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해져 있던 것

by 바람꽃 우동준

2011년 4월 언젠가


-화생방 PART.1


2주차가 끝나 꿀맛 같은 일요일을 보낸 우리. 웬일로 일요일엔 오침을 시켜주었다. 점심 먹고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겨우 한 시간이었지만 여유롭게 주말 오후 누워있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다시 시작한 훈련 3주차. 복도에 붙어있는 훈련계획표를 올려다 보니 3주차엔 화생방을 비롯해 수류탄도 있고, 유격도 있고 사격도 있고 만만치 않다.


월요일인 오늘은 화생방. 토요일과 일요일에 미리 방독면 점검을 끝내두긴 했는데 그래도 불안하다.


‘가끔가다 하나씩 가스가 새는 게 있다고 하던데.. 설마 내가 그러지 않겠지..’


화생방 교장 까지는 40분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더니 군장을 싸란다. 처음엔 화생방에서 갑자기 행군으로 훈련이 바뀐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화생방 훈련은 그대로 하고 훈련장까지 행군을 추가적으로 한 단다.


그렇게 월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해 다시 군장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 충성교장으로 나가는 문을 지나

고가다리를 건너, 화생방 교장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오른쪽으로 가니 왼쪽으로 갔던 15km행군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걸어가면서 보니 왼쪽으로 통나무 장애물도 보이고, 로프도 보이고, 레펠 같은 것도 보이고 팻말에 ‘육군훈련소 유격훈련장’이라 되어있다.


유격장이다.. 그것도 3일 뒤 목요일에 올 유격장이다. 갑자기 무릎에 힘이 풀리는 것 같다. 유격장을 지나 이래저래 꼬불꼬불한 산길을 걸어가니 드디어 화생방 훈련장이 나왔다. 생각한 것 보다 화생방 훈련장은 숲속에 있었고 또 높이 있었다.


나무 공터에 둘러 정렬해 소대별로,분대별로 군장을 내려놓았다.


“각자 분대별로 모두 군장을 한 곳에 모아서 정렬- 군장은 모두 자기 주기가 보일 수 있게 돌려놓고, 군장에서 수통 빼서 개인 탄띠에 결합시켜- 신속하게 움직여라!”


명호가 제일 먼저 하고 우리 분대 애들을 모았다.

“2분대! 2분대!”


정말 명호 목소리가 훈련병 중 제일 크다. 우리 분대가 제일 빨리 모였고 덕분에 분대장은 우리부터 훈련장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훈련장으로 들어가니 또 아래로 계단이 있다.


언덕 아래로 가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밟고 내려가니 스탠드 아래 여러 개의 박스가 놓여있다. 박스 앞에 있던 또 다른 훈련 분대장이 우리를 보더니 말했다.


“여기는 화생방 교장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선 화생방 상황시 착용하게 되는 보호 장비들을 수령하게 되고, 앞에 박스에서부터 하나씩 집어 저기 뒤쪽 스탠드에서 정렬하면 되겠습니다.”


한 명씩 줄줄이 가면서 보니 까만색 장갑도 있고, 장화 같은 것도 있고, 옷도 있다. 무슨 재래시장에 온 것 마냥

다들 자기 사이즈에 맞는 걸 찾는다고 다 뒤엎고 난리다. 신발이랑 바지는 찾았는데 장갑이 자꾸 왼쪽만 나온다. 어떻게 된 게 오른쪽은 하나도 안보인다.


“동준아 너 다 찾았냐?”

“아니- 장갑이 자꾸 왼쪽만 나온다.”

“어? 아까 누가 오른쪽만 2개랬는데? 야-고무장갑 오른쪽만 2개인 사람!”


장갑에 막혀 고생하던 나를 위해 와준 형석이. 이젠 우리를 포함한 모두 개인 보호장비를 가지고 스탠드에 서있다. 다른 소대장이 오더니 직접 하나하나 착용법과 명칭을 설명했다. 바지와 점퍼는 보호의라고 불렀고, 고무장갑은 보호수갑, 장화는 전투화 덮개였다.


하나씩 착용법을 알려 주더니 곧이어 제한시간이 있다고 하며 시간을 잰다.


“적의 화학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지금의 이 제한시간은 최대 안전시간이다. 너희가 빠를수록 생존확률은 높아진다. 지금은 화학전 상황이 아닌 이상, 제한시간 안에 착용하지 못하는 인원은 화학탄을 대신하여 열외교육을 실시하겠다.”


