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위험의 가능성

나의 군대 이야기

by 바람꽃 우동준

2011년 5월 어느 날



- 생애 두 번째 제초 작업


2주 차 일요일이다. 내일이면 후반기 교육의 마지막 주가 시작된다. 어색했던 처음이 다시 어색할 정도로 이곳에 익숙해져 버렸다. 웃긴 건 이곳에서의 시간이 익숙해질수록 훈련소 동기들이 보고 싶단 마음도 점점 줄어드는 점이다. 퇴소할 땐 눈물 나게 아쉽더니 이젠 그 감정도 많이 줄어들었다.


군대를 다녀온 형들이 훈련소 동기들 하나도 기억 안 난다고 했는데 그들도 이렇게 된 거였을까. 점차 감정도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다들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 막 예전처럼 아쉽고 보고 싶고 그렇진 않다. 군대에 있으면서 점점 감정도 약해지는 걸까.


훈련소에선 훈련소 애들과 좋은 관계를 가졌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지뢰병 동기들과 좋은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담배를 함께 피니 보다 친밀함을 느끼는 듯하다. 서로 담배도 나눠주고 불도 빌려주고 하며 오고 가는 대화가 각자의 삶을 가늠하게 해준다.


예전부터 느껴왔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만의 묘한 관계가 있다. 담배를 함께 피우는 동안 오고 가는 짧은 대화가 둘 사이를 보다 친밀하게 만든달까. 그리고 물론 모두와 좋은 관계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 서먹한 애들도 있고 아직도 불편한 애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 불과 3 주 남짓이니 애써 마음을 열거나 닫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애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서로 조심하고 있다.


일요일인 오늘은 종교행사를 다녀오자마자 우리에게 하의는 전투복, 상의는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집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우리를 집합시킨 소대장은 구역을 나눠 제초작업을 시켰다. 군대에서 와서 처음 해본 제초작업은 훈련소 퇴소 전날이었다. 그때는 막사 주변에 대한 환경 정리라 가볍게 했지만 오늘의 제초작업은 그에 비하면 정글의 법칙이 된 기분이다.


풀들이 내 허리보다 높이 올라와 있고 꽃도 분명히 피긴 했는데 어딘가 흉측하다. 그리고 무슨 제초를 도로가 아닌 숲 속에 와서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장갑 하나만 꼴랑 주고 모든 풀을 일정한 높이로 정리하라는데 어찌 이 작업을 장갑만 가지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3주 차


- 3주 차 월요일


오늘은 후반기의 마지막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공병학교에서의 첫 야간 훈련이 계획되어 있다. 오늘도 지뢰지대 설치가 주된 훈련이었고 오늘 내가 배정받은 팀은 '휴즈병'이다. 휴즈병은 지뢰지대의 큰 틀을 다른 인원들이 설치하면 나와 몇 명의 인원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놓인 지뢰에 기폭장치인 휴즈를 설치하는 것이다.


무거운 지뢰가 배치된 위로 조그마한 휴즈만 꼽으면 되는 일이라 훈련강도는 매우 쉬웠다. 특히 야간훈련까지 계획되어있는 날에 휴즈병이라니. 하늘이 도왔다. 훈련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야간훈련까지 계획되어있어 오전, 오후 모두 강도가 높지 않았다. 다만 날씨는 우릴 괴롭게 했다. 이제 5월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해는 점점 길어지고 뜨거워졌다. 우리가 수통에 물을 담아 오고 싶어도 이놈의 수통은 대체 언제 씻은 건지

안에서 곰팡이와 흙먼지가 뒤엉켜 있어 첫날부터 쓸 생각이 들지 않았고, 대안으로 우리들은 px에서 음료를 산 뒤 페트병에 물을 담아 다니곤 했다. 그렇지만 수통만큼 넉넉하지 않아 물이 늘 부족했고 그 점이 우릴 괴롭게 했다.


봄에 군복을 입었는데 이제 정말 여름이 온다. 지금도 이렇게 더워서 고생하는데 여름의 절정이 되면 얼마나

지옥 같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하지만 땀을 흘리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쾌하진 않지만 분명 시간이 흐르고 있다.




- 지뢰탐지기



야간훈련의 다음 날은 휴식을 부여해줄 거라 기대했지만 이번 주가 마지막이라 시간이 없는 우리는 연이어

-지뢰살포기와 지뢰탐지기 실습 및 시험-이 있었다. 그동안 지뢰지대 구축을 하며 한 번씩 만져봤던 지뢰탐지기 시험도 오늘 진행된다고 했다.


지뢰탐지병은 말 그대로 지뢰지대에 제일 앞장서서 들어가는 병사다. 쉽게 영화에서 보던 것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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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blog.daum.net/kgsuck6658/17428554>




지뢰탐지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터라 재미있게 배우고 조립했지만 역시 문제는 시간이었다. 7분이란 시간 안에 조립을 완료해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정해진 위치에 선을 꼽고 나사를 조으면 되지만 길이와 무게가 있어 서둘러 조립되지 않는다.


