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아버지 #당신과 내가 따뜻했던 순간
*15년을 달리 살아온 내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그 날까지, 60명의 아버지를 인터뷰합니다.
[열 번째 대화]
-10번째 아버지-
I:딱히 별명이 없으신가요?
H:별명이 있긴 있는데. 별명을 말하기가 좀 그래서.
I:아 너무 직접적인 별명인가요?
H:옛날에 그.. 조금 격하게 놀았기 때문에. 별명이 조금..
(고민을 하시다) 옛날에 번개라 캤다. 번개.
I:아 번개요?
H:그만큼 내가 좀 빨랐어. 빨라서 번개라 캤거든. 저기, 충무동 위에 가면 완월동이라는 데가 있다.
예전에 왜정시대 때 있던 성매매..
I:아 완월동!
H:아주 이름난 데거든. 정부에서 허가를 내서 하던 곳인데. 거기선 전부 한 달에 한번 검사를 하고 그랬어. 위생검사. 그런 동네에 내가 살았기 때문에. 조금.
별나게 살았거든.
그때 뒷골목에서 놀았기 때문에. 별명도 조금 그랬지. 번개.
I:자제분은 몇 분이세요?
H:딸 둘. 나이는 인자 사십 다됐지. 내가 칠십 넘었으니까.
I:당신이 원래 하고 싶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H:소설가가 되고 싶었어.
I:소설가요? 글을 좋아하셨어요?
H:글을 좋아했지만 배우질 못했으니까네. 그 시절은 배고픈 시절이었고, 법도 모르고 주먹만 셌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도 그때 같이 껄렁껄렁 다니고 그랬어서 정식으로 배우진 못했고. 그냥 학교 다닐 때는 영화 시나리오도는 혼자 쓰고 그랬어.
I:영화 시나리오도 쓰셨었어요?
H:그랬지. 오리지널 시나리오. 내가 창작해서 쓰고. 만들어내는.
I:부모님도 시나리오 작가를 바라셨어요?
H:그 당시에는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좋은 직장 가길 바라셨지. 그때는 시대가 어려웠을 때니까. 돈을 잘 벌어가지고, 잘 살아가는 걸 바라셨어. 근데 난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맨날 나와 놀았지, 껄렁한 애들이랑만 어울려 다녔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 속 많이 썩었을 거야.
I: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H:죽는 거는 생각을 많이 했지. 한참 내가 어렵게 살고, 망나니 짓 많이 하고 다녔어도, 내 친구 중에 아주 올바른 친구가 하나 있었어. 그 친구가 나를 데리고 참 이야기를 많이 했지. 그 친구랑 이야기하는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어. 몰라 중학교 때였는데. 그 친구랑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그랬어.
I:죽는다는 게 두렵진 않으신가요?
H:요전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내가 죽는 건 아닌가. 죽으면 뭐 죽는 건데.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참 하릴없이 보냈는데. 이래 죽으면 어쩌나... 싶었지.
I:자식이 벌어온 돈을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H:나는 옛날부터 그랬어. 애들이 벌어오는 거는 아예 안 받았어. 내 주지말고 너희가 알아서 벌었으니, 너희가 알아서 써라. 아마 나도 그래서 옛날에 부모님한테 안 줬었나 봐.
-웃음
H:내가 내 부모한테 그랬으니 나도 자식한테 못 받겠는 거지.
I:혹시 세상을 떠날 때 자식에게 남길 말로 정해둔 건 있으신가요?
H:내가 결혼하고부터 사람이 조금 자리를 잡고 그랬거든. 그 전엔 망나니로 다녔기 때문에..
그 모든 걸 다 겪었으니까. 결혼하고 나서는 다 헛된 일이었구나. 애들한테 잘 보여야겠구나 싶었어.
그래서인지 애들이 많이 엇나가고 그런 건 없어.
어쨌든 인간이 지맘대로 태어났다고 지맘대로 살고 그라면 안 돼.
나도 경험을 할 건 다 했기 때문에. 아무리 어긋날라고 해도 인간 삶이 그런 게 아니더라. 결국 바르게 사는 쪽으로 다 돌아오게 돼있어. 결국 그게 다 부질없는 힘이고, 일이고 그렇더라고.
I:최근에 칭찬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H:칭찬이야 여기서 직업이 이러니까. 조금 친절하게 하면 칭찬받곤 하지. 여기서 차 보는 건데 나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겠나? (웃음)
I:내 자식이 다 컸구나 싶던 때는 언제인가요?
H:예전엔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랬는데. 이젠 커서 몸에 좋은 것도 챙겨주고. 내 딸이 이제 내 건강을 챙겨줄 때, 그때가 다 컸다 싶지. 나는 건강한데 딸애가 보기엔 그게 아닌가 봐. 일일이 챙겨주고 할 때 아 이제 다 컸구나 싶지.
I:자식에게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H:받고 싶은 거는 따로 없고.. 자식이 결혼해서 잘 사는 게 선물이지.
I:아 물질적인 거 말고..
H:그럼! 지들이 잘 살아가는 거 그게 보고 싶지!
I:잘 살아가는 게 선물이라..
어어? 들어오면 안 된다!
갑자기 탑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왔고 아저씨는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을 소리치며 뛰어가셨다.
헐떡대며 들어오시더니 말씀하셨다.
H:부모 안 썩이고 사는 거 그게 선물이지. 언제까지 부모가 신경 쓰고 살끼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거 그게 선물이다.
I:아버지가 되는데 두렵진 않으셨어요?
H:두렵고 말고는 뭐. 처음에 결혼하고 나선, 전에 같은 그런 마음을 묵어선 안 되겠다 싶었지.
결혼하고 나서야 내가 마음을 다잡고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그 끝으로는 하여튼... 개망나니 짓은 그만하고 다녔으니까....
OFF THE RECORD
H:아무리 그때 내가 개망나니로 다녀도 골목에서 담배 피우다가 어른 오면 숨카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래도 안한다매?
I:아유 요즘은
H:요즘은 어른한테 불 빌려 달라고 한다매. 어휴.
I:사달라고도 합니다.
H:그래도 뭐.. 다 그렇진 않겄지?
I:네. 아무리 그래도 다 그렇진 않겠죠. (웃음)
H:그래. 암만 많아 보여도 다 그렇고 그렇진 않을거여.
번개가 딸 아들에게
항상 부모들은 너희들을 생각하고 있다.
세상이 험하고 어렵지만
자기주장을 올바르게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사진출처 : 완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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