시험을 봐 떨어진 애들은 햇볕 아래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교육이 전부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화생방 체험이 시작되었다. 스탠드 아래 모두 앉아있고 1소대 1분대부터 차례대로 들어갔다. 스탠드에 앉아서 보니 언덕 위 화생방 체험장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들어갔다 나오는 동기들의 얼굴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매도 처음 맞는게 낫다고 차례를 기다리며 기다리는게 더 고통스럽다. 한참 뒤 드디어 4소대 1분대가 들어갔다. 이제 다음이 우리 차례다.


“2분대 정렬해라. 제일 빠른 번호부터 마지막까지 1열로 정렬-”


들어간다..




-화생방 PART 2.


가스실 앞이다. 1분대 애들이 먼저 들어가서 가스 체험 중 이다. 안에서 윽박 지르는 분대장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 앞에 있는 분대장들이 덜덜 떨고 있는 우리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개방!!-

반대편 문이 열리더니 1분대 애들이 콜록대며 뛰어나오는 데 모두 방독면을 벗고서 나온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1분대 애들이 모두 나간 다음 소량의 가스를 더 피우더니 분대장이 말했다.


"입장!"

“뛰어!!! 뛰어!! 빨리 들어가!!!!!!”


철컹-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고 잠시 후 다시 굳게 닫혔다. 방독면을 쓰고 들어온 가스실. 생각했던 것보단 뿌옇지 않았다. 전혀 앞도 안보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였다. 가스실엔 3명의 분대장들이 방독면을 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우측부터 빠른 번호 순대로 섭니다-”

방독면을 써서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다. 가스실 내부도 뿌옇지 않은 게 가스도 별로 없는 것 같다. 14명이 일렬로 섰는데도 남을 만큼 가스실은 넓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화생방 가스 상황을 체험하시게 됩니다. 모두 양 팔을 머리위로 듭니다. 뭐합니까! 신속하게 머리 위로 듭니다!”


한 명의 분대장은 중앙에서 지시를 하고 나머지 두 명이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우리들을 감독했다.


“지금부터 왼손으로 신속하게 정화통을 분리합니다. 분리한 정화통을 다시 머리 위로 듭니다. 한 사람이라도 우물쭈물 대면 그 인원이 분리할 때 까지 전원 대기 합니다. 빨리 분리합니다!”


왼손으로 정화통을 잡긴 했는데 차마 돌려지지가 않았다. 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화통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돌아갈수록 갑갑했던 느낌이 옅어진다.


‘언제 숨을 찹아야 되지? 지금인가? 아니다.. 조금 더.. 조금 더 있다가..’


정화통이 분리된 구멍으로 가스가 들어와 방독면 안을 가득 채웠다. 훈련소 들어와서 담배를 못 펴서 그런가

숨을 참은 지 꽤 지났는데도 괜찮다. 이 상태라면 숨을 참은 채 나갈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분대장의 윽박은 끝이 나질 않았다.

“정화통 분리합니다! 훈련병 지금 장난 합니까!”


누군가 아직 정화통을 빼지 않았다..! 눈이 따가울까봐 꼭 감고 있었지만 무슨 일인가 싶어 본능적으로 눈을 떠 보았더니 진혁이의 왼손이 아직 정화통 위에 가있다.


진혁이는 너무 겁이 났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온 힘을 다해 숨을 참아왔던 동기들이 하나씩 버티다 버티다 숨을 들어마쉬기 시작했다.


분대장들도 당황했는지 진혁이 앞으로 가 빨리 분리하라고 다그쳤고 그럴수록 진혁이는 더 얼어버렸다. 나도 숨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들이 쉰 가스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기관지가 불타오르는 것만 같고 깜짝 놀라 떠진 눈에선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코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들어온 가스를 밀어내려는지 기침도 쉴 새 없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 2분대는 다른 분대가 있던 시간보다 더 가스실에 있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화생방 가스 체험으로 지침이 변경되어 노래도 안하고, 체조도 안한 채 정화통만 분리하고 끼운 후 나가는 것이 끝이였지만 우린 연대책임으로 진혁이가 정화통을 뺄 때까지 가스체험실에 있어야만 했다.


