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래를 듣다

by 바람꽃 우동준

2011년 5월 언젠가


- 새로운 둥지



<그 날의 기록>

--- 0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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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다. 논산 톨게이트가 보인다. 지금까진 걸어서 논산 톨게이트를 보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이동하는 것도 어색하다. 지금 막 영점 사격장과 훈련 갈 때 지나는 고속도로 위 다리- 그 밑을 지났다. HAN’S도 지났다.(행군할 때 있던 공장 이름. 공장이 우리의 반환점이라 애타게 기다리곤 했다.) 종각 가는 길.(종합 각개 전투장) 그 저수지가 내 옆에 보인다. 종각 갈 때나 , 15KM, 30KM 행군할 때 저 멀리 보이던 자동차의 불빛들. 그 새벽 아련하게 보이던 불빛 사이에 지금.. 내가 있다



그렇게 논산을 빠져나온 우리는 쉼 없이 달렸다. 휴게소도 한번 들리질 않고 달렸다. 우리의 목적지. 상무대의 위치는 광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광주를 군대에 와서 처음 가본다. ‘아 범규가 광주 사는데. 같이 오면 좋았을 걸.’ 괜히 범규랑 애들 생각이 또 난다. 창가에 앉길 잘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러 풍경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광주로 내려가는 시간은 대략 세 시간 정도라고 하니 이 시간만큼은 자유다. 머리를 창가에 기대고 눈을 감아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 13시 20분


상무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저 두꺼운 문을 통과하면 다시 군인의 세계로 들어간다. 상무대 위병소 앞에서

대기 중이다. 밖을 보니 위병소 바로 앞에 피자집도 있고 치킨집도 있고 중국집도 있다. 얼핏 듣기론 후반기에서

외박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동기끼리 나가는 외박도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다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상무대 안으로 들어갔다. 상무대 안은 넓었다. 난 상무대 안에 공병학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화학학교도 있고 보병학교, 포병학교도 있었다. 버스는 상무대 안으로 들어가다 흰색의 군인 동상이 있는 원형 반환점에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그렇게 산 중턱 제일 높은 지점까지 오르자 버스는 멈췄고, 창밖으론 '육군 공병학교'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있다. 다시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타더니 소리쳤다.


“전원 내려서 막사 앞 정렬하는데 까지 1분. 실시!”


시작부터 꼬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들 부리나케 뛰어가 정렬했다.


“지금부터 군번 뒷자리와 이름을 호명하는 인원들은 앞쪽으로 나와서 정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먼저 5578-김상수, 5644-이진혁,.......”


조교의 첫 분류에서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첫 번째 분류된 인원들은 모터그레이더 반이다. (공병 장비 중 하나. 트럭보다 큰 장비다.) 숙지할 수 있도록-”


조교는 모터그레이더의 분류 후 계속 호명했다.


“다음! 2265-우동준.....”


분대장의 호명에 더블백을 들고 앞쪽으로 나갔다. 나를 포함해 호명된 인원은 대략 이십여 명쯤 되는 듯하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는데 무슨 조가 되려나’


긴장된다.


“너희들은....... 지뢰 설치 및 제거 반이다. 숙지할 수 있도록. ”




...... 네?..... 지뢰요....?

그 밟으면 펑하고 터지는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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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뢰병 1612


나는 지뢰 설치 및 제거반이다. 훈련소에서 공병학교라고 했을 때 애들끼리 거기 가면 지뢰병이랑 폭파병도 있다고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설마 내가 걸릴 줄이야. 그것도 콕 집어 정확히 내가 지뢰 설치 및 제거반이다.


입대한 지 이제 한 달인데 답이 없다.


“지뢰반은 전원 막사 안 11 생활관으로 집결할 수 있도록 합니다.”


충격에 빠져 멍하니 서있던 내게 조교가 소리쳤다. 더블백을 들고 경계의 눈빛으로 여기저기 재빠르게 탐색하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의 이름은 화목관. 내 생활관은 화목관 11 생활관이다. 11 생활관은 좌측 출입문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생활관 안에 들어가 보면 관물대마다 이름을 붙여 놨으니까 자기 자리로 찾아갈 수 있도록-”


내 번호는 11번이다.


(당시 내 관물대에 붙여져 있던 이름표와 번호)



공병학교 생활관은 훈련소 생활관과는 또 달랐다. 생활관 위로 길게 빨랫줄이 걸려 있고 관물대는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다. 매트릭스도 여기저기 찢겨있고 베개피 색깔도 누리끼리 하니 이상하다. 제일 충격인 건 침상 위에 깔려 있는 장판. 무늬며 색깔이며 정확히 80년대 장판이다.


