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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Dec 19. 2017

팔라완여행 12_코론에서 엘니도, 9시간 배타기

2016.8.19

구글지도에서는 '코론 > 타이타이' 노선만 알려주지만, 지겨워서 못탄다. 우리는 반대쪽 바다로 가는 9시간 노선을 탔다

가족을 데리고 실험을 해서는 안된다.^^
정말 정말 착한 가족들이 아니라면...
그게 참... 너무너무 고맙게도 우리 가족들은 너무너무 착한,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은 '선베드에 누워서 망고주스...' 운운하며 꼬셨지만, 말하는 나도 듣는 마눌님도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여행기간 : 2016.8.16 ~ 8.23
작성일 : 2017.7.5
동행 : 마눌님, 두 꼬맹이들
여행컨셉 : 가족여행




엘니도행 여객선(?)은 호핑투어를 떠났던 선창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샌딩업체가 차에서 내려준 곳은 코론타운의 서남쪽 맨 끝, 마키닛온천 방향에 있는 전용부두였다.

짐을 꾸리는 동안에도 첫째 녀석이 몸이 좋지 않다며 영 기운 없어 하면서 아침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결국, 트라이시클에서 내리자마자 별로 먹은 것도 없으면서 다 토해 내 버렸다. 
멀미약 먹은 직후인데 말이다.

필리핀에서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처음 이용하는 대중교통, 그것도 배편 이용에 신경도 쓰이고, 애는 축 늘어져 있고... 솔직히 나도 좀 힘겨웠다. 무엇보다 몸 상태가 엉망인 아이를 데리고 장시간 흔들리는 배를 타는 게 맞는지에 대한 판단이 안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는데, 먹은 걸 토해서 그런지 점차 상태가 좀 호전되어 보이기도 해서, 예정된 여정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항구는 단촐하다. 터는 제법 넓지만, 터미널엔 의자들이 줄지어 있는 대합실이 전부였다.
제 시간이 되어 안내를 따라 부두쪽으로 간다.


우리를 싣고 엘니도로 향할 배다. 그냥 방카^^
이제까지 탓던 것들보다 좀 크다는 정도.
 

코론에서 외항으로 오가는 배편은 여객, 운송을 막론하고 전부 여기 항을 이용하는 듯, 사람은 나무로 된 방카로, 화물은 철선으로^^
 

배 내부는 이렇다. 플라스틱 의자들이 나란히 있고,

그 의자 중 몇 개를 치우더니 바닥을 열어서 승객들의 짐을 수납했다. 음... 아무렇게나 ㅋㅋ

배의 상태나 이른 아침부터의 고달픔이나... 이런 모든 게 다 추억이 될거라며, 나 조차 믿지 못할 말을 해 대며 증명사진 찍듯 가족셀카를 강요해 본다.
기진맥진한 큰 놈은 배에 오르자마자 쓰러져서 엘니도 도착 전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얼마나 고달팠을까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앞으로 9시간 동안, 중간중간 자다 깨다 한 마눌님과 달리 둘째와 나는 깨어있는 게 더 힘든 시간들을 마주해야 했으니...
어떤 배를 타고 이 코스를 이동했었는지 모르지만, 블로그 글들은 전부 구라였다!!
날씨나 파도에 따라 배편 이동시간은 약간씩 차이가 난다는 걸 감안해도 4시간이라는 정보는 정말.ㅜㅜ

정확하게 승선부터 하선까지 9시간 30분을 움직였다.
 

이렇게 떠나면 다시 한 번 와 볼 수 있을까? 이제껏 여행지를 떠나면서는 늘 다시 오면 되지 하는 맘으로 아쉬움을 접었는데, 코론은 왠지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만큼 오기 번거로운 곳이라는 거...
우리가 묵었던 하얀색의 호텔이 해안가 집들보다 약간 높은 곳에 보인다. 
사장님도 즐겁고 행복하게 따님과 잘 사시길~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승객들은 각자 앉고 싶은 자리를 차지하더니 자는 사람도 있고,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 바람을 즐기기도 한다. 
첫째를 캐어하던 엄마와 둘째도 같이 잠에 빠졌고, 아빠만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기관실은 한 칸 아래 있었다. 연세 지긋하신 기관사가 계속해서 뭔가를 만지고 기름칠을 하는 모습.
안 봤으면 모르지만, 보니까 더 불안했다.
 

후미쪽에선 주방장(?)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주변 환경이나 요리하시는 분의 위생 상태는 그닥...
여기서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는 거니... 바로 옆이 화장실인데 볼 일을 보면 바로 바다로 들어가 버리는 것 같았다^^.
 

모두가 다 잠든 것 아니다. 독일에서 오신 저 아저씨는 덩치가 좀 좋으신^^ 아주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여행책자를 숙독 중이셨다. 나이든 부부 둘이만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부럽다.
가끔 남편이 아내의 등을 쓰다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 부부였다.
 

9시간의 항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망망대해만 가지는 않는다. 열도국 답게 어느 때고 주위에 꼭 섬 하나씩은 끼면서 전진.
 

그 중엔 정말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섬들도 보인다. 
코론이 최고니, 엘니도가 최고니 하는 건 그쪽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 되어 있기때문에 나온 광고카피고 실제로는 그 사이에 있는 어느 섬에 가도 환상적일 듯.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겠는가? 
그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굳이 이런 섬들을 원하는 여행객들도 있을 테고, 실제 항구에서 가져온 손바닥만한 팸플렛엔 "Serviced Camping"이라는 상품 안내도 있었다.
무인도에 캠핑 장비와 함께 데려다주고,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는 테이블과 음식을 해변에 배달해준단다. 그 외에는 노터치!
야생의 섬을 잠시나마 렌트해서 자연속에서 보내는 환상적인 상품이다.
최근 신혼여행을 이렇게 무인도에서 보내는 커플들이 주 수요층이란다. 
어린 시절 봤던 영화 <블루라군>의 주인공처럼...


