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 이야기
2011년 6월 어느 날
- 내 자대 3군단
오늘은 내가 지뢰병으로서 실물지뢰를 무사히 마친 역사적인 날이다. 동시에 앞으로의 군생활을 보내게 될 나의 자대가 발표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의 이 발표로 나의 군생활의 향방이 달라지겠지.
실물지뢰 훈련을 위해 오늘 아침 이 고개를 오를 땐 무사히 훈련만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내가, 무사히 훈련을 마치니 이젠 좋은 곳에 배치받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막사로 돌아와 구대장에게 들으니 자대 배치는 각자 전화로 확인할 수가 있다고 했다.
구대장은 참고사항이라며 나의 앞 기수는 KCTC, 노도(2사단), 오뚝이(8사단), 백마(9사단), 칠성(7사단) 그리고 백골부대로도 갔다고 말해주었다. 후방인 53사단도 3명 정도 갔다고 한다.
그중 제일 무서운 곳 KCTC.
이름도 무시무시한 전갈 부대란다.
* 참고
-KCTC (과학화 전투 훈련단) [ Korea Combat Training Center ]
소총 등 모든 직사화기에 총알 대신 레이저 장치를 부착한 마일즈(MILES, 다중 통합 레이저 체계)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으로 전투의 승패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미 육군 과학화훈련단(NTC)을 본떠 만든 대대급 부대 훈련장이다. 1개 대대 훈련 부대가 전문 대항군 1개 대대와 함께 실전처럼 훈련한다. 훈련 부대는 사전에 짜인 각본 없이 대항군이 지키는 고지를 점령하거나 대항군에 맞서 고지를 지키는 전투 훈련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과학화전투훈련단 [Korea Combat Training Center]
공병학교로 들어와 지뢰병이 된 것도 감당하기 힘든 데 가는 곳마저 전방 중에 전방이란다. 메이커 옷도 없는 내가 군부대를 메이커 부대로 가게 생겼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멍하게 점심을 먹고 12시가 지나자마자 1번부터 전화기로 뛰어가 각자의 자대를 확인했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동기의 행운을 기도했다. 1번 동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군번을 누르기 시작했고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한 마디.
“시발 나 KCTC래.”
시작부터 KCTC라니. 이번 기수는 망했구나. 처진 어깨의 1번 뒤로 2번 동기가 전화기로 뛰어갔다. 마치 호그와트에서 마법모자를 쓰던 해리와 친구들의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지금까지의 결과는 이렇다.
KCTC 2명
이기자 1명
8사단 오뚝이 3명
7사단 칠성 2명
구대장이 말했던 부대들로 고르게 배분되고 있다. 나라고 뭐가 크게 다르겠나 싶어 천천히 내 군번을 눌렀다. 그리고 몇 분 뒤 수화기 넘어에서 '3군단'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3군단? 여긴 어디야?'
일단 무시무시한 메이커 부대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군단이란 단어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각자의 자대를 확인하고 다시 이동한 교육장. 오후 교육은 수업 대신 각자가 배치받은 자대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교관님은 1번부터 각 자대에 대한 짧은 평을 해주셨다.
“KCTC라.. 그냥 포기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리고 내 차례.
“교관님! 저는 3군단을 배치받았는데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너 3군단이야?”
“예 그렇습니다!”
“하이고.. 여기고 강원도 한 명 추가네. 3군단이면 강원도 인제다. 아마.. 지뢰제거 작전도 하고 있을걸?”
......?
뭐야.
그럼 나 강원도야?
강원도 인제야?
인제 가면 언제 오나 거기로 내가 간다고?
내가?
강원도라고?
- 자대 배치 그 이후
내 자대는 강원도. 이제 내 운명이 결정 난 것이다. 그래 앞으로 난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했다고 영원히 말하겠지. 겨울엔 미치듯이 추웠다고 말하겠지. 어떻게 딱 걸린 게 강원도 인제냐.
사실 지뢰병으로 보직을 받으며 전방과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강원도 인제로 간다는 말을 들으니 멘탈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때 다른 동기가 교관님께 질문을 던졌다.
“질문 있습니다. 저는 강원도 고성이 자대라고 하셨는데 거긴 많이 춥습니까?”
웃긴데 너무 진지하다. 교관이 답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우리나라에선 거기가 제일 위잖아. 그래서 아마 제일 추울 거야. 그런데 북한 놈들 한테는 거기가 제일 밑이거든. 제일 따뜻한 지역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내가 저 놈들 보다는 밑에 있다고."
