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언젠가
-부분대장 훈련병
날 당혹케 한 그의 이름은 진혁. 눈치를 보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분대 애들도 진혁이를 살피고 있다. 그러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수요일.
저녁 식사 후 부식으로 구구콘이 나왔다. 당이 부족해 허덕이던 우리들에게 부식으로 나온 구구콘은 캐비어가 필요치 않은 고급 음식이었다.
아쉬움 가득한 채 하나의 구구콘을 먹고 나오는데 앞에 가는 진혁이의 주머니가 볼록하다. 이상한 느낌은 진혁이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커졌고 옆에서 보니 주머니가 고깔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분대장들이 줄을 정렬하고 있었고 이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행히 아직 눈치를 챈 건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막사로 돌아가는 길 내내 혼자 머리를 굴리며 어떡해야 우리 분대의 이 대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선두 반보! 선두 속도 조절합니다. 발맞춥니다. 왼발! 왼발! 아직도 발을 못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까. 발맞춥니다. 왼발! 왼발! 왼발! 발 안 맞추는 사람 누굽니까! 야! 같은 발하고 같은 손 나가는 건 뭐야? 빠져!”
진혁이는 나중에 먹으려고 숨겨둔 아이스크림이 걸린 게 아니라 이동 간 발을 못 맞춰 걸렸다. 왼발에 왼손이 같이 나가고, 오른발에 오른팔이 같이 나간 것이다. 그렇게 아이스크림마저 걸리고 우리 분대는 또 다른 아이스크림이 없나 단체로 몸수색을 당했다.
이제 1주 차다.
앞으로 5주 차까지 남았고, 진혁이와 우리 분대가 함께 할 훈련은 수류탄.... 화생방..... 사격.... 15km 행군..... 각개전투...... 40km 야간행군..
남들 같지 않았던 진혁이. 보통은 그렇게 단체를 따라가지 못하면 눈치를 주거나 괴롭힘을 주기 마련이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분대 애들은 진혁이를 조금씩 챙기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우린 진혁이를 함께 챙기며 조금씩 서로 친해져 갔다. 이젠 22시 취침소등에 들어가면 생활관 여기저기에서 “얘들아 잘 자”라는 말이 나오고, 분대장이 없을 땐 웃음소리도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더니 서로가 조금씩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여니 똑같은 생활관이 전과 다르게 편하게 느껴져 온다. 우리 분대는 180번부터 192번까지 있었다.
180 명호
181 정호
182 형우
183 제민
184 진혁
185 범규
186 나
187 형석
188 강산
189 선오
190 평건
191 익성
192 원조
하나같이 조용하고 순딩이 처럼 생긴 애들이다. 나이는 다 21~22. 다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애들이다. 내가 나의 분대애들과 조금씩 친해갈 즈음 동희 형도 형 분대 애들과 많이 가까워진 듯하다. 동희 형과는 화장실이나 훈련 간 지나갈 때 서로 말없이 웃어주며 손을 꼭 잡곤 했다.
밝게 웃어주고, 서로에게 격려해주고. 동희 형이 있어 마음 한 켠이 든든하다. 그리고 오늘 밤엔 투표가 있었다.
분대장들이 훈련병 내에서도 소대장 훈련병과 분대장 훈련병을 뽑는다고 했다.
“소대 집합!”
소대원들이 다 집합하고 지원하는 후보자들을 받았다. 처음엔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분대장이 말했다.
“소대장 훈련병 하면 상점 20점.”
“198번 훈련병!”
“220번 훈련병!”
상점이란 말에 여기저기서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다. 나는 나서는 걸 꺼려해 조용히 뒤에 앉아 있었다. 후보자 별로 각자의 다짐을 듣고 투표를 했고 소대장 훈련병에 이어 각 분대별로 분대장 훈련병을 뽑았다. 분대장 훈련병은 기존 분대장과 분대원들의 추천에 의해 후보등록이 되었는데 우리 분대는 분대 제일 앞에 앉아 있고 목소리도 제일 큰 180번 명호가 맡았다.
축하의 박수를 치고 나서 분대장이 말했다.
“분대장 훈련병. 여기서 너를 도와줄 부분대장 훈련병을 네가 뽑아라.”
“예 그럼 저는 186번을 하겠습니다.”
왜였을까. 같은 부산 출신이고, 대학교도 같다는 걸 알게 되서였을까. 과는 달랐지만 캠퍼스는 같으니 나중에 전역해도 우린 만날 수 있겠다고 서로 좋아했는데 그게 부분대장이란 역할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오다니.
부분대장 딱히 할 일 없겠지...?