철컹-


닫혀 있던 반대편의 문이 열렸고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몸을 T자로 만들어 남은 가스를 털어내고 수통의 물로 얼굴과 눈을 씻어냈다. 비비면 난리난다고 해서 따끔해도 만지지도 못하고 그저 참을 뿐이다.


그렇게 그날 내 생애 첫 화생방을 경험했다. 주위에서 하도 들었던 게 많아 두려움이 가득한 채 경험했지만 역시나 막상 해보니 이것도 할만했다.


그날 저녁, 막사로 복귀해서 우리 소대는 일병 분대장의 지시로 별도 집합을 했다. 일병 분대장은 심각한 얼굴로 얘기했다.


“잘 듣고 명심해라. 너희는 배우려고 온 것이지 대접받으러 온 게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너희 안에서 적을 만들지 마라.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놀랬다. 마지막에 평소에 쓰던 알겠냐는 반말이 아니라 알겠습니까라는 높임말로 질문을 하니 왠지 더 부탁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 화생방 이후 다들 대놓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진혁이를 안좋게 보고 있었다. 일병 분대장은 그걸 알고 말한 듯 했다. 또 우리 앞에서 진혁이를 따로 불러 얼차려도 주었다. 분명 우리끼리 책임 따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한 것일 테다.


그래 뭐 어쩌겠냐. 진혁이가 소대장님과 상담하러 간 사이 우리끼리 모여 얘기했다.

결론은 우리가 챙기자.


다들 하루씩 돌아가며 진혁이 전담 전우조가 되기로 했다. 이 날 이후 우린 오히려 진혁이로 인해 더 똘똘 뭉치게 되었다.




-숨막히는 첫 사격


오늘은 드디어 영점 사격이 있는 날이다. 군인이 되고 처음으로 총을 쏴보는 날. 전날 화생방이 끝이 나고

방독면 손질을 하면서 총기수입도 같이 했다. 대망의 사격날을 하루 앞두고 정성껏 아주 구석구석 부직포를 쑤셔 넣어가며 빤딱빤딱하게 내 총을 닦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총은 닦아도 닦아도 까만 때가 끊임없이 나온다. 총알이 나오는 총열 부분을 몇 번이나 닦아도 계속해서 나오는 까만때. 어쩔 수 없는 가 보다. 사격 전 PRI 훈련은 지겹도록 받았다. 이젠 실제 사격 만이 남았다. 단독 군장을 차고 내 K2소총을 매고 막사를 나섰다. 사격장으로 이동하면서 분대 동기들과 내기를 했다.


“야- 영점 제일 빨리 맞추는 사람 일요일 간식 몰아주기 어때? 할래?”

“콜- 크게 하자. 애들 더 모아가지고.”


이렇게 한 명씩 모아 전 분대원들이 참가한 대형 영점 사격판 내기가 벌어졌다. 12명이 참가하게 된 대형 케이스. 1인 당 일요일에 종교행사를 2번 가니 한 번 갈 때 마다 초코파이 4개 주고, 콘칩도 주고, 캔음료도 주고, 불교는 빵도 주고, 개신교는 가나파이도 주니 12명이면 대박이다.


30분 정도 민간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걸어 사격장에 도착했다. 나는 6조 19사로. 1조부터 사격장 안전 수칙과 기본 교육을 받고 사로로 들어갔다. 우린 순서를 기다리며 사격장 밑에 일렬로 정렬해 앉아 있었다.


빵-


분대장들이 나눠준 이어플러그를 빈틈없이 눌러 꼽았음에도 소총의 사격 소리는 생각한 것 보다도 컸다. 총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더 쿵쾅 거린다. 어제 밤에 들었던 분대장의 얘기가 떠오른다.


“잘 들어. 사격장에서만큼은 구타가 허용된다. 적들을 죽이는 총알과 니들이 죽는 총알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같은 총이고 같은 총알이다. 단지 어딜 향햐고 있느냐만 다를 뿐이지. 니들이 훈련하는 총알도, 실제로 적을 죽이는 총알과 같다. 사격장에서는 분대장들의 지시만 따른다. 총구의 방향은 항상 전방을 향한다. 정신 안 차리고 지 맘대로 행동하는 새끼있으면 그 상태로 방탄 까고 내려와서 죽고 싶을 만큼 얼차려를 시켜 줄 테니까 각오해라.”


