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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정준영 동영상'을 넘어

by 바람꽃 우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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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연예인. 하나의 카톡방. 드러나지 않은 공간에서 성범죄 영상이 공유되었다. 빅뱅의 멤버 승리 씨는 클럽에서의 성 접대 의혹으로, 정준영 씨는 불법 영상 촬영과 유포로 각각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두 사람이 연예인이란 이유만으로 이렇게 사건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건을 붙들고 있는 이면엔 영상의 상대방이 여성 연예인이라는 데에 있다. 찾아내야 할 진짜 진실보다도 더욱 관심을 끄는 연예계의 뒷이야기. ‘재미’로 쏟아지는 카톡에서 나는 일상에서의 공포를 마주했다.

하나는 정준영 씨 카톡방에서 같이 있던 남자 연예인들이 남긴 ‘웃음’이다. 불법 촬영된 영상임을 알면서도 가볍게 이어지는 웃음 ‘ㅋㅋㅋ’. 그들에겐 이 영상도 ‘재미’였다. 둘은 이 사건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카톡방이다.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이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은 누굴까 추측하며 각자가 예상하는 이름을 하나씩 말해본다. 서로 맞다 틀리다를 가르며 가볍게 이어지는 ‘ㅋㅋㅋ’. 그들에겐 이것마저 ‘재미’다. 걔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을 것 같다는 ‘ㅋㅋㅋ’. 그래서 버닝썬 영상은 어디 있냐는 ‘ㅋㅋㅋ’. 각자의 방에서 영상을 보고, 영상을 찾고, 피해자를 추측한다. 나는 마주한다. 많은 사람이 정준영 씨에게 초대받지 못했을 뿐, 사실은 모두 같은 카톡방에 들어가 있음을.

익숙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성인이 되어 사회를 마주해도 이유는 한결같았다. “재밌잖아.” 그래.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괴롭힘과 폭력이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행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재미있다는 이유로 당해보기도,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냐는 물음에 재미있어서 그랬다는 답변을 듣고 절망하기도 했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다. 흥겹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무엇에서 느끼는가에 우리 안에 감춰진 악마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성범죄 영상으로 제국을 쌓았던 양진호 회장이 구속된 지 6개월. 영상의 판매자는 구속되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는 버젓이 남아 있다. 영상은 계속 촬영되었고 p2p 사이트에서 메신저로 옮겼을 뿐,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국은 결코 무너진 적이 없었다. 2016년 몰카 논란으로 이미 사건의 중심에 섰던 정준영 씨지만 당시의 경찰도, 3년이 지나 클럽 버닝썬을 조사하는 경찰도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영상 파일에 대한 ‘증거 은폐’ 의혹까지 커지는 중이다. 흐름이 개운치는 않지만 승리 씨의 카톡에 등장했던 단어 ‘경찰총장’이 경찰청장도 검찰총장도 아닌 총경급 경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공권력은 피해자와 가해자 중 누구의 곁에 가까이 서 있는가.

지난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정준영 동영상’이었다. 직접적인 촬영자가 아니란 이유로 정당화하고, 우정이란 이름으로 ‘찌라시’를 공유하지만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다. 그들은 이미 연예계를 은퇴했다. 이젠 피의자 신분이 되었지만, 아직도 세간의 관심은 연예계에 머물러 있다. 정준영이란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끝날 순 없다. 이렇게 피해자를 찾는 동안 정작 드러나야 할 사람들은 지금도 어둠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다. 그리 많은 표를 얻지 못했던 대선후보가 말했다.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라에 ‘도둑놈’이 너무 많은 거라고. 그래. 이 나라엔 정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관계였다. 그리고 권력을 향한 성 상납과 마약 거래, 약물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그 본질이다. ‘정준영 동영상’을 넘어 상습적으로 또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모든 불법적인 행위를 도려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10년 전 3월, 동일한 구조로 발생한 사건이 있음을 기억하자.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일어난 권력, 약물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 씨가 남긴 리스트 속 인물들에 대한 재수사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검찰은 과거사진상조사위 활동을 2개월 연장키로 결정했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일상의 영역까지 가해의 문화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발화하자. 10년 째 바뀌지 않은 가해의 문화를 첫 단추부터 다시 되짚어 볼 때다.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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