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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일주12_야쿠시마 자유여행의 맛

2015.8.13

by 조운

여행기간 : 2015.8.9~8.17
작성일 : 2017.2.9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렌터카+민박+캠핑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날


자, 집 나와서 오늘 처음으로 잠자리를 해결하지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뭐 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다. 그냥 가다가 아무데나 땡기는 곳에 서서 구경하는 날.
오늘이 그날이다.

오전에 산책하고 파숀관에서 뒹굴거렸고,
점심 먹고는 시카와 사루 만나러와서 소기의 목적 달성했고,
이젠 뭐 하지?

좀 덥긴 하지만 하늘도 너무 좋고... 그냥 어디 차 세우고 잠을 청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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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스기랜드를 갔다 다시 안보항으로 나오는 길에 만난 곳이다. 예전에 여기서 우동을 먹었던 기억이... 그때 TV에서 최지우사마와 욘사마가 나오는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있던 주인 아주머니는... 없었다.
갤러리형 찻집으로 바껴 있었다.
그러고보니 10년 전엔 볼 수 없었던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주로 아기자기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공예품이나 감각적인 티셔츠를 파는 곳들이었고 주인들은 전부 예술가 기질 다분해 보이는 레게 혹은 보헤미안 족들로 보였다. 그리고 매우 젊었다. 이 찻집 맞은편에 있던 티셔츠 가게는 이쁜 티셔츠가 많았고 전부 주인이 디자인한 거라고 했다. 가격이 착하지 않은 게 흠이었지만 실컷 구경했다.
애들 사이즈가 있었다면 한 벌 정도 구매했을텐데... 모두 어른들을 위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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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오다 다시 차를 세웠다.
저 하늘 어떡할꺼야...
누구네 집인지도 모르는 저 언덕 위의 집에서 내려다보면 안보강과 항구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아쉽게 사진은 분실했지만 어렴풋 뇌리엔 남아 있다.
마눌님은 그런 내 모습을 담았는데, 구도도 나쁘지 않고 색감 좋고... 고마워^^



센피로 폭포 (센피로노타키)


예전엔 밤늦게 히다카상이 갑자기 차에 타라고 해서 영문도 모르고 왔던 곳이다. 그때 파숀호의 강한 루프탑 랜턴을 계곡으로 비추며 만들어 낸 포말의 빛 기둥... 본 적도 없는 오로라가 그런 느낌이 아닐까...

오늘은 대낮에 왔다. 마침 대형 버스에서 한 가득 사람들이 내렸는데, 중국 관광객이었다. 이제 그들이 가지 않는 곳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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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많이 찍었는데, 이런 데 오면 의례히 하는 손바닥 위에 폭포 올려놓고 찍기 같은 거 말이다. 다 어디 갔냐고 ㅜㅜ



누가 찍어도 작품 사진이었을 "오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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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피로 폭로는 해안 순환로에서 내륙으로 조금 올라가야 했는데, 내려오는 길이 이런 장관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마눌님이 몇 컷 핸드폰으로 담는 걸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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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은 애들이 찍지 않았을까?^^

순환로를 따라 나가타이나카해변까지 가보자고 했다. 야쿠시마의 해변 어디라도 붉은바다거북의 산란터이긴 하지만, 여기가 규모면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부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고...
그런데 서쪽으로 계속 달리다보니 길이 끊겨 있었다. 도로는 있었지만, 막아 두었다. 그 도로까지 세계자연유산으로 포함되면서 폐쇄한 걸로 보였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17-02-10_12.49.46.png?type=w773 빨간선이 세계자연유산등록지구라서 서쪽 순환도로와 맞물리는 곳은 통행 금지다


하는 수 없지만 뭐 어쩌겠나^^. 그래도 야쿠시마에 대한 중요한 정보 하나는 알게 되었잖은가. 순환도로가 완전히 순환은 아니라는...

