없이 그저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많이 당황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내 맘에 있던 고민이 나와버렸다.
“질문 있습니다.”
“해봐-”
이때 난 유전질환과 관련된 고민과 내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왜 이런 말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 질문을 듣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 말했다.
“너는 해당사항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그랬다고 해도 넌 아니다. 넌 아냐. 다른 질문은 있나?”
소대장님의 한 마디에 멍해졌다.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았다. 넌 아냐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날 흔들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187번 들어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소대장님과의 개인 면담이 끝나고 우리 소대는 각 가정으로 보낼 엽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어떤 사진을 찍어, 어떤 엽서를 보낸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오라고 하니 그중 제일 깨끗한 A급 옷을 입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연병장엔 이미 다른 소대 애들이 찍고 있었고 사진 기사는 민간인이었다. 이제 남녀 상관없이 민간인이면 그저 신기하다.
‘우와.. 머리 길다..’
3소대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이제 우리 소대의 차례가 되었다. 한 명씩 개인 별로 촬영하는데 자세가 다 똑같다.
기사 아저씨는 열심히 사진 찍을 때마다 외쳤다.
"오른팔만 앞으로 파이팅!"
차라리 거수경례가 훨씬 더 멋있을 것 같은데 사진기사 아저씨는 꼭 오른팔 앞으로 파이팅 자세만을 고집했다.
그렇게 180번 명호부터 192번 원조까지 우리 소대도 모두 오른팔만 파이팅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너무 궁금한데 바로 각자 집으로 보내져서 당장은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역하고 나서 찾아본 나의 엽서. 자세한 사진은 생략한다.
-놓친 Episode
훈련소 3주간 미처 풀지 못한 몇 가지의 썰이 있습니다.
1. 진혁이의 위엄
초반에 진혁이에 대해 잠시 얘기한 적이 있지만 너무 짧게 등장했습니다. 사실 진혁이는 화생방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엄청난 일들을 많이 했어요. 가장 기억나는 건 진혁이는 처음 총기 수여식을 하며 총기를 수여받고는
바로 가스 조절기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랄까요.
가스 조절기는 스마트폰으로 치면 USIM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USIM칩 없으면 그 폰으로 다른 건 돼도 정작 전화가 안되잖아요? 총도 그렇거든요. 가스 조절기 없으면 정작 아무것도 못 맞춰요. 그래서 우린 총기수여식 날 전 소대원이 가스 조절기를 찾아 헤매었답니다.
또 진혁이는 훈련소 퇴소하는 날까지 이동 간에 같은 팔, 같은 다리가 나갔어요. 이상하게 우리랑 주말에 같이 걷는 연습할 때는 잘 걷는데, 분대장이 옆에만 있으면 그렇게 꼬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우리가 얼차려를 받다 받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늘 진혁이를 정렬의 정 가운데, 제일 바깥 줄에 두기로 했습니다. 그곳이 분대장의 시야에서 제일 안 보이는 곳이었는데 나중에 분대장도 지쳤는지 보고서도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불침번.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낮에 하루 종일 훈련을 한 상태로
새벽에 꿀잠 자다 깨우면 그거 정말 버티기 힘들거든요. 진혁이는 6시에 기상해서도 환복 하는데 10분 걸리는데
새벽엔 정말 준비하는 데 오래 걸렸답니다.
지금에야 돌아보면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가 싶어요. 빨라야 20살, 늦으면 25살. 기껏해야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몸만 커진 어린애들인데도 누구 하나 진혁이에게 싫은 소리, 거친 소리를 하질 않았답니다.
오히려 기상할 땐 서로 나눠서 진혁이 매트릭스를 접고, 모포 접고, 누군 진혁이 옷 입히고. 그만큼 다들 하나같이 다 순하고 착했습니다. 진혁이 무사히 군생활 잘 마쳤을지 모르겠네요. 많은 걱정 했고 많이 기도했던 친구로 기억에 남습니다.
2. 입 대 쏭(Song)
11년도 4월 군번입니다. 정확히는 4월 4일이고요. 군대에 들어와서 알게 된 얘기 중 하나인데 군대에선 서열을 나누는 기준에 계급과 입대 쏭이 있다고 했습니다. 입대 쏭은 내가 입대할 당시 나왔던 노래나 유행했던 노래를 부르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입대 송이 걸스데이에 반짝반짝입니다.(11년 3월 중순 컴백) 하.. 너무 아저씨네요.. 여하튼 군대에서 입대 송이 서열을 나누는 다른 기준이었어요.
3. 붓다 베이베
저는 29 연대 3 교육대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대는 -호국 연무사- 바로 옆에 있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창문 바로 옆에서 잠을 자던 저는 매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커튼을 치면 연무사 위에 있는 황금 불상이
눈부신 햇살로 늘 반짝반짝 거리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