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26
여행기간 : 2005. 08.26 - 08.28
작성일 : 2005.09.03
동행 : 인생의 절친
여행컨셉 : 무전여행에 가까운 백패킹
곽재구시인의 <예술기행>에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떠나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올해 여름엔 꽤 다녔다.
당일치기로 갔다 온 것까지 하면 정말 많이 다녔다.
1박 이상 씩 한 것만도 세 번.
거제도는 자가용으로 갔다왔다.
경북은 MT, 물론 자가용으로.
8월 26일 ~ 28일까지 갔던 울릉도는 포항까지 차로 가서, 포항여객선터미널에 주차를 해 두고 하루에 한 번 있는 배편으로 울릉도를 가서 도보로 여행을 했다.
도보... 여행의 진수랄까? 혹시 우리처럼 울릉도로 배낭 매고 무전 여행을 갈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여러 정보를 포함한 여행 일지를 남긴다.
배편은 10시에 포항에서 출발해서 그 배가 4시에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는 대아고속관광의 "썬플라워호"가 유일했다. 물론 후포나 묵호에서도 가는 배가 있었지만, 매일 운항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두 번 뿐이었다.
남자 둘. 사전 준비가 철저한 놈들도 아니고 닥치는 것들에 임기응변해야 하는 짜릿함과 무모함을 즐기는 녀석들인지라, 일단 2박 3일에 필요한 것들만 메모를 하고 여느 때처럼 당일까지 거의 준비라고는 없었다.
10시 배에 늦지 않으려니 도로상의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부산에서 7시에는 출발을 해야...
7시라면 내가 새벽에 일을 마치고 나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 전날 밤에 베낭을 꾸려 둘 만큼의 준비성만이라도 있는가 하면...
코펠이 없어서 밤 11시에 여자친구(지금은 같이 사는 분^^) 집에 코펠가지러 갔다 왔을 정도니... 결국 밤을 꼴닥 새 버렸다. 정신은 없었지만, 불행중 다행, 새벽일도 조금 일찍 마쳐졌다.
정확하게 'J'의 차가 우리집으로 온 것이 7시 10분이다.
'J'와의 여행은 참 좋다. 몇 해 전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도 둘이었다. 체력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깡다구가 있는 이 친구는 내가 주문하는 무리한 코스와 일정에 대해서 별다른 군말이 없다. 더구나 자동차로 갈 때면 지가 운전하고 내가 네비게이터가 되는 역할 분담이 상당히 조화롭다.
이번에도 내가 네비게이터. 최근에 내가 차를 몰 줄 알게 되면서 가끔 그 역할이 뒤바뀌기도 하지만...
이번엔 그 역할을 끝까지 가지고 갔다. 경주까지는 고속도로니까 잠을 좀 잘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설레임과 긴장감으로 인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깐 까무룩... 의자를 뒤로 젖히는 순간 'J'의 오른손이 내 왼쪽 허벅지를 툭 쳤다.
"협아, 이제 경주다."
"음."
인간 네비 대령이요.
바로 눈 비비고 지도책을 펴 들었다.(당시는 거대한 지도책 다들 들고 다니던 시절^^)
포항까지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여객터미널은 포항 북쪽 끝부분.
포항은 왠 오거리, 육거리가 그렇게 많은지... 갈 때마다 교차로가 나오면 덜컥 겁부터 나는 곳이다. 그래도 어째 저째 해서 도착. 9시 10분.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여유가 있었다. 표부터 구입을 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요기를 했다. 삼각김밥2개와 베지밀.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어제 뉴스에서는 간밤에 내린 비로 울릉도의 어느 부분에 산사태가 났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바다의 수평선도 뚜렷하고 하늘은 높디 높았다. 바람도 그렇게 많이 부는 것 같지 않았으며, 그런 날씨가 예보에 의하면 사흘간 지속된다고 하니, 우리는 행운아였다.
차에 대충 처박아 두었던 짐을 두 개의 배낭에 쑤셔넣었다.
살까말까를 고민하다가 포기한 텐트 대신에 민박까지 고려했으나 결국 부산대 앞, OO스포츠에서 텐트를 빌려왔다. 3~4인용이라서 가벼웠다(요즘 같으면 정말 무거운 축에 속하는 거 였겠지만, 당시 1~2kg 대의 울트라라이트 텐트 따위 없던 시절). 그 놈은 내 배낭 바깥에 묶었다.