어느날 무인도에 딱 너희 두사람만 있다고 상상해 봐~


맘에 드는 이성에 대한 검색과 어필이 최대의 인생 고민이던 사랑의 짝대기적 관심 폭발기, 바로 학창시절 술자리에서 늘 자주 나누던 바로 그 시추에이션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기다리는 곳이 실제 있다는 거지. 
커서 '병만족장'과 함께 정글에서 지내는 게 꿈이라는 우리 둘째는 다음 여행엔 꼭 그 무인도로 가자고 보챈다. 
엄마는 너무너무 진지하고 준엄하게 "절대 안된다"고 정색을 하고... 그 표정과 고압적인 말투는 둘째 만큼이나 살짝 들떠있는 남편쟁이를 향한 것이겠지만...
 

여자분을 빼고는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상의 탈의 의상 컨셉^^. 기관장은 가끔 기관실에서 나와서 저렇게 일광욕을 즐기시고...
 

승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은 잠에 취해서 배 바깥으로 나와서 항해를 즐기는 승객은 나 말고는 없다.
우리 가족들은 몇 시간 째 깊은 꿈 속을 헤매고들 있다.
 

미안하지만 아빠가 너무 심심해서... 잠귀가 밝은 둘째를 슬쩍 깨웠다. 마치 자다가 스스로 깬 것처럼 가장하고 말이다.^^
잠시만 쉬어도 풀 충전되는 나이가 부럽다. 언제 잤냐는 듯한 저 맑은 얼굴이란 참...
그리고 엘니도에 도착할 때까지 부자지간 둘이서 이 넓은 바다를 몽땅 즐기게 된다.
 

뱃전으로 나서면 간단하게 기착점을 페인트로 적어 뒀다. 가는데 하루가 걸리는 곳이니 이 배는 아마 내일 엘리도에서 출발해서 다시 코론으로 돌아오겠지.
 

선미에 있는 꽤 넓은 터는 햇살만 가득한 텅빈 공간이다. 방카의 속도라 해봐야 그렇게 빠를리 없지만, 맞바람 덕에 작은 몸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모험심 많은 녀석은 이 모든 것들을 맘컷 즐긴다.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한 아빠에게 저런 표정은 최고의 보상이 된다는 거. 

'너도 나중에 아빠가 되면 알게 될 꺼야.'
 

기암괴석이나 잘 생긴 절벽면의 섬을 만날 때마다 우리들의 탄성이 뱃전을 채웠다.
그때 물 밖으로 뛰어 오른 날치 한 마리가 우리 배와 나란히 비행을 시작한다. 그냥 뛰어 오르는 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 진짜 "비행"이었다. 배 속도와 보조를 맞춰서 수 초간 체공한다.
아무리 날개같은 지느러미를 가졌다 한들, 어떻게 물고기가 이 속도로 그렇게 오래 비행을 할 수 있단 말인지...

둘째도 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기 않는다는 눈빛이고, 이 경이로운 모습을 형아가 보지 못하고 자고 있는데 대해 너무 안타까워 했다.
나조차 너무 놀라워서 미처 사진으로 담을 생각도 못하다가 얼른 카메라를 들어올렸을 때는 이미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이후 몇 차례 더 날치 한 두마리의 비상을 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동안 비행하는 녀석은 없었고, 결국 눈에만 담아야 했다.
둘째와 아빠만의 기억으로 남겨두는 것, 이것도 나쁘지 않을테니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가깝게 스치는 섬들에는 간단한 휴양시설을 가진 곳들이 많았다. 아마도 캠핑이 가능한 곳들이 이런 섬들이 아닐까 생각했고, 아들과 그런 여행을 같이 상상해 보는 것으로 긴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승무원들이 접시를 들고 분주히 움직인다.
안그래도 출출했는데, 기내식 아니 선내식 시간이다.
 

아까 주방장이 장만하던 돼지고기와 풀풀 날리는 안락미로 지은 밥, 그리고 바나나.
시장이 반찬이라 남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식사를 하고 맵으로 어느 정도 왔는지 확인해 봤지만, 아직 반도 오지 않았다.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의 여정이 최대로 예상했던 6시간 정도로 마무리 되지 않을 거라는 걸.
하지만 식구들한테 얘길하진 않았다. 그냥


좀 더 자. 다 와가면 깨워주께.


팔라완 본섬이 보인다. 
하지만 엘니도 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 반도를 쭉 둘러가야만 한다는...
둘째와 난 기다림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마눌님과 큰아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자는지...
혹시 자는 게 배 멀미였나?
그러고보니 그렇게 흔들리면서 왔는데도 배멀미에 취약한 내 몸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게 "보나민"의 힘인가?^^
 

오후 시간에 첫 만남을 가진 엘니도의 내항은 호수처럼 조용했다.
역시나 방카들이 주종이었지만, 더러 높은 돛대를 세운 세일선들도 보인다.


왜 이곳을 엘 니도(둥지)라 이름했는 지는 도착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제비집 수프의 그 제비집 생산지로도 유명하지만, 입항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반원의 절벽면 해안 라인이 새 둥지 모양을 닮았다.
 

바다에서 내내 웃통을 벗고 있던 승무원들이 어느새 복장을 갖춰 입었다.
아직 몸 상태가 별로 안좋은 큰 놈은 아저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배에서 내린다. 

"고생했어 아들~. 아빠가 너무 무리한 여행으로 잡아서 미안해."
 
엘니도는 이렇게나 쉽게 만나주지 않는 곳이었지만, 전혀 후회할 필요가 없음도 바로 증명해 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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