- 편지
그나마 무난하다고 생각되었던 1주 차 훈련이 지나가고 이제 2주 차 훈련이 시작되었다. 복도에 개시되어있는 훈련 계획표를 보니 교육 중점부터 무게감이 있다.
<2~4주 차 개인 전기/기본 전투기술 숙달>
2주 차 화요일엔 사격술 예비 훈련. PRI 훈련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목요일엔 15km 주간 행군도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받아본 시간표 중 가장 우울하고, 역겹고, 막막하고, 두렵다.
2주 차가 되니 체력단련 시간에 뛰는 뜀걸음도 만만치 않아졌다. 1주 차엔 가볍게 뛰더니 이젠 아예 웃통을 벗고 뛰라고 한다. 아무리 4월이지만 아직 새벽 6시는 살얼음이 낄 정도로 추웠는데도 우린 맨몸으로 달렸다.
아침 점호 땐 전투화라서 1.5km를 달렸고 체력단련 땐 활동화라서 3km를 달렸다. 매일 밤 근육통 속에서 잠에 들었다. 그렇게 체력단련을 하며 찾아온 이번 주 첫 훈련 PRI. 처음으로 하는 영외 훈련이다.
분주하게 아침을 먹고 방탄과 탄띠를 찬 단독군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금일은 사격술 예비 훈련이 계획되어 있다. 육군훈련소는 훈련장이 모두 영외에 있기 때문에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영외로 이동하여 훈련을 받을 것이다. 영외로 나간다는 것은 민간인들이 우리를 본다는 말이니까 대군 불신 초래하지 않도록 통제받은 행동만 할 수 있도록 한다.”
이후 총기함에 시건 되어 있던 개인 총을 지급받고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인솔을 받아 이동하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훈련소가 엄청 넓다. 나는 처음에 교육 대대로 올 때 들어왔던 문 그거 하나인 줄 알았는데 이동하는 훈련장에 따라 나가는 문도 다 다르다고 한다.
이동 중에 보니 다른 연대들도 곳곳에 있다. 시설은 우리보다 깨끗해 보이는 곳도 있고 내가 저길 안 가서 다행인 곳도 있었다. 문에 다다르니 문을 지키는 일반 병사들도 있었다. 지나가며 그들을 보니 방탄 헬멧에 얼룩무늬 껍질도 써져 있고 계급도 일병이라고 되어있다. 엄청 부러웠다.
‘나는 언제 일병이 되나.'
훈련장에 도착해 250사로, 200사로, 100사로 사격 법을 교육받았다. 그 이후론 무한 반복이다.
“200사로 봤!"
자세를 취한다. 이후 호각으로 7초를 분다.
삑-삑-삑-...... 삐삐 빅--
“다시 250사로 봤!!!”
삑-삑-
맨바닥에서 엎드리고 무릎 꿇고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팔꿈치가 까졌는지 아리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려고 전투화로 틈틈이 바닥의 돌을 쓸어 보지만 아픈 건 똑같다.
“이상. 10분간 휴식! 따라 한다. 10분간 휴식!”
“10분간 휴식”
“탈모!”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에 쓰고 있던 방탄을 벗으니 동기들 머리에서 열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전투복도 전투화도 흙먼지로 누렇다. 전투복을 접어 올려 팔꿈치를 보니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채로 빨갛다. 쉬고 있는 우리들 사이로 소대장님이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힘드냐?? 지금 니들은 뭐 한 것도 아냐! 전진무의탁도 안 해, 중간중간 쉬게도 해줘. 뭐야 이게. 니들 팔꿈치 빨갛지?? 옛날엔 피가 흘렀어 인마.”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달달 거리는 팔로 청소를 하고 있었고, 청소가 끝난 후 내무 교육 시간에 분대장이 처음으로 편지를 나누어 주었다.
“정숙. 너희들에게 처음으로 인터넷 편지가 왔다. 지금부터 나누어 줄테니까 내가 호명하는 인원은 관등성명을 대고, 편지는 앞에서부터 뒤로 전달한다. 황원조!”
"192번 훈련병 황! 원! 조! ”
인터넷 편지를 받은 원조는 정말 기뻐했다. 첫 번째 편지 이후에도 원조는 몇 번이나 더 호명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호명될 때마다 우린 부러움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분대장이 들고 온 종이가 떨어져 갈 때쯤,
“우동준!”
“186번 훈련병, 우동준!”
이런 기분이구나. 못 받을 것 같아 먼저 마음을 접었는데 내 이름이 불리니 날아갈 듯이 기뻤다. 편지를 받아보니 엄마라고 적혀있다.
