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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Jan 25. 2016

돼지국밥 1+ (with. 양재기)

#아버지 #당신과내가따뜻했던순간

*15년간 달리 살아온

  나의 아버지를  인터뷰하기 위해,

  당신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오랜만에 만났다. 14년 1월에 처음 봤으니, 정확히 2년 만에 다시 만난 그.

그와의 첫 만남을 되짚어 본다. 그 당시 나는 홀몸어르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그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있던 내게 말을 걸어주고, 밥을 사주었다.

그래서인지 난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가 제일 먼저 떠올랐고, 자연스레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했다.

작은 체구. 170보다 조금 작은 키.

하필 내가 워커를 신었던 날이었기에 그는 더 작아 보였다.

그는 깔끔한 양복에 분홍색과 흰색이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눈가에 주름이 조금 지고, 안경을 끼고 왔다가 곧 벗는 걸 보니  돋보기안경인 것 같다.

그는 머리가 조금 벗어져지만, 그래도 한쪽으로 머리칼을 곱게 빗어 넘겼다.

그와 어울리는 단어로는 정갈함. 약속시간은 5시 30분이었고, 그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I : 안녕하세요 (반가운 웃음과 함께)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 : 그러게. 자주 연락 좀 하고 살자 야.

I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요청한 인터뷰였는데.

H : 그래, 그 무슨 인터뷰라고 했지?

I : 아버지 인터뷰요.

H : 아버지? (옅은 미소)

I : 네. 음.. 제가 올해 스물일곱인데 12살에 부모님이 헤어지셨으니까, 어느덧 같이 살았던 날보다 떨어져 살았던 시간이 더  길어졌더라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버지'란 단어를 좀 이해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H : 아.. (놀란 표정)  그럼 어머니 하고만 지낸 거고?

I : 네

H : 아이고 그랬구나. 아저씨는 몰랐네. (아저씨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I : 그래서 제가 시작합니다! (비장) 이 인터뷰를 하하

H : 그래그래. 하자. 뭐 하면 되노?




I : 우선 지금부터 진행되는 인터뷰는 모두 익명이, 실명 대신 아저씨가 청년시절에 불리던 별명을 말해주셔야 돼요. 오늘만큼은 청년시절의 별명으로 제가 부르겠습니다. 아저씨 스물다섯쯤에 별명이 뭐였어요?

H : 내가 청년 때 별명? 흠.... (안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얼굴을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재기? 양잿물?

I : 양재기요???

H : 그 있잖아. 친구들이랑 이름 뒤에 편한 단어 붙이는 거.  

I : 아아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 괜히 친구들과 이름 뒤에 '~사'를 붙였던 기억이 났다. 도사, 학사, 진사, 등등..

 왜 그랬을까? 의사와 변호사 검사 판사 등 사자 직업을 가져야 된다고 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이어진 걸까?)

I : 음 그럼 자식은 몇 분인가요?

H : 하나는 23살, 하나는 20살. 한 놈은 군대가 있고, 한놈은 대학교 1학년.

I : 청년 때 아버지가 되실 거라고 생각하셨었어요?

H : 아버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분명히 나도 이제 장가를 잘 거고, 음 어떻게 꾸려가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안 했지만, 나도 걸어 다니는 저 사람들처럼 아버지가 되겠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I :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어요?

H : 부담감 전혀 없없어. 우리 때는 주어진 운명처럼 그냥 일하고 살아가면서, 당연히 가정을 가지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오늘날 너희들처럼 결혼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그러질 안 했어. 어느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겠지 하는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그러진 않았어.          

I : 집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요?

H : 없었지! (단호) 그때는 분위기가 어땠냐면- 그 내가 스물일곱쯤에 서울에 있었는데, 친구네가 부인하고 3살짜리 아들래미하고 단칸방에서도 재밌게 살더라고. 내가 그때 그 친구 단칸방에 가서 많이 자기도 하고 그랬어.