애들 사이에선 흉흉한 소리도 돈다. 저번 기수 때 사격장에서 사격하다 한명이 전역하고 싶어 총구에 왼쪽 손을 대고 총을 쏴버렸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얘기. 이제 4조가 사격장으로 올라갔다.


5조는 사격장 밑에서 대기하고, 6조인 우리는 사격장 안전수칙이 적혀있는 팻말 앞으로 이동해 사격 전 교육을 받았다.


영점 사격은 3발씩 총 9발을 쏜다. 사격장 밑에서 9발의 실탄이 들어있는 PET병을 들고 이제 우리조도 올라갔다. 영점 사격장은 짧았다. 25M 전방에는 사로마다 종이가 걸려있었고, 먼저 올라갔던 5조는 각 사로에 누워 사격을 준비했다.


“6조 1사로-!!!!”

“6조 2사로-!!!!”

“6조 3사로-!!!!”

.....


사격장으로 올라가며 목청껏 자기 사로를 외쳤다.


“부사수 총기 거치 후 사수에게 탄창 인계”

“탄창인계-!!”


사수가 외쳤다.

“좌상탄 세발 이상무!!!!”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고정!”

“복명복창 안하나? 저 끝에. 19사로. 복명복창 안해? 분대장 체크 안해? 다시.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 고정!”


사수가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어 안 들릴 수도 있어 부사수가 뒤에서 같이 복명복창을 해주었다. 사로 마다 분대장들이 한명씩 붙어 허둥대는 사수를 관리하고, 대신 탄창을 결합해 주기도 하였다.


“조종간 안전”

“조종간 안전!!!!”


“탄알받이 결합”

“탄알받이 결합!!!!!”


“탄알집 결합.”

“탄알집 결합!!!!!!”


“탄알,일발,장전.”

“탄알 일발 장전!!!!!!”


부사수는 이때 오른팔을 들어 사수의 탄 발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조종간 단발.”

“조종간 단발!!!!”


가만히 서있는 나도 떨린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사격개시란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격이 시작되었다. 밑에서 듣는 것과 바로 뒤에서 듣는 사격소리는 전혀 달랐다. 한 발, 한 발 사격 할 때 마다 땅이 울렸다.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새 3발이 금방 끝났다.


다들 처음이라 한 발 한 발 신중히 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자기가 쏜 총소리에 놀라거나 옆사로 소리에 놀라 엉겹결에 쏜 게 대부분이고, 눈 감고 쏜 것도 대부분이다.


뒤에서 보니까 3발론 택도 없다. 사격 후 탄알받이에 있는 탄피 개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분대장과 사수가 함께 영점 사격지로 이동해 자기가 쏜 표적지를 확인하였다. 그러곤 분대장이 말해 주는 대로 클리크를 수정하곤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부사수로 뒤에서 사격을 지켜보니 대충 알 것 같다. 5조가 내려가고 이제 6조가 위치했다. 총을 거치시키고 분대장 옆에서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니 심장이 쿵쾅대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부사수 자리에 서서 보았을 땐 가까워 보였던 영점 표적지가, 누워서 보니 콩알 만해 보인다.


부사수로부터 탄창을 인계받아 결속하고 개머리판을 어깨 홈에 밀착시키고 신중히 조준점에 눈을 맞추었다.

가뜩이나 긴장했는데 한 눈마저 감으니 더 작아 보인다. 대체 애들은 어떻게 쏜거지?


"준비된 사수로 부터 사격 개시!"


결과는 뭐 실망스러웠다. 15발 만에 합격한 영점사격. 그것도 15발 이상은 더 쏠 수가 없다고 해서 마지막 사격에서 클리크만 수정한 채로 합격받았다.


이번 주 간식은 모조리 뺏겼다. 망했다. 난 사격과 안 맞나 보다. 오늘 밤에 총도 안닦을 꺼다. 망할꺼다. 젠장.



- 수류탄


수요일이다. 3주차는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오늘은 수류탄 훈련이다. 무사히 사격을 넘겼나 했더니 무시무시한 수류탄 훈련이 남았다.


게다가 수류탄 교장은 여기서 걸어서 1시간 30분이란다. 또 군장을 싸 행군으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시 군장을 싸고 총을 꺼냈다. 이젠 군장 싸는 것도 손에 익어 쉬워졌다.


