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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일주19_사가현, 카시이신사에서 마지막밤

2015.8.16

by 조운

여행기간 : 2015.8.9~8.17
작성일 : 2017.3.13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렌터카+민박+캠핑







사가에 뭐 볼 거 있다고 오시는지...


유카상과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아직 좋지는 않았다. 몸살이 다 낫지 않은 게다. 우리들이 때를 써서 가겠다고 하니 오지 마라고 할 수 없는 듯^^. 미안했지만, 또 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사가에는 정말 볼 게 없다고 하셨고 정 오려면 사가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열기구축제" 기간에 맞춰서 오면 잔디밭 구릉위에서 캠핑도 할 수 있다고 늘 그렇게 말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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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럴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유카상이 있지 않은가. 반가운 사람이 있는 곳, 특히 그 사람의 삶이 있는 곳은 가장 가고 싶은 곳일 수 밖에.

10년 전 유카상과 유키코상을 야쿠시마 시라타니운수계곡 쪽 산행에서 만난 인연으로 지금까지 여러번 서로의 나라에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몇 년 전 출장으로 후쿠오카에 들렀다가 유카상 부부를 후쿠오카로 오시라고 해서 만났을 때, 그나마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한 유카상과는 한국어로, 남편분과는 영어로 대화를 했었다. 그때가 노통이 죽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내가 노통 그림이 있는 부채를 들고 다녔는데, 자연스레 정치 외교 분야로 화제가 넘어갔다.
남자들은 만나면 꼭 그런 얘기들로 넘어가니라...^^
그때 남편분과 깊이있는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늬앙스에서 일본 우익적 시각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자칫 대화가 설전으로 번지려는데 유카상이 화제를 돌렸었나, 뭐 그랬던 것 같다. 유카상한테서 남편분이 신사에서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기도 했고, 모든 신사가 "야스쿠니"같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전통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경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보다 더 보수적 색채가 강했던 인상...
그 이후 부부의 경주여행에 가이드겸 차량기사를 해 드린 적도 있고, 유키코상의 남편이 소속된 재즈밴드가 공연차 건너왔을 때 극장에서 오랜만에 유키코 상과도 재회한 적도 있고, 따로 유카상이 두 번 정도 놀러와서 우리 부모님 집에서 한국 전통 음식을 대접한 적도 있고...
그렇게 인연이 지속되어 왔지만 그때 이후 유카상의 남편분과 다시 정치, 외교적 쟁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본인도 그랬을지 모르고...



카시이 진자(香椎神社)


유카상이 찍어준 주소를 네비에 넣고 몇 시간을 달렸다.
유카상의 남편분은 신사를 관리하는 일을 하신다고 들었고, 우리에게 보내준 주소는 바로 그 신사의 위치였다.
후쿠오카 시내 외곽을 지나 사가에 진입했을 때는 거의 해질 무렵이었다. 네비는 사가의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라더니 한적한 논두렁도 보이는 시가지로 안내했다. 잠시 후 안내를 종료한다는 곳은 정확하게 신사 앞이었다. 차 소리를 듣고 부부가 집 밖으로 나와서 우릴 맞이해 주었다.

신사는 그 앞을 지나는 도랑을 건너는 아치형의 작은 돌다리 너머에 있었고, 대각선으로 보이는 관리사무소 뒤에 그들의 집이 있었다.
신사 관리사무소는 최근에 신축을 했다고 하고, 우리가 묵을 2층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네식구를 위한 침구가 정갈하게 깔려있었다.


아, 일본인들 집에서 묵겠다고 하는 게 큰 민폐일 수 있겠군!


뒤늦게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두 부부를 그렇게 우리집으로 모시겠다고 해도 호텔을 잡았다고 손사레하던 게 생각났다. 이제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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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땀냄새 흥건한 옷만 갈아입고 나오니 남편분이 신사 안내를 해 주시겠단다.
꼬맹이들은 신사 입구 다리 아래 커다란 개구리들이 최대의 관심사였지만 말이다.

보통 일본인들도 함부러 들어갈 수 없는 신사의 본당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철없는 우리 둘째 징처럼 생긴 제례기를 보자마자 옆에 채를 집어들어서는 친다. 지도 갑자기 그렇게 큰 소리가 나서 좀 놀랐는지 힐끔 날 쳐다보고 나도 눈빛으로 주의를 주는데, 남편분은 "다이죠부~"란다.
그리고 반 정도 알아듣을 영어로 띄엄띄엄 하는 설명을 좀 들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이 신사는 천년 고찰이란다. 사가에서는 몇 번째로 유명한 신사이기도 하단다.
어떻게하다가 신사의 관리자가 되었는지도 물었으나 대답을 반은 영어, 반은 일어로 했는데, 둘 다 못알아들었다는...^^