명쾌한 답변이다. 비교대상을 저렇게 바꿔버리다니. 그리고 동기 중 훈련 분대장을 맡았던 친구는 집이 경기도인데 자대를 53사단으로 받았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 동기가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했던 말을 잊질 못한다.
“자대가 부산이면 집까지 5시간이잖아. 진짜 머네. 차라리 강원도로나 가지..”
.........
아. 동기여. 그대가 가는 자대가 우리 집에서 택시 타고 30분이 안 걸리는 곳입니다. 그대가 가는 자대란 곳은 눈이란 오지 않으며 하루 외출로 광안리와 해운대를 갈 수 있는 그런 곳이란 말입니다. 이 동기여.
40명의 지뢰병 중에 부산 출신은 나 밖에 없는데 어떻게 내가 강원도를 가고 경기도에 사는 애가 부산으로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40명의 지뢰병 동기 전부가 경기도와 강원도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부산으로 가는 동기가 한 명 있고 바로 이 곳 공병학교에서 CCTV를 관리 감독하는 동기도 있다.
자대로 공병학교로 배치받은 것을 알자마자 일병, 상병, 병장 아저씨들이 활동복을 입고 무섭게 뛰어왔다.
“야야야. 이번에 CCTV 한 놈 들어왔다며. 누구야?!”
뭐가 그리 신나는 일인지 다들 점심 먹자마자 뛰어왔나 보다.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구대장이 “저기 12번 교육생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다들 늑대같이 달려든다.
동기는 자연스럽게 허리가 곧아지고 양 손은 주먹을 쥔 채 허벅지 옆으로 붙여졌다. 본능적인 차렷 자세의 정석. 저게 곧 나의 모습이겠구나 싶다.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신병의 현실. 굳어서 식은땀을 흘리는 내 동기 주위로 선임들이 달라붙어 뱀 마냥 혀를 날름날름 거린다.
"야- 몇 살이냐??"
"막내는 어디서 왔을까?"
"여자 친구는 있니?"
- 교감
오늘은 공병학교에서의 마지막 4주 차 목요일. 금일 수업은 지뢰지대 개척에 관한 수업이다. 저번엔 지뢰탐지기를 이용한 개척을 배웠다면 오늘은 POMINS와 MICLIC을 이용한 개척 방법을 교육받는다. POMINS와 MICLIC은 지뢰를 하나하나 찾지 않고 그냥 지뢰가 깔려있는 땅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는 방법이었다.
<사진출처:http://mines.h1.ru/weapons/mines/pomins/Pomins.html>
쉽게 지뢰 위로 폭탄을 터뜨려 모조리 다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수업이 하루하루 진행될수록 개인적으로 지뢰병과 폭파병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가는 걸 느낀다. 우리는 지뢰 설치로 시작해 폭파로 끝나니 더 안 좋은 건가.
그리고 더 날 당혹게 했던 교관님의 한 마디.
“오늘 교육할 지뢰지대 개척 장비는 모든 부대에 보급되어 있지 않다. 전방부대와 현재 지뢰제거 사업에 참여하는 부대 위주로 개척 장비가 운용되고 있으니 금일 교육은 후방 부대를 제외한 실제 운용 가능성이 높은 전방 부대 배치자를 중심으로 교육하겠다.”
네....?
후방으로 가는 친구들은 실내 교육장에서 이론으로 수업할 동안 나는 전방으로 간다는 이유로 땡볕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여러모로 서럽다.
전방으로 가는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총 27명. POMINS는 총 여섯 개를 꺼냈고 MICLIC은 따로 장비가 있다고 해 테이프만 챙겨 올라갔다. POMINS 교육은 2인 1개 조로 진행되었다.
<사진출처:http://armynuri.tistory.com/697>
우리가 가지고 있던 6개의 POMINS 교보재 중 실제로 작동되는 건 2개였다. 나머지는 회로가 잘려있기도 했고 줄을 거는 고리가 없기도 했다.
이제 다음 주면 퇴소이므로 구대장들과도 딱딱한 군기 없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교육생은 어디로 갑니까?"
“저는 강원도 갑니다. 인제라고 들었습니다.”
“고생하시겠네. 눈도 많이 치우고."
“지뢰병으로 전방 가면 정말 지뢰 제거하고 그럽니까?”