천천히 엄마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읽고 다시 또 읽고 읽었다. 자필도 아니고 그냥 타이핑되어 나온 거뿐인데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족이 보고 싶어 졌다. 편지를 받아 가족의 일상을 들으니 더 보고 싶어 졌다.
나도 나의 오늘이 어땠는지 분명 즐겁게 들어줄 그들에게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고 싶어 졌다.
- 15km란?
기상나팔소리에 눈을 뜨고 천정을 보았다. 드디어 오늘이다. 그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15KM 주간 행군을 하는 날.
일정은 점심 식사하고 1시 출발이다. 아침부터 군장 싸고 준비하는데도 한참이다. 관물대 위에 있던 군장을 끌어내리고 수통도 결속하고, 반합도 넣고, 전투화도 넣고. 판초우의 넣었는데 이상하게 너무 무겁다. 군장을 열고 안을 보니 모래주머니 2개가 들어있다.
하나당 10kg이라고 한다. 군장 어깨끈은 어제 내무 교육 시간에 분대장들이 돌면서 일일이 다 맞춰주고 꼼꼼하게 묶었다. 너무 딱 붙어도 너무 늘어져도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군장 정리할 때였다.
처음으로 관물대 위에 있던 군장을 내려 뜯어진 곳이나, 없는 물품 검사한다고 살펴보고 있는데 군장 안에서 쪽지 하나가 나왔다. 곱게 딱지로 접혀있던 쪽지를 열어 보니 이렇게 적혀있다.
-이제서 15km 행군 가니? 형은 먼저 자대 가서 담배도 피고, 전화도 하고, PX에서 라면도 먹고, 소녀시대도 볼게. 너 보다 짬 되는 1人이.
자대에서 갈굼이나 당해라.
어느덧 1시가 다 되어 갔고 점심도 먹고, 화장실에도 갔다 오고, 수통도 가득 채워두고 발 뒤꿈치에 입대할 때 가져온 밴드도 예비로 붙여두었다.
총도 꺼내고 침상 끝에 군장을 맨 체로 거북이가 뒤집힌 마냥 군장에 기대앉아 있다. 생활관이 고요하다. 다들 처음 해보는 행군이라 잔뜩 긴장을 했다. 차라리 걷고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으니 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온다.
머리 위에 눌러쓴 방탄에선 꼼꼼한 냄새가 내려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생각해보니까 방탄헬멧을 어떻게 씻는지 모르겠다. 설마 한 번도 안 빨았던 건 아니겠지.
“출발 2분 전! 전 인원은 연병장으로 나가 소대 별로 정렬할 수 있도록. 신속히 이동해라!”
출발이다.
군장이 무거우니 몸을 돌려 일어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막상 어깨에 메고 일어나 보니 생각보단 괜찮다. 어깨도 그렇게 안 아프고, 손으로 들었을 때 보다 무게감도 훨씬 덜하다. 이대로라면 5시간 동안이야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엔 했었다. 처음엔..
정렬을 하고 우리 중대에서 제일 키가 큰 1소대 인원이 총 대신 깃발을 들고 대열 제일 앞에 섰다. 교육 대대장에게 중대장 훈련병이 행군 신고를 하고 천천히 중대 별로 또 소대 별로 행군을 시작했다. 행군 대열 끝에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의무관이 동행했고 분대장들은 각각의 분대 옆에서 안전통제를 하였다.
“행군 중에 군가 한다. 군가! 육군 훈련소가!”
“육군! 훈련소가!”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백제에~~~ 옛 터전에~~~....”
훈련소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주야장천 군가를 부르며 행군했다. 그래도 예전부터 걷는 걸 좋아했던 터라 막상 걷기 시작하니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바람을 쐬고, 바깥을 보며 걸으니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4월의 중순이 되어가니 이곳도 꽃망울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맑고 파랬고, 바람은 제법 봄바람처럼 따뜻한 감이 있었다.
PRI 교장인 충성교장으로 갈 때의 그 문으로 훈련소장을 벗어났다. 이 문으로 나오면 밑으로 바로 고속국도가 있다. 다리 아래의 도로를 보니 관광버스도 지나가고, 소나타도 지나가고, SM3도 지나간다. 못 본 지 며칠일 뿐인데도 봐도 봐도 신기하다.
내가 며칠 동안 못 보다가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동안 애정을 갖고 바라보지 않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니 민가가 나왔다. 슈퍼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는 고등학생 남자애들도 보인다. 나는 이상하게 다 눈물겹게 아름답고, 신기한데 그들에게 우린 그냥 늘 보던 군인들인가 보다. 슈퍼 밖에 앉아 얘기하던 아주머니들은 우릴 거들떠도 안 보신다.