그래서 그냥 돌아섰냐고? 근방에 거대한 오코 폭포가 있으니 거길 갔다.
붉은바다거북은 쿠리오라는 해변에서 만나는 걸로 정했다. 어차피 쿠리오 해변에 있는 청소년 캠프장이 오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오코 폭포"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보인다. 근방에 차를 세우고 그냥 도로쪽에서 봤다.
센피로처럼 머~얼리 있는 폭포가 아니라서 그런지 실제 규모가 더 커서 그런지, 웅장해 보인다. 무서울 정도로 ^^
사진은 역시 없다. 이런 날씨에 내려가서 로우샷 찍었더라면 정말 죽였을 텐데... 라며 당시는 위에서만 보고 돌아선 걸 아쉬워했지만, 사진이 홀라당 없어진 마당에야 뭐... 아쉬움이 덜해서 좋구나야^^ ...쩝



쿠리오 비치


밤 늦게 캠프장에 도착하고나면 혹시 예약이 안될까봐 지나는 길에 미리 사이트를 빌리자는 맘으로 쿠리오 청소년캠프장에 들렀다.
표지판을 따라 도로 옆 좁은 입구로 들어서자, 해안가 절벽 위에 광활한 잔디밭이 펼쳐진 곳이 있고, 중앙에 있는 건물(예전에 학교 교사가 아니었을까 싶은)에서 접수를 받았다. 우리는 사이트+샤워권을 구매했다. 오후 10시 이후로는 샤워실을 잠그니 그 전에 꼭 하라고 당부한다.
쿠리오 캠프장은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절벽 위에 넓게 자리하고 있어서, 한쪽에는 완전히 절벽으로 된 폭풍의 언덕 느낌 잔디밭이 쫙 깔려 있고, 반대쪽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해안도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은 곳에서 우린 잠시 산책을 좀 했는데, 내려다 보이는 물빛이 너무 이뻤다. 에메랄드 빛깔.
여긴 제법 대륙에서 멀리 왔으니까 아마도 이런 물빛이 나오나 싶었다. 나중에 들어가서 보니 바닥이 모래가 아니고 산호사였다. 이런 조건들이 받쳐줘야 에메랄드 물빛이 나와주는 거거든^^
그러니 어쩌겠나? 차로 다시 갔지. 왜냐고? 수경하고 수영복, 오리발 챙기러...
애들 옷도 전부 다 갈아 입히고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애들 놀기에 적당해 보이는 깊이의 바다로 들어갔다.


%EC%BF%A0%EB%A6%AC%EC%98%A4%ED%95%B4%EB%B3%8001.png?type=w773 마치 모아나에 나오는 파도 막아주는 바위들 같은 게 그대로 있다


외해는 제법 파도가 많이 쳤는데, 신기하게도 딱 놀기 좋은 크기의 면적 둘레를 검은색 용암 바위들이 둘어치고 있어, 파도가 안쪽으로 오다가 한 풀 죽어서 들어왔다.
애들도 어릴 때부터 수영을 가르쳐서 물과의 친화력은 좋은 편, 발 정도 닿지 않아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내가 오리발을 신고 유사시 대비까지 했으니 뭐...
마눌님은 끝끝내 들어오지 않으시겠다고 하고^^ 마눌님도 수영장에서는 물갠데, 발이 닿지 않으면 수영을 못하는... 면허로 치면 장롱 면허 되시겠다.
야쿠시마 두 번 왔는데 수영은 한 번도 못한 우리 불쌍한 마눌... 물 참 따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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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놀면서 물 밑에서 작고 이쁜 산호 조각들을 몇 개 주웠다. 막내가 그걸 배낭에 넣은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집에서 짐을 풀다가 발견했다는^^. (지금 그 애들은 어항에 들어가 있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문은 없지만 미로처럼 벽을 쌓아서 밖에서 전혀 볼 수 없는 남녀 간이 탈이실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 말고도 해변마다 그런 시설들이 많이 보였다). 거기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다 된다는... 대마도에서도 그랬는데, 일본은 이런 편의시설은 공공재라고 여기는 풍토인가 보다. 사실 산장도 누구나 알아서 사용하고 알아서 뒷정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거니...
일본 사회가 어쩔 땐 너무 질서의식이 강해서, 전체주의적 사회분위기 마저 느껴져서 답답할 때도 있는데, 공공 자산에 대하는 태도는 본 받을 점이 있다고 본다.

