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3
여행기간 : 2015.8.9~8.17
작성일 : 2017.2.10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렌터카+민박+캠핑
유도마리 유황온천
야쿠시마에 왔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기필코, 꼭 가야만 하는 곳.
바로 유도마리 온천.
특히 우리 부부는 참 애틋한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때 우리가 들어갔던 탕은 길에서 제일 멀리까지 들어가서 바다와 닿은 곳이었다.
역시나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차를 세워두고 입구로 걸어들어간다. 애들은 약간 긴장했다. 엄마 아빠도 불빛도 없는 곳, 파도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자꾸 들어가자니 말이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인기척이 들렸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탕에서 할아버지 한 분의 적나라한 엉덩이를 우리 식구 모두 봐야만 했다. 그 길말고는 없으니 뭐... 그나마 어려풋한 별빛 아래에서라...
우리가 찾아간 탕은 다행히 비어있었다. 예전에 맡았던 그 유황 향도 그대로 났다.
물 속은 그때만큼 뜨겁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따근했다.
말 그대로의 노천탕. 심지어 여기선 탕에 앉아 손을 뻗으면 차가운 바닷물을 만질 수도 있다.
좀 민망하긴 하지만 모두 다 벗고 있는 가족 사진을 하나 남겼다.^^
독사진을 찍어달라는 막내.
사진을 보면서 벌써 살짝 아련해지려 한다. 조금만 지나면 막내의 저 가냘픈 몸매가 그리워지겠지... 품안의 자식이 얼마나 찰라였는지를 말하던 어른들이 느끼던 아련함이 이런 거였구나 싶다.
붉은바다거북 새끼의 첫 입수 응원기
온 몸이 미끄덩^^
기분 좋은 나름함이 밀려왔지만, 딱 하나 오늘 반드시 하기로 약속한 걸 하러 가는 중이다.
캠핑장 조금 못 가서 캠핑장 언덕에서 바다를 끼고 마주보던 순환도로 끝의 해변으로 갔다. 일본은 해수욕장 앞 주차장이 있고 지붕이 있는 오픈형 방갈로 같은 게 꼭 있다. 아주 크다.
캄캄한 쿠리오 해수욕장에선 마을 주민인지, 레인저인지 모르겠지만 연세 지긋하신 아저씨 한 분이 불을 켜지 마시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그가 서 있는 곳에 간이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엔 플라스틱 다라이(?)가...
오늘 부화해서 모래 밖으로 나온 놈들이라 했다.
5월에 왔을 때는 어미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8월인 지금은 그 알이 부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니...
4~10월까지 거북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어미가 산란하는 모습 못지않게 부화한 새끼 거북이 바다로 가는 모습은 감동 덩어리다.
한참을 저렇게 주물럭 거렸다. 오늘 처음 바깥 공기를 맡은 녀석의 몸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단하지 않았고, 쉽게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기때문인지 부리만 단단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냥 인형이라 생각될 정도로 너무 귀여운 이 녀석이 나중에 1m 이상 성장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그렇게 많은 개체 중에 극히 일부만 그때까지 살아 남겠지만...
레인저들이 이 맘때면 매일 초저녁에 바닷가로 나와서 부화하고 막 모래층을 뚫고 올라온 꼬맹이들을 이렇게 한 군데 모아둔다고 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에 깔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고...
우리가 저렇게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바닷가 쪽에서 굵직한 아저씨 한 분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또 한마리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우리 네 식구도 급하게 소리가 난 쪽으로 갔다.
그리고 생생하게 동영상으로 기록을 했다. 신혼여행때도 거북이 산란하는 장면을 찍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도 이번 가족여행의 촬영 동영상은 어떻게 다 가지고 있더라는... 사진만 홀라당 날리고^^
좀 길긴 하다. 7분. 하지만 다시 봐도 감동이다.
저기 모인, 사는 곳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저 사람들은 새끼 거북이 입수하고 난 뒤로도 한참을 아쉬워서 바로 떠나지 못했다.
이번 여행 첫 캠핑
너무 늦은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너무 절벽쪽에 붙지만 않게 텐트를 설치했다.
여긴 오토캠핑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차를 근방까지 할 수 있는데 텐트들은 전부 동계용 알파인이 대세였다.
워낙에 일본인들이 미니멀한 걸 좋아해서 일 것 같기도 하고, 정서나 문화가 다르니까.
우리나라는 보통 이런데 어마무시한 별장같은 텐트들이 등장하거늘... 오히려 내 텐트가 가장 큰 축에 속했다는...
텐트를 다 치고 나자 라면을 먹자고 조른다. 비상식량이라서 원래 집에 갈때까지 그대로 들고 있어야 한다고 아무리 얘길해도...^^ 좋다. 오늘은 뭐 아무것도 안 정한 날 아닌가.
우리에게 버너는 있지만 가스는 없다. 살 생각도 않고 있었지만, 우드스토브가 있으니 뭐...
중앙에 있는 취사실 앞에는 아예 삼나무가 가득 패어진 채 쌓여있다. 우리도 취사실에서 불을 피워야하나 생각하며 둘러보니 대부분 텐트 앞에서 불을 피우고들 있다. 원칙은 어떤지 몰라도 다행이라 싶어 우리도 미리 잔디 위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불을 피워 물을 끓였다. (이때만 해도 아직 스토브 아래에 깔 방염시트 구매 전이라...)
라면을 먹는 동안 우리 애들을 보았다.
애들은 오늘 하루 겪은, 말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경험들이 채 소화가 다 되지 않는 듯 상기된 얼굴로 방글거렸다.
히다카 아저씨와 열대과일도 따보고, 토토로 우산 앞에서 흉내도 내보고
이곳에 사는 사슴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그 "가만이"와 친구도 되었고,
시골 아저씨, 아줌마와 형아들이 밤에 노래부르고 춤추고 노는 이상한 동네도 들러보고
새끼 바다 거북과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까지 가는 먼 여정에 동참하고 응원하고 약간의 도움까지 주고...
어른인 나도 이리 벅찬데, 꼬맹이들이 흥분한 모습에서 참 오길 잘했다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마눌님 얼굴이 벌건 것도 저 스토브의 불빛 때문만은 아니리라.
야쿠시마의 마지막 밤은 행복한 노곤함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