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론 제30호 - 비평
22세의 전태일과 72세의 전태일
- 가톨릭평론 제30호 비평에 실린 글입니다
2020년 올해는 22세의 나이로 동료 노동자와 어린 여공들의 삶을 위해 평화시장 앞에서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다. 오늘 우리는 그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영웅적 행동과 만인을 향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반세기 전의 노동 현장과 오늘의 노동 현장이, 1960년대 청년의 삶과 오늘날 청년의 삶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목숨을 내걸며 외쳤던 마지막 말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를 우린 다시 꺼내야 한다.
1965년 자신의 생존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이자 속칭 시다로 일을 시작한 청년 전태일은 '다락방'이라 불리는 좁은 곳에서 어린 여공들과 함께 하루 14시간을 일했다. 작업 먼지가 자욱하고, 햇빛도;들지 않는 작업장.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 현장에 나섰던 전태일처럼 10대의 여공들도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온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시다의 평균임금은 3,000원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과 기술이 쌓여 미싱 기술자가 되면 1만 원대의 임금을, 재단 보조가 되면 1만 5,000원, 재단사가 되면 최소 3만 원을 벌 수 있었다. 기침이 끊이지 않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여러 질병을 달고 살아도 버텨야 했다.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의구심과 오늘의 노동이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의식보다 빠른 대처는 아직도 재단보조가 되지 못하는 나의 실력과 노력을 탓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버텨냈고, 누군가는 기술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버거운 현실을 버텨내며 문제의 원인을 내게 돌렸던 1965년 청년의 모습은,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완전히 얼어붙은 취업시장과 마주하는 2020년의 모습과 닮았다. 취업시장의 문턱은 매해 높아지기만 했고, 한 번의 기회를 놓치자 구직을 희망하는 청년들의 수는 곱절로 늘어나버렸다. 더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변별력이 필요해진 기업은 모두 저마다 기준을 제시했고, 마음이 조급해진 청년들은 기업들이 원하는 모든 과목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도 누구도 미래를 위해 청년이 지불하는 비용은 말하지 않았다. 시간과 기술이 쌓여 정규직이 되면 최소 2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슬픈 건 과도한 경쟁구조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합격한다는 사실이다. 합격자의 등장으로 다시 문제의 원인은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을 향했다. 너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내일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매일 밤 노력하는 청년들이지만, 과정에서 소모된 노력과 집중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1960년대와 2020년의 사회는 환경에 대한 개선보다 구조의 승리자가 되는 것에 더욱 힘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태일은 그러지 않았다. 전태일은 자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 바보회를 조직했다. 바보회는 평화시장 시다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당사자 중심의 연합체였고, '지금까지는 바보처럼 살았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남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50년 후의 지금도 그날의 의지와 닮은 청년 조직이 있다.
비록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도 다른 시간제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은 온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체험을 나누고 힘을 보태는 '알바노조', 한국사회의 기울어진 구조 속에 이행기 청년에게서 발생하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민달팽이 유니온', 노동, 취업, 심리 문제 등 청년 전반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 '청년 유니온', 특히 배송 문화의 확산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배송 라이더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 제도를 만들기 위해 모인 '라이더 유니온'이 있다.
평화시장 종업원 중 경력 5년 이상 된 사람은 전부 각종 환자임.
특히 신경성 위장병, 신경통, 루마티스가 대부분임.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하며 위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 그때 어린 시다처럼 지금 매일 밤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도 모두 저마다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어디 한 곳이 부러지고 끊어지고 긁혀 노동의 흉터가 깊게 남아 있는 이들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로켓처럼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탑차가 바삐 달린다. 새벽 배송은 이제 보편적인 배송 서비스가 되었다. 새벽 배송이 내건 슬로건은 신선함이지만 실상은 가혹함일 뿐이다. 새벽 배송이 늘어나며 야간 교통사고의 비율 또한 늘어났어도 정확한 산업재해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는 1965년과 달라졌을까. 새로운 노동환경, 새로운 직업 형태가 생겼을 뿐 노동자의 아픔을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단호함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새벽 배송의 노동자는 체력적인 요인으로 20~30대 세대가 주로 분포하고 있다. 젊음이 과도한 노동의 근거가 되는 것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노동이 자발적이라는 말은 잔인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오늘의 새벽마저 노동소득으로 치환하는 것이 정녕 자발적인 일일까? 시스템을 보호받지 못한 개인이 가장 앞서 판매하는 건 더 많은 노동 시간일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50년 전 평화시장의 청년 전태일이 외쳤던 말은, 쉼을 잃은 오늘의 청년들이 외치는 절규와 같다. 눈부시게 발전한 사회와 함께 노동현장 역시 세련된 외양을 가졌을 뿐이다. 늘어나는 플랫폼 사업은 책임을 분할해 과업을 나누는 방식이다. 여전히 사용자들에겐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 오늘날 모든 노동현장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완수하는 결과물의 형태이지 노동하는 사람의 환경과 사정이 아니다.