“지금부터 민가가 계속 나올 거다. 여기서부턴 발목 조심이란 말 외엔 복명복창하지 않고 알겠다는 표시로 방탄만 두 번 두드리면 된다. 알겠나?”
“알!... 탁탁.”
“대답한 새끼 누구야!!!!”
중간중간 걸어가면서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옆을 걸을 땐 총기 조심 이란 말을 외치며 차에서 멀리 떨어져서 걸었다. 분대장들은 차 옆을 딱 막고 서서 적극적으로 차를 지켰다. 행군 중에 민간인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기에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분대장들은 서둘러 차를 지켰다.
총을 들고 군장을 메고 동네를 걸으니 느낌이 새롭다. 내 앞에 총을 들고 있는 동기의 모습과 동네는 어울리질 않았다. 아마 내 모습도 그럴 것이다.
50분 걷고 10분 쉬어가며 행군은 계속되었다. 처음 한 시간은 거뜬했으나 가면 갈수록 어깨가 아려오고 발바닥이 따끔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군장이 아니라 방독면이었다. 무거울 거라 생각해 군장은 꼼꼼히 어깨에 맞추고 조정을 했는데 반해 방독면은 대충 다리에 매었더니 그게 쓸리면서 왼쪽 허벅지가 난리도 아니다. 이제 겨우 2시간 걸었는데 앞으론 어쩌냐.
- 언어폭력 근절
오후가 될수록 날은 더 더워졌고, 계속 걷다 보니 군장은 점점 더 무겁게만 느껴진다. 전투화 속 발은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습하고 뜨겁고 찝찝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간다. 여기가 어딘지, 얼마나 걸어왔는지 그래서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가파른 시멘트 고개를 넘어가니 넓은 훈련장과 훈련장 끝에서부터 차례로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보였다.
“1분대-!! 1분대 인원들은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서 정렬한다. 빨리 정렬해! 인원 및 장비 파악 들어간다. 방탄-”
“이상 없습니다!”
“소총-”
“이상 없습니다!”
“가스 조절기-”
“이상 없습니다!”
“수통-”
“이상 없습니다!”
분대장들의 지시에 따라 장비 점검을 하였고 장비 점검이 끝난 후엔 우리도 쓰러지듯 앉아 방탄을 벗었다.
“전원 전투화를 벗고 양말도 벗어서 발을 말려라. 안 그러면 니들 발 썩는다~”
후미에서 통제하시던 소대장님이 뻗어버린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셨다.
“발 관리 잘해~ 니들 행군해서 발 다쳤다고, 있는 훈련 안 하는 거 아니니까 니들이 살려면 얼른얼른 발 말리고 양말도 갈아 신어라. 전투화도 환기시켜주고”
소대장님은 이 정도로 뻗어버린 우리가 가소롭게 느끼셨는지 낄낄 웃으셨다. 뜨거운 습기 가득했던 전투화를 벗으니 아침에 신었던 회색 양말이 까맣게 젖어있고 발은 물집이 잡혀 벌써 물이 차오르고 있다. 그렇게 맞이한 30분간의 대휴식.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그늘이라곤 없는 훈련장 덕분에 내리쬐는 봄 햇살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녹초가 되어버린 나에겐 2시간 만에 누워있는 이곳이 그 어디보다도 행복한 천국이었다.
30분간의 대 휴식이 끝나고 비어있는 수통도 다시 채우고, 양말도 뽀송뽀송한 새 걸로 갈아 신고 헐렁하게 매어 고생한 방독면도 딱 고정시키고 출발했다. 나머지 2시간은 왔던 대로 그대로 되돌아가는 길.
한 번 걸어봤다고 그래도 익숙한 길이라 이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올 때와 달리 이젠 얼마나 걸어가야 할지 알아서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땀이 떨어졌던 그 길로 다시 두 시간을 걸어와 총 5시간의 주간 행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복귀 신고 후 생활관에 들어와 보니 이런 발이 휴식할 때 봤을 때 보다 더 엉망이다. 평소에 걸어 두질 않아 발이 말랑말랑 했으니 너도 참 고생이다 싶다.