지뢰 반인 것도 충격인데 삶의 질도 급격히 낮아졌다. 나는 오른쪽 침상, 창가 쪽에서 2번째 자리. 이번에도 창가와 가깝다. 대략 한 생활관에서 18명이 함께 쓰는 것 같다. 다들 얼굴을 보니 딱히 나쁜 애는 없는 듯하다. 모두 하나같이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본다. 건너편 침상에 5번 하고 6번을 보니 쟤들은 서로 아는 동기인가 보다. 여기서도 옆자리라며 좋아하며 웃는다. 부럽다.


잠시 후 문을 쾅 닫으며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들어왔다. 너무도 익숙한 긴장감이다.


“반갑다. 나는 앞으로 여기서 니들을 맡아서 교육시킬 구대장 유영철이다. 신기하지? 왜 구대장인지. 훈련이면 분대장이고 교육이면 구대장이라더라. 너희도 잘 알겠지만 앞으로 너흰 지뢰 설치 및 제거반으로 불릴 것이다.

이곳에서 3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을 것이고 앞으로 너흰 보직이 1612 지뢰병으로 분류될 것이다."


훈련소 분대장과는 다르게 조금 더 여유 있어 보인다.


“너무 그렇게 얼어 있지 말아~ 이제 훈련병 아니잖아. 이병 아냐? 이병? 이병이면 좀 풀어줘도 되지. 훈련병도 아닌데. 안 그래?”


복도 끝에 서서 얘기하던 구대장이 갑자기 확 내쪽으로 돌아보더니 물어본다.


"맞지??"

“.. 1.. 186번 훈련병!!.... 아-.... 이병!! 우동준!!!”

“너 아직도 훈련병 할래?”


내가 이병이라는 사실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일단 더블백을 풀어서 정리해. 훈련소에서는 cs복을 줘서 니들 물품은 그냥 짱박아서 뒤에 넣어두었겠지만 여긴 그런 거 없으니까 괜히 짱박을 생각하지 말고 통일성 있게 착착 개서 정리하고. 하복은 이름표가 나오게 정리해서 두고. A급 전투화만 더블백에 담아서 뒤에 둬라.”


구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내 물품을 더블백에서 꺼내 활동복은 활동복 대로, 하복은 하복대로 각을 살려 이쁘게 접었다. 접은 그대로 넣으려고 관물대를 열었는데 끼익 하며 열리더니 관물대 안쪽도 녹이 슬어있다.


“유영철 구대장- 안내문 여기 나왔다.”

“예 알겠습니다-”


다른 빨간 모자의 구대장이 들어오더니 종이 한 다발을 구대장에게 전해 주고 간다.


“지금부터 안내문을 한 장씩 나눠 줄 건데 이 안내문은 너희들 부모님한테 가는 거다. 지뢰 병인 거 아시면 걱정하실 거 아냐? 부모님한테 괜찮다고 보내는 거니까 빈칸에 각자의 이름 적을 수 있도록.”


받은 종이는 중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이 가정에다 보내는 안내문처럼 공병학교장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있는

안내문이었다. 빈칸은 각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부분이다. 번지점프 전에 쓰는 각서 같은 느낌이랄까.


“각자 이름 다 적었으면 문쪽으로 전달하고, 그럼 지금부터 간단하게 이 곳 공병학교에서의 일과를 설명해 주겠다. 각자 받은 훈련용 수첩에 적어. 다시 묻지 말고.”



<그 날의 기록>

평일-

06시 기상

06시 30분 점호 시작

06시 50분~07시 아침 청소 시간

07시~07시 반 아침 식사 시간

08시~11시 반 오전 교육

12시~12시 반 점심식사

13시~17시 오후 교육

17시~17시 50분 개인 정비

17시 50분~18시 반 저녁식사시간

18시 반~20시 개인정비

20시~20시 반 자습 시간

20시 반~21시 담당구역 청소

21시~22시 저녁 점호





“간단하지? 그럼 이제 주말. ”



토요일-

07시 기상

07시 반~ 07시 50분 아침 점호

07시 50분~08시 청소

08시 ~ 12시 아침식사 및 개인 정비

12시~ 18시 점심식사 및 개인 정비

18시~ 20시 저녁식사 및 개인 정비

20시~ 20시 반 자습




확실히 훈련소와는 달랐다. 주말은 모두 개인정비라니.


“일요일엔 뭐 종교행사 가는 거고. 안 갈 사람 안 가도 돼. 강요 없어. 면회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가능하고

면회 외박은 안 된다. 면회는 다음 주 주말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거 전화랑 PX 아니냐.