그렇게 텐트 하나, 담요 한 장, 코펠, 버너... 그런데 인스턴트 국거리와 카레, 짜장(제주도 갈 때도 이런 식이었다. 간편하고 시간을 절약해 준다), 군것질거리 들을 넣을 틈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나나 경훈이도 40리터 안팎의 배낭을 가지고 왔기 때문(당시 대형 배낭도 드물었다. 있다해도 구하기 힘든...).
아쉬운대로 쇼핑백에 이런 것들을 집어넣고 배에 오른다.
10시 정각 출발.
금요일이라 배 안은 만원이었다. 우리는 일반석이었는데, 우등석은 아예 일반석 사람들의 출입도 통제되어 있었다. 총 3층으로 객실이 있었는데 우등석이 3층을 독차지.
우리자리는 2층 여자화장실 바로 옆. 800명 수용의 쾌속정이라서 운행중 객실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제주도행과는 사뭇 달랐다. 예상 소요시간은 3시간인데 파도의 높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란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J'왈,
"야, 왜 이렇게 배가 흔들리지?"
난 속으로 '배니까' 생각했을 뿐. 잠시후, 이번에는 약간 짜증이 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거 너무 흔들리는 거 아니가?"
마치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천천히 꼭대기를 향해서 가면서 "이거 너무 높이 올라가는 거 아니가?" 하는 투. 진지하고 또한 공포가 서린 말투. 그러더니 좀 있으니 말도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고개를 숙인다. 배멀미였다. 어떻게 출발하자 마자...
금요일이라 아직 업무시간이고해서 전화가 많이 왔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왔는데도 전화기가 터지는 것이 신기했지만, 평일에 놀러가는 거라서 오는 전화 왠만하면 다 받았다. 통화하기 미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선실 중간 복도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얼마 뒤, 나도 속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도 아파왔다.
앗! 배멀미...
전화기를 닫고 바로 자리로 돌아왔다. 날씨는 좋았지만 파도는 3미터 정도나 되었다. 뱃전 좌석에서 건너온 아저씨는 파도가 부딫히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그때 우린 이미 사경을 헤매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랑거렸다. 들랑거리면서 다들 토악질을 해댄다.
그 소리에 멀미가 더 심해지는 듯. 취할 수 있는 모든 릴렉스한 자세를 다 취해 봤지만, 어떤 자세도 멀미를 수그러들게 하진 못했다. 잠을 청해도 보았다. 밤을 새고도 한 숨 자지 못한 녹초의 몸인데 잠도 못 자겠다.
연신 목구멍으로 뭔가가 올라오려 하는 것을 삼켜 가면서 울렁대는 배를 한 손으로 움켜 잡는다. 하얗게 질린 'J'는 미동도 없다.
보통 이럴 땐 누구나 남은 시간을 계산하면서 얼마나 버텨야 할 지를 세기 마련인데... 이럴때일수록 시간은 참 더디 가니라...
12시 30분. 30분만 더 참으면 도착이다.
의식마져 흐릿해진다. 미동도 않던 'J'의 고개가 한쪽으로 배의 흔들림따라 떨궈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 의식을 잃었나?'
아니었다. 잠든 거였다. 세상에~ 그렇게 백지장 같던 얼굴로 고통스러워 하더니 어떻게 잠이 들었지?
부럽다 못해 얄밉기까지 했다. 얄미운 사람들은 많았다.
"귀미테"를 붙이고 있는 다수의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담들을 해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신 토악질 소리가 객실을 울리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파도때문에 예상도착 시간이 30분 늦어진단다. 이런.xx
어떻게 참고 기다린 1분 1촌데...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화요일에는 5시간, 저번 주에는 총 7시간 걸린 때도 있었단다. 30분 정도는 애교...
멀미하면서도 걱정되었던 것은 배에서 내린다고 진정이 될까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여행 내내 고통받는다면 이건... 절대 아니다. 더구나 산행?
이 상태라면 성인봉 948m 정상은 절대 못 간다!
기우였다. ㅋㅋ
배가 도동항의 방파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순식간에 멀미가 없어졌다. 신기할 정도로.
고통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눈에, 도동항의 기암절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국이구나.~' 우리 땅이 아닌 듯했다.
선창에서 반기는 것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풍광뿐만이 아니었다. 각 여행사에서 피켓을 들고 기다리는 직원들과 민박하냐고 호객하는 아줌마들이 정말 많았다. 항구 전체를 꽉 메우고 있었다.
우리 둘은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그들이 잡아끄는 난리통을 피하려구 일단 걸었다. 여객선이 입항하는 도동항과 물류 항구인 저동항이 외부와 연결하는 울릉도의 유일한 통로인데, 하루에 한 번 썬플라워호가 도착하는 시간대에 도동항은 완전 전쟁통으로 바뀌는 것 같다.
