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18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8.4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저 아래 보이는 곳이 프랑크푸르트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잠시 환승 대기를 하는 건데도, 입국 수숙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당시는 보스톤 마라톤 대회의 충격적인 테러때문에 유럽 각국의 입출국 보안이 강화된 상태였고, 그 덕분에 몹시 불쾌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유럽은 처음이기도 했거니와, 몇 년 전 일본 신혼여행 때는 비행기 화물칸에 보낼 짐 속에 부탄가스통도 넣었었고, 칼을 휴대하고 타겠다고 해서 공항 직원들이 맡았다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할 정도로 여행객에 대해 친절(?)했는데, 911이니 하는 것들을 거치면서 모든 여행자는 준 범죄자 취급을 당해도 찍소리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항 검색대에서 흔한 장면이지만, 이날 프랑트푸르트에서 허리띠를 풀라거나 운동화도 벗고, 심지어 셔츠를 벗고 속옷만 한 장 입고 검색대를 통과하라던 그 배 나오고 덩치좋던, 무섭게 눈 부라리던 독일 아저씨의 퉁명스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숭고한 목적이라도, 자신과 타인의 목숨을 쉽게 여기면서 관철해 내려는 테러같은 방법론엔 동의는 커녕, 일고의 가치도 없는 흉악한 망상이며, 오히려 또 다른 혐오만 낳는 악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사람들을 만들어낸 원인은 한 번 쯤 고민해 봐야 한다.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나라, 가진 게 많아서 뺏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나라들을 향한 끔찍한 혐오를 해소하려면, 과거에 대한 속죄로 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검색대 통과 이후 환승 대기시간에 들렀던 공항의 화장실 변기.
요즘 우리나라에는 더러 저런 걸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참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남자지만 남자화장실은 기본적으로 추잡다.^^
조준 잘 안되는 분들도 있고, 잠시 딴 데 정신 팔거나 해서 조준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남이 눈 오물 치우는 거도 괴롭고, 그 오물이 있어야 변기 바깥에 튀어 있거나 흥건할 때도 찝찝하고... 효과는 둘째치고라도 잠시나마 저 파리에 조준하고 싶은 장난끼를 이용한 파리 스티커 아이디어는 웃기면서 기발했다.덕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불쾌함 말고도 다른 감정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영상 촬영이 목적이기도 해서, 남겨진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마지막 종착지인 히드로 공항에서부터는 정말 사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후의 사진은 그가 찍어서 보내 준 사진이나 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피곤에 쩔은 몸으로 저녁쯤 런던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대 바로 앞에는 북새통이었다. 역시나 영국으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오는구나 싶었다. 대부분 아랍 혹은 인도 쪽 사람들 같은 한 무더기의 인파가 입국심사대 부스마다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기내에서 다 작성했던 랜딩카드를 '그'만 쓰지 않았다. 교대로 화장실에도 가고, 왔다갔다 하면서 내가 대신 그의 카드를 작성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 입국신고며 검색이며 다 마쳤다.
입국심사대에서 여행 온 목적을 물었던 것 같은데, 발음이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영어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며칠간 듣게 되면 좀 나아지려나? 영어가 능하진 못해도 이렇게 한 마디도 안들릴 수 있단 말인가? 영국식 발음이 강하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 겪어보니 참 답답하고 가뜩이나 잘 안되는 걸 머리속에서 유추되는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떠올려서 다시 문장을 재구성해 봐야 해서, 입력과 출력에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입국장을 나서니, 우리를 마중나온 또 한 분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박사님이시라고 소개를 받았다. 그의 네트워크에 연결된 분이다. 너무 상냥하고 친절하게 '핀즈베리 파크' 근처의 숙소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하여튼 첫 날 숙소는 '피터팬' 게스트하우스.
부산에서, 유럽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미리 숙소를 예약했었다. 전 일정 중에 내가 쓴 유일한 공통 경비였다. 이것도 거의 억지를 쓰다시피해서 내 돈으로 겨우 결제할 수 있었다.
"피터팬"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중년의 한국인 아주머니였다. 거의 20년 째 런던에서 살고 있단다. 위층은 주인 부부가 쓰고 아래층만 게스트하우스로 손님들의 침실과 주방, 화장실, 샤워실이 있었다.
우리는 그의 부탁으로 가장 싼 도미토리를 선택했고, 런던임을 감안할 때 정말 싸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남자방은 2층 침대가 총 8명이 잘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고, 여자방은 안 가봐서 잘...
배고프면 주방에서 알아서 뭘 챙겨먹으랬다. 라면, 빵과 밥, 된장국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밥은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차려 주신단다. 우린 일찍 나서야 해서 못 먹었지만.
내 방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은 아이티 직종에 다니는데, 이직을 하게 되어서 직장을 쉬는 기간을 이용해서 왔고, 벌써 두 달째라고 했다. 뉴스나 책에서 보던 사람들이 실제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한글로 된 오프라인 정보, 소식을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전하고 또 습득할 수 있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 왈, 집 떠나면 고생인데, 이렇게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그맛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고 한다.
