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운 May 12. 2017

바람이 불면 떠나는 꿈을 꾼다

어느날 찾아올 우연한 조우의 꿈을...

사람마다, 또 사연마다, 상황마다, 필요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감히 여행을 정의하다 1

뭐니뭐니 해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낯선 이와 느끼는 동질감, 혹은 우정, 사랑의 감정.

여행이라 하면, 선물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뜻하지 않은 만남. 

여행은 우연한 조우를 꿈꾸는 게 아닐까?


덥고 지쳐 여행도 뭐도 귀찮아진 어느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시골 꼬맹이의 새하얀 미소.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서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포기려고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파라다이스 같은 환상적인 풍경과 만났을 때,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언덕을 넘어가는데 눈만 껌벅거리면서 길가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사슴 한마리와 제법 긴 시간동안 미동도 없이 마주하며 보낸 시간, 지워지지 않는 그 눈동자의 인상.

야간 버스에서 옆에 현지인 아저씨가 내 어깨가 베개인양 코까지 골며 자다가 화들짝 일어나서는 미안하다며 건네는 초코바 하나.

산장이나 매점이 없는 줄도 모르고 물통만 들고 오른 산행길에서 쫄쫄 굶고 있는데, 그런 나를 한 참 보던 다른 나라 관광객이 도시락에서 꺼낸 샌드위치를 건넬 때, 샌드위치를 살짝 집어서 내미는 그 손끝.


마치 나만을 위해 오랫동안 지구가 준비해 놓은 듯한 절경을 만날 때,
꼭 절경이 아니라도 갑자기 특별해지는, 특수한 시간과 장소와 우연한 만남들이 바로 여행이지 않을까?


아니면,



감히 여행을 정의하다 2

세계 어딜 가도 힘든 일상을 견디는 장삼이사들을 만나다보면, 마치 내가 나의 힘든 일상을 엿보는 듯한 공감과 동질감을 얻게 되는 만남이 있다.

툭 뜯어서 건넨 바나나 조각을 정신없이 먹는 어린 원숭이의 엄마는 어딜 간 걸까, 같이 걱정을 했던 바로 그 순간.


"사람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구나. 당신들도 참 고단하구나. 산짐승인 너도 어쩌다가 이렇게 나와 만나게 되었냐."


사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게, 바로 내가 위로 받고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쉬러, 좀 내려 놓고 싶어서... 여행에서 휴식하고, 위로 받고, 긍정의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게 나를 비우는 것. 그것도 우연히 조우 덕분은 아닐까? 
그런 나를 만나는 걸지도... 
 


만나기 위한 용기


일상으로부터 떠나기

어쩌다보면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학습을 위해 길을 떠날 수도 있다. 여행=교육도 되니까.

종교인들의 순례나 기업 연수도 이런 경우일테고, 

일상에서 벋어 나야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위해서, 

더 넓은 안목과 인성을 얻을 수양을 위해서,

그게 지식이든, 정신이든, 삶의 태도든, 철학이든 

자리를 박차고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은 다른 내가 되기 위한 것.

그게 자의든 타의든 나를 버릴 때 얻을 수 있는 다른 나를 찾는 것.


근데 우리는 어떤 나와 결별해야 하고, 어떤 나로 더 채워야 할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내가 나를 잘 모른다?

결국은 원대한 모든 계획 이전에,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알기 위해서, 아니 우연히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 여행 아닐까?

우연한 조우는 어쩌면 우연히 나와 덜컹 만나버리는 걸 말하는 걸 지도...

주로 혼자나 소수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으로 떠나서, 나와 만날 빈도를 높이려는 노력. 

그게 여행=교육의 목적 아닐까?


사실 이런 목적이라면, 잠깐 일상만 벗어나도 가능할 수 있다.

단체 여행이라도 집에서 회사로, 학교에서 집으로... 비슷한 어제와 오늘과는 전혀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보내는 거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 일상의 꼬리를 잘라 내는 게 쉽지는 않다.

구체적으로 보면, 바로 언어, 관습, 사회적 관계가 일상의 상당부분이기 때문이다.


늘 사용하는 국어 환경의 언어적 일상

더 지엽적으로는 사투리를 공유하는 우리 고장이라는 일상, 

세대별로 자기들만의 언어습관, 

직장이든 가족이든 공유하고 있는 은어적 일상에서까지 벗어나 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언어에 속박되어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내 모습을 또렷히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는 아침부터 빵이나 과일로만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악수나 목례 대신 키스나 포응, 

빰을 부비는 인사를 하는 관습과 마주하는...

나와 전혀 다른 관습과 만나게 되면, 

또한 나의 관습적 일상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회든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방식이 있기 마련. 

나보다 웃어른들끼리 대화 나눌때, 

그 어른 중 한 분과 내가 대화를 나눌 때, 

동성을 대할 때 혹은 이성을 대할 때, 

친구들 앞에서, 상사나 후배와의 관계에서, 

남편으로서, 국민으로서, 학생 신분에 맞게, 아들 딸 사위 며느리로... 

각자가 속한 사회적 직급이나 역할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모습의 나를 만들어 내야 하고, 

초기에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자기자신이 되어야 하니까, 긴장하고 어색해하다가 막상 숙달이 되면 이게 과연 나인지 나를 연기하는 건지 점점 헷갈리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역할에 대한 연기라는 것조차 인식 못하고...

내가 "나로서" 만나야 할 매일 매일의 관계의 일상은, 

이 사회에서 나에게 규정된 삶을 잠시 떠나보면 그제서야 나와 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나를 분리해 볼 수 있다.


모국어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환경과 뜻은 통하는 듯하지만 전혀 다른 늬앙스로 오해와 이해 사이를 넘나드는 

낯선 언어와의 조우,

나를 둘러싸고 마치 나와 하나인 듯 알았던 관습들만 따로 떼어내 볼 수 있는 전혀 다른 

관습과의 조우,

나라고 느끼고 의식조차 없이 살던 내 모습이 실은 내가 이 사회에 맞춰나간, 이젠 제법 숙달된 내 배역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비연속적인 만남을 연속하게 되는 여행, 

바로 그런 나라고 알던 

나와의 낯선 조우.


이 모든 것들은 우연한 조우라는 여행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이런 우연한 조우는 그냥 행운이고 극소수만 당첨되는 복권은 절대 아니다.  



관찰할 용기,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모든 여행이 이렇진 않겠지만, 떠나려고 준비하시는 분들.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시는 분들이 우연한 조우를 꿈꾸고 우연한 조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연한 조우는 우연을 가장하고 있을 뿐, 우리가 우연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와 용기를 가진다면 정말 놀랍도록 수많은 곳에서, 시시각각 허락된다. 

하지만 그런 나를 대면할 용기가 없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벋어날 수 있는 용기.

작지만 그런 용기를 내어서 "바람타고" 도전했던 모든 경험은 반드시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정말 일상을 벋어나 보겠다는 생각이 벌써 우연을 가장한 만남들을 준비해 준 건지도 모른다.

만남의 성사는 여행사가 제공하는 일정과 서비스에 있지 않다. 

90%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