그 애 하고 우리하고 같이 단칸방에서 홍콩영화도 보고 그랬다고. 음.. 그땐 그저 보면 좋았어. 나도 가정 가지고 저래 살면 좋겠다 싶고... 그땐 그랬지.  아! 그때 그 친구 애가 3살이었는데 얼마 전에 나한테 청첩장 보냈더라. 2월에 결혼한다고. (너털웃음)  시간 정말 빠르지 야.





*커피를 마시며 잠시 사담을 나누었다. 이후 다시 진행된 인터뷰.




I : 아저씨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H : 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을 막 잘 벌고 잘 살아야겠다는 없었던 거 같아. 그냥 나는 떳떳한 거. 자존심 말고 자존감 있잖아. 내를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내 보일 수 있는 그런 자존감.  


I : 음.. 아저씨가 20대 때에도 성공이 그런 의미나요?

H : 20대에는 그 친구처럼 행복하게 사는 거 그냥 그게 다였지.

그때는 물질에 대한 애착심이 없었어.

다  고만고만하게 살았잖아. 그때는 일만 하려고 하면 어디서든 일했어. 대학 졸업하면 그때는 무조건 취업하는 시기였으니까. 우리는 성공을 물질을 안 뒀어. 조금 더 정신적인 것에 뒀지. 아마 내 나이 또래는 다 그랬을 걸? 다들 어렵게 살았으니까 돈은 열심히 벌긴 했는데, 그게 지금처럼 돈을 많이 벌어야 해라는  것보단.. 음.. 뭐랄까... 그냥 나도 오손도손 가정 꾸려서 잘 살고 싶다가 큰 꿈이었지.


I : 만약 지금 아들이 '나에게 성공은 자존감'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H : 지금 우리 애들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

흠.. 나도 뭐라 할 수 없는데... (생각에 잠긴 아저씨)  뭐 지금 우리 애들은 대학을 가라 해도 안 갈라고 하고 있으니까 하하.


어.. 아버지들은 보통 이 경쟁사회에서 이기기를 바라잖아. 그리고 애한테도 그게 성공이고. 근데 나는 그렇게 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또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해야 되나 싶어. 물론 애들도 나중에 결혼문제가 있을 거고, 자기 스펙이 좋아야지 배우자도 잘 만날 테고, 대학을 못 가고 그러면 결혼할 수 있는 폭도 줄어들고 하니까... 그래도 그거는 뭐. 자기 몫이니깐...(아저씨 표정이 조금 어두워보였다)

그냥 나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순리대로 잘 살아갈까.. 이런 고민을 하는 거 같애. 애들 보면서.


I : 만약에 아드님들이 2016년 지금 '단칸방'으로 시작한다고 하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H : 요즘 정서로서는 단칸방에서 시작한다고 어렵겠지? (옅은 웃음)

가슴 아프겠지 나도. 어떤 부모는 집을 사주는 부모도 있고. 어떤 부모는 나처럼 하나도 못해주는 부모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서 차이가 나니까 백 미터나 앞서가는 거니까.




그건 불 보듯 뻔한거란 생각이 나도 들지...


(아저씨는 말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I : 오케이! 그럼 다음 질문! 지금 아저씨의 직업은, 아저씨의 부모님이 바라시던 직업인 가요?

H : 아니지 하하. 내가 이십 대 때도 20년 30년 바라보고 이 일이 내에게 맞나 하고 바라 볼 여유가 없었어. 그저 내가 가진걸 어떻게 하면 살려볼까의 수준이었지. 길게 바라보고 하진 못했어. 그런데 당시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내 시선보다는 더 짧았을 거야.

전혀 아니야. 그냥 내가 개척해 나간 거지. 우리 아버지는 그럴 형편 자체가 못됐어. 내가 당시 내 친구의 단칸방을 보고 컸듯이 우리 아버지도 당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고 사셨기에, 알려주고 바라고 그럴 수가 없었지.


I : 그럼 지금 아들에게 바라는 직업은 있으신가요?

H : 흠... (짧은 한숨) 나도 뭐 이야기는 하긴 하지. 1등 못하면 기술을 가져라 정도. 너무 힘든 육체노동이 아닌 섬세한 기술 쪽으로. 어차피 우리 때는 노동이었지만 우리 애들은 노동 힘들잖아. 그리고 평생도 못해. 몸도 금방 다치고. 이젠 일도 없고. 그래서 대학에 너무 막 매지 말고, 그냥 기술만 꼭 가져라라고 말하지.

