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이야기
2011년 5월 어느 날
- 전화
07시.
기상이다.
잠자리가 바뀌어 쉽게 잠들 것 같지 않다 생각했지만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이다. 점호는 막사 밑에 있는 연병장에서 실시되었다. 오늘은 5월 14일 토요일. 주말이다.
주말 아침에 하는 점호는 체조만 하고 금방 끝났다. 생활관으로 다시 들어와 켠 TV. 비록 나오는 채널은 SBS, KBS, MBC, EBS 뿐이지만 주말 아침에 여유롭게 앉아 티비를 보다니 너무 새롭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뉴스. 엄청난 몰입도다. 뉴스가 이렇게 재밌던 프로그램이었나. 이곳으로 온 지 겨우 이틀인데 구대장들은 벌써부터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아침을 먹고 세면장으로 가 얼른 식판을 씻은 뒤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나름 빨리 이동했는데도 이미 전화 앞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다들 집에 전화하고 여자 친구에게 전화한다고 나오지를 않는다. 50분 정도 기다려 드디어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내 카드를 긁고 비밀번호를 치고 상대방의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로 들리는 익숙한 연결음-
“여보세요-”
“엄마 나야.”
“후반기 갔니? 거긴 어때? 이제 전화할 수 있어?”
“그럼- 후반기 왔지. 여기서는 전화도 할 수 있고, px도 갈 수 있고, 주말에는 티비도 볼 수 있어요.”
“잘 됐네. 다른 건? 훈련은 안 힘들어?”
“훈련? 어.. 여기가 공병학교라 훈련은 아니고 교육이래 교육.”
“그러니? 공병학교는 좀 어때?”
“일단 생활은 참 편한데 내가 여기서 내 보직을 배정받았다 엄마. 나 지뢰병 이래.”
“응?"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는데도 역시 지뢰란 단어는 사람을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엄마가 듣고 아무런 말이 없길래 위로의 한 마디를 던졌다.
“매일 총도 들고 다니는 데 뭐. 그래도 아들이 폭파 병인 것보단 지뢰병이 낫지 않나? 다른 애는 폭파병도 있다.”
정말로 우리랑 같은 기수로 들어온 애들 중 일부는 폭파병이 되었고 재밌는 건 폭파병과 지뢰병이 서로를 보며 자신의 처지를 위로했다. 우리의 윗 층엔 보일러를 다루는 보일러병과 배관을 다루는 배관병, 그리고 공병장비를 타고 다니는 모터그레이더병 같은 좋고 안전하고 꿀 같은 보직들이 있지만 절대 그들과는 비교하지 않았다.
오직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어진 동생과의 전화.
“오빠 지뢰병이다-”
“지뢰병?”
“정확히는 지뢰 설치 및 제거반.”
“오빠 지뢰 설치하다 죽는 거 아니가”
아니야 동생아. 아닐 거야.
마지막으로 승희한테 전화해야겠다.
“승희- 내다-”
“오! 동추이! 살아 있네.”
“야 내 후반기 왔는데 지뢰병이란다.”
“지뢰? 밟는 거? 터지는 거?”
“어어”
“어어 맞나-. 그럼 가재이- ”
"오야"
전화는 자주 안 해야겠다.
- 디스 플러스
토요일 오후가 되자 PX가 열렸다. 점심을 먹고 한 시부터 달려갔다. 빠르게 달려가도 나보다 앞선 애들이 있다. 오랜 시간을 다시 기다린 끝에 들어간 px. px에 들어가니 벽엔 각종 포스터들이 붙어있고 전자레인지도 여러 개 놓여 있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포장지로 둘러싸인 과자도 엄청 많고 계산을 하는 굉장히 피곤한 얼굴의 px병도 있고 그 px병 머리 위로 담배도 있다.
