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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Jun 14. 2017

어느 나라로 여행가?

아나키한 여행

오늘 출근길에 신문에 연재된 글을 하나 읽었다.
나효우(착한여행) 대표가 쓴 글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재를 하는 것 같다.
강원도 인제의 마을 대표를 모시고 치앙마이에 있는 "매깜뽕"이라는 어느 마을에 갔다 온 이야기였다.
그는 풀뿌리나 겨우 캐서 생명을 이어가는 찢어지게 가난한 오지마을이었던 곳이 지금은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유명한 명소로 바뀌게 된 사연을 전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 장가 온 어느 남자가 촌장이 되면서 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마을 회의를 열었고, 이렇게 보잘 것 없는 130여 가구가 모인 마을이 그래도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시골 오지 마을에 뭐가 있겠나. 그저 '산좋고 물좋고 인심좋다'가 전부였을텐데.
그는 이 세가지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관광사업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훼손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바로, 이 세가지를 꼽았고.

이들은 성공했다.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세가지를 지켜낸다.
그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우선 순위를 정하는 회의를 했고(자주), 지금도 정기적으로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맨 먼저 "협동"해서 마을의 길을 닦았다.(자조)
비교적 집이 좀 넓은 주민들은 홈스테이를 시작했고, 수익금의 20%를 마을의 공통 발전 기금으로 갹출했다. 비록 크지 않지만, 그 종자돈으로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중에는 마을복지기금도 있었다. 경조사 등의 부조금도 마을기금을 활용했다.(자립) 
마을이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외지인들이 땅을 사려고 했지만, 그들은 팔지 않았다. 팔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회의와 협동으로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팔지 않아야 이대로 계속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 청년들은 가이드가 되었다. 그들 마을에 찾아오는 분들이 마을의 일상을 접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여행자의 로망이 현지인과 대화하고 사귀는 거라면,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가이드와의 인연만으로도 로망이 실현된다. 마을 청년들은 자기 마을에 들어온 여행자가 마을이나 마을의 일상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왜? 그냥 돈벌이로 여행업을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마을이니까. 이 마을에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바로 이 세가지니까. 그걸 지키는 것이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들은 혹여 이 마을이 훼손되어 다시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예전의 마을로 돌아가면 또 다른 곳에 가서 가이드를 하면 그만인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들은 가이드이면서 레인저 역할을 같이 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도 보잘 것 없던 마을이 어느날 관광 명소가 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통영의 동피랑이 그렇고, 부산의 감천마을이 그렇다. 일이 진행된 순서는 약간씩 다르다. 마을이 가진 자랑거리는 둘 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마을이라는 점이다. 산토리니처럼. 
하지만 그게 이들에게는 값비싼 평지 마을에서의 수탈을 피한 궁여지책이지 자부심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 왔다 가는 외지인들의 눈에는 그게 이 마을의 보석으로 보였을지라도. 
내부에서는 불편함과 피해의식으로 느끼는 점이 외부에서는 큰 자산으로 보였다? 
전체 진행과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불균등한 시선이 당연 있었을 거다. 미루어 짐작하기에,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내부의 힘만으로 진행되진 못했을 것 같다. 그게 착한 마음을 가진 예술가였는지, 마을 활성화를 고민하는 전문가들이었는지, 의욕적으로 마을을 살리고자 하는 공무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모두 외지인이지 않았을까.(비자주)
그들은 마을 주민들의 동의 과정을 거쳤다 손 치더라도 외부의 힘이나 자원을 지원받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다(비자조=외부 지원구조) 
결국 전문가 그룹들이 고민한 아이디어는 이벤트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낙후한 마을 전체를 화려한 물감의 색으로 덮어버리자는 아이디어. 산토리니처럼. 
마을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벽화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으리라. 외부에서 들어와 우리 마을을 새롭게 꾸며주는 그 마음씨에 감동과 고마움도 느꼈을 거다. 실제 마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 건, 어느날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집을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였을란가도 모를 일이다. 평생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를 쥐어 주겠다는 사람들에게 한 집 두 집 팔려 나가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 집들에는 마을에 없던 카페나 식당이 들어섰다. 뒤늦게 마을사람들이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을 만들어서 외부 자본과의 경쟁구도를 만들기도 했을 거고. 
마을에 점점 관광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을 돌며 사진도 찍고 언덕을 오르다가 커피도 사고 식사도 했다. 동피랑에 있는 천사의 날개 벽화에는 주말이면 기념촬영을 하려고 사람들이 긴 줄을 서게 되었다. 줄 서 있는 동안 더운 사람들 손에는 아이스커피가 하나씩 들려있다. 그리고 다 마신 빈 플라스틱 컵이 사진을 찍는데 방해가 되면 아랫집 낮은 담장으로 몰래 던지기도 했으리라.
매년 벽화그리기 대회를 여는 동피랑에서 우승자를 발표하는 축제일 바로 전날, 사단이 났던 기억을 이야기 해주던 마을 사무장이 생각난다.
바로 그 벽화가 있는 아랫집 할아버지는, 무단으로 담장 넘어 투기하는 쓰레기를 치우고 치우다가 그날은 그만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빨간 라커를 들고와서는 집 위에 있는 "천사의 날개" 벽화에 크게 X표를 해 버렸다. 