우리 막내도 전문대 토목과에 넣었는데 지가 안 맞대.

맞아 안 맞거든. 내가 알아. 자기는 소방관을 하고 싶다고 하드라고. 그것도 뭐 쉬운 게 아인데.. 흠..

그래도 지가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I : 그럼 지금까지의 아저씨 삶에서, 아버지로서의 위기는 언제였나요? 아버지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순간.

H : 어..... 외한위기 때였을거야 아마. 이자에 허덕이고. 직업도 없을 때고. 부산대 앞에서 했던 호프집 깨 먹고. 그 당시에 있던 집을 팔고 서면에서 분식집도 했었거든.. 그때도 실패했어. 건물을 뺏겨버려서.


흠 그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지. 그때가 42살 되었을 때였나? 그랬는데, 직업도 없고 일도 없고.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 싶어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계획을 세웠어. 처음에는 담배를 끊자!  그다음이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기! 내가 노트를 다시 보니까 2005-2015까지 공인중개사를 하면서 돈을 얼마를 벌겠다고 계획을 잡아놓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마흔 넘어서 5년간 공부해서 자격증 땄어. 내가 나를 봤을 때


 '너 그 정도면 됐다.'


이 느낌이 드는 게 성공 이랬잖아. 그렇게 몇 년 죽어라 해서 내가 따니까 그거보고 내 동생이 따더라고. 또  제수 씨도 따고. 그걸 보고 참 만족을 느꼈어. 봐라! 해냈지 않느냐. 그런 모습들 있잖아.


오히려 실패하고 난 뒤론 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는 거지. 돈은 뭐 많이 벌진 못하지만. (미소)

그때 4번째 공부하고 떨어졌을 땐 마누라가 책을 확 던졌어. 한 번만 더 하면 책 찢어뿐다고. 여하튼 외한위기 이후로 쫌 아버지 노릇하기 많이 힘들었어.


I : 5년이란 시간 동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H : 하하 5년 동안 부담감 엄청 많았지. 그때 엄청 많이 힘들었어. 그때 아버지로서 아... 참.... 그냥... 그렇구나... 많이 그랬지 (옅은 미소)




I :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H : 뭐... 참 어려운 질문인데....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겠노. 뭐 버팀목이라고 이야기하겠제 하하하. 나는 그렇게 까지 안 하고.. 뭐 어차피 또 개개인들의 삶이기 때문에...


운명?

그냥 우리는 마 운명처럼 뭉쳐진. 신이 묶어준. 운명이지 운명.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런다고 하는데. 그냥 지금 보면 서로서로 하나의 인격체로서 각각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애. 그냥 하늘에서 묶어준 운명.. 버팀목이고 뭐시 어쩌고.. 그것보단... 그냥 하늘이 운명이란 테두리 안으로 맺어준 거야...      


I : 당신의 웃는 얼굴을 자식이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요?

H :내가 웃는 걸? 음..  우리 큰애가 군대 간지가 1년 넘었으니까 큰애는 그렇다 치고, 우리 막내는 어제도  당구치고 와서 내가 고함 함 질렀고. 뭐...   (생각에 잠겼다)


요 근래는 뭐 잘  마주치니까 애들하고..(미소) 언젠지 모르네?  큰애는 군대 갔으니까 그렇다 치고.. 막내는 아마 한 달 두 달  이였을 것 같은데..


 지금은  밤늦게 돌아다니다가 새벽에 들어와서 자뿌면 못 보지. 내 들어올 때쯤은 자기 알바 가고 하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가족이 버팀목이고 집에 들어가면 피로가 막 사악 풀리고. 그게 아니란 거야. 현대사회에선 더. 오히려 그걸 기대해서 더 힘들어질 수도 있고.         




I : 그렇다면 자식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가요?

H :음.... 큰애도 뭐 그렇고. 막내도 뭐. 근데 뭐 크게  웃을.... 흠...  