법의 부재보다 잔인한 것은 정확히 집행되지 않는 유명무실한 법이다. 우리는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제정'이 아닌, 근로기준법 '준수'를 명령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의 그물망은 성기고 사각지대는 교묘해졌다.
평화시장에서 함께 재봉틀을 돌리던 청년 전태일의 동료들은 지금 72세의 노인이 되었다. 그들의 삶은 어떨까. 청년기에 찾지 못했던 평화가 찾아왔을까. 65세 이상, 노동하는 노인의 40%가 청소와 경비 업무에 종사하는 중이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주는 돈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이고, 우리 아파트의 경비원이 된 이상 주택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품격을 유지하고, 주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신에 포함된 주민의 요구는 해괴하다. 택배 짐이 무거우니 현관까지 옮겨놓으라 지시하고, 어느 때엔 잔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한다. 휴식 시간과 충분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도 부족하고, 화장실도 쉽게 가기 힘들다.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 많으니 맘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는 날카로운 답변만 되돌아온다.
이번 추석 현휴에도 경비원들의 24시간 교대근무는 이어졌다.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은 아쉬운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선물을 보냈고, 그만큼 분리수거장의 쓰레기는 가득 쌓였다. 박스에 붙은 수많은 테이프를 뜯는 일과 스티로폼이 날아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건 오로지 그들의 몫이다. 50년 전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20대의 젊은이들이 처한 오늘날 노동현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의 시선에선 50년간 무엇이 달라졌을까. 전태일은 휴일 없이 일해야 하는 평화시장의 여공을 보며 소리쳤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느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가난한 자들의 노동은 부유한 이들의 여가로 몰리는 법이다. 부유한 자의 안식일을 위해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커피를 내려야 하며, 주차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인식일을 누릴 자와, 안식일을 꾸미는 자로 갈라진다. 신은 인간에게 안식일을 허용했는데, 가난은 인간에게서 안식일을 빼앗았다. 안식일을 빼앗긴 이들은 곧 존재의 존엄성도 함께 빼앗기고 말았다. 노동은 내가 누구이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교종 프란치스코도 "직업이 없어 존엄성을 잃은 세대가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라고 말하며(2014년, 이탈리아 몰리세 지역 집전 미사 중) '노동의 가치를 성스럽게 하는 것은 복음화의 책임', '착취당하고 모욕당하고, 굴욕적인 노동이 아니라 그 고결한 존엄성을 드러내고 인간을 진정 자유롭게 하는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후원하는 청년 사목 프로젝트 '폴리코로 프로젝트' 관계자들과의 만남 중) 일자리는 곧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된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원래 세상의 모습이 이런 거라는 냉소적인 논리를 따르지 않고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특별히 남들보다 용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말한 것처럼 타인의 삶에 가장 마음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나를 뛰어넘는 용기를 냈던 것이다.
전태일은 시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전태일을 마냥 뜨겁고 거친 사람으로 기억해선 곤란하다. 전태일은 몸을 불사르겠다는 선택에 앞서 대화를 택했던 이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는 실태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데이터를 마련하고, 구청과 노동청을 찾아가 정식으로 개선 방안을 요구하고, 마지막엔 대통령에게 직접 서신을 보냈던 사람이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대화의 방식을 시도하고 나서야 다른 언어의 방식을 선택했다.
나는 더 이상 조각된 전태일을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만나고 싶은 전태일은 실태조사 결과를 들고 노동청에 찾아가 신속하고 넓은 단위의 행정적 조치를 이어지게 만든 전태일,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던 것처럼 국민청원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과 동료의 어려움을 지도자에게 말하고 여론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태일을 만나고 싶다.
그런 전태일을 만나려면 우리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삶의 개선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언어를 찾아 우리의 언어를 덧대 더욱 증폭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뜨겁게 타올라 영웅이 된 청년은 전태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의 마지막 언어를 다시 꺼내보자.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이제 부당한 일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더 이상 '청년 영웅'이 아닌 선한 의도를 품은 청년이 '안락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2020년 올해에도 철탑에 오르며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도 할 수 있는 모든 언어가 통하지 않고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자 야외에서 진행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언어를 택한 것이다. 우린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 들을 필요가 있다. 더 좋은 '노동의 기회'와 더 따뜻한 '노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전태일의 삶과 언어를 기억하며 그의 마음을 뒤쫓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아직도, 아니 여전히 전태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