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ale & 모비딕(Moby Dick)
“고래”라는 단어에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찰리도 그랬다. 숨을 쉬는 매 순간이 죽음인 사람,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먹지도 못하는 추한 남자. 지지대를 이용해서 일어서는 것도 어려워서 도우미 리즈가 올 때까지 하루 종일 화장실 가는 것을 참는다. 그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는 문 앞에 배달된 피자 두 판을 가지러 갈 때뿐이다. 초고도비만, 울혈성심부전증, 고혈압 3기. 살로 인해 약해진 식도로 음식물을 삼키기도 어려워 목에 걸리기 일쑤지만, 그는 천천히 먹을 수가 없다. 치킨, 샌드위치, 피자, 초콜릿이 자기 파괴의 무기가 된 지 오래지만, 그는 미친 듯이 먹음으로써 자신을 학대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가 폭식으로 이어지고 죽음의 순간이 오면, 그는 911을 부르는 대신 딸이 8학년 때 쓴 '모비딕' 에세이를 찾는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싶어서. 8년 전, 찰리는 어린 딸과 아내 대신 앨런을 택했다. 선명해진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목사의 아들 앨런은 가족과 교회에서 배척당하고 거식증에 걸려 강물에 투신한다. 그 충격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찰리는 종교와 세상을 버린다. 그 후, 그는 작은 아파트에 칩거하며 270kg이 넘는 몸속에 자신을 가둔다. 전 아내 메리의 접근금지 명령으로 딸을 만나지 못하고, 엘리가 슬픔에 몸부림치며 방황하는 것을 SNS를 통해 본다. 후회 속에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파멸을 선택하는 찰리, 그에게 엘리는 처절한 절망 속 한 줄기 희망이다. 그는 스크린이 고장 났다는 거짓말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오클리 대학 원격 강의로 작문을 가르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한 줄이라도 “진심을 다해 글을 쓰라”며 진실성을 요구한다.
엘리는 아빠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가 없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아빠에 대한 증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자기 파괴로 이어간다. 그녀는 자해를 하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다. 죽은 개를 찍어 SNS에 올리고, 교칙을 어기고 친구를 울린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에세이를 제출하지 않아 정학당하며 제적 위기에 처한다. 엘리의 엄마, 메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알코올 중독이 되고 어린 엘리를 위로하지 못한다.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딸이 찰리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 그녀는 엘리가 사악하다고 말한다. 위태로운 엘리에게 찰리는 자신의 전재산을 줄 테니, 자기에게 와서 에세이를 쓰라는 제안을 한다. 그는 8년 만에 왜 아빠 노릇을 하냐며 역겹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엘리를 안타까워하며 "온 세상에 대고 화낼 필요 없어. 나한테만 화내면 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엘리의 '온전한 삶'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용서의 심판대 앞에 선다.
죽음을 눈앞에 둔 찰리가 엘리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이기적인 것은 없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세상의 손가락질 속에 그녀를 버려둔 패륜을 한 마디 말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당신 덕분에 8살에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라는 것을 배웠다는 엘리의 증오 앞에서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걸 알아야겠어!”라는 찰리의 말은 공허하다. 그럼에도 그는 딸의 에세이를 4년 동안 반복해서 읽고, 구절 하나하나를 외우며 엘리가 꽁꽁 숨겨둔 깊은 마음과 만난다. 엘리가 처음 찰리에게 왔던 화요일, 문을 열고 나서다 돌아서서 찰리에게 보조 기구의 도움 없이 자기에게 걸어오라고 말한다. 난데없는 딸의 요구에 거구의 몸을 일으키던 찰리는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탁자 위로 쓰러진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목요일, 유난히 불안하고 까칠하게 굴던 엘리는 찰리와 설전을 한 뒤, 아빠를 위해 '마요네즈를 뺀' 작은 칠면조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리고 가출한 토마스의 진실을 확인한 후 그의 사진과 녹음파일을 고향 교회와 부모에게 보내 결국 토마스는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찰리는 엘리를 통해 사람은 결코,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는 놀라운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월요일에 시작한 영화는 금요일에 끝난다. 삶의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찰리의 간절함은 그가 죽기 직전, 엘리가 자신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루어진다. 찰리를 돕고자 했던 인물들 중 유일하게 911을 부른 엘리. 그녀는 사랑에 빠져서 널 떠나와서 미안하다는 아빠의 절절한 사과를 들으면서 운다. 그리고 평생 본 것 중에 최고의 에세이라고, 그 에세이는 너라고, 그래서 너도 정말 훌륭하다는 아빠의 축복의 마음을 듣는다. 아빠를 위해 자신이 쓴 에세이를 읽으며, 엘리는 모비딕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삶을 버린 에이허브의 집착과 광기, 자기 파괴의 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녀는 피쿼트호의 새로운 선장이 되어, 망망대해에서 아들이 탄 보트를 같이 찾아달라는 동료 선장의 부탁을 거절한 에이허브의 과오를 바로잡는다. 그녀는 찰리의 마지막을 끝내 외면하지 않고 진심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에 대한 연민의 눈물을 흘리며 원망에서 벗어나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찰리는 유독 엘리의 글에서 "고래 묘사만 잔뜩 있는 챕터들이 유독 슬펐다. 자신의 넋두리에 지친 독자들을 위한 배려인 걸 아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를 반복해서 되뇐다. 그러면서 이스마엘이 만난 많은 사람과 그가 겪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엘리에게서 속죄와 용서, 구원의 가능성을 엿본다. 그는 '버려졌다고, 세상은 온통 쓰레기'라며 절망하는 엘리가 그 증오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글을 쓰는 것밖에 없다는 걸 안다. 글을 통해 진심을 토해내야만 그 애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건넨 노트에 '전부 다 싫어.'라고 쓴 딸의 한 줄 마음을 끌어안고 운다. 용서받음으로써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던 찰리. 하얀 피부에 전기기관차 만한 몸을 이끌고 바닷속에서 수직 점프하는 모비딕처럼, 그는 혼자의 힘으로 육중한 몸을 일으켜 딸이 서 있는 빛 속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함께했던 바다 여행 시간 속에서의 관계를 회복한다. 그때 깊은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흰 고래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글을 아빠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꼈다는 믿음을 심어 놓은 안도와 구원의 울음소리가.
2년 전 여름, 지인에게 추천받은 '더 웨일'을 보고,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은 '나는 왜 이렇게 이 영화에 몰입하는가?'였다. 찰리, 앨런, 엘리, 리즈, 메리에 이르기까지 인물 모두에 퍼져 있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자기 파괴적 성향, 진실과 위선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채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들. 가식으로 가려진 혐오의 얼굴들. 사실,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리즈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와 나도 그랬다. 우리는 살아서 끝내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엘리를 통해 인간의 선의를 확인하고, 과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받고자 하는 찰리의 용기가 부러웠다. 넌 내 인생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너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온전한 삶을 살 거라고, 사람을 아끼는 넌 행복할 거라고 유언처럼 내뱉는 그 축복의 말들이 부러웠다. 언젠가 엘리는 휘트먼처럼 '나의 노래'를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근원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자아로 확장하며, 삼라만상 조화를 이루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내 눈길이 닿을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 찰리와 아빠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