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의미 # September # 옛사랑 #지금
혼자 TV를 보며 저녁을 먹던 도그는 앞집 커플의 다정한 모습을 본 후 홀린 듯 로봇을 주문한다. 배달된 로봇을 조립하고 건전지를 넣어주자 로봇은 눈을 맞추며 웃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처음인 로봇은 도그와 함께하며 새끼 새처럼 매 순간 세상을 배운다. 얼떨결에 배운 손가락 욕으로 도그를 대신하고, 손을 잡고 산책하며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상대에게 맞는 세기로 손을 잡는 것도 연습해야 하는구나,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 함께하는 첫걸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아가던 로봇의 눈에 또 다른 이의 로봇이 눈에 띄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또 다른 로봇의 의미를. 스치고 지나간 짧은 불안의 의미를.
도그는 분명히 로봇을 사랑했다. 살갑고 순수한 로봇 덕에 외롭지 않고 행복했지만, 좀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때는. 한여름 휴가에서, 천방지축 신이 나 바다에 뛰어드는 로봇을 도그는 막지 않았다. 그 대가로 도그는 바닷물의 짠기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을 홀로 두고,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폐장된 바다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모래사장에 누워 꼼짝 못 하는 로봇은 자신을 부품 취급하는 사람에게 다리를 뜯기고, 가슴에 둥지를 트고 새끼를 기르는 새에게 보금자리가 되어 주며 집에 돌아가는 상상을 할 뿐이다.
마음을 주는 것과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에 따라 상대는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므로.
고철 수집가에 의해 고철상에 옮겨진 로봇은 온전히 해체된다. 그의 존재는 더는 이 세상에 없는 듯하다.
그러다 부품을 사러 온 라스칼이 로봇의 얼굴을 보고 거기에 맞는 팔 한 짝을 찾아낸다. 라스칼은 집에 돌아와 로봇의 가슴에 더블 카세트테이프를 달고, 나머지 팔, 다리를 짜 맞춰 자신의 로봇으로 만든다. 그 둘은 그렇게 새로운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해수욕장으로 달려간 도그는 로봇의 체취를 맡으며 팔 한 짝을 모래더미에서 찾아낸다. 서툴렀고 타이밍이 어긋난 그 둘은 그렇게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는다. 새로 주문한 로봇과 함께 다시 바다에 간 도그는 정성껏 기름을 쳐주고 로봇이 바닷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잡는다. 경험을 통해 성숙해진 도그는 새 로봇과 조심스럽고 돈독한 관계를 이어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나,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
언제까지 그 마음을 유지해야 하나. 생각과 의지가 있다면 그 마음과 관계는 변하지 않는가? 정녕 변하지 않는 관계가 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끝, 관계의 한계를 인정하며 존재의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와 상실이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고 했다.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자라난다고 했다. 옥상에서 바비큐를 즐기던 로봇은 우연히 길 건너 새 로봇과 함께 지나가는 도그를 본다. 길옆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September를 듣자마자 도그는 첫 로봇과의 추억이 떠올라 춤을 춘다. 옥상에서 그를 지켜보는 로봇은 가슴에 달린 카세트테이프에서 같은 음악을 재생하며 따로 또 같이 춤을 춘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도그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지만, 옛 친구의 시선을 피해 숨은 로봇은 새로운 삶으로 향한다.
멀리서 도그를 지켜보며 로봇은 상상한다. 왜 그동안 한걸음에 달려가지 못했는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소상히 알리고 기쁜 재회를 하는. 수없이 되뇌며 머릿속으로 찾아갔던 그의 집과,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그러나 그의 상상은 도그의 옆자리에 들어선 또 다른 존재 앞에서 멈추어 선다. 그와의 추억을 재생하는 음악을 끄고, 로봇 자신의 음악을 튼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로 돌아간다.
차마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순간을 함께하며 음악, 음식, 향기, 느낌을 나눴던 존재에 대해 말해서 무엇하랴. 그때를 떠올리자마자 우리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양철 나무꾼이 된다. 그리하여 추억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시시때때로 '당신'을 생각하고(My thoughts are with you), '오늘'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기억하려는 것(Remember, the true love we share today)이 아닐까.
-음악의 힘을 확인하며(2025. 03. 31.)
-로봇드림(2024. 03. 13. 프랑스, 스페인, 타블로 베르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