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부산 진구 20대 남성의 고독사다. 지난 18일 세상과 4개월간 연락이 끊긴 청년을 찾은 것은 경찰도, 공무원도, 사회복지사도 아닌 월세를 내지 않은 세입자를 대상으로 강제 집행을 하기 위해 문을 따고 들어간 법원 집행관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에게 백골이 된 청년의 발견까지 떠맡겼다. 취약계층에게 이불을 선물하며 고독사를 예방하고 시민소통버스를 만들어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기사 사이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으면 찾아갈 마땅한 방법도 근거도 없다는 공백이 있다.
싱크홀과 마찬가지다. 무너지기 전까지 어느 곳이 무너질지 사전에 알 방법이 없다. 무너지는 땅과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부산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백골화가 된 고독사 기사를 찾아보면 왜 모두 부산인 걸까. 경제생활이 가능한 신체 능력이 강한 회복 탄력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노인을 대상으로 한 고독사 대책 속에 중년과 청년의 비관은 반복된다. 각종 지원센터의 문은 열려있지만 직접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6월 30일 ‘돌봄보다 죽음 확인에 치우친 고독사 대책’이란 본지의 기사처럼 새로운 지방정부의 고독사 정책과 연제구에서 올 2월부터 실시 중인 iot 전등을 활용한 고독사 대책의 성과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임이 증명되지 않으면 보호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동시에 무엇보다 국제신문의 지면을 통해 부모와 형제도 없이 홀로 세상을 떠난 무연고 청년을 알리는 기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지면의 한쪽, 작은 기사였어도 말이다.
이번 지면평가로 보낼 원고인데 고독사를 주제로 뭔가 해보겠다 말한지 2년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고. 난 이제 겁도 나고. 이젠 내가 날 너무 잘 알아 뭔가 해보겠단 말도 쉽지 않고. 부산일보가 보도했다고 그런건지 청년 고독사 보도를 하지않은 국제신문에 화가 나다가고 나는 뭐 잘났나 싶어서 얼음이나 먹는다. 막막하고 갑갑하고 답답하고 그렇기만 하네. 너무 덥다. 세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