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유럽자동차여행] Day 7

프랑스 유력재력가의 저택에서의 하룻밤

2019년 4월 23일.


여행을 오래하면 아내와 싸우지는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함께하다 보니 종종 생각이 달라서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는 편이다. 우리가 다툼이 없는 데에는 금슬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여행자로서의 역할분담이 잘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여행지를 탐구하고 그 지역의 맛있는 것들을 찾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우리가 어디를 여행할 지와 여행지지의 맛집들을 알아본다. 반대로 어디를 여행할 지에 대한 것보다는 그곳을 어떻게 여행할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아내가 정한 여행지를 토대로 그곳에서 머물 숙소를 찾고, 그날 사용한 비용을 가계부에 정리한다. 좋아하는 일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을 하다 보니 서로의 시너지가 좋다.


우리의 역할분담이 잘 유지되었더라면 아마 우리가 유력재력가의 대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나의 역할에 '일간백수부부 여행기' 작성이 추가되면서 아내는 내가 도맡아 하던 숙소예약을 도와주었다. 원래 우리는 오늘 안시(Annecy)를 떠나 샤모니(Chamonix)라는 몽블랑 산 바로 아래 위치한 마을로 가려했다. 샤모니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찾기 어려워 하던 중에 아내가 좋은 곳을 찾았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깔끔하고 세련된데다 가격까지 착해서 좋다 하고 예약을 했다. 나는 당연히 그 숙소가 샤모니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예약을 하고 보니 숙소는 샤모니가 아니라 안시와 샤모니 사이에 있는 메제브(Mejeve)라는 마을에 있었다. 샤모니까지는 무려 차로 40분이나 떨어진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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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Annecy) 캠핑장을 떠나 몽블랑 산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길.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몰랐다. 우리의 목적지가 샤모니가 아닌 메제브 라는 것을.


안시에서 메제브로 가는 길은 험준한 알프스 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라 운전이 쉽지 않았다. 곡예운전 끝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에 도착했더니 집이 아닌 ‘아트 갤러리’가 있었다. 호스트와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아 10분간 주변을 배회하던 중 극적으로 호스트 사촌누나와 연락이 닿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도착했던 그 아트 갤러리가 우리가 예약한 곳이 맞단다. 처음부터 우리가 가고자 했던 샤모니가 아니었고, 숙소도 힘들게 찾은 터라 내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들어간 아트 갤러리는 지하와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대저택이었다. 집 전체에 예술작품이 가득했고, 사냥을 좋아하는 지 박제된 여러동물들이 집안 곳곳 걸려있었다. 집 한 채가 지하부터 3층까지 있는 것도 대단한데, 잔디 너머로 보이는 작업실 건물은 지하 터널로 연결된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대저택에 온 것이다. 우리가 머문 곳은 이 집에 손님들이 오면 머무는 '게스트' 방이었는데 게스트 방에도 저마다의 테마가 있었다. 우리 방의 이름은 '명상' 이었는데, 방 안에는 크고 작은 부처님의 불상으로 가득했다. 미술작품을 잘 모르지만 비싸 보이는 그림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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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제브에서 이용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유력재력가의 대저택이었다. 집안 곳곳이 다양한 미술품으로 가득했다.


명상방.jpg 대저택답게 게스트룸도 다섯개가 넘었는데, 각 방마다 테마가 있었다. 우리가 머문 방의 테마는 '명상'.


가고자 했던 샤모니 마을도 아니었고, 우리가 처음 겪었던 트루아(Troyes)의 엘케아주머니처럼 따뜻한 호스트도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가 언제 프랑스에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대저택에서 하룻밤을 지낼까 싶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자 대저택에서의 하룻밤이 즐거워졌다.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과 집안의 소품들로 추정해보건대 이 집은 망해도 3대는 거뜬하게 지낼 수 있는 프랑스 유력 재력가의 집이 분명했다. 아마 그 재력가의 자제 중에 한 명이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프랑스의 재력가에게 초대를 받아 하룻밤을 보낼 일이 없을 테니 이렇게 에어비앤비로라도 간접경험하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경험인가.


여행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중요한 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삶에 대해 여유 있는 태도를 갖는 것, 그게 우리가 세계여행을 떠난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매제브 숙소 사건을 계기로 숙소 찾기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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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방 테라스에서 바라본 정원의 모습. 메제브에도 봄이 찾아왔다. (중앙) 부의 냄새가 물씬 풍겼던 부엌 (오른쪽) 창으로 보이는 집과는 지하터널로 연결된다고 한다.
프랑스 이동루트.jpg <90일, 유럽자동차여행> 다섯번째 도시. 프랑스 메제브(Meg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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