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트렌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박경철 원장은 레지던트를 졸업하고 막 전문의가 되었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죽어라 일을 하다가, 친구의 제안에 서울의 한 경제연구소에서 열리는 강연에 참석하게 된다. 마침 놀고 있던 백수 친구 한 명도 함께 데리고 간다. 강연이 시작하자 강사는 칠판에 'WWW'를 쓴다.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정보와 기술이 여기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기에, 대부분의 참가자가 강연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강연장을 나갔다고 한다.
박경철 원장은 이 사건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한다. 당시만 해도 미쳤다고 생각했던 그 강사는 미래를 내다 본 사람이었다. 강사의 말대로 ‘WWW’ 안에 모든 게 들어왔고, 전 세계가 연결되었다. 강사는 훗날 회사를 차려 크게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함께 강연을 들었던 백수 친구는 W에 꽂히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뛰어든다. 백수 친구는 인터넷을 활용해 이메일 시스템을 만든다. 당시엔 유용하지도 않고 전망도 없는 기술처럼 비쳤다. 하지만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메일은 어느새 우리 실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지난 2008년, 박경철 원장은 아주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위 내용은 당시 촬영된 강연 중 일부다. 이른바 ‘W강연’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튜브로도 볼 수 있다. 박경철 원장은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코웃음 쳤던 그 세상이 현실로 펼쳐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쓰라린 기억을 끄집어낸다. 몇몇 사건들을 지켜보며 자신이 사회적 흐름에 뒤처지는 건 아닌지, 어떻게 해야 사회 변화에 발걸음을 맞출 수 있는지 등 치열한 고민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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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강연을 들은 게 무려 6년 전이다. 제대 후 이제 갓 복학해 학교에 적응하고 있었다. 내용이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생각이 크게 바뀐다거나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트렌드를 분석하고 변화를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했다. 그저 유행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는 것이 가치 있는 행위라는 사실에도 이의가 없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트렌드보다 중요한 건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는 거라 생각했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무언가에 연연하기보다 세상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트렌드에 심드렁하던 23살의 박정오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했다. 사는 데 별다른 불편은 없었다. 어떤 흐름 속에서 스마트폰이 만들어졌는지 분석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은 그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제품에 불과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어째서 인기가 많은지 알지 못해도 1분이면 회원가입을 해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왜 영상의 시대가 열렸으며, 유튜브가 어떻게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한지 복잡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그저 재미난 영상을 틀어서 낄낄거리며 웃어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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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년 만에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아직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당시에 비해,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제대 직후 3G가 무엇인지 몰라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는데, 어느덧 5G 세상이 되었다. 이어폰 줄이 점점 짧아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며 너나 할 거 없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터치펜을 어색하게 쥐던 손은 어느새 능숙하게 태블릿을 다루고 있었다. 네이트온, 세이클럽, 싸이 미니홈피 등에 열광하던 10대 시절은 금세 잊혀졌고 각종 SNS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며 방구석에서도 휴대폰만 만지작거려도 수많은 사람과 연결 되는 시대가 열렸다. 영상 콘텐츠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주위 지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부터 간간이 보던 웹소설과 웹툰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시장으로 거듭났다.
내가 20대를 오롯이 보낸 2010년대는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청년 이슈, 대북 문제, 여성 인권, 성 소수자, 난민 문제 등 새로운 이슈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온갖 혐오 표현이 세대를 가르고, 남녀를 가르고, 국적과 인종을 갈랐다. 헬조선, 흙수저, N포 세대 등 절망적인 단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나 역시 퍽퍽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중 한 명이었다.
“세상은 0.1%의 창의적인 인간과 그것을 알아보는 0.9% 인간, 그리고 나머지의 99%의 잉여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제레미 리프킨
세상이 이토록 변하는데도, 나는 가만히 손 놓고 있었다. 심지어 트렌드에 대한 박경철 원장의 강연을 듣고도 6년간 세상을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는 채 잉여 인간으로, 그저 섭취와 배설을 반복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유기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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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시대의 독자가 원하는 책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의 철학을 담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있을지 몰라도, 그런 편집자를 찾긴 힘들다. 심지어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 작품을 발굴하는 편집자라 할지라도, 결국은 상품성과 대중성을 치열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즉 편집자는 사회 변화 및 트렌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니, 떼어져선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지, 트렌드가 무엇인지 전혀 관심 없던 나는 얼떨결에 편집자 직함을 달게 되었다. 편집자가 된 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사회 흐름을 쫒는 데 여전히 서툴다. 아직도 내 취향이 확고하고 내 관심 분야 이외의 것을 보지 않으려 한다. 당장 내가 기획한 책만 해도 그렇고,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도 그렇다. 영 상태가 안 좋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W강연’을 다시금 들었다. 과거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당시 박경철 원장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눈빛이 초롱초롱한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적어도 6년 전의 박정오보단, 좀 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연을 들은 셈이다.
지난 30년을 트렌드에 전혀 관심 가지지 않으며 세상이 바뀔 때마다 뒷짐 지고 ‘세상 좋아졌네’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니 앞으로 30년은 안테나를 시퍼렇게 세우고 세상 모든 것에 감탄하며,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느끼기로 했다. 박경철 원장이 말한 W를 열심히 찾아다니기로 한 것이다. 처음 강연을 들은 지 6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결심하는 셈이다. 내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든, 내 취향이 어떻고 내가 예술가적 욕망을 얼마나 가지고 있던, 편집자 직함을 달고 있는 한 사회 변화와 흐름을 눈이 빠져라 관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숙명이다. 어느덧 내 삶 앞에 툭 던져진 편집자라는 직함은, 그동안 너무나도 안일하게 살았던 나에게 내려진 형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