걷다가 사람들이 좀 뜸해진다... 근데 여긴 어디지, 이제 어디로...
지도를 꺼낸다.
우리는 독도박물관 근처에 있었다. 나름 우리가 잡은 어설픈 첫날 일정은 성인봉 등산이었기에 우리는 약수공원으로 갔다. 일단 수통을 채워야 하니까.(섬은 일반적으로 물이 귀하다. 울릉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동항 반대편 나리분지 쪽의 성인봉 자락은 음용수가 풍부한 편)
독도박물관이 바라다 보이는 지점에 약수공원이 있었다. 요즘 한창 언론에 오르내리는, 조선의 독도지킴이 안용복의 충혼비를 지나서 좀 더 올라갔더니 벌건 물이 쏫아오르고 있다.
철분+탄산.
이걸 어떻게 먹나? 몸에 좋다고 줄서서 떠먹는 청송의 "달기약수"와 같은 맛. 물을 먹는 건지, 녹슨 못을 씹어 먹는 건지 알수 없는 맛. ㅋㅋ
집에서 채우고 왔던 물만 단도리해서 다시 성인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길을 물었다.
원래는 대원사 코스, KBS중계소 길, 사동으로 가서 안평전으로 오르는 길이 정상적인 등산로지만, 우리는 항구의 북새통을 빠져나온다고 전혀 다른 곳으로 와 버렸고, 그렇다고 다시 항구까지 내려갈 수도 없고...
해서 조금 복잡하지만 갈 수는 있다는 설명을 듣고 약수공원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좀 헤매고 나니까 KBS중계소가 나왔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길을 묻기도 힘들었고, 왔던 길을 몇 번 되짚어 가야 했고(알바뛰기) 작은 마을이나 신앙촌(도동에서 성인봉방향으로 신앙촌이 꽤 있었다)에 있는 노인분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가면서...
여튼 겨우 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울릉도는 작은 섬이다.
성인봉도 그렇게 높지 않다. 젊은 남자 둘인데... 하지만 우리에겐 가벼운? 텐트가 있다는 걸 잊었다.
점점 어깨에 하중이 걸리면서 숨이 가파졌다. 등산을 하면서 그렇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번은 장난이 아닌... 성인봉은 족히 2~30킬로는 될 듯한 배낭을 지고 전날밤을 새고 오를 만큼 만만한 산이 아니다.
보통 섬에 있는 산들이 높지는 않아도 출발지점이 해발 고도 0, 그리고 정상까지 가파른 경우가 많거늘...
힘들어하기는 'J'도 마찬가지. 역시 물이 부족했다. 어떻게 그렇게 물 한방울 없을 수가 있는가?
지도상 봉래폭포 위쪽을 지나는 구간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물소리라도 들릴 줄 알았더니 계곡은 바싹 말라있었다. ㅜㅜ
전날 밤에 산사태를 유발한 폭우가 왔다던 울릉도가 여기가 아닌건가? 토질의 물 배수력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산 초입 입간판에서 질리도록 너도밤나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수종이 거의 단일한 곳을 지난다. 정말 질리도록 너도밤나무 천지.
3시 반쯤 등산을 시작했는데, 6시가 다 되어서 성인봉 정상에 도착을 했다. 고생도 심했지만, 참 멋진 경험도 했다.
하나는 팔각정이라는 정자에서의 풍광. 정자야 현세에 만든 양, 볼품 없었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저동항까지의 산자락과 저동항의 모습, 그리고 방파제에 붙어있는 촛대암,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마치 거울인 듯 하늘과 똑 닮은 바다색.
우리가 간 날은 맑디맑은 날이었는데다가
막 해가 넘어가려는 골든 타임,
저항동과 도동항 사이에 있는 산(언덕?) 너머로 해무가 피어올라 촛대암을 살짝 가렸다 보여줬다...
모든 게 우릴 위해 오래 준비해 놓았던 것 같은 풍경은 잊혀지지 않는다.
또 하나는 바람의 등대라는 곳.
정상으로 향하는 거의 끄트머리에 능선처럼 된 곳이 있었다. 의자처럼 된 바위에 둘이 앉아서 가만히 숨을 고르는데 그 전까지 마구 울어대던 산새들과 매미소리도 없어지고 파도소리마처 들리지 않게 되자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정적이 감싼다.
'그래 생겨났다.'
소리가 생겨 정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없던 정적이 갑자기 생긴 듯 한 느낌.