마을이 유명해질수록 고통받는 주민들이 생겼다. 더러는 돈도 벌었지만, 대부분 외지인들이 그 돈을 챙겨가기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담장 너머로 집안을 넘겨보는 외부의 시선 속에 일상은 벌거벗겨지는 나날이 지속되는데다가, 얼마전까지 형님 동생하던 옆집에서 관광특수를 누리자, 상대적 박탈감까지 들었다. 마을에 사람이 찾아오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차라리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진 감독이 메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만든 수작, "웰컴투동막골"에서 가진 게 없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마을 사람들에 깊은 인상을 받은 북한 군인이 촌장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마을이 촌장님의 말씀에 잘 따르냐고... 영도력의 비결이 뭐냐고.
그때 말 수 적고 인자한 외모의 촌장은 한 마디 한다. 


뭘 맥이야...


그래, 주린 채로 무슨 행복인가?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것. 이게 바로 자립아닐까?
행복은 개인적 자립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립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상태, 이게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나 혼자만 배터지게 먹고 사는 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윤리 의식이 높은 지주가 하층민을 대하는 시혜적인 자긍심이 아니다. 주위에 굶주리는 사람이 득시글한 곳에서 홀로 매끼니 안심스테이크를 먹는 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조치로 그가 속한 공동체가 최소한의 먹는 수준은 유지해 줘야만 한다는 거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아름다운 선행을 일컷는 말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필요 조건의 충족 조치이다.

오늘 나대표의 글에 추가하자면, 공동체의 '자주'적 문제 인식과 '자조'적 해결 모색이 전제가 된 '자립'이 행복의 근원이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행복이다. 남들의 불행을 딛고 홀로 행복해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남들과 더불어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면, 행복해지려는 집단 의지를 모으고 행복을 향해 모색하고 도모하면 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하는 과정이 재미를 준다. 이게 행복 아닌가? 그래서 행복은 노력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자체가 행복이다.
보통 공동체의 집단적인 행복 추구가 무슨 경기처럼 승, 패로 확연히 나뉘지는 않을테니, 결과의 만족도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과정의 행복은 모두의 자긍심으로 남는다. 집단이 도모하면 사람이든, 자긍심이든 경험이든 자산으로 환원 축적되는 거니까.

외부의 지원이 없어야만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공동체 내부의 의지와 만나지 못하는 지원은 자칫 공동체의 불균형적 자원 분배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무턱대고 외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게 좋은 방법론은 아니라는 뜻이다. 비록 애초에 집단의지로 출발하지 않은 지원으로 뜻하지 않은 불균형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공동체 구성원의 집단 논의 구조가 이미 탄탄하다면 문제는 해결되고 지원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텐데, 우리가 아는 많은 마을들의 사례는 종국에 "자립"으로 가지 못하거나, 행복과는 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더라. 이유는 자주, 자조, 자립의 단계를 무시했다는데 있지는 않을까?

결과나 행복은 결국 내부의 동력요인에 가장 크게 기대게 된다... 고 믿는다. 이렇게 믿는 나를 아나키하다고들 한다.
그렇다. 난 아나키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 다들 아나키즘을 '반국가주의 테러리즘' 정도로 단순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아나키즘은 모든 정치사상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목적과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 

모든 정치 사상의 지향은 바로 '행복하자'이지 않나? 
다만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다소 차이가 있고,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한 방법론이 조금 독특할 뿐이다. 

독특하다기 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우면 기득권에 위협을 받는 주류 여론 세력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독특하거나 지나치게 몽상적이라는 혐의와 오해를 받고 있는 게다.
거칠게 말하면, 아나키즘은 자주, 자조를 통한 자립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국가주의의 폭력으로 공동체의 행복이 파괴되는 상황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국가=반행복으로 규정하는 아나키스트들이 폭력을 폭력으로 맞써 와서 아나키스트를 과격한 이상주의자나 현실 부적응자로 폄훼해 왔던 거지만.

나대표의 글만으로는 치앙마이의 작은 마을에 국가를 포함한 외부의 지원이 얼마나 존재했고,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키쳤는지 알 수 없다. 자주적인 공동체 내부의 결정과 의지의 불씨에 지원이라는 뗄감을 얹어주면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지만,  겨우 빈약한 불씨가 막 불안하게 피어오르려 하는데 난데없는 빠방한 지원이 그 위를 덮어버리면 불씨는 숨이 막혀 꺼져 버린다. 준비안된 공동체에 주어지는 시혜적 지원은 그 마을을 죽이는 극약처방이다. 매깜뽕 마을에 지원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성공을 했다면, 그만큼 내부 동력이 이미 단단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동막골이나 매깜뽕 마을은 내부의 의지를 모으는 과정, 그 의지를 집중하고 생산된 결과를 내부에 고스란히 축적할 수 있도록 각별한 리더십이 존재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부싯돌이든 라이터든 불씨를 위해 부딪히면서 갈리면서 불씨를 만드는 헌신적인 리더는 또 하나의 필수 요소이다. 
아나키는 매깜퐁 촌장은 동막골은 구성원을 비자주적 피시혜적 상수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목적이며 주체며, 가장 강력한 변수다. 그들이 외부가 아닌 스스로를 바라보고 서로에 기대면서 행복을 도모할 때, 나는 그들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고 싶은 마을은 바로 이런 의미의 아나키스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들이 스스로 아나키스트로 인지하고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공동의 의지로 행복을 만들어 내고 가꾸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여행을 어느 '국가'로 가는 건 내게 무의미하다. 그저 권력의 이합집산으로 탄생한 근대국가의 경계를 넘는다는 건 크게 의미없다. 포스팅 정리를 위한 대분류에나 필요한 정도라면 20세기 치열했던 인간사를 너무 폄훼하는 건가?

그래도 치앙마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동막골이 강원도 어디 쯤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 공동체와의 만남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또 여행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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