전화는 오늘부터 개인정비 시간을 이용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건물 좌측 출입문에 있는 거랑 계단에 있는 거랑 건물 뒤쪽에 있는 거랑. 뭐 다 써도 돼. 그리고 PX는 마찬가지로 개인정비 시간에만 쓰고 점심시간에는 가지 마라. 저번 기수에 덥다고 한 놈이 점심시간에 혼자 PX에서 메로나 빨고 있더라. 걔땜에 선임한테 진심 장난 아니게 털렸으니까 너희는 제발 그러지 마라. PX갈땐 항상 활동화 신고 이동하고 전투모도 쓰고 이동해라. 그리고 특히 중요한 건데 PX병한테 아저씨라 하는 놈 있으면 진짜 그때부터 이용금지다. 내가 꼭 죽일 거야. PX 들어갈 땐 항상 거수경례 딱 하고.”


구대장이 이래저래 귀찮은 얘기들을 계속했지만 이미 그런 것들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전화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전화할 수 있다. 이제 전화할 수 있다. 목소리 들을 수 있다.'


가족의 목소리. 너무나 듣고 싶어 졌다. 빨리 전화하고 싶은데 저 구대장은 뭔 놈의 말이 아직도 끝나질 않는다.


“탁구는 평일에도 가능하고 동전 넣고 하는 오래방은 주말에만 사용 가능하다.”


이제 부턴 전화도 가능하고, px도 가능하고, 교육만 끝나면 쉴 수도 있다. 훈련병이 아닌 지뢰병으로 새로 시작하는 오늘. 이 정도면 왠지 할 만할 것 같다.





- 반가워 뮤직뱅크


구대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제일 중요한 경계근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너희가 훈련소에선 거의 불침번만 섰을 텐데 이곳에선 불침번도 있고 영외 초소 근무도 있다. 너희들은 엄연히 훈련병이 아닌 교육생이고, 이병이기 때문에 구대장들과 함께 초소 근무를 서게 될 거다. 일주일에 불침번 한 두 번, 경계도 한두 번 하게 될 거다."


훈련소에서도 영외 근무에 훈련병도 들어갔지만 1소대부터 순번이 돌아가 4소대까진 오지 않았다. 설명이 다 끝나자 구대장은 개인 수저와 함께 이곳에서 공부하게 될 책과 공책을 나누어 주었다. 책 앞엔 "지 뢰"라고 적혀있다.


공책은 겉표지에 공병학교 로고가 그려져 있는 그냥 일반적인 줄 공책이었고 책을 한 번 훑어보니 첫 장부터 지뢰 설치법이 나온다. 지뢰반 동기들을 보니 다들 표정이 만만치 않다. 관물대 위를 살펴보라는 말에 일어나 살펴보니 군장이 들어가는 곳엔 작은 커튼이 쳐져 있었고 커튼을 걷으니 웬 국방색 가방이 들어있다.


“다들 관물대 위쪽에 가방이 하나씩 있을 거다. 그 가방은 앞으로 교육장에 이동할 때 가지고 다니는 –학과 백-이고 안에 볼펜이 있을 테니까 확인해 봐라. 나중에 또 따로 와서 펜이 있네 없네 귀찮게 하지 말고 지금 확인해.”


학과 백이라니.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가방도 주고 펜도 준다. 듣던 대로 후반기는 훈련이 아닌 교육인가 보다. 이후 우리들은 공병학교에서 사용하게 될 개인화기를 받으러 이동했다. 구대장의 지시에 따라 막사 앞에 정렬한 우리. 4열 종대로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해 있는데 양 옆에 있는 사람들, 앞사람 뒤통수, 모두 어색하다.


내가 늘 보던 동기들의 뒤통수가 아니다.


“자 부대- 앞으로 가!”


착착 착착-


5주간의 훈련을 무사히 마친 장병들답게 구대장의 지시에 딱딱 발을 맞춰가며 무기고로 이동했다. 무기고는 식당 뒤편에 있었고 거리는 가까웠다. 걸어서 3분 정도. 하나 좀 놀랬던 건 영화에서만 보던 고가초소가 이곳에 있다는 점. 색깔도 국방색으로 다 칠해져 있고 높이 올라가 있는 초소. 정말 저기서 서있으면 다 보이겠다 싶었다.


공병학교에서 부여받은 교번대로 한 명씩 차례대로 들어가 K-2를 지급받았다. 이렇게 잡게 된 나의 두 번째 총.

여기서의 시간은 3주. 개인화기를 지급받고 다시 학교 막사로 돌아온 우리는 복도 안에 있는 간이 무기고에 총을 넣었다.


교육도 받고 총기도 받으니 어느덧 18시.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까지는 구대장이 너희들과 함께 식당으로 이동할 거다. 식당으로 이동할 때는 항상 발을 맞추어 이동하고, 식사가 마친 후엔 갈 때처럼 다 같이 기다렸다 오는 게 아니라 6명씩 조를 맞추어 이동한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괜히 새지 말고 어디서 딴짓할 생각 추호도 하지 마라.”


