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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우동준 Mar 04. 2016

돼지국밥 7+ (with.기돌이)

#바람꽃 #아버지 #당신과내가따뜻했던순간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그 날까지,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일곱 번째 대화. 



오늘의 인터뷰이는 제 친구의 아버지입니다. 

먼저 제 친구부터 소개할게요. 

제 친구는 저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랍니다. 

이런 곳에서는 참 흔치 않은 이십대이죠. (그러니까 얼른 이 바닥을 뜨자꾸나 친구야)


그녀는 제가 아버지 인터뷰집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직접 오늘의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다 친구야 (뜬금) 



-7번째 아버지- 

청년시절의 별명은 '기돌이' 

자녀는 1녀 1남. 90년생과 93년생.  


I:결혼을 언제 하셨나요?

H:31살 때 했죠. 그때치곤 쪼금 늦었편이었어요.       

저는 이십대 후반 때 다른 길로 출가를 하려고 했어요. 

I:출가요?? 스님이 되려고 하셨어요? 

H:그랬죠. 대학 졸업을 하고는 바로 직장을 다녔어요 우선은 먹고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직장생활을 좀 하다 보니 이 길을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출가를 준비했는데.. 



나를 받아 줄 쪽에서 처음에는 준비를 해서 나와라고 하더니, 마지막이 돼서는 나오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삶의 여러 조건을 봐서 나오는 건 현실도피라고.. 그렇게 어찌어찌하다가 삼십대 초반이 되어서 급하게 결혼을 했었어요. 


I: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어요?

H: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결혼해서 살면 자녀들이 생기겠지'라는 생각 정도는 했었지요.          

I:당신과 자식 간의,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H:닮은 점은 일단.. 외관상으론 아들이 저랑 많이 닮았어요. 딸은 이마만 닮았고요. (웃음) 


      

        

I:지금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H:지금 그..   제가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어요... 3년을 계속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죠. (침묵) 

앞으로 더 진행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쉽게 나을 것도 같지 않은 (웃음)

                

I:당신의 삶을 알리는 다큐를 찍는다고 하면, 당신 삶의 어느 순간을 담고 싶나요? 

H:대학교 생활할 때요. 저는 대학시절을 제대로 즐기면서 보내질 못했어요. 일을 계속해야 했거든요.

등록금도 내야 하고, 가족도 부양해야 하고. 그래서 당시엔 제가 하고 싶은걸 못했어요. 

I:따로 하고 싶던 게 있으셨어요?

H:당시에 제가 돈도 벌어야 했고, 학과 졸업도 해야 됐지만, 그것보다도 영어공부가 꼭 하고 싶었어요. 

졸업한다면 꼭 해외로 나가고 싶었거든요. 


로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돈은 없으니까 각 대학 동아리, 영어회화 동아리 같은데 들어가면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등록은 했는데 정작 한 번을 못 갔어요. (웃음) 시간이 맞아야죠. 

그게 최고 안타까웠어요. 

당시에 생각만 하고 실행에 못 옮긴 게.  

              


I:만약 내 자식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홀로 산다고 하면 어떠신가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H:전 그거에 대해선 그렇게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내 바로 밑으로 한 5-6살 정도 밑으로도 솔로로 사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돌싱이 아닌 그냥 솔로. 

   

그리고 또 요즘은 워낙 이혼율이 높으니까요. 어디서 봤는데 3쌍 중에 1쌍이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유럽식으로 동거부터 먼저 해보고 결혼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주관을 가지고. 


우리나라는 아직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전혀 지원은 안돼서 힘들겠지만 우리도 차츰차츰 그렇게 돼야 할 거 같아요. 괜히 결혼하고 신혼집 차렸다가 실상의 모습은 다르면 어떡해요. 


    

I: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H:일단은 뭐 아버지는 낳았으니까 책임을 져야죠. 


책임감


뭐 어쨌든 내 책임이잖아요.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건강하게 키워주고. 자기가 원하는 있으면 조력해주고. 도와줄 거 있으면 도와주는 거 그 정도.?


내 능력이 안되는걸 요구한다면 그건 못해주는 거지만.. 내가 빚까지 지면서 해준다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마 이건 제가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가 봐요. (웃음) 난 혼자 길을 뚫으면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잡초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편하게, 스스로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I:자식이 당신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나요?