수류탄 교장으로 가는 길. 전혀 다른 문으로 나와 이동하는데 주변엔 논과 산 밖에 없다. 이래서 논산인건가. 교장을 나오니 긴 시멘트 길에 표지판이 하나 있다.


-이곳부턴 큰 걸음으로-


그때 분대장이 앞에서 외쳤다.

“4소대- 큰걸음으로 갓!!!”


분대장의 지시와 함께 모두 손등이 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몸 뒤로 10도 정도 가게 하는 큰 걸음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부턴 민가가 있기 때문에 군인으로서의 군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큰걸음으로 이동한단다.


수류탄 교장으로 가는 길. 거리가 제일 먼 만큼 민가도 제일 많이 지났다. 훈련소와 민가는 겨우 100m남짓한 거리 차. 하지만 저 민가와 내가 서있는 이 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리고 불과 3주만에 밖의 세상에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첨엔 밖이 나의 공간이었는데 이젠 이곳이 나의 공간같고, 제품광고 포스터와 공중전화박스가 너무도 어색하다.


그냥 지금은 훈련소 생활도, 밖의 세상도 모두 어색해진 듯하다. 이젠 어느 한쪽에서도 나와 어울리는, 내 세상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 내 옆으로 고등학생 2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좀 더 가다 보니 초등학생 3명이 동네 슈퍼에서 메로나를 먹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들이라는 생각이 그리움을 이질감으로 바꾼 듯하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난다면 난 어떻게 변해있을까.


한 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꾸역꾸역 계속 걸어 민가를 지나고, 갈대 숲도 지났다. 군장 무게가 달라진 건 아니였지만 그간 못 보던 풍경을 보면서 걸었는지 특별히 힘들단 느낌 없이 교장에 도착했다. 수류탄 교장은 생각 했던 것 보다 넓었다.


먼저 수류탄 안전 교육과 기본적인 기초 교육을 받았다. 나는 이때까지 수류탄은 안전핀만 뽑으면 3초 있다가 터지는 줄 알았는데, 안전핀을 뽑아도 안전 손잡이를 꼭 잡고 있으면 터지지 않고 다시 안전핀을 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안전핀 뿐만 아니라 안전클립과 안전손잡이로 총 3단계의 안전장치가 있다고 했다. 교육을 받으며

故차성도 중위님의 일화도 듣게 되었다. 소대 야간 사격 훈련 중 소대원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부대원을 지켰다는 이야기.


소대장님께선 故차성도 중위님이 아니였다면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하시며 진정한 소대장 이셨고, 진정한 리더였다고 하셨다.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행동했다는 건 평소에도 그런 선택을 늘 염두해두고 있었단 뜻이겠지. 숭고한 희생과 함께 혹시나 나 또한 수류탄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하진 않을까 겁이 났다.


오전엔 모형 수류탄으로 연습을 하고 오후에 연습용 수류탄으로 모의 연습을 했다. 먼저 수류탄과 동일한 무게의 쇠추를 가지고 던지는 연습을 했다. 연습 전 다한증이 있는 인원과 멀리 못 던지는 인원은 따로 조사해서 분류해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미리 말하는데 수류탄을 야구공처럼 손목 스냅넣어서 던지는 놈 있으면 훈련이고 뭐고 끝날 때까지 얼차려다.

수류탄은 투포환처럼 밀 듯이 던져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투포환처럼..? 밀 듯이...?’


내 차례가 되었고 난 들은 그대로 투포환처럼 쇠추를 밀었다. 하지만 너무 밀기만 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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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의 반복과 여러 번의 얼차려 끝에 난 그냥 야구공처럼 던져야 멀리 날아간단 걸 뒤늦게야 알았고 회전을 넣으면 안된다는 거였지 야구공처럼 잡지 마라는게 아니였단 걸 많은 얼차려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후가 되어 연습용 수류탄으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연습용 수류탄은 실제 세열 수류탄과 같은 형태였다. 안전장치도 다 동일했다.


연습용 수류탄인데도 꽤 떨렸다. 훈련장 앞에 서서 분대장의 지시에 맞춰 수류탄을 던졌다. 연습용 수류탄은 휙 날아가서 잠시 뒤 뽕!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5개의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고 실제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실제 훈련은 저수지에서 실시 되었다. 조는 총 3개조로 나뉘었다.