그렇게 저녁시간이 되어 이동한 식당. 고작 2분 거리였지만 생소한 풍경에 멀게만 느껴졌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길게 늘어져있고 양쪽으로 급식 대가 2개가 있다. 확실히 훈련소완 다르게

사람도 적고, 분위기가 여유롭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가요다.

나도 이제 밥을 먹으면서 노래를 들을 수 있구나. 감격이다.


차례대로 손을 씻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TV가 4개 있다. 좌로 2개, 우로 2개.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화려한 브라운관. 일반적인 지상파만 나웠는데 이날은 금요일. 그것도 저녁 6시.


TV에선 뮤직뱅크가 나오고 있었다.


아 지뢰병이라도 좋다

후반기가 행복이다.




- 화려한 걸그룹


공병학교 밥도 맛있었다. 훈련소보단 인원이 적으니 요리의 맛도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밥을 먹는 분위기도 훈련소와는 사뭇 달랐다. 훈련소 땐 식탁 사이를 분대장들이 걸어 다니며 빨리 먹고 일어나라며 재촉했는데 여긴 훨씬 자유롭다.


왼쪽 가슴팍에 있는 이등병이란 까만 한 줄이 그래도 크긴 큰가 보다. 역시 군대는 계급이 다인 건가. 훈련소와 다르게 이곳에선 밥 먹기 전 감사의 기도가 없었다.


역시 제일 사람이 바글바글 한 곳은 tv밑 자리. 뮤직뱅크가 시작했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귀로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난 눈치껏 tv와 너무 가깝지도, 또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곳에 앉아 틈틈이 뮤직뱅크를 보았다.


눈을 뗄 수가 없다. 맨날 풀과 흙이 어우러진 자연의 색만 보다 형형색색의 옷과 조명을 보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왜 내가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밖에선 안 봤는지 인생이 허무해지기 시작한다.


한 두 명씩 빈 식판을 들고일어났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빈 식판을 들고일어났다. 우린 직접 먹은 식판을 닦기 위해 수돗가로 이동하는데 여기 취사병들이 그늘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산들산들한 바람을 따라 풍겨오는 담배 냄새.




- 후반기에선 담배를 다시 필 수 있다는 사실을


담배를 필 수 있다는 걸 다시 느낀 순간 뮤직뱅크와는 다른 격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동기들이 모두 정렬하고

구대장은 우리를 인솔하여 막사로 돌아갔다. 막사로 돌아온 우리. 구대장은 잠시 나갔고 우리는 그냥 멍하게 아무 말 없이 침상에 앉아만 있다.


아직은 서로를 경계하며 탐색하는 시간.

서로를 모르는 남자들이 모인 곳에선 늘 이런 걸까. 묘한 탐색전이다.




이런 침묵이 싫어 노트를 꺼내 들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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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공병학교 화목관 안이다. 다시 적응해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지뢰 설치 및 제거반'. 지뢰란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솔직히 이번엔 좀 두렵고 무섭고 긴장된다. 하지만 다들 그렇겠지? 다른 내 전우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지뢰 제거반이란 사실을 어머니가 아시게 되면 얼마나 놀라실까? 마음이 무겁다. 내가 지뢰 제거반이라서,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두렵다. 하나 확실한 건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과 소망과 나와 지금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 또한 눈물 나게 행복하고 아쉬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마냥 앉아 있는데 갑자기 유영철 구대장이 들어오더니 tv를 켠다. 걸그룹의 무대가 나오고 우린 모두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공병학교의 첫날. 내가 지뢰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군대에 와서 티브이를 처음 본 날. 그날 밤 내가 쓴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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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이다. 잔다. 애들은 다 쾌활한 것 같다. 지뢰.. 아직도 잘 파악이 안 된다. 생활은 정말 많이 풀어준다. TV도 봤다. 뮤직뱅크 참 오랜만에 시청했다. 사회에서 나는 이 시간에 뭐 하고 있었던가 생각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똑같은 하루를 보내서, 같은 경험에 무뎌져 떠올리려 해봐도 기억나지 않는 거겠지. 군대란 곳에 와서 많은 것을 느긴다. 기존 생활에 대한 감사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익숙한 곳을 떠남의 두려움까지. 3번째 떠남이다. 마찬가지로 3주 뒤엔 다시 여기도 떠나게 되겠지. 그다음 펼쳐질 미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아쉬움과 슬픔 때문일까. 왜 이렇게 떠남이란 건 눈이 시리도록 아픈 걸까.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나의 5주가 단 1초도 빠짐없이 녹아있는 29 연대 내 친구들. 분대장님.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나도 내 모습이 의아하다. 사랑했었나 보다. 진심으로 가슴 깊이. 그 시간들을. 이렇게 오늘은 그때의 행복을 다시 꺼내며 잠들어야겠다. 잘 자라 내 전우들. 잘 자요 내 가족. 다들 사랑하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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