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향기

마이 올드 오크(My Old Oak), 슈크란(شكراً) T.J.

by 바라미

오래전, ELS에서 미국인 작문 강사는 질문했다. 동양과 서양 문화 중에서 어디가 더 친절하다고 생각하냐고. 중국인 황제 아이들과 내가 입을 모아 동양이라고 대답하고 이유를 늘어놓자, 강사는 조용히 웃으며 자신은 후자라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서양 문화에서는 자기 외에 모두 타자이므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고 대화를 즐길 수 있다고. 끈끈한 동양 정서에 익숙한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작년 말,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수영장에 오래 다닌 사람들의 텃세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길, 한 할머니가 수건을 안 가져왔다며 난처해하길래 쓰지 않은 수건을 건네려 하자, 어디선가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 지인이 부리나케 달려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형님, 이거 내 거 쓰셔! 왜 알지도 못하는 모르는 사람한테……."


T.J. 밸런타인은 펍 '올드 오크(The Old Oak)'를 운영하며 반려견 마라와 살고 있다. 폐광촌에서 오랜 단골을 대상으로 근근이 버티면서도 밴으로 시리아 난민들에게 기부 물품을 전달한다. 그러나 몇몇 남자들은 가게에 두건 대가리를 들이지 말라며 어느 편인지 똑바로 하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다. 그들은 얼마 전 내전을 피해 마을에 도착한 야라의 동생이 학교에서 집단 린치를 당하는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폭력의 이유를 영국에 갓 정착한 어린 외국인에게서 찾는다. 그곳은 순식간에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되고, 내 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혐오와 배척이 된다.

"아랍어하는 교사를 데려온대.", "우리 애들 선생도 부족한데…."

"영어를 못하는 그 애들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간대."

"병원에서도 당했대. 서류를 작성하느라 30분이나 기다렸대."


불편함은 낯선 이의 생존에 앞서고, 부의 분배에서 밀려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것들을 이 동네에만 몰아넣고 런던의 부촌엔 안 둬! 자기들은 옆에 살기 싫으니까."

"난민 이민자, 좋다 이거야. 알지도 못하는 것들과 나누라고? 근데 우리도 가진 게 없는데, 알지도 못하는 것들과 나누라고? 불평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히고 진절머리가 나!"

더 이상 참지 말자고, 더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목소리를 내겠다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올드 오크의 옆방에서 공청회를 열자는 제안을 한다. 그들의 작당에 입을 꼭 다물고 있던 T.J.는 20년 간 닫혀 있던 그 방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고, 난방도 안 되고, 배관은 삭고, 전기도 안 들어온다는 장황한 이유로 완강하게 거절한다. 거절당한 40년 지기 단골들은 옹골진 표정으로 뒤돌아 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단어가 무척 귀에 거슬렸다. '우리'와 '편(便)'. 그리고 그 두 단어가 함께 쓰이면, 어떨 땐 굉장한 위압감과 파괴력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편'에 속하지 못하면 '저것들'이 되는 이분법적인 관계는 얼마나 좁고 편협한가. 그리고 선택의 여지없는 그 말 앞에 선 사람을 얼마나 소비적인 고민에 빠뜨리는가. '올드 오크'는 그렇게 '우리'와 '저것들' 사이에서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누구와 어떤 일을 할지, 언제, 어떻게 해나갈지, T.J.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라는 시리아 민병대에 잡혀간 아버지가 주신 사진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본다. 영국에 도착한 첫날, 보이콧하는 남자와 시비가 붙어 카메라가 깨졌고, 보상은커녕 되려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욕을 먹는다. 이를 본 T.J.는 갖고 있는 오래된 카메라를 팔면 야라의 카메라를 고칠 수 있을 거라며 펍의 옆방 문을 연다. 그곳엔 T.J.의 삼촌이 찍은 사진이 벽면 가득 걸려 있다. 오래전에 폐광된 탄광촌의 역사, 투쟁의 역사, 연대의 역사가 사진에 박제되어 있다. 야라는 밥을 해 먹이는 마을 여자들과 방 안 가득 함께 밥 먹는 사람들 사진 앞에 선다. 그 밑에는 T.J.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적혀있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t together.)

사진에서의 '우리'는 펍에서 작당모의를 하던 사람들의 '우리'와 다르게 읽힌다. 온기가 있고, 포근하지만 힘이 있다. 서로를 살리는 나눔이 있다. 사진을 바라보던 야라는 말한다.

“시리아에 있을 때, 우리도 그랬어요. 이웃과 같이 밥을 먹고, 폭격이 있을까 봐 계단 밑에서 잤죠.”