H:그런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딸:나 버림받았네? (웃음)     


-옆에서 가만히 인터뷰를 듣던 친구가, 깜빡이도 안 키고 훅 들어왔다. 

 

H:내가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헌신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뭐 그냥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해가지고, 평범하게 키웠고. 그래서 뭐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아요.      

딸:평범한 게 힘든 거거든!      

H:평범한 게 힘들긴 하지. (웃음)   


I: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당신은 당신 자식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주나요?

H:음..  자식들 둘이서 내 이야기를 알고 있어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저는 아버지 자체를 모르니까.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저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난 아버지가 없다." 


그걸 또 내 자식들이 알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식들도..   

내가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아버지를 못 겪어 봤잖아요. 내 부모는 엄마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로서는 잘 하고는 있는 건지, 그냥 직장 다녀와서, 돈 벌어와서 학교 보내주고, 밥 먹여주고 이렇게 해주고 만 있으면 되는 건지. 내가 제대로 하는 건지.. 하는 회의를 느낀 적은 있었어요. 


나도 내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게 없기 때문에. 


  

            


I:딸의 결혼식을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H:해봤죠. 내 친구 자식 중에 일찍한 애들이 있어서 친구 놈의 둘째 딸 결혼식까지 가본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딸, 다 딸들 결혼식이었는데..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죠. 우리 집 딸은 언제 결혼하려나. (한숨)


-친구는 정말 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I:손잡고 들어갈 때 어떠실 것 같나요?     

H:시원섭섭할 거 같아요. 가서 잘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문제가 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해봤죠. 이십 몇 년을 모르던 사람을 몇 개월, 길게는 일-이년 사귀다가 결혼을 하는 거니까 걱정이 많이 되겠죠. 연애 생활하고 결혼하고는 또 다르잖아요. 내 아이가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리 현명하게 잘 살아줄지..      

딸:거기까지 생각했단 말이야?

H:당연히 생각하지~ 이혼율이 그렇게 높다는데.   

   


      

I:자식이 돈을 드린 적이 있나요? 내 자식이 벌어온 돈을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H:취업했다고 봄 잠바인가 사줬던 것 같은데.. 

딸:바지 사주었잖아 (짜증)



H:바지였었나... 아! 골프바지!  

그런데 난 솔직히 그렇게까진 기쁘지 않았어요. 그냥 내 딸이 사주는구나. 남들처럼 나도 이제 자식에게 선물 받아 봤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 나도 말할 수 있겠구나. 요 정도? (웃음)

     



I:당신이 자식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후회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H:그 아들래미가.. 그 당시에 사춘기가 왔을 때 제가 인식을 못하고.. 




아들은 그 당시 아빠가 필요했었는데 나는 전혀 아빠 역할을 못해준 거 같아요. 말보단 그때가 참 후회가 많이 되죠.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어야 되는데, 저도 아버지를 경험을 못했으니까... 많이 어렵더라고요. 

I:인생은 길잖아요. 그 긴 인생 중에서,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이 있나요?

H:나는 형제가 많은 데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하는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사는 게 힘들었죠. 내가 제일 막내였는데, 내가 막내인데도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물론 이것도 내 입장이지만 (웃음)

지금은 둘이 서로 챙겨주고, 친하게 지내줘서 고마워요. 애들은 형제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I:만약 아버지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H:애기가 태어났을 때 기쁘기도 하고 좀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애기가 아내 몸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애가 세상에 나오고 나니까 '아 내가 진짜 부모가 되는구나' 하는 그 느낌이 탁 들더라고요. 


음..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그 상황을 맞이 하더라도... 특별히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요. 부모로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 보다 다르게 해줄 건.. 딱히 없는 것 같네요. (웃음) 


     




OFF THE RECORD


                

I:아버지의 부재를 언제 가장 느끼셨어요? 청년시절 인가요?

H:어릴 때는 많이 느끼진 못했고, 오히려 내가 결혼을 해가지고 애들이 생겼을 때. 그땐 참 외롭더라고요. 아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럴 때는 아버지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 그때 참 그랬죠. (웃음) 




              




이번에도 다른 아들/딸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받았다.




#기돌이 -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사진출처 - 스님: http://blog.daum.net/ecodong/5816749

사진출처 - 공항 : http://dreamatico.com/airport.html

사진출처 - 사춘기 : https://citydesert.wordpress.com/2014/07/05/anything-but-tim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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