“요즘엔 잘 안 합니다. 군 생활하면서 아마 실물지뢰는 여기서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오후엔 교관님이 직접 MICLIC을 교육하셨다. MICLIC은 생각한 것보다 더 컸다. 정말 트레일러 위에 놓여 있는 간이 로켓였다.
<사진출처: http://armynuri.tistory.com/697>
<사진출처: http://bluenred.com/2011/01/28/it-is-happening-again-again/>
교관님께선 우리가 자대에 가서 실제적으로 MICLIC을 운용해 볼 기회는 없을 테니 여기서 최대한 많이 만져보고 경험해 보라고 하셨다. (이후에 나올 이야기지만 난 이 미크릭을 자대에서 다시 만지게 된다)
세부 교육이 끝난 후엔 내일 있을 MICLIC 발사 교육을 위한 준비를 했다. 각자가 가지고 온 테이프를 가지고 트레일러 안에 있는 노끈을 S자 형태로 고정시키며 정리하는 일이었다.
현충일 다음 날인 다음 주 6월 7일, 난 공병학교를 퇴소한다. 이제 나도 자대라는 곳으로 간다. 떨리고 긴장된다.
- 마지막 학출
오늘은 6월 3일 금요일. 드디어 공병학교에서의 지긋지긋했던 3주간 교육이 끝났다. 교육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다. 오늘만 가면 더 이상 총을 메고 이 언덕을 오르는 일도 없다. 오늘 교육은 지뢰 교육의 대미를 장식할 'MICLIC 발사 시험'이다.
오전 수업이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연병장에 정렬해 있었다. 큰 엔진 소리와 함께 내려오는 군용 차량과 미크릭 트레일러. 구대장들은 트레일러 위로 올라가 발사를 위한 마지막 점검을 하였다. 교관님께선 우리를 뒤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어제 POMINS 교육했던 전방 인원들만 앞으로.”
후방 애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우리가 연습하는 걸 지켜만 보고, 전방으로 배치받은 인원만 마지막까지 훈련이다. 젠장.
나는 발사대의 유압장치를 맡았다. 압력을 조절해 일정한 각도를 맞추는 일이다. 뭔가 대단한 일 같지만 오락실에 있는 조이스틱을 간단히 몇 번 움직이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렇게 십 여분 뒤. 첫 번째 미크릭 발사 훈련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원래라면 100m 뒤로 대피해 호안에 숨어야 하지만 우린 지금 교보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떨어져 지켜보았다.
동기가 폭파기의 전압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충전하는 인원이 외치면 우린 모두 따라 복창해야 했다.
“검전에서 충전으로!”
“검전에서 충전으로!”
열심히 충전기를 돌리는 동기. 폭파기의 내부 전압이 75를 넘어섰다. 동기는 먼저 로켓 모터로 스위치를 돌렸다.
“발사!”
교보재로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로켓 모터의 발사음은 예상보다 컸다. 지난 3주간의 시간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로켓 모터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떨리는 입소의 순간, 첫 담배의 기분, 그리고 자유의 기쁨. 지난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사라지는대도 로켓 모터는 계속 날아간다.
응..? 저거 너무 날아가잖아..?
가만히 보니 로켓 모터를 멈추게 하는 제동선이 끊어졌다.
하늘 위로 끝도 없이 쭉 뻗어가는 로켓 모터는 100만 원짜리 교보재였다.
그리고 반짝!
사라졌다.
그렇게 3주 차 금요일. 공병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은 숲 속 어딘가로 사라진 로켓 모터를 찾는 데에 모두 쏟아부었다. 단 한 번의 발사. 단 한 번의 경험.
마지막 날의 일기
-오늘이 마지막 학출이다. 3주간의 기간. 정말 금방 흘러갔다. 처음에 지뢰반이라는 것을 알고 어찌나 두렵고 막막하던지.. 원망스럽고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 더 두렵고.. 훈련소 기간이 끝나고 새로 온 이 곳이 적응도 안되고.. 그렇게 어떻게 해낼까.. 시간 참 안 간다.. 싶던 것이 어느새 마지막 학출이다. 이제 내 평생 더 이상 지뢰 교육장에 가는 것도, 깔딱 고개를 넘는 것도, 교관님 방언을 듣는 것도 없을 것이다. 참.. 이렇게 마지막 날 밤이 되어 관물대 밑으로 들어와 지난 경험을 되짚어보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내가 이 교육을 다 받았나...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 지나갔나... 지뢰를 묻어보고, 제거해보고, 찾아보고.. 이것도 생각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토, 일. 월 3일이 남았다. 그 후엔 5월 13일에 이곳에 왔던 것처럼 ,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 다시 또 헤어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시 적응을 하여야 한다. 이 남은. 3일. 행복하자.