순서를 대기하며 안전 벽 뒤에 있는 조

바로 다음 차례라 안전 호 뒤에 대기하는 조

그리고 실제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조


실시하기에 앞서 훈련 간 일어날 수 있는 각 상황들에 대한 대비훈련부터 하였다. "호안의 수류탄!" 이라 외치고 호 안에 떨어진 수류탄을 구멍으로 차 넣고 호 밖으로 나와 엎드리는 훈련이었다.


이후 분대장들의 실제 수류탄 폭파 시범이 이어졌고, 안전거리 밖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그 위력에 경악했다. 분명 물 속 깊숙이 들어간 다음에 터졌는 데도 불구하고 굉음과 함께 높이 솟구치는 물기둥과 생생히 느껴지는 땅의 울림까지. 그걸 보고 나니 다들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되었다.


분대장들의 관리 아래 방탄 조끼를 착용하였다. 방탄조끼까지 입으니까 너무 떨렸다. 30분의 초조한 기다림 끝에 우리 조 차례가 왔고 나는 정해진 6번 호로 들어갔다. 각 호마다 안전을 위해 소대장님들이 감독해 주셨는데

다행히 6번호에 계시는 소대장님이 너무나 부드럽게 말씀해주셨다.


“긴장할 거 없어. 오른손 주고. 딱 잡고. 그렇지. 잘 하네.”

이윽고 중앙 통제가 나왔다.


“표적 확인- 안전클립 제거- 안전핀 뽑아!”


“자 소대장 말 듣는다. 천천히 안전 클립 제거하고. 그렇지. 다음 안전핀 오른손가락에 걸고. 이제 수류탄은 꼭 쥐고 핀 뽑는다. 던져!!”



꽝!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잘했어!”


내가 뭘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실감이 나지 않는다. 팔을 휘둘렀고 그대로 주저앉은 기억만 남는다. 호를 나와 다시 걸어 올라가니 긴장이 풀리며 온 몸에 다시 피가 도는 느낌이다.



- 유격


3주차 목요일. 목요일은 유격이다. 5주 간의 훈련이니 이제 딱 반을 넘었다. 엄청나게 한 것 같은데 아직도 한참 남았다. 유격인 오늘은 총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두렵다. 이번엔 군장도 싸지 않고 탄띠만 두른채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기초유격장은 생각만큼 멀지 않았다. 이동시간이 길면 그만큼 훈련시간이 줄어들거라 기대했는데 멀지 않아 더 야속했다. 출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한 훈련장. 도착하자마자 대연병장으로 전원 집합했다.


중앙 사열대에 유격 소대장님이 올라갔다. 올라오고 단 한마디.


“앉아-”


본능적인 감각으로 위험을 느낀 우리들은 신속하게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들 무엇하랴. 이곳은 유격장인걸.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반복 얼차려다.


“엎드려!!”

엎드리고 일어나고, 다시 엎드리고 일어나고. 연병장이 흙먼지로 뿌옇게 흐려질 만큼 우리는 굴렀다. 꽉 졸라맨 방탄 안에선 굵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안경도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숨은 가빠오고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가는데 기합은 멈출 생각을 안한다. 헤쳐 모여와 원위치만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10분 간의 휴식시간이 부여 되었다.


“전원 방탄 벗고 10분간 휴식- 탈모!!”

“탈모!!!”


방탄을 벗으니 방탄 내피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머리를 들고 있을 힘도 없이 축 처진 채로 땅만 보며 10분이 흘렀다. 분대 애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4개 중대가 섞여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얼굴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얼차려를 받으니 괜히 더 힘들게만 느껴진다.


한 시간의 기합 후 본격적인 유격 PT체조가 시작되었다. 사열대에 체조 조교 분대장이 올라갔고 각 체조마다 구분 동작으로 보여주었다. 훈련된 조교의 시범은 칼 같았다. 교육 이후 우리의 체조는 몸이 외울 때 까지 반복 숙달이었다. 항상 마지막 반복 구호는 복창 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꼭 한명씩은 나왔다.


이미 한 시간의 온갖 얼차려로 진이 다 빠진 우리는 체조 하나하나를 할 때 마다 정신은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지 오래다.


결국은 끝날 때 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끝까지 가는 것이다. 여긴 이미 그렇게 시스템화 되어있는 곳이다. 버틸 수 있는지에 따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끝까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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