그때는 그냥 오래된 신사의 관리자고 몇 안되는 일본인 친구가 참 보기드문 직종의 종사자군 하는 생각만 했는데, 돌아와서 이 신사가 모시는 "신"에 대해 알아보고는 좀 놀라웠다.
그 신은 "진구황후"
일본서기에 여장부로 그려진다. 기원전 200년 경부터 천황이 궐석인 수십년간 일본을 통치한 섭정 지도자란다. 중국은 이때 초한지의 시대다. 진의 폭정에 맞썬 전국의 의용군이 초패왕 항우를 정점으로 진 왕도 타도를 내걸던 시기. 유방은 아직 항우의 말단 군간부 정도였던...
우리나라는 박혁거세가 신라 건국 이전으로 부여가 건국하고 위만 조선이 세워진 때라 한다.

이 진구 황후는 후에 천황에 오를 태자를 잉태하고도 삼한으로 출병해서 이사금으로 하여금 항복 선언과 공물 조공의 약속을 받았다는 "삼한 정벌설"의 주인공이다. 전쟁 중 출산을 막기위해 전장에서 배에 돌을 대기도 했다고 위키백과사전은 알려주는군.
일본 신화(일본인들 생각은 역사이겠지만)에 등장하는 대단한 스토리의 주인공 중 여성이 이렇게 많다니... 일본에 몇 번 왔다고 벌써 대마도의 와타즈미 신사에 이어 이곳도 모시는 신이 여성이다.
한 명은 임나일본부설, 또 한 명은 삼한정벌설.
대륙으로의 진출이 섬나라 일본인들이 가진 욕망의 원형질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원형질이 형태를 달리해서 아베같은 현 일본 기득권 세력의 자기 확장 욕구로 끝없이 재생산되는 거고...

유카상의 남편분은 참 젠틀하고 인상좋은 분이지만, 신념 체계 속에 자리잡은 그 원형질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닐까 여겨진다. 간만에 만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다시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서로 조심하는 어색한 상황을 이어가야지 뭐^^




일본 제일의 명품, 사가 소고기(사가규우) 맛


유카상이 우리 모두를 불렀다. 시어머니 상도 있었고, 장례 기간동안 집안 손님들이 많이 왔다가서 집밥 하기 싫다고 밖에서 사 먹자신다^^.
메뉴를 골라라는데 몇 가지 사가의 특산물을 소개하는데 그 중 '사가규우'가 들리자 나머지는 더 듣지도 않았고 그 앞에 것도 다 까먹어 버렸다^^. 계산은 당연히 우리가 하려 생각했기 때문에 소고기로 낙찰.
사가가 소고기로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거든...
우리가 차를 몰고 오는 동안에도 우린 길가 초원에서 풀 뜯는 소를 보면서 저게 사가규우~ 하며 이야기 나눴을 정도니...
남편분이 어딘가 전화로 예약을 했고, 우린 어스름한 사가의 어느 외곽으로 나섰다.

아주 큰 식당이었다. 우리로 따지자면 도시 외곽 국도 변에서 자주 볼 수 있을 "OO 가든" 느낌?^^
맛?
ㅎㅎㅎ 소고기야 늘 뭐...
다른 소고기와 비교 가능할 정도의 절대 미감 같은 게 없는 입들이지만, 죽여주는 맛이지 뭐...
소식하는 일본인들이지만, 유카상은 나의 식성을 잘 알기에 과하게 많이 시켜주었다. 난 살짝 가격에 대한 걱정은 됐지만, 뭐 우리 예산에서 세이브한 것도 많고...(이런 식으로 생각해서 그 동안 좀 흥청 거린 면도 없잖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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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계산하려고 보니, 남편분이 벌써 계산을 했다는... 화장실 가시는 척 하면서 말이다.
이런...
완전히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몸 아프다는 사람 집에 꾸역꾸역 들이민 민폐를 만회할 요량이었는데... 하루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었고 해서 좀 과하게 소고기를 대접해 드리려던 우리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돌아와선 유카상이 일본에 와서 쇼핑도 좀 하라고 사가에 있는 "돈키호테"인가 하는 샵을 추천해 줬다. 한국인들 오면 많이들 찾는다고... 현지인이 추천하는 기념품 가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1000원 샵 같은 곳이었다^^.
좀 둘러보다가 애들 먹을 것과 유카상 드릴 과자 조금과 복숭아맛이 강한 칵테일 소주(대마도에서 이걸 사서 갔더니 마눌님이 좋아했었다)를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바로 호로요이.


attachImage_824927268.jpeg?type=w773 출처 http://m.blog.naver.com/mcm2922/220669242965