내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숨마저 죽였을 때, 짧은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기 직전까지의, 그 정적의 순간도 잊을 수 없을 듯.
온 몸이 땀에 절어서야 도착한 성인봉.
미륵봉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륵봉은 나란한 봉이 두 개 있는 독특한 모양인데, 보통 이렇게 생긴 봉들은 '유두봉'으로 일괄처리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가슴 모양으로 생겼다는 거지. 상상력의 한계랄까? 비유법의 한계랄까?^^
여튼 그 가슴 사이로 수평선이 들어 앉아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 성인봉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그 가슴 사이의 수평선으로 벌건 해가 수직 낙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가슴 정 중앙으로 파고 드는 지...
정확하게 각을 맞춰서 앉은 성인봉의 위치가 신기할 따름. 매일매일 조금씩 황도의 움직임이 변하는 걸 고려하면 이맘때, 딱 이시간에만 볼 수 있는 진귀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행운이 겹친다.
그런 멋진 풍광들에 취해 있는 동안, 점점 햇살은 붉어져 간다.
어느새 진초록의 숲이 엷은 연두빛으로, 다시 노란 빛으로 변한다.
지쳐서 겨우 주위를 둘러보다가 "전망대 20미터"라는 표지를 따라 내려갔다. 지친 'J'더러는 좋은 곳이면 부르마하고서... 난 가자마자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와봐봐봐..."
혹시 울릉도에 가거든, 또 성인봉에 오르거든,
반드시 '전망대 20미터' 라는 표지를 따라가길 강력히 추천하다.
정상에 오르는 이유가 정상에 있는 "OO봉 해발 OOO미터"라는 비석에서 사진찍기 위해서라는데, 전혀 아니올시다다. 성인봉 전망대에서의 풍경은, 등반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과연 전망대라는 곳에는 뭐가 있었을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가서 보는 걸로... 말로 전해봐야 그 풍광의 느낌만 다치게 할 것 같다.
아쉽지만 기온도 떨어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오르면서 하산길로 잡은 나리분지까지 최소 2시간이라는 소리를 들은 터라 서둘러 하산했다. 성인봉 하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우리는 꿀맛보다 더 단 약수터를 만났다.
"성인정"이라는 곳인데, 나리분지 쪽으로 하산하는 이들 모두에게 꿀맛으로 비유되지 않았을까?
등정길에는 없던 물이 꽤나 풍부하게 쏟아지는 것도 그렇고 노란색으로 변한 저녁 햇살의 원시림 속에서 받아든 물 한바가지는 세상 근심 털기에 그만이었다.
수통을 가득 채우고 달콤한 끝맛을 음미하면서 다시 걷는다.
오르는 길 못지않게 북쪽 하산길은 가팔랐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신령수'라고 바위 틈새로 물이 나오는 곳에 당도한 것이 7시 반이었다.
우리는 벌써부터 랜턴을 켜 들고 있었고 지도상으로 정상에서 온 거리의 두 배를 걸어야 나리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신령수부터는 완만한 길이라서 시간은 덜 걸리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성인봉에서 아침을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안보이는 어둠뿐인 공간이지만, 사위가 밝아오면 천천히 눈에 담으면서 하산하고픈 맘이었다.
"경훈아, 여기서 텐트치자."
주위는 그냥 숲.
딱 여기만 제법 넓게 자갈을 깔아놓았고, 신령수(아침에 바위에 새겨진 것을 보고야 알았지만) 바로 앞은 보도블럭도 깔려 있었다. 그 보도블록 위에 텐트를 친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계속 중요한 전화가 몇 통 왔고, 내가 없는 동안 부탁한 친구 녀석에게 전화로 뭔가를 알려주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근데 전파가 닿지않는 곳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되었는데... 'J'더러 텐트를 치라고 하고 손전등 하나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조금 고도가 높으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오르막을 걷기에는 몸이 너무 지쳐 있었다. 심지어 전화기는 밧데리도 거의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내, 나리분지까지 가서 전화하고 올께."
그때 'J'의 표정이라니. 하하하. '꼭 그래야만 하는거야'하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겁나기는 나도 마찬가지. 얼마나 가야 나올지 알 수도 없는데다가 이렇게 칠흑같은 어둠속의 숲길을 혼자 걷는 것도...
이미 'J' 쪽의 랜턴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달도 없다. 그믐인가? 겁나는 맘을 달래가면서 쭉 앞만 보고 걸었다.
손전등은 이태 전 생일선물로 'J'가 사준 자가 충전식.