줄을 기다리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에게 받은 노란색 바구니. 무엇을 먹을까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정말 큰 행복이었다. 한참을 px에서 헤매며 행복함을 느낀 뒤 드디어 바구니에 담은 칸쵸. 그리고 디스플러스-
멋지게 나라사랑카드로 결제한 다음 px를 빠져나와 가까운 등나무로 갔다. 그리곤 붙인 담뱃불. 훈련소 한 달 반 동안 내가 어떻게 참았을까. 힘차게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만 어지럽고 영 이상하다. 내가 상상했던 쾌감은 그다지 없다.
전화도 기대했던 만큼 상큼한 느낌이 아니고 담배도 기대했던 만큼 황홀한 느낌이 아니다.
2011년 5월 14일 토요일. 두 번째 밤.
토요일이다. 훈련소가 아닌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오늘 전화도 여유롭게 했었고, PX도 갔었고, 과자도 먹고, 담배도 피고, 음악중심 무한도전 등 TV도 여유롭게 누워서 보았다. 행복했고 어색했다. 통제 없이 내 마음대로 걸을 수 있다니. 여기도 어느샌가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전우들도 조금씩 말을 트고 보니 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주고.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 행복 끝 불행 시작
일요일이다. 성당을 갈 수 있는 날. 구대장은 종이를 나누어 주곤 돌려가며 각자 자기가 갈 종교를 적으라고 했다. 절은 일요일 아홉 시 출발. 교회는 아홉 시 삼십 분 출발. 성당은 열 시 출발이다.
훈련병 때는 그저 일요일에 성당을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지금은 tv를 볼 수 있으니 일요일 11시에 하는 서프라이즈를 놓치고 싶지가 않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늘 통제만 받던 생활을 해서 모든 게 기쁘고 감사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따질 걸 따진다.
그리고 담배도 자꾸 피우다 보니 처음의 어색함은 없어지고 어느새 또 익숙해져 버렸다. 왜 먼저 군대를 갔던 친구가 담배를 끊으려면 훈련소 나올 때부터 끊어야 된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내겐 훈련소 5주가 정말 2년 같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실상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어서일까.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누워 티비를 보는데 주말 아침 새로 나오는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한다. 정말 영화를 보고 싶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에 가고 싶다. tv를 볼 수 있으니까 영화도 보고 싶고, 지상파만 보여주니까 케이블도 보고 싶다.
그리고는 나오는 안내 방송-
“지금 즉시 불교- 불교 종교 행사에 참석하는 인원은 우측 현관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명씩 한 명씩 종교별로 아이들이 빠지고 이제 10시-
내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
전투모를 눌러쓰고 우측 현관으로 나가 보니 역시 성당을 가는 인원은 얼마 없다. 훈련소 때도 그렇고 역시 성당이 제일 적다. 인솔 구대장의 지시에 따라 정렬을 하니 곧이어 언덕 아래에서 대형버스가 한 대 올라온다. 버스는 우리 앞에 멈춰 섰고 구대장은 “천주교 인원 버스 탑승”이라 외친다.
성당을 가는데 버스를 타고 간다. 굿 주말 드라이빙이다. 아직 5월인데도 불구하고 날씨는 많이 더웠고 버스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버스는 공병학교를 시작으로 화학학교, 포병학교, 보병학교 등 상무대 곳곳을 다 돌아 마지막으로 성당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상무대 성당. 상무대 성당은 생각보단 아담했다. 미사 시작 전까진 시간이 조금 남아 성당 옆에 있는 등나무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자동차에 편한 옷을 입고 가족들과 함께 오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나중에 자대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들이 일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았던 간부들이란 걸)
그중엔 꼬마 애들도 있었고 애기도 있었다. 초록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만 보다 바로 앞에서 꼬마 애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그렇게 민간인들과 섞여 한 시간의 미사를 드렸다. 이후 받은 초코파이 2개. 이젠 내가 px에서 살 수 있는 초코파이지만 그래도 종교행사에서 받는 간식은 뭐랄까. 기쁨이고 안부의 느낌이랄까.