아까 말한 해안도로와 마주보고 있다는 언덕에서 보면 해안도로 쪽에도 해변이 보이는데, 거기가 오늘 밤 출격해서 붉은바다거북을 볼 곳이다. 지도상으로는 모두 쿠리오 해변으로 나와있다.
물놀이는 왜 시간 가는 줄 모를까^^
마눌님이 배고프다고 빨리 나오란다. 애들도 배가 고파졌다 하니... 자, 그럼 또 뭘 먹어야 하나?



우연히 "무기오 마을" 축제에 참가


난감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도 있고, 물놀이까지 했으니 애들도 꽤 출출해 하는데, 길가에 있는 레스토랑은 들르는 곳 마다 만원 아니면, 예약이 있어서 곤란하다거나 곧 폐점 시간이란다. 큰일났다. 이러다가 편의점에서 라면 사서 끓여 먹을 수도 있겠다는... 근데 이 촌 동네에서 편의점이라고 24시간 하는 곳도 없던데...

쿠리오가 너무 외진 곳이라 대처로 나가자는 심산으로 안보항 쪽으로 방향을 잡고 동으로 동으로 차를 몰면서 식당 비스무리한 것만 보여도 내려서 묻고, 또 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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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캄캄해져 가는 시골길을 달리는데 느닷없이 사방 팔방에 저렇게 불을 밝히고, 차들이 길가에 마구 대어진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길에서 차선에 걸치도록 인도로 차를 밀어 넣은 모습이라... 일본에서 좀체 경험하기 힘든 풍경이라 봐야지.
순간 무슨 마쯔리구나 짐작했다.


마쯔리면 꼬치구이나 오코노미야끼 정도는 팔겠지.


진짜로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축제 마당으로 들어갔다.
길에서 사진 상의 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마을 회관이 있고, 그 앞마당에 간단하게 무대도 설치되어 있다. 마을회관 간판에는 "무기오 마을회관"이라 적혀 있었다.

전체 참여자가 50~70명 정도.
대부분은 먹거리를 파는 부스에서 일하거나 무대 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애들과 노인들 정도가 돗자리를 깔고 무대 앞에 앉아 가지고 온 음식이나 여기서 파는 음식을 놓고 먹으면서 느슨하게 진행되고 있는 무대 위의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었다.

안그래도 우리가 도착하자, 히다카 상이 며칠만 일찍 왔더라면, 야쿠시마에서 가장 큰 축제를 볼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는데, 무기오 마을축제는 그 축제의 후속으로 딱 무기오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축제란다.
어른들은 벌써 불콰하게 돌아다니시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는 남의 잔치집에 갑자기 뛰어 들어온 꼴이되어서 참... 사람들도 모두 서로 잘 아는 사이일텐데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신기한 듯 쳐다보기만 했다.

때마침 썰렁하던 무대에 중년의 남자분이 마이크를 잡고 오르더니 뭔가를 시작하려고 했다.