제법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기도 했고, 말할 수 없이 피곤하기도 해서, 바로 샤워하고 짐을 챙겼다. 우린 늘 배터리 충전과 백업으로 하루를 마감해야 하기에...
사단이 난 건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배터리를 충전과 촬영분 백업을 위해서, 카메라를 찾았다. 근데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안보였지?그래, 택시에서 내릴 때부터 없었던 것 같애.'
벌써 한 시간도 넘게 흐른 뒤, 우리를 여기까지 안내해준 반박사께 전화를 했다. 그리고 겨우 우리를 마지막으로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택시기사와 연락이 닿아서 알아봐 주셨다. 손님이 두고 내린 물건은 없단다.
제3세계 출신 같아 보였던 택시 기사를 괜히 의심도 해 보았다. 그리고 이내 혹시 비행기에 두고 내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런던에 유학와서 결혼까지 해서 살고 있는 후배한테도 전화를 했다. 미리 우리가 오는 것을 알려두었고, 또 마지막 날은 그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기로 했던 터이지만, 급작스런 부탁을 또 해야 했다.
루프트한자로 연락해서 비행기에 분실물을 찾아달라고...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없었지만, 비행기 좌석에서 일어나면서 카메라를 어깨에 걸쳤던 게 기억이 났다. 가방에 넣지 않고, 일행들이 공항을 빠져 나오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던 것까지...
그리고 드디어 기억 속에서 분실 지점을 찾아냈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여러 비행기에서 동시에 내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그를 대신해서 신고서를 작성하던 내 모습.
어깨의 카메라가 걸리적 거려서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뒀던 것.
다 작성한 카드를 그에게 건네고 발 옆에 두었던 배낭들을 챙기고 이내 입국심사대를 향해 줄을 섰던 기억.
그랬다. 입국신고서 쓴다고 내려놓고는 그대로 두고 나와 버렸다. 주인은 영국 입국을 했으나, 카메라는 미입국 상태 ㅜㅜ
다시 후배한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히드로 공항 분실물 센터에도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정이 넘어버린 시간이라 담당자는 퇴근했고, 공항 보안 관련은 외주회사에 위탁을 해서 그 쪽으로 연락을 하라는 말만 들었다. 보안 외주회사는 비슷한 분실물은 없다는 것과 혹시라도 접수되면 맡아두겠다는 등.
영국에서의 전체 일정 동안 거의 매일 보안회사와 통화를 했지만, 결국 분실물은 없었다. 후배 생각에는 그런 게 분실물로 들어오는 걸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도 했다. 워낙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곳인데다가 CCTV 같은 걸로 확인을 잘 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어떻게 찾겠냐고...
여행이 끝나고 여행자 보험 회사에 연락을 해 봤으나, 단순 분실에 대해서는 배상이 안된다는 말만 들었다.
그날밤,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내 부주의에 화도 좀 났다.
그나마 보조 캠을 들고 왔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자며 스스로 위로도 해 보고.
말이야 쉽지, 어디 사람이 그렇게 되나? 그것도 이제 막 사서 들고 온 물건인데.
그는 자신이 혹시 여비가 좀 남으면 같은 제품을 하나 사 주겠다신다.
'괜히 일행들한테까지 걱정을 끼치고 있구나. 빨리 털자.'
혼자 다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에 장사 없다. 걱정도 잠시 그대로 곯아 떨어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또 그 생각이 나서 잠시 한숨을 쉬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게도 현실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할 일도 있고, 낯선 환경 속에서 오감으로 접근해 올 생소한 정보들에 대한 기대감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진득하니 눌러 버린 모양이었다.
지나간 일에 대해 빨리 정리해 버리는 성격 탓도 있고...
그 사건이 이후 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부산에 돌아와서 완벽하게 동일한 모델과 렌즈, 심지어 똑같은 UV필터까지 재구매 했다.
이제 너무 오래 사용해서 후드도 깨지고 필터 모서리는 어딘가 부딪혀서 한 쪽이 찌그러지고 여기저기 흠집에 핀트는 더 심각하게 맞지 않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동고동락을 잘 해 오고 있다.
그러면 됐지 뭐^^
그 이후 기사를 통해서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관련 업무를 맡은 외주 업체의 근로자들이 겪는 비정규직의 설움같은 것을 접하고 보니, 실상 국제적인 규모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공항들이 정부 출자의 공사(히드로공항이 공사인지 민영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이면서 외주와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음에 탄식했다. 우리나라 국회의 청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면서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는 것도 그 이후에 알게 되었고...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건 없다.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불합리와 불평등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세상이 연결된 걸 깨닭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우리는 당장의 피로도 때문에 진실 보다는 허상을 보는 걸 택한다. 세상은 또 다른 의미에서 메트릭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