초코파이도 받고 에어컨 바람과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돌아온 일요일 오후. 너무나 자유로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요일 저녁 청소 시간이 끝난 뒤 구대장이 들어오더니 몇 가지를 전달한다. 우리에게 모두 자기 관물대 앞에 정렬해 앉고 지뢰 교재를 펴라고 한다.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너희들은 지뢰병으로서 교육과 훈련에 들어간다. 여긴 공병학교라 보통은 교육 간에 학과백만 들고 다니면 되지만 너희는 지뢰병이라 학과백에 총을 메고, 탄띠에 야삽도 결속하고, 방탄 쓰고 그렇게 이동한다. 여기서 총 매고 가는 건 너희들 밖에 없어. 훈련 교장은 식당 갈 때 본 친구들도 있겠지만 옆 산을 넘어서 이동한다. 대략 삼십 분 정도 걸리고 오늘은 점호 없이 자습이다. 내일 직접 만지게 될 지뢰에 대해 미리 공부해둬라.”
다음 주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자습을 하란 소리에 노란 색깔의 겉표지 지뢰 책을 펼쳐보았다. 목차를 넘기고
나온 첫 그림.
M14 대인지뢰다.
- 너는 지뢰병이다
월요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젠 진짜 시작이다. 아침 점호부터 달라졌다. 주말엔 간단히 끝난 점호가 평일엔 연병장을 2바퀴나 뛰며 시작한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생활관으로 들어와 학과백에 교재와 공책, 펜을 넣고 탄띠에 수통과 야삽을 결속하기 시작했다. 야삽과 수통이 결합돼 무거운 탄띠. 그리고 왼쪽 어깨엔 국방 색깔이 가득한 크로스백. 그리고 방탄 헬멧.
훈련소 방탄은 알 방탄으로 철모 위에 교번이 적혀있었는데 여긴 방탄은 국방색 껍질 같은 게 있다. 이걸 보니 왠지 짬 먹은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든다. 방탄 내부의 끈을 조이고 머리에 쓰는데 이런 냄새가 너무 난다. 방탄 안에서 고정해주는 '내피'라는 가죽이 있는데 다시 보니 세상에 그 가죽이 까맣다. 원래는 뽀얀 살색이다.
이걸 쓰면 내피따라 여드름이 폭발할 것 같아 차마 쓰지 못하고 있는데 구대장이 들어오더니 모두 신속히 간이 무기고 앞으로 정렬하라고 한다. 모두 일렬로 나가 각자의 총까지 받은 시간 오전 7시 50분.
“지뢰반 모두 좌측 현관 앞에 4열 종대로 정렬할 수 있도록.”
총을 받아 개머리판을 접은 다음 등 뒤로 걸어 넘기고 정렬한다. 이제 지뢰 훈련을 하러 간다는데 침이 절로 꼴깍꼴깍 넘어간다. 잠시 후 구대장이 간이 무기고를 정리하고 나왔고 “처음이라 그런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내일부턴 45분에 총기 수령할 수 있도록 40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 놓을 수 있도록 합니다. 아시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구대장. 구대장은 우리를 인솔하고 막사 바로 옆에 있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언덕. 만만치가 않다. 언덕이 왜 꼬불꼬불 휘어있는지 모르겠다. 가볍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뢰 교장은 정말 멀었다.
우리 막사에서 볼 땐 그냥 언덕이었는데 막상 그 길을 걸어보니 언덕이 아니라 등산이다. 정상을 찍더니 다시 꼬불꼬불 한참을 내려간다. 가뜩이나 냄새나는 방탄인데 예상치 못했던 시간에 땀이 나 더 찝찝하다. 이러다 지뢰가 아니라 방탄 냄새 때문에 죽겠다.
8시- 막사 출발
8시 20분- 교장 도착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군인이 20분 걸릴 거리다. 다들 교장에 도착하니 헥헥 댄다.