사실 이젠 뭐 서로 손바닥 치면서 웃을 그럴 일이 없지...         




I : 그럼 지금까지 아버지로서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셨어요?

H : 중학교 올라갈 때쯤은 내가 힘들었으니까 많이 못해줬고. 나는 근데 뭐 크게 애들한테 영향을 못  것 같애. 그러다 보니까 우리 집사람이 많이 했지. 금전적으로.


애가 공부를 못했어. 그래서 육 개월에 천만 원짜리  집중 개인교습이 있었는데. 그걸 마누라가 했어. 그걸 만약 내가 했으면 아버지로서 뿌듯했겠지. 근데 난 물질적으로 참 못했어. 근데 정신적으로는 음.. 아들이 아버지 참 착하다.. 엄마하고 막 싸우고 막 때려 부수고 술 먹고 그런 거는 없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돈을 잘 못 벌어와도 우리아번지는 참 순하다 좋다. 그런 소리는 많이 듣지. 애들하고 엄마가 한편이 돼서 날 공격해도. 그래도 애가 우리 아버지 착하다 아이가, 술을 먹고 돌아다니나 아버지가 담배를 피나라고 말하니까. 그냥 평범한 아버지야. 애들한테 뭐 크게 존경받지도 못하고. (미소)


I  : 그럼 이것만큼은 자식이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H : 아마 노력했던 거겠지? 내가 어려웠을 때, 내 아버지가 육십 세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그때 엄청 원망했어. 한 푼도 안 남기고 병원에서 돌아가시니까 돈도 엄청 들고, 뒷바라지도 못해주고... 그때 엄청 원망했. 근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뀐 게 당신도 돈을 안 벌고 싶었겠느냐, 당신이라고 내게 안 해주고 싶었겠나 싶지. 그처럼 나도 내가 너희들한테 학원비도 못 대주고 돈도 못주지만 아버지도 아버지 세대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거.

나도 너한테 정말 잘해주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니도 한번 살아봐라고 하하.  세상이 니 맘대로 잘 될 거 같으냐. 니도 살아보면 즐대로! 니 맘대로 삶이 안된 하하.


니까 지금 아빠가 니한테 잘 못해줘도. 니가 잘 알아 달라고 하고 싶지. 아빠가 그래도 나쁜 짓은 안 하겠다고. (웃음) 그냥 평범한 바람이지 평범한 바람.


I: 지금과는 또 다른, 약하고, 작아진 아버지가 되어있을 미래의 나에게 보내고 싶은 말이 있나요?

H : 아.. 아마 그 질문을 내가 몇 년 전에 받았다면.... 나는 지금 울었을 거야 아마.  

아이고 인마... 그냥 인생 정리하고 가자.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냐...

아마 그랬을 것 같애..


근데 지금 내한텐 안 통한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지금은 미래에는 내가 더 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지금은 내가 오 년 전에  모습하고 완전 달라져있거든. 난 예전보다 엄청 강해어. 난 그래서 이게 성공이라고 생각해. 내가 나한테 칭찬하는 자존감. 그것만큼은 정말 자신 있다.      


(이때 아저씨의 전화가 울렸고, 전화엔 '마누라'라고 떴다. 아저씨는 전화를 받으며 지금 중요한 인터뷰가 진행 되고 있으니 나중에 연락한다고 했다)


I : 그럼 아저씨도 다른 '아버지와 자식'을 보며 부러워했던 장면이 있나요?

H : 흠... 나는 이제 그.. 우선 다른 부부로 이야기한다면 먼저


부부 둘이서 등산 가는 거.


난 그게 제일 부러웠거든.

마누라는 화려한 곳을 좋아하고 나는 조용한 곳을 좋아해. 스타일이 서로 달라.

그래서 부부하고 애들하고 같이 등산 가는 거, 가족 전부 다 뭔가를 같이 하는 거. 배드민턴을 막 치고.

지금은 그렇게 가족 전부가 같이 하는 걸 보면 부럽지.


I : 자식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H : 우리 애들도 뭐 표현력이 영 없어서... 그냥....  아빠 오늘 고생했습니다. 이 정도?