손으로 돌리는 레버가 있고 그것을 돌리면 충전이 된다. 돌릴 때 작은 모터 소리를 내는데, 정적의 밤길에 어찌나 크게 들이는지... 그 소리에 놀란 날벌레와 밤새들이 푸다닥하고 날고 뛰어들고 사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조금만 더 가니까 개활지가 나온다. 낮에 성인봉에서 본 그 분지리라.
개활지를 가로질러 가다보면 투막집이 나온다. 입간판에 "투막집"이라 되어있고, 나리분지까지 1500미터라고 적혀 있다. 실제 사람이 살지는 않고, 과거에 이렇게 생활했다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
"투막집"은 울릉도의 전통 가옥인데, 밤이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볏짚으로 얽은 것은 알수 있었다. 문도 없고 그냥 시커먼 출입구만 몇 개 있는 집 형태만으로도 오싹하다. 정말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어서 자리를 떴다.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와 계속 따라 오는 듯한 느낌...
열심히도 손전등 레버를 돌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불부굴한 길은 여기저기 웅덩이가 있어서 질퍽거리기까지 했는데, 손전등은 조금만 가면 방전이 되어서 흐릿해지고 더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땀은 비오듯이 흘러, 눈에 들어온다.
그때 저기 멀리서 불빛이 하나 다가왔다.
다 왔구나~. 동네의 어느집 불빛...
인줄 알았는데, 이게 흔들거리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쪽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는 듯한... 이 느낌은 뭐지?
정말로 다가왔다. 그것도 흔들흔들.
순간 제자리에 섰다. 이미 텐트에서부터 걸어온 지 20분 정도 지났고, 'J'와 나 사이는 그 만큼의 간격이 있다는 말인데, 이제 난 어쩔 것인가?
그냥 무시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왔던 길을 죽어라 하고 뛸 것인가? 그때였다.
사람의 발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공중에서 흔들리면서 다가오는 불빛과 보조를 맞쳐서 오는 그 소리는 사람이 랜턴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젊은 부부같았다. 대략 옷차림새로 봐서는 이곳 사람이거나 나리에 민박을 하고 있는 여행객으로 보였다.
"저, 마을까지는 먼가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들도 공포에 떨었음이 분명했다. 이 밤에(대략 8시쯤이었으나 주위는 칠흑같았으니...)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없이 손에 전등만 하나 들고 성인봉 쪽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더 놀란 듯 보였다. 거기다가 질문의 내용으로 봐서 초행자임도 짐작했으리라. 그 짧은 순간 이들 커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조금만 가면 됩니다. 근데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남자가 물었다. 서울말씨였다. 역시 관광객이었나?
"아, 예. 오늘 도동에 도착해서 막 성인봉 넘어 왔습니다. 근데 중요한 전화가 있어서..."
대략 설명을 해서 안심을 시켜야 할 입장^^.
"저희는 나리에 사는 사람들인데, 산책중입니다."
나와 비슷한 맘이었을 꺼다. 안심시켜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겠지.
그렇게 헤어지니 또 막막했다. 적어도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조금만 가니 진짜 마을의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오지마을을 찾아서]라고 'J'가 빌려준 책에서는 나리마을이 오지중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꽤나 어지러이 전기 불빛이 보였다. 전화기를 꺼내드니 그제서야 통화가 된다. 밧데리가 없어서 짧게 통화를 하고 다시 텐트가 있는 곳으로 간다. 2킬로 정도의 길 중간에서 그 부부들을 또 만났다.
"일행이 있는데까지 가서 보고 왔습니다. 아직 식사전이라면서요. 어서가서 식사부터 하세요. 그리고 내일 밝으면 저희 집에 들러서 차라도 한 잔하고 가십시오."
연신 고맙습니다를 하고는 다시 혼자 'J'에게 갔다.
'J'는 텐트에서 밥까지 다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안무섭드나?"
"무서벗지"
'J'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꽤나 노심초사했으리라. 한시간 반 동안 혼자 있으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덤덤한 척 하기는 짜식. 나도 덤덤한 척했지만서도...
어떻게 하루 일정은 무사히 마쳤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우리만을 위한 성인봉의 숲 속에서 우리만의 저녁 만찬을 즐겼다. 랜턴 불빛 아래서의 미역국과 카레덮밥은 일품이었다.
텐트로 자리를 옮겨서 고이 모셔온 양주병을 꺼냈다. 그래봐야 조니워커.
꽤 큰 병이라 2박 3일 동안 충분할 것 같았다. 둘은 딱 석 잔씩 마시고 도시였다면 절정의 활동시간일 9시 반에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