“현재시간 8시 20분. 교육 시작 시간은 8시 30분입니다. 교육생 10분간 휴식. 복창합니다. 10분간 휴식!”
“10분간 휴식!!”
휴식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얼른 방탄을 벗고 벤치에 앉았다. 내피와 닿는 이마 부분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구대장도 지쳤는지 조교 모자를 벗고 부채질을 하며 다가오더니 물었다.
“담배 피우는 사람 없냐?”
“저 있습니다.”
“너밖에 없어? 이번 기수는 흡연자가 얼마 없네. 옆에 재떨이 있는 데로 가자.”
맞다. 나 훈련병이 아니라 이등병이었지. 나와 구대장은 재떨이로 가 사이좋게 담배를 피웠고 또 그 담배냄새를 맡곤 나무 그늘 밑에 들어가 있던 흡연자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담배 한 대 딱 피니 십 분이 금방 지났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첫날이라 책상과 칠판이 있는 교육장으로 올라갔다. 이 교육장도 언덕 위에 있어 계단이 엄청 많다. 교육장으로 들어가니 이미 교관님이 와계셨다.
“모두 개인화기와 장구류 들은 교실 뒤편에 정리해 두고 교번 별로 자기 자리에 착석할 수 있도록.”
지시받은 대로 총을 넣어놓고 뒤돌아 교관님을 보니 소.... 소령이다. 지금까지 본 제일 놓은 사람이 중위였는데 소령이라니. 몸이 얼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도 놀란 표정이다.
우선 우리는 ppt로 우리가 다룰 지뢰의 원리에 대해 교육받았다. 그리고 보게 된 영상들은 지뢰의 위력과 관련된 영상이다. 어후 엄청나다. 지뢰를 다룰 때 안전 수칙과 지뢰와 관련된 사건 사고가 나오는데 무섭다..
- 지뢰를 만져보다.
오전엔 교육장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우리 기수의 교관님은 김소령님. 교관님은 첫 수업답게 출석체크를 하 듯 지뢰반 인원을 한 명씩 부르셨다. 1번부터 관등성명을 대자 교관님은 너네 고향은 어디냐- 나이는 몇 살이냐-
여자 친구는 있냐- 여자 친구는 몇 살이냐- 등등 다른 것 보다 병사들의 신상에 굉장히 흥미 있어 하셨다.
때로는 짓궂게 물어보시는 교관님 덕분에 우린 깔깔 웃으며 영상을 보고 놀란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고, 아직까지 편하게 말을 나눠보지 못한 동기들에 대한 얘기도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오전엔 동영상으로 간단한 지뢰에 대한 기초 지식을 익히게 될 것이고 오후엔 본격적으로 아래로 내려가서 교장에서 실습을 하도록 하겠다. 지뢰. 위험하지만 위험하지 않다. 앞으로 3주라는 기간 동안 나를 비롯해서 조교들이 잘 알려줄 거니까 알려준 그대로만 한다면 절대 – 위험한 건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오전 두 시간 동안 우린 지뢰에 관한 영상을 보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지뢰 사건사고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지뢰를 설치하다 방탄 끈을 꽉 매지 않아 방탄이 지뢰 위로 떨어지며 일어난 사고, 각개 매어를 한 상태인데 멜빵끈을 꽉 매지 않아 엎드릴 때 총이 앞으로 흘러내려 발생한 사고, 대전차 지뢰는 사람이 올라가도 터지지 않는데
안 터진다고 올라가서 방방 뛰었다가 일어난 사고, 이외에도 각종 야전부대와 전방부대에서 일어났던 사건사고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오전의 동영상 수업을 마치고 우린 다시 총과 방탄, 장구류를 착용하고 막사를 향해 돌아왔던 언덕길을 올라갔다. 아침엔 몰랐는데 교장으로 가는 것보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이 더 높고 험하다. 훈련을 해서 땀이 나는 게 아니라 이놈의 언덕 때문에 땀이 난다.
