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스틸 앨리스를 기억하며 #당신의 존재

by 바라미

7년 전 2018년 4월 21일. 마루, 푸리가 지리산 자락 하동의 한 게스트하우스 뒷마당에서 태어났다. 친구 심비는 엄마 개 행복이와 딸 개 기쁨이가 2주 간격으로 7마리, 6마리 새끼를 낳는 바람에 패닉에 빠졌다. 그녀는 매일 뽀송뽀송한 꼬물이 사진을 보냈고, 내 마음은 돌 맞은 호수처럼 흔들렸다. 어미 곁에서 6개월은 지내야 한다는 강형욱 선생님의 말을 지킬 새도 없이, 주인은 "개는 두 마리지!"라는 말과 함께 내 품에 3개월 된 강아지 두 마리를 안겼다. 7살 된 마루와 푸리는 여전히 우리 집에 산다. 13kg, 중형견. 아파트에 살기엔 허리와 다리가 길다. 산책을 할 때나 내가 개를 기르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묻는다. 무슨 종이냐고.



요양사로 일하는 '나'는 여러 해 전 남편과 사별하고 서울 변두리의 한 오래된 주택에서 산다. 2층은 어린 남매를 키우는 가족에 세를 주었는데, 싱크대에서 물이 샌다며 수리를 기술자에게 맡겨달라고 요청한다. 변변찮은 수입에 돈 나갈 곳은 많은데, 독립했던 대학 강사 딸이 집주인의 독촉에 못 이겨 목돈을 해달라고 성화다. 몇 년 전 떠난 남편 병원비로 대출이 막힌 탓에 잠시 집에 들어와 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딸은 '그 애'와 함께 생활비를 내고 집으로 들어온다. 딸이 레인이라고 부르는 그 애는 어느 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글을 써서 잡지에 기고한다. 딸은 그 애와 한 방에서 자고, 나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정히 차를 마신다.


요양원에서 보살피는 어르신은 젊은 날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는데 평생을 보낸 이제희 여사다. 치매가 심해지고 방송출연이 어렵게 되자 그녀의 젊은 날을 칭송하던 각종 미디어는 등을 돌리고 후원이 줄어 무연고 노인으로 깊은 시골 요양병원으로 보내진다. 줄줄 새는 기억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쇠락하여 간신히 삶의 테두리 안에 고독하게 머물고 있는 어르신을 보며, '나'는 세상의 매정함과 삶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결혼이야말로 딸을 남은 삶의 외로움으로부터 보호해 줄 마지막 보루라고 여긴다. 그러나 딸은 7년이라는 젊음을 허비하면서 여전히 그 애랑 산다.


모두 별다를 게 없는 늙은이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나이가 든다는 건 즐거움을 하나씩 잃어가는 거라고 했다. 또 젊었을 때는 선을 긋고 담을 쌓고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60이 넘어서도 생계를 위해 노동을 걱정하는 그녀의 막막함은 너무나 힘이 빠지면서도 힘이 있어서, 살기 위해 매끼 먹어치우는 무미건조한 밥상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대학 강사인 박사 딸이 직장이 없어 대출을 받지 못하고, 공공주택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서른 중반인 딸이 여전히 올이 풀어진 청바지 밑단을 뒤축이 비스듬히 닳은 운동화로 밟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딸애를 너무 많이 교육시킨 걸 후회한다. 같은 대학 강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되자, 그녀의 복직을 위해 함께 싸우는 딸의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 자신의 이름 대신, 그린이라고 불리며 근본도 모르는 여자애와 사는 그 애의 젊음을 이해할 수 없다. 전임강사, 정교수가 되고, 세상에 여봐라~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집값 경쟁에 뛰어들어 내 집을 마련하는 일! 그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는 딸애의 미래가 불안해 참고 참았던 한마디를 던지면, “싫으면 싫다고,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말하고 살라며. 그렇게 가르쳐 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라는 딸의 힐난이 벼린 칼끝이 되어 되돌아온다.


그녀가 돌보던 어르신은 비밀리에 시골 요양병원으로 보내진다. 이러는 법이 어딨냐며 항의하는 그녀에게 남의 일에 적당히 하라고 말리는 동료들.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야! 우리도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딨어!"라며 폐쇄적인 가족주의에 치를 떤다. 어렵게 구한 주소를 들고, 찌는 여름길을 걸어 굽이굽이 도착한 곳. 반송장으로 누워있는 어르신을 보고 아연실색한 그녀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병원 처우에 불만을 드러내자 지친 요양사는 "막말로 여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작별의 순간 잠시 맑은 눈빛을 마주하고 자신이 누구냐고 묻자 힘겹게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어르신의 이 한마디에 그녀는 병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로서, 필연적으로 죽음을 앞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노쇠했어도, 여전히 그녀가 '사람' 이제희임을 깨닫는다.


무연고자인 어르신의 장례식은 조촐하다. 그러나 그곳엔 심리적 탯줄로 이어진 딸과 두 명의 손녀 상주가 있고, 상주 친구들의 웃음소리로 환하다. 화려한 꽃장식, 줄 늘어선 화환과 북적이는 문상객은 없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마음 몇이 테이블 하나를 꽉 채운다. 타인의 죽음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마음들. 이걸로 됐다, 충분하다. 딸의 외로운 노후를 미리 불안해하던 '나'는 이제야 옹이 진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다. 그녀는 여전히 딸이 세상의 흐름에서 분리되고 밀려나는 게 두렵다. 그러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함께 연대하는 딸의 옆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딸 그린은 '생판 남'인 이제희 여사를 집에서 마무리할 수 있게 도운 '나'의 오지랖을 물려받았다. 생판 남을 가족처럼 돌보고, 부조리에 처한 그를 위해 함께 싸우고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은 이제희 여사의 가방에 소중하게 담겨 있던 '아름다운 동행상'의 험난하지만 다정한 실현이다.



나는 7살 난 마루, 푸리와 산다. 7년을 함께한 그린과 레인의 시간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만큼 크는 시간이고, 다른 빛깔의 사랑을 홀대하고 실망한 사람들로 인해 수없는 위기를 견딘 시간이고, 강아지가 중년이 되는 시간이다. '내 딸만은'을 포기하지 못할 때 그녀는 그린과 레인이 지나온 7년의 시간과 앞으로 감수해야 할 고통을 소꿉장난으로 치부하는 모질고 높은 장벽이 된다. 이제희 여사는 그녀를 돌보고, 찾아간 '나'를, 레인과 그린을 '사람'이 되게 했다. 그녀가 힘겹게 뱉은 그 말은 돌봄의 영역에서 벗어난 가난한 노인들을 여전히 '사람'이게 했다. 지리산자락 마당에서 태어나 내게 온 마루와 푸리는 내게 '개'다. 무슨 종으로 브리딩 되었다는 훌륭한 족보가 없어도, 내겐 7년을 함께 산 개다. 치매에 걸렸어도,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과 삶의 방식이 조금은 달라도 우리 모두가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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