애들은 지들끼리 놀고, 어른들끼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밤 늦은 지 모르고 있었다. 야참으로 해주는 유카상의 요리도 좋았고.
내일 하카다 항 옆 렌트카 회사에 들렀다가 가도 배편 시간 10시까지는 충분히 여유있을 거라 생각했다. 유카상은 그렇지 않단다. 밤부터 태풍이 올라와서 도로가 많이 막힐 거라는... 그리고 오봉절이 끝나는 월요일이라서 후쿠오카로 들어가는 출근 차량들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걱정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는 유카상의 조언을 듣고 인사를 나눴다.
건물 짓고 아직 그 누구도 자 본 적도 없는 듯한 그 건물에서 우리 식구들이 아늑하게 몸을 누였다. 마눌님은 여러 면에서 고루 민폐를 키친 게 많이 걸려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면 뭔가 감사의 선물이라도 보내드려야겠다 다짐했건만 감사하다는 메일 한통 쓰고는 아직 아무것도 보내드리지 않았다.
그해, 11월 열리는 사가 열기구축제에 가는 걸 기정 사실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때 직접 뵙고 선물을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가 못 가면서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지금이라도 유카상 좋아하는 삼계탕 즉석 조리 세트라도 보내드려야 할까보다.



큐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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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터 살짝 내린 비로 가뜩이나 고용한 신사 앞이 더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 일찍 나서야 하는 우리는 다행이 일찍 눈을 떴고, 눈곱도 안 떼고 애들까지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면, 그 동네가 금새 친근해진다.
국내, 외 어느 도시를 가든 이렇게 아침 일찍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게 좋은 버릇인 것 같다. 우리 애들에게도 아빠만의 여행 신공을 전수할 목적도 있고...

도시 근교.
아주 시골은 아니지만 논두렁에 농기구들이 있는 집들도 많고...
우리 근교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용한 동네를 쭉 거닐었다. 아침 일찍 나왔다가 놀란 개구리들, 농수로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 논과 집들 사이에는 낮은 방죽과 실개울이 가르고 있다.
차분한 기운 가득 안고 날날하게 거닐다 들어오니, 유카상이 벌써 아침을 차려놓고 기다리신다.

날날한 우리들과는 달리, 배 시간에 늦을까봐 오히려 더 노심초사^^

일본인 집에서 몇 번 아침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미소된장에 정찬을 먹은 기억은 없다. 빵과 쥬스 또는 커피가 주로 아침식사였는데, 이날도 쥬스와 빵을 먹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는 이런 방식이 아침식사 문화로 널리 퍼진 것 같다.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유카상, 남편분과 헤어지고 우리도 집을 향해 달렸다.

여행의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이 순간은 늘 당황스럽다. 아쉬움은 큰데 몸은 고단하기 그지없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가 참 싫기도 하고... 여행을 더 지속하기엔 이미 예산, 빨래감 등등 사면초가이기도 하고...

유카상의 걱정대로 더러 비에 젖은 도로에서 막히기도 했지만, 늦지 않게 렌터카 회사에 무사히 당도했다.
렌터카회사에 내려자, 우리말에 능통했던 그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여행 즐거우셨나요?
참 일 잘한다는...
차 꼴이 말이 아니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우리가 비싸게 든 자차 보험 덕분에 아예 차량 검사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사인하고 바로 픽업 차량으로 우리 짐을 옮겨 준다. 전에도 밝혔지만, 해외 여행시 차량을 렌트할 요량이면 반드시 자차를 들어야 한다는 원칙 하나 세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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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와 동일하게 뉴카멜리아 호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출발할 때와 달리 아침부터 해가 떠 있는 동안 움직이는 맛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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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바깥에서 구경도 하고, 온탕에서 느긋하게 즐기거나 장난도 치고...
객실 창에 앉아서 저렇게 웃고 떠들고... 낮에는 객실에서 애들으 조용히 시킬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맛이 괜찮았던 뉴카멜리아의 식당에서 또 다른 메뉴에 도전해서 성공하고...

그랬더니 지루할 줄 알았던 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어느새 부산항이 보인다.
우리 가족끼리 돌아다니면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는 법 같은 게 익혀진 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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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차 안에 넣고 다녀서 몰랐는데,
아... 저런 산만한 걸 메고 갔더란 말인가^^
전혀 짐이 줄지 않고 더 늘어난 건 선물이나 기념품을 많이 사서가 결코 아니다. 젖은 옷에 빨래감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서 정리가 안되어서...^^ 하지만 추억을 더 많이 싣고 왔다고 말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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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왠지 이렇게 4명이 한 팀이 되어 다시 큐슈를 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더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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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와의 강한 "컨택트"를 이렇게 마무리 한다.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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