분대별로 분대장 훈련병과 부분대장 훈련병이 물집 상태 확인해서 보고 하라고 한다. 500원 크기부터 100원, 50원 크기로 나눠 물집 상태를 조사했다. 직접 돌면서 애들 발을 보니 다들 물집과의 전쟁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다. 모두 바늘을 소독한 다음 실을 엮어 물집에 넣고 그것만 보고 있다. 실에 물이 빠져나오는 게 신기하단다. 이렇게 우리에겐 영광 아닌 영광의 상처가 하나씩 생겼고 정말 다행히도 우리 소대에서 단 한 명의 포기자 없이 첫 행군을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그날 밤 우린 서로가 제일 힘들었다며 그래 그 언덕에서 힘들어 죽을 뻔했다며 각자의 경험이자 우리의 경험을 함께 얘기하며 한층 더 가까워졌다. 같은 고생의 시간을 보내니 서로 남이란 생각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힘들었지만 야릇한 뿌듯함을 남긴 행군으로서 훈련소의 두 번째 주가 끝이 났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니 1주일이 어느새 훌쩍 지나간다. 이번 주말에는 분대별로 각자의 책임구역을 할당받았다. 분대장이 들어와 임의대로 정했다고 하며 불러주었다.
“181,182,183 야외 쓰레기 분리수거”
강제로 부여되는 구역에 지정받은 정호, 형우, 제민이는 얼굴이 사색이다. 야외 쓰레기를 우리는 야쓰라는 말로 줄여서 불렀다.
“그리고 184,185,186,187은 짬통.”
야쓰라고 비웃었던 우리에게 짬통이라며 더 큰 비웃음이 날아온다. 우리 뒷 번호는 화장실 청소, 국방일보 담당, 정수기 담당 등 그나마 수월한 것들이 배분되었다.
“다음 주 3주 차부턴 우리 소대가 책임구역을 할당받게 되었다. 야외 쓰레기와 화장실은 청소시간에 같이 하면 되겠고, 국방일보는 매주 수요일, 정수기와 잔반 팀은 매일 식사 후에 청소할 수 있도록.”
매일 청소라니. 쉬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 손편지 %
“현재시간 12시 25분. 오늘은 특별한 교육 없이 들어가 쉬고, 12시 50분에 다시 집합하도록 한다. 알겠나-”
“예-알겠습니다!!!”
“구호 준비-”
"어이!"
"구호 시작-"
“언어폭력 근절! 따뜻한 육군! 아자아자 파이팅! 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언어폭력 근절이란 새로운 구호를 외치곤 제일 앞 줄부터 분대장 눈치를 봐가며 종종걸음으로 뛰어간다. 이젠 서로 제일 앞줄에 서려고 눈치 싸움까지 한다. 앞줄에 있어야지 먼저 들어갈 수 있다. 그 조금의 차이가 뭐라고 다들 치열하게 경쟁했다.
서로 몸을 부딪히며 함께 훈련한 지 2주가 다 되어가니 이젠 장난도 칠만큼 제법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 모두 같은 하루를 보내니 가족과 다름이 없다. 머리부터 옷, 하루를 보내는 것 까지 전부 같으니 마치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내왔던 친구들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만의 은어도 생겨났다. 그중 하나는 똥 파티.
매일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져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 무조건 다들 화장실부터 간다. 신기한 게 배가 안 아프다가도 가서 앉으면 일을 본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들어오면 “똥 파티 모집!”이란 한 마디로 우르르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함께 뛰어가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손편지가 왔다. 매일 저녁 어머니가 보내주신 인터넷 편지도 물론 잘 받고 있지만 알록달록한 봉투에 담겨 오는 편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그간 여자 친구가 있는 강산이나 원조만 받던 손편지.
초록색이랑 황토색 밖에 없는 군대에 샛노란 편지지를 받던 둘이 어찌나 부럽던지. 분대장이 들고 온 내 편지들은 2개였고 동생과 동생 친구가 보낸 편지였다.
동생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어 보니 자기 남자 친구가 나와 같은 날 입대했는데 걔는 28 연대에 있고 오빠는 29 연대에 있으니 혹시 마주치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오빠는 잘 지내시죠, 제 남자 친구도 잘 있는지 모르겠네요'
왜 내게 보냈는지 모를 편지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내가 직접 군대에 있으니 편지가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군대에 먼저 가서 왜 그렇게 편지를 보내달라 했는지 알 것 같다. 편지는 그냥 단순히 종이에 몇 자 적힌 글자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하루를 보내다 늦은 저녁에야 받은 편지는 내가 원래 있던 곳, 몇 번 훈련병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 어디였는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그래 내가 있던 곳이 저기였지.
나를 안 잊었구나.
내겐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
편지는 나를 다시 찾게 해주었다. 하루에 편지를 4~5개 받는 애들이 있는 가 하면 하나도 없는 동기들도 있었다. 자기들은 쿨하게 괜찮다고 군대 올 때 편지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곤 하는데 분명 얘들도 편지를 받으면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훈련병에게 최고는 초코파이가 아니라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