20분 후 우린 막사에 다시 도착했고 총기를 넣자마자 재떨이를 향해 뛰어갔다. 재떨이 앞에서 만난 지뢰반 동기들. 아까 교관님 덕분에 대충 서로의 이름과 나이도 알게 되어 조금씩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반에서 나와 같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신지훈 (나랑 동갑이고 서울에 산다) 김태민. (나랑 동갑이고 고려대에 다닌다) 장수호 (나보다 한 살 많고 서울에 산다) 이렇게 3명이다.
아직까진 서로 서먹하지만 괜히 담배를 같이 피우며 한 마디씩 툭툭 던져 본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된 오후 교육. 다시 총을 꺼내고 방탄과 장구류를 착용한 채 역시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현재 시간 오후 1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이다. 방탄의 내피가 점점 내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겨울에 입는 동복이다. 안에서 땀은 나고 밖에서 바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수행인가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후 담배 한 대 피고 오후 교육이 시작된다. 구대장들은 우리 중 몇 명을 창고로 부른 다음 한 사람씩 창고에서 박스를 가지고 나가게 했다. 물론 그 불운에 걸린 사람 중에 한 명이 나다. 나는 다른 애들과 지뢰 교보재 창고로 들어갔고 창고 안엔 정말 수많은 지뢰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들고 가라고 준 박스. 그 박스 위엔 M14 대인 지뢰라고 적혀있다. 생각보단 무겁지 않다. 박스를 들고 실습장소로 돌아가니 교관님은 앉아 계시고 애들은 4열로 정렬해 있다. 흙 위에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방탄을 쓰고 앉아있으니 무슨 무밭 같다.
“지금부터 오후 교육에 들어가겠다. 오전과는 다른 교육에 당황스러울 거라 생각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주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바쁘게 진행하겠다. 지뢰병은 기본적으로 전투공병에 속한다. 그리고 너희가 지뢰를 설치하는 구역도 후방이 아닌 전방이다. 그러니 너희는 항상 총과 방탄을 가지고 지뢰를 설치하여야 한다. 오전에 보아서 알겠지만 지뢰를 설치할 때만큼은 너희를 보호하려 했던 총과 방탄으로 인해 자기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얼른 방탄 끈 다시 꽉 조으고 총도 등에 딱 달라붙게 멜빵끈도 다시 조여라!”
오전에 보았던 사고 영상이 뇌리에 스치면서 괜히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 제대로 조였나? 너희는 지금은 교보재로 교육을 할 것이다. 그러나 교보재라고 해서 혹시나 교육 중에 방탄이 떨어진다거나, 총이 흘러내리는 인원이 있으면 그 즉시 교육 중지. 전원 기합과 함께 오리걸음으로 막사로 돌아가게 될 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교육 시작하겠다. 조교 지뢰-”
구대장은 박스에서 지뢰를 꺼내 교관님에게 드렸다.
‘오.. 지뢰다..... 내가 지뢰를 보다니...'
“이 지뢰는 m14 대인지뢰다. 아군의 지뢰이고 보이는 것처럼 작다. 가로 6cm 세로 4cm의 외형으로....”
교관님께선 m14대인지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기본적인 외형부터 특징, 안전장치, 위력까지 설명을 끝내시곤 조교에게 하나씩 지뢰를 나눠주라고 하셨다.
조교가 하나씩 나누어준 대인지뢰. 생각보다 가볍다. 플라스틱이었고 장난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사람 발이 날아갈 수가 있다니. 들어보니 너무 가벼워 이질감이 든다. 무게라고 할 것도 없다. 총은 그나마 무거움이 느껴져 괜한 책임감이 느꼈었는데 지뢰는 너무 가벼워 실감이 안 난다. 가벼운 플라스틱을 땅에 숨겨 몰래 사람의 발을 잘라버린다는 생각에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딱히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지뢰 교육 첫날이자 처음으로 지뢰를 만진 날이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이유로 지뢰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