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카톡이 하나 왔다. 시장에 있는 가격표 사진이었는데 이게 무슨 제품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알겠냐는 물음이었다. 정규과정을 통해 배운 제1외국어도 아직 어색한 내외를 하는 내게 일본어라니. 거 너무한 거 아니오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올 때 바나나 쿠키”를 사와달라는 수줍은 부탁을 하며 번역 어플을 켜 열심히 사진에 담긴 일본어를 문질렀다.
역사적인 기념일 동시에 국가공휴일이기도 한 3월 1일. 금요일부터 일요일로 이어지는 삼일 휴가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지만 만일 그 여행지가 일본이라면 어땠을까. 3월의 일본여행은 어떤 여행이 되었던 걸까. 구독자 20만을 두고 여행 컨텐츠를 올리는 유투버가 삼일절 전날에 일본 여행이 담긴 영상을 올렸다. 게다가 그 영상이 일본 관광청과의 계약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는 커졌다. 1차 사과문에선 영상제작에 대한 수익금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되어 결국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맛집을 다니는 tv 프로그램이 3년전 제작한 일식집에 대한 영상을 삼일절 오후에 재방송으로 편성했다.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사과문을 올렸다. 컨텐츠를 올린 곳은 공공기관도 아니고, 3.1 운동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담은 컨텐츠도 아니었지만 문제가 되었다. 일본을 찾은 관광객들이 찾은 곳도 전범을 모시는 신사가 아니었지만 문제가 되었다. 이유는 3.1절에 여행간 곳이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100주년을 맞은 3.1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적절함은 누가 설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삼일절에 올라온 두 개의 사과문. 그 댓글 타래에선 늘 그래왔듯 조롱으로 공격하고 조롱으로 방어했다. ‘3월에 일본여행이라니. 역사의식 없는 매국노’, ‘3월 중 하루만 애국자. 내일되면 잊을 거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분명하고, 40년 통한의 역사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는 양보해선 안 될 역사적 사실 앞에서 지켜내야 할 것과 일본에게서 받아야 할 것도 명확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엄격해야 할 부분은 보다 일상적이고 보다 지속적인 영역에 있지 않은가. 여전히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수입맥주 1위는 아사히고, DSLR을 찾을 땐 캐논과 니콘의 상품을 우선하니 말이다.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동래에선 3월 13일, 구포에선 3월 29일 이뤄졌다. 전국으로 넓히면 4월 30일까지 60일간 이뤄진 운동이다. 서울에서 시작해 시차를 두고 각 지역으로 퍼진 운동이자 각 단위별로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이뤄진 운동이지만 올해의 삼일절은 마치 할로윈처럼 단 하루로 사라졌다. 만세운동이 이제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1919년의 3월이지만 2019년의 3월은 유튜브에 업로드 된 일본 벚꽃여행, 기차, 카페여행 브이로그에선 매국노란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올해의 삼일절은 명징했고 그만큼 깔끔했다.
3월 1일을 통과하며 누구는 매국노이자 친일파가 되었고 누구는 게시판 애국자가 되었다. 우린 서로에게 엄격함을 강조하지만 엄격함은 곧 전면적인 금지, 즉각적인 중단을 의미했기에 그만큼 지속될 기간도 서로에 대한 설득의 힘도 짧았다. 명확하고 깔끔한 엄격함과 단순하고 쉬웠던 낙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3월의 시작과 3월의 끝에 맞이하는 일본은 우리에게 또 무엇이며 우린 무엇을 기억하고 행하고 있는가.
올바름에 대한 감각과 설정이 서로를 향한 공격이 되는 순간. 우리는 대화의 상대를 지속적으로 제거하고 소거시키는 상황으로 빠져왔다. 특별하고 엄중한 하루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예민한 감각과 지난한 실천의 과정으로 가야한다. 그 카톡의 마지막은 나도 친일파란 소리를 들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번역을 요청한 일본어 사진의 제품은 면도기였다. 본인이 쓸 게 아닌 친구로부터 부탁받았다던 선물. 그리고 나는 아직 바나나 쿠키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