평범한 말. 그냥 그런 거. 또 우리 아빠 최고네 같은 하하하. (상당히 민망해함)


이런 소리 맞제이 흐흐. 최고 아니라도, 빈말이라도 해주면 참 고맙지. 내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다 똑같애. 자식들한테서 아이 우리 아빠 최고다 이런 소리, 돈 못 벌어주더라도 우리 아빠 참 착하다 아이가 이런 말, 이런 말이 위안이 되지.      


I : 아버지로서 당신의 삶과 닮은 노래나 영화가 있나요?

H : 그냥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잖아. 우린 특별한 가정이 아니거든. 그래서 뭐 특별한 게 없네.

굳이 하나 고르자면 남자라는 이유로.




(갑자기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셨다)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라는 이유로. 말  못 할게 많았거든. 애들하고 우리 집사람 한 테. 애들한테 말  못 하잖아. 말을 하고 마무리지어야 되는데 못하는 게 많았지. 그건 아마 다 똑같을 거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건 분명히 맞다. 아버지들은 말  못 하고 사는 게 많아.           



I : 청년 때와 비교해서 아버지가 되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 같나요?

H : 나도 이제 막연히 결혼하기 전엔 이렇게 생각했거든. 애를 낳으면 뭐 있잖아 뭔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개념 있잖아. 내 혼자 있다가, 뭔가 한 곳에 정성을 쏟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 그게 난 막연히 좋더라고. 친구 단칸방의 그런 모습. 그걸 많이 느꼈거든. 가정을 가진다.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신경을 쏟아야 할 곳이 있구나. 결국은 그런 거 같아. 아 아버지가 되는구나 그것은 물론.. 자식은 얻어지는 거지만... 음... 뭐라 표현해야 되노..

그냥.... 이제... 비빌 언덕?     



I : 지금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평가하면 몇 점이나 될 것 같나요?

H : 백점 만점에 지금으로서의 나는 아버지로.. 한 오십 점 밖에 못줄 거 같애.. 근데 너가 만약 앞으로라고 이야기하면 백점이라고 할 것 같애, 진짜로.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뒤에 라면 난 정말 백프로로 줄 수 있어.


I : 왜 오십이예요! 제가 보기엔 멋진데!

H : 하하.. 내가 남들처럼 잘 못 가리킨다는 거. 애들이 대학을 안 간다고 하는 것도, 좀 신경 쓰이고...

사실 정말 애들한테도 신경도 많이 못썼거든. 외식도 많이 못 시켜줬고, 같이 영화 보러도 많이 못 갔고. 집사람이 그러거든. 당신은 애 데리고 목욕탕 한번 가봤냐고.. 어떻게 보면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지. 그게 나 자신한테 점수를 많이 깎는 이유지.          



   



I : 아들과 둘이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나요?

H : 단둘 이선 안 해봤지. 기회가 없더라고. 아들도 친구들하고 마시던데 뭘.


I : 나중에라도 마시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세요?

(올라간 입꼬리. 웃는다)

H : 그래 뭐 니도 애 낳고 살아봐라!! 인생이 니맘대로 안될끼다 하하하 그 말 말고 뭐 더 하겠나.

어차피 자기도 자기 인생을 살아갈 거고. 참 인생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걸 뭐 전부다가

느끼고 살아갈 건데 뭘. 잘 사는 집안끼리 만나도 자기 맘대로 안 살아지는 게 인생인 거고, 결국 난 그래 말하고 싶어. 그래 살아봐라. 인생이 니맘대로 절 때 안되는기다. 하하하.




인터뷰의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전하고 싶은 아버지의 한마디를 받았다.



양재기, 그는 아버지로서 이 말을 전하고 싶어했다.





-OFF THE RECORD

울뻔했습니다.

답변 들으면서.

겨우 한분 인터뷰했는데.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abloodtae.tistory.com/m/post/258  (단칸방 사진)

사진출처 : http://www.instiz.net/pt/3274185 (계단)

사진출처 : http://www.maniadb.com/album/125528 (조항조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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