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남편의 비겁한 변명
트럭킹 4일차. (나미비아, 이동거리 000 km)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여행을 떠난 후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서프라이즈로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고민했지만, 막상 아무런 준비도 못 한 상태였다. 더구나 트럭킹을 떠난 후로는 낮에는 그룹투어를 하느라, 밤에는 텐트 안에서 추위와 싸움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터다.
다행히 가이드인 맨슬리로부터 오늘 마트에 들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계획은 마트에 들렸을 때 커다란 양초를 하나 산 뒤, 케이프타운 한인마트에서 샀던 초코파이로 케잌을 만들어 저녁을 먹을 때 투어 멤버들과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거였다. 트럭킹 4일차였고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과도 꽤나 친해진 터라 그들도 흔쾌히 동참해줄 것이었다.
문제는 ‘서프라이즈’였다. 아내와 나는 거의 24시간 붙어있었기 때문에, 아내 몰래 내가 마트에서 무언가를 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계산대에서 들통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큰 쇼핑몰이라고 해도 우리는 각자 따로 돌아다닐 만큼 안전하다고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유를 찾는 척 아무리 마트를 돌아보아도 결국 나는 양초를 찾지 못했고, 아내에게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서프라이즈 생일선물을 위해 양초를 찾고 있다고 말이다. 아내는 생필품 코너에서 양초를 보긴 했지만, 낱개로 팔지 않고 10개 묶음만 보았다며 괜찮다고 했다. 이미 계획도 들통난 마당에 큰 쓸모없는 양초 10개 묶음을 사기에는 짐스러웠고 그사이에 마트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다 흐른 터였다. 나는 결국 아내의 선물로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모든 투어 일정을 마치고 캠핑장에 돌아온 저녁, 이날은 유독 저녁준비가 오래 걸렸다. 9시가 넘어서야 저녁이 준비되었고 모닥불을 따로 피우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투어친구들과 함께 아내에게 생일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하지 못했다. 모두들 늦은 저녁을 먹고는 피곤한 듯 텐트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어떤 선물도 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아내가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피쉬리버캐년(Fish River Canyon)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퀴버트리(Quiver Tree)를 보는 것만큼 특별한 생일은 없을 거라고."
p.s. 그리고 아내는 아프리카여행 후 미국에 가서 생인선물을 고를 거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