처음 실습에서 걸린 시간 11분. 그다음 실습에서 걸린 시간 9분. 어떻게 7분 안에 하라는 건지 당혹스러웠다. 연습을 많이 하면 속도가 더 날 것 같지만 인원이 40명인데 지뢰탐지기는 6개뿐이라 그마저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6개의 지뢰탐지기 중 정상 작동하는 것은 4대뿐이라 나머지 2명은 조립을 해놓고선 제대로 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열악한 환경.


시험의 내용은 이랬다. 먼저 7분이란 제한시간 내에 지뢰탐지기를 정상적으로 조립하고, 정상 확인이 되면 지뢰가 설치된 지역으로 들어가 탐지기로 지뢰를 찾는다.


설치되어 있는 지뢰는 폭풍형 M14 대인지뢰 5개였고 지뢰지대의 폭은 2M 길이는 10M였다. 평소의 나라면 아주 좁은 지역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작디작은 지뢰를 찾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넓어 보인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지뢰탐지기는 2대였으므로 시험도 2명씩 실시되었다. 교번 순으로 앞번부터 시험이 시작되었고 상대적으로 뒷번호였던 나는 그늘에 앉아 그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기들은 제한시간에 맞춰 지뢰탐지기를 잘 조립했지만 역시 문제는 지뢰를 찾는 것이었다.


지뢰탐지기로 좌우를 한 번 훑는 시간은 5초. 10M 개척 제한 시간은 5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헤드셋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촉과 감으로 지뢰를 찾아야 했다. 두 명씩 차례로 빠지더니 이젠 내 차례가 되었다.


구대장의 호각소리에 맞춰 지뢰탐지기 조립을 시작했고 센스 있게 앞 번호의 동기가 건전지를 그대로 꼽아두었다. 덕분에 지뢰탐지기 조립은 7분 안에 무사통과다. 확인해보니 탐지판에서 소리도 잘 들린다. 이제 지뢰를 찾기만 하면 성공이다.


방탄 위로 발견한 지뢰 위에 씌우는 철 캡 5개가 겹쳐져있다. 이것도 나름 철이라 무겁다. 헤드셋을 귀에 꼽고 천천히 지뢰탐지기를 땅에 가져다단다. 잠시 후 삐- 하는 단음의 경고음과 함께 탐지 수치도 치솟는다.


‘벌써??’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진입하자마자 지뢰를 심어놓은 건가? 일단 소리가 나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5개의 캡 중 하나를 소리가 나는 땅위에 조심히 올려 두었다. 그리곤 조금 앞으로 나아가 다시 천천히 탐지기를 돌리는데 또 들리는 헤드셋의 소리.


?


왜 동기들이 그렇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간다. 이제 겨우 세발자국 왔는데 벌써 두 번이나 울렸다. 이건 분명 지뢰 말고 다른 철제에 반응을 한다는 얘기일 테다.


5분이란 시간이 지났고 나는 총 3개의 캡을 내려둔 채 지뢰지대를 빠져나왔다. 그러니 내가 찾은 지뢰의 개수는 총 3개. 그리고 여길 지나며 들었던 경보 횟수는 14번이다.


시험은 조립이 중점이었고 지뢰지대 극복은 추가점수로 배정되어있어 낙제자들에 대한 추가 훈련은 없었지만 귀를 울리던 경보소리에 이미 정신은 하늘나라로 떠난 지 오래다.


5분이란 시간 동안 어찌나 긴장하고 집중했는지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나중에 자대에 가서 지뢰탐지기 훈련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오후에 진행된 지뢰살포기는 훈련보단 교육에 가까웠다. 차량 뒤에서 모형 지뢰를 쏘기만 하면 되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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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lykyh&logNo=110003921216>


생긴 거나 작동원리가 야구연습장에 있는 공 던지는 기계와 비슷했다. 오후 훈련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지뢰살포기를 조정해서 지뢰를 쏘는 거였고, 다른 팀은 날아간 지뢰를 주워오는 게 임무였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지뢰를 쫓아 여러 명의 동기들이 우르르 뛰어다녔다. 주인이 던진 원반을 쫓아가는 강아지의 마음을 왠지 알 것 같았다.





- 실물지뢰



드디어 오늘이다. 긴장한 탓인지 아침 기상나팔소리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모포를 접고 매트릭스를 정리한다. 걸어두었던 전투복을 꺼내 입는데 "악!"


번쩍하며 따끔하더니 바닥으로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소스라치게 놀라 바닥을 보니 빨간 지네가 한 마리 기어간다.


침상 위에서 바삐 도망가는 지네를 보곤 동기들 모두 혼비백산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발을 보니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프다. 따끔하다. 무언가 불행한 징조일까..