- 마지막 밤엔 마피아지
2011년 6월 5일 일요일. 공병학교에서의 마지막 주말이다. 시간은 어이없게도 금세 흘러간다. 이젠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편하게 앉아 상무대 성당을 바라본다. 짙은 색깔의 벽돌 건물.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은 군대에서 유일하게 내게 익숙한 곳이 바로 성당이다.
이곳으로 입소를 해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왔다고 해도 기껏해야 네 번일 텐데, 많은 정이 들었나 보다. 왜 그럴까. 매주 일요일이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일까. 다 크고 냄새나는 아저씨들만 있는 삭막한 곳에서 들리는 꼬마의 웃음소리는 큰 기쁨이다.
가만히 등나무에 앉아 아이들의 뛰놀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유일한 평화의 시간이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지금까지 우리들을 상무대 성당으로 인솔했던 구대장의 친누나가 수녀님이란다. 헤어짐이 아쉽기도 해 이런저런 말을 붙여 보았더니 목소리도 그렇고 겉보기완 다르게 순둥이다.
“구대장님은 군종병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성당만 다니는 신자입니다.”
“미사 때도 그렇고 조용하셔서 신학생이 신줄 알았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이 없었고 사실 저희 친누나가 지금 수녀님입니다.”
나이도 얼추 비슷한 것 같고 얘기해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만났다 헤어짐이 아쉽다. 막사로 돌아와서 혼자서 여기저기 걸어 다녀보았다. 2층에 있는 오래방에도 한 번 가보고, px옆 등나무에도 한 번 가보고, 매일 수업 끝나고 전투화를 닦았던 돌의자 위에도 앉아 본다.
나른한 일요일이다. 조용하다. 4월 입대 이후 일요일 오후를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내는 건 처음인 듯하다. 이제 자대로 가면 이런 주말을 가질 수 있으려나. 적어도 상병은 되어야겠지?
- 군인으로서 맞는 현충일
월요일이지만 현충일이라 공휴일의 시간으로 움직인다. 이제 짐도 다 쌌다. 짐이라고 해봤자 보급받은 물품들과 지뢰 교본, 일상을 기록하는 수첩 몇 개뿐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다 같이 TV 앞으로 모여 현충일 기념행사를 보았다. 소대장님의 지시로 정자세로 앉아 보고 있긴 한데 예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인다.
깃발을 들고 하얀 제복을 입고 제식을 맞추며 도열하는 군인들을 보니 그간의 훈련과 힘들었을 연습과정이 짐작된다.
동기들은 함께 돈을 모아 PX에서 작게 회식을 가졌다. 침상 사이 복도를 기준으로 양 팀이 가위바위보를 해 품목을 나누기로 하였다. 이긴 팀이 과자, 진팀이 냉동이다.
우리 쪽 침상이 줄줄이 지고 말아 결국 각자 한 개씩 냉동을 구입하게 되었다. 냉동 치킨, 냉동 만두, 냉동 닭강정으로 마음껏 배를 채웠다. 우리가 공병학교 지뢰병으로서 함께 해온 그간의 이야기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다시 얘기하며 기억하며 웃고 떠들었다.
우린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온 고등학생처럼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취침소등으로 어두워진 생활관이지만 각자가 라이트펜을 하나씩 꺼내 다시 불을 밝혔다.
삼삼오오 모포를 덮어쓰고 시작한 마피아 게임. 한 동기가 숨겨둔 과자를 꺼내 같이 먹자고 나누는 순간 다들 몰래 숨겨두었던 과자들을 나누기 시작한다.
마가렛트. 오예스. 몽쉘. 인디언밥.
정말 많다.
재밌고 길었던 마지막 밤이다.
2011년 6월 6일 21시 55분. 오늘은 유난히 달이 밝은 날이었다. 현충일이면서 공병학교 마지막 날. 내일이면 자대를 가기 위해 잠시 102 보충대로 간다. 이제 시작인가? 2달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입소대에서 교육대에서 공병학교에서... 첫날 이곳에 도착해 라이트펜으로 일기를 쓰고 이제 마지막 일기를 쓴다. 새벽 1시까지 게임했던 마피아. 이상하게 오늘 달을 보는데 떨리고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