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며 말했다. "무슨 지뢰밭도 아니고..!" 그말에 번쩍하며 아 지뢰밭과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에 대한 글을, 그럼에도 서로를 믿으며 함께 걸어가는 길에 대한 글을 쓰자! 했는데 자고나니 글이 안써진다. 뭔가 그럴듯한 결론이 어제까지만해도 분명 있었는데 자고나니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망한 글이지만 써둔게 아까워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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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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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뢰병이 나의 주특기였다. 덕분에 아군지뢰와 철조망과 함께 21개월을 보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지뢰는 2개가 있다. 발목만 날리는 m14 지뢰와 땅에서 솟구쳐 근방의 인원을 모두 사살시키는 m16a1 지뢰, 2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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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목만 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은 비전투인원을 셋 이상 만드는 것이다. 지뢰를 밟은 인원이 죽지 않고 소리쳐야 전우들이 그를 데려갈테니 목숨이 아닌 오직 발목만을 노린다. 이동을 느리게 하기 위해서. 두 명의 부축임을 받게 해 3명을 전투에서 빼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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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땅에서 솟구친 지뢰는 곧 터지며 철 파편을 사방으로 날린다. 내가 밟지 않아도 옆 사람이 밟은 지뢰로 인해 모두가 죽을 수 있다. 영화에선 밟았던 지뢰에서 발을 떼기 전까지 잘못된 걸음을 되돌아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실제론 밟자마자 가차없이 터지는 것이 지뢰다. 내 발걸음만이 아닌 동행자의 발걸음에도 모두의 생사가 달려있다. 함께 걷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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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뢰의 무서움은 걸음의 책임을 발을 내딛은 개인에게 지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목을 잃고 소리치는 개인을 두고 함께 걷던 이들의 양심적 선택을 유도하고, 개인이 밟은 지뢰의 책임은 곁에 있는 동행자의 연대책임으로 해소된다. 지뢰를 배울수록 소름이 끼쳤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 그곳은, 정확히 지뢰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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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뢰밭의 목적은 진보를 막는 것이고 걸음에 대한 의심을 심는 것이다. 더이상 걷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동행자의 발걸음을 의식하고 의심하라는 강력한 주문이 담겨있다. 심은 건 작은 지뢰지만 싹트는 건 내딛을 땅에 대한 불안이다. 의심하기 시작한 이상 모든 사인이 이상해보인다. 작은 풀도 솟은 돌뿌리도 수상하다. 내가 걸어갈 모든 길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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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젠가 다시 기억이 나면 마무리해보기로....(으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