야라는 미용실에서 사진을 찍으며, 몇 달째 방에 은둔하며 외출하지 않는 아이를 걱정하는 사연을 듣게 된다. 로라와 야라는 T.J.를 찾아와 고립된 시리아인 가족들과 삶이 퍽퍽한 현지인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면 서로 친해질 거고, 삶이 바뀔 수 있을 거라며 옆방을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T.J.는 얼마 안 남은 단골마저 끊겨서 길에 나앉길 원하냐며 버럭 화를 낸다.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거절한 후 마음이 언짢은 T.J.는 마라를 데리고 부모님 묘지를 찾는다. 아버지의 묘비엔, 프랭크 밸런타인을 기억하며 '충직한 친구이자 든든한 동지'라고 쓰여 있다.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목줄 없던 마라가 숲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대형견들에게 물려 죽는다. 소식을 듣고 걱정돼 찾아온 야라와 엄마의 손엔 따뜻한 음식이 담겨 있다. 야라 엄마는

“말 대신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라고 마음을 전한다. 생사를 건너온 야라에게 부끄럽다는 말에

"사랑에 부끄러움이라뇨. 그 마음 알아요."라며 조용히 함께 있어 준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잃은 T.J.는 야라 모녀의 따뜻한 마음을 먹고, 내일을 위한 또 다른 이유를 찾는다. 그는 20년간 비워두었던 올드 오크의 옆방을 치우면서, 그가 걱정돼 들른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 끼 식사가 필요한 아이들과, 전쟁을 피해서 온 새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고 싶다고. 그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유리창을 닦고, 임시로 전기공사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공간을 정비한다. 시리아 기술자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참고 함께 일하는 주민들. 그들을 바라보며 T.J.는 20년 만에 다시 연 올드 오크의 옆 방이 담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같이 연대하는 거지. 자선 활동을 하려는 게 아냐.”

“우리가 뭔가를 함께하는 게 중요해. 일회성으로 밥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했으면 좋겠어.”


올드 오크 옆방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즐기는 '광장'이 되었다. 식사를 하는 시리아, 영국인 가족들로 가득한 방. 주 2회, 토요일 특식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말에 한 소년은 얼굴이 환해지며 할머니와 같이 오겠다고 기뻐한다. 무료 급식에 온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를 위해 부엌에서 혼자 먹을 수 있게 배려하고, 가족이라며 살뜰하게 챙기는 시리아 여인이 있다. 어느 날엔 야라가 찍은 사진을 시리아 전통악기 연주와 함께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사진엔 동네 전경, 거리 주민들, 시리아 가족들이 있고, 달리기 시합하는 아이들, 미용실의 여인들, 포즈를 취한 사람들의 미소가 있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과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작은 공연이 끝나고 야라와 시리아인들은 자신들을 품어준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광부의 깃발을 선물한다. 그 깃발엔 “용기, 연대, 저항”이라는 문구가 새겨 있다.


선의는 단순하고 음모는 복잡하다. T.J.의 행보에 불만을 가진 몇은 펍 옆 방을 못쓰게 만든다. 배관이 터져서 천장에서 물이 새고, 누전까지 되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절망에 빠진 TJ가 맨 먼저 한 말은,

“이제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이상하리만치 영국 주민들로만 북적이는 펍, 싸구려 외국인 전기공들이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 몇이 즐겁게 술을 마신다. 그들은 T.J.에게 우릴 도우면 우리도 널 돕는다고, 여기엔 우리 부류만 남았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그러나 몇몇이 벌인 계략의 전말을 알게 된 T.J.는 이 일에 앞장선 오랜 친구 찰리를 찾아간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지.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가까운 이의 배신에 절망한 T.J.를 다시 세운 건, 그보다 더 지독한 불행을 안고 사는 야라의 소식이다. 시리아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앉을 정도로 좁은 감옥에 감금됐던 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야라와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T.J.와 로라. 그녀의 집을 찾은 시리아 사람들.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 몇이 손에 꽃과 작은 인형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남편을 잃은 여인과 아버지를 여읜 자식을 애도하는 사람들. 아내의 휠체어를 끌고 딸과 함께 온 찰리, 거기엔 어떤 조롱도 없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 손을 잡고 온 여인들. 사람들의 행렬을 홀린 듯 바라보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속삭인다.

"슈크란, 미스터 밸런타인 & 슈크란, 야라"

사람들이 즐비한 거리, 광부들의 축제에 시리아 주민이 선물로 준 광부의 깃발을 들고 마을 사람들이 가두 행진을 한다. 몇 년 동안 참여하지 않았다는 T.J.의 얼굴이 동료들 사이에 보인다.


"꽃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를 수 없지만, 덕 있는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퍼진다."

붓다의 말씀이 옳았다. T.J.와 야라는 나이와 성별, 인종을 초월해 혐오와 차별의 악취를 거스르고 서로의 향기를 나누었다. 상생시네마클럽 '나, 다니엘 블레이크' 편에서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이토록 목적성이 강한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나의 질문에, 더 열심히 보고 더 열심히 공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대답했다. 켄 로치의 이야기는 늘 단순하고 명확하다. 다 안다고,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니엘이 성노동자로 전락한 케이티를 만류하며 울 때 울음이 터졌고, 야라가 반려견을 잃고 슬퍼하는 T.J.에게 '사랑을 잃은 그 마음'을 안다며 위로할 때도 울컥했다. 야라는 용기가 있어야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영화의 처음,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무리가 지켜보는 줄 알면서도 야라는 '올드 오크'를 찾아와 T.J. 에게 인사를 건네고 통성명을 한다. 그녀의 용기를 꺾지 않은 건, 그녀를 마을 사람으로, 펍의 손님으로 받아준 T.J.의 태도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광장을 내주어 시간을 나누는 그의 너른 품! 그의 향기는 척박한 삶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작은 위안이 되고, 전쟁으로 많은 걸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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