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뮤직 후기] 정말 많은 말을 하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말인 우리 빅스웻이 어느 날 음반에 대한 진지한 의견을 비추었다. '왜 우리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만 쓸까. 책을 읽듯 하나의 음반도 1번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진지하게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날 아주 조금 상대의 철학에 감동하게 되었고, 그렇게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건 '빅스웻'이고 나는 1등 참여자이자 뒷정리를 담당하는 막내. 첫 시간은 브로콜리 너마저 2집 [졸업] 앨범을 함께 들었는데 내겐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자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일단 집중해 음악을 들으며 각 트랙별로 간단한 코멘트를 메모했는데
[#1 열두 시 반] 시계에서 열두 시 반은 시침과 분침이 가장 멀리 떨어진 시간이자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아래로 향한 안정된 시간. 간단한 악기로 시작된 음악은 알 수 없는 전자음이 섞이며 끝이 없듯 이어지는데 마치 음악을 듣다 어느 순간 스르르 눈이 감기듯 순간이 영원이 되는 느낌.
[#2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이 노래가 내게 주었던 위로는 어설픈 스물의 시절을 보내게 해 준 힘이었는데 재밌는 건 과거와는 다른 가사에 꽂혔다는 것. 스물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가사에 슬픈 밤을 달랬는데 이젠 덕원의 담담한 목소리로 전해 듣는 '그런 날이 있어. 그런 밤이 있어'에 요동치는 마음.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옆에 앉아 '그럴 수 있어. 그런 날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겐 더 큰 위로가 되나 보다.
[#3 변두리 소년, 소녀] 갑자기 강해지는 기타 사운드에 깜짝 놀라 잘 듣지 못했던 노래. 이 노래는 뮤직비디오로 함께 봤는데 푸른 논과 산을 뒤로 묵직한 사운드를 내는 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재밌는 건 논두렁에서 어떻게 전기를 연결했을까. 발전기를 돌린 걸까, 전기를 멀리서 빼온 걸까.
[#4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개인적으로 2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목.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노래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침묵'. 우리는 너무 적은 말을 해서가 아닌,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것일 테니.
[#5 울지 마] 1번 트랙부터 청년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전했던 '말'은 여전히 그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등장하는 '몫'. 수평의 연대였던 '말'과 수직의 압박인 '몫' 합쳐진 세대에게 브로콜리는 '그래도 울지 마'라 전한다.
[#6 마음의 문제] 너무 뜬금없지만 당시 유행했던 시크릿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싶었던 노래. 암울한 시대, 불안한 청년에게 모든 것이 네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 외치던 사람들을 비꼬는 노래는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어요.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이니까'
[#7 이젠 안녕] 이번 노래에도 '말'이란 단어는 여러 번 등장하는데 중요한 건 말을 꺼내는 사람의 시간은 언제나 늦다는 것. 상대가 내 곁에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우리가 꺼내는 말은 하고 싶던 말이 아닌 "안녕"이란 짧은 단어뿐.
[#8 할머니] 할머니의 따뜻한 '말'이 등장하는 노래. 그리고 의지가 담긴 덕원의 '말'도 등장하는데 이때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잊지 않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더 이상 무의미하지도 늦어버린 타이밍도 아닌 제때 알맞게 전해지는 '말'
[#9 환절기]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 밴드 사운드도 강해지고 가사도 강해진다. '또 다른 계절에도 이제는 내가 너의 손을 잡을게' 말로서 전하는 어설픈 위로가 아닌 직접적인 행동. 계절이 달라져도 너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말'
[#10 졸업] 대한은 16년 이 노래의 공식적인 뮤직비디오가 나왔다고 했고 영상의 배경은 광화문, 수많은 촛불의 행렬이 곧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2010년에 나온 [졸업]은 6년이 지나 '잊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수백의 촛불을 담고 있는데 이는 2016년, 마땅히 졸업의 기쁨을 누렸을 아이들을 위한 노래이기도 할 테고 이 미친 세상을 믿지 말자는 우리를 위한 노래이기도 할 테다.
[#11 다섯 시 반] 왜 여섯 시 반이 아닌 다섯 시 반일까 고민해봤는데 잘 모르겠다. 새벽갬성인건가.
[#12 Hidden Track] 공연장에서 팬들이 부른 노래가 담긴 히든트랙. 한 사람의 열창보다 많은 사람의 웃음기 섞인 노래가 더 큰 감동을 주는데 혼자 들었으면 지루하고 재미없었을 앨범도, 여럿의 생각을 나누며 들으니 너무 충만했던 시간.
다음 앨범은 '사랑'을 테마로 이적 4집 앨범을 나눌 예정이다. 사랑에 대한 서로의 감상이 우리에게 더 많은 용기를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