아침 구보를 마치고 병사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오늘은 병사만이 아니라 구대장들도 모두 긴장한 표정이다. 만약 실수가 생긴다면 누가 얼마나 다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린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07시 45분쯤 훈련 준비를 마쳤다. 그리곤 교육장으로 이동하기 전 소대장이 직접 인솔을 하러 나왔다.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다. 지뢰병으로 후반기 교육을 와서 실물지뢰 실습을 한다는 것은 이제 지뢰병으로서 마지막만을 남겨 두었다는 뜻이다. 모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소대장이 웬일로 진지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오늘 12시 이후로 너희들이 가게 될 자대가 발표된다. 궁금하지? 그러니까 실수하지 말고 잘 마치고 모두 올 수 있도록-”


뜬금없이 갑자기 자대 발표? 머릿속에 온통 지뢰로 가득 차 있던 내게 갑자기 '자대'라는 단어가 툭 들어왔다. 자대라...


처음 논산으로 훈련소를 배치받고 나서 형들로부터 '논산 가면 적어도 전방으로 안 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하릴없는 예비역 형들의 이야기라 그다지 신빙성은 전혀 없지만 대충 논산에서 나오면 대전 아래위로 자대 배치받는다는 얘기는 나도 듣긴 했었다.


논산의 훈련이 힘들어도 강원도 102 보충대나, 경기도 306 보충대에 안 간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었는데 덜컥 논산에서 지뢰병으로 배치를 받아버린 것이다. 훈련소에서 분대장은 논산에서 지뢰병으로 배치받을 확률이 2%인데 거기에 네가 걸렸다며 비웃기도 했었는데.. 앞으로의 내 운명이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된다.


아침엔 지네에 물리고, 오전엔 지뢰를 심어야 하고, 오후엔 자대를 배치받는다. 아 힘든 하루겠구나.




오늘은 실물지뢰 훈련이기에 평소의 야외교육장이 아닌 더 안쪽에 위치한 실물지뢰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그늘진 골짜기에 위치해서 그런가 훈련장은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했다. 그래서 괜히 아침의 지네 생각이 나 꼼꼼히 땅을 살펴봤다.


훈련장으로 들어서니 교관님께서 미리 오셔서 안전점검을 하고 계셨다.


“모두 내 앞으로 4열로 정렬! 방탄 끈 제대로 안 맨 새끼 누구야!”


교관님은 우리를 보시더니 바로 호통을 치셨다. 이젠 긴장을 늦추어선 안된다. 모든 행동이 통제된 대로 움직여야 하고, 계획되었던 대로만 진행되어야 한다. 다들 그걸 알기에 우리들도 모두 군더더기 없이 행동했고 각자에게 배당된 번호로 이동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훈련장이라 약간 계단식으로 되어있었다. 나는 14번 매설호. 각각 안전을 위해 배치된 매설호 안에서 훈련이 실시되었다. 매설호 안에 배치되어 있는 실물지뢰. 처음 본 실물지뢰는 교보재와 조금 달랐다.

모양은 같았지만 색깔은 푸른색이 아니라 짙은 회색이었고 무게도 훨씬 무거웠다.


구대장들이 실제 기폭제를 나누어 주었다.


“이거 절대 주머니에 넣거나 괜히 만지지 마라. 몇 년 전에 다른 구대장이 훈련 끝나고 기폭제 주머니에 넣었다가 터져서 다리 날아갔다.”


구대장은 기폭제를 나누어주며 말했고 난 그 말을 듣고 침을 삼킬 수도 없을 만큼 긴장되기 시작했다. M14의 기폭제는 되게 작았고 육각형이었으며 윗부분이 빨간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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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blog.daum.net/kdove/15687037>




기폭제가 나누어지고 난 뒤 중앙통제가 시작되었고 각 절차에 따라 실물지뢰 매설 훈련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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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m.mnd.go.kr/mbshome/mbs/mnd_m/jsp/kookbang/view.jsp?categoryCode=dema0004&boardSeq=122&spage=1&id=mnd_m_020200000000>




이 날 훈련해본 지뢰는 아군 지뢰 총 5종이었다. 그중 K441 대전차 지뢰는 상대적으로 많이 위험하다 하여

기폭제는 부여되지 않은 채 훈련하였고, 나머지 지뢰는 모두 실제 기폭제와 휴즈를 결합하며 훈련하였다.


제일 긴장되었던 건 M16 대인지뢰. 이건 개인 매설호가 아니라 M16지뢰 전용 매설호에서 실시되었는데 호 안으로 손만 집어넣고 실시했다. 정말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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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bobaedream.co.kr/board/bulletin/view.php?code=army&No=76593>



늘 만지던 푸른색의 교보재가 아니라 짙은 회색의 지뢰이니 더 압도되었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오후 1시를 기점으로 모든 훈련이 종료되었다. 통제에만 잘 따르니 오히려 철조망을 가지고 훈련했던 지뢰지대 설치보다 훨씬 안전했다. 어떤 일이든 항상 끝나고 나서야 하는 얘기겠지만 실물지뢰도 막상 해보니 특별할 게 없었다.


그리고 난 실물지뢰를 훈련해본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이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오늘 아침 잔뜩 긴장한 채 들어왔던 훈련장을 이젠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나가고 있다.


이제 막사로 돌아가면 자대 배치가 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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