우동 빨리 먹기


남자 어른들 4명 정도가 무대에 오르자 무대는 꽉 찼다. 그만큼 작은 무대였다. 그리고 각자 앉은 자리 앞에 우동 사발이 놓인 작은 상이 하나씩 놓였다. 호각과 함께 응원소리와 웃음소리가 엉킨, 순식간에 이 곳은 완전히 정신없는 장소로 바껴 버렸다.
뒤를 이어, 여성 대결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안내가 들려서 마눌님을 쳐다 봤더니 고개를 젖는다.
여성 대결은 볼만했다. 4명의 참여자 중에서 유카타인지 기노모인지를 입은 꽤 젊은 두 사람이 있었는데, 둘 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고 웃음소리나 동작이 누가봐도 술 몇잔 한 듯한... 나머지 두 분 아주머니들도 목청 좋기는 마찬가지. 근데 우동 대신 맥주로 급 변경. 참여자들이 더 좋다고 반응했던 것 같기도 하고, 우동 대신 맥주로 하자고 주장한 게 그 여성들 같기도 하고... 여튼,
기존에 다소곳하고 상냥한 일본의 여인들만 보고 그런 이미지만으로만 기억하던 내게 이 마을 아가씨, 아줌마들은 살짝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꼬마들의 우동먹기 대결까지 다 지켜보고 그 우동을 공금하고 있던 천막쪽으로 가서 우동을 시켰다. 가격이 터무니 없이 쌌다^^. 꼬치구이며 오꼬노미야끼 같은 것도 시켜서는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외지인인데 일본인도 아닌 우리들을 유심히 보던 아주머니가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간코쿠진데쓰"
그때 예의 맥주 먹기 대회에 참여했던 젊은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물론 그 말 외엔 다 일어였지만, 그는 쉴 틈없이 말을 했고 이어 친구(아까 같이 맥주 먹기에 참여했던)도 데려왔다. 나중에 온 이는 호주로 유학갔다가 오봉절 집에서 휴가를 보내러 왔단다. 술은 아까 그 친구보다 더 많이 마신 듯했다. 옷만 기모노지 코도 뚫었고 물들인 머리 한쪽은 길렀고 한쪽은 스포츠형으로 바짝 밀어버려서 약간은... 음... 무서운 느낌을 주는... ㅎㅎㅎ 활달한 사람?... 하지만 그의 일어, 영어 모두 술에 취한 발음이라 더 알아 듣긴 어려웠다.

그녀는 많은 말을 했다. 마눌님은 뒤에서 계속 내 옷을 잡아당겼지만 나도 빠져나올 방법이 묘연했다는... 고맙게도 우리 애들이 빙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빙수와 사이다(병속에 구슬이 들어있는 특이한 ㅇ모양인데 이번 여행 내내 많이도 사 먹었던)를 사 주면서 대화를 일단락 할 수 있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고 하자, 나중에 마눌님은 연락처를 주고 받을까봐 노심초사 했단다^^

이런 시골 구석에 이런 신여성들이 주도하는 마을 축제에 참여하고, 물론 주린 배도 채우고...
원래 기대감이 낮으면 뭐든 만족도가 높은 법,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하루라서 오늘 하루 정말 알차게 보냈던 것 같다.
그 여성분들이 무서워서라도^^ 무기오 마을의 축제를 끝까지 볼 수는 없었다. 축제라는 게 자발적으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경험을 하면서 경직된 마음도 풀고 잃었던 야성도 찾고 하는 거겠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한 것들은 축제 모양 포장을 한 상품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기오 축제는 이제껏 본 축제 중에서 축제의 원형질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었던 것 같다.

그 드세던 언니들(?)이 평소에도 그런 건지, 오늘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최소한 오늘 하루는 누구라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좀 마시고 해도 좋은 날. 그걸 서로 북돋워주는 날이라는 전제가 깔린 마을 사람이 일시에 무장해제하는 날을 지키는 좋은 풍습같았다. 부러웠고 잠시라도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야쿠시마의 자연과 함께 무기오의 마을 축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참고로 무기오마을은 센피로폭포에서 다시 순환도로 쪽으로 나와서 안보항으로 꺾자마자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일정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내일이면 야쿠시마와 이별을 해야하는데, 아직 하기로 한 것 중에서 못 한 게 몇 개 남아있고 밤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배만 채우고 떠나자는 애초 계획과 달리 축제에 너무 오래 있어서 늦어버린 건 아닌지...
다시 쿠리오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예전 기억을 더듬어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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