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27
여행기간 : 2005. 08.26 - 08.28
작성일 : 2005.09.04
동행 : 인생의 절친
여행컨셉 : 무전여행에 가까운 백패킹
나리분지 @울릉갈매기(blog.daum.net)
새벽엔 꽤나 추웠다.
텐트안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담요까지 깔고 긴 옷을 입고 잤는데도 새벽엔 추웠다.
몸의 기억은 무섭다. 난 어김없이 4시에 일어났다. 젠장.
애들한테만 일을 맡기고 온 것이 불안해서 전화라도 해 보려 했으나, 전화가 안되는 곳임을 바로 기억해 내었다. 6시 반까지 그렇게 떨면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랜턴도 켜 봤다가... 사위가 밝아오고서야 일어났다.
내가 부시럭대는 소리에 'J'도 잠에게 깬 듯. 온 몸이 밤새 얻어맞은 듯 욱씬거렸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내가 어제 본 분지는 나리마을이 아니었다. 밤에 그리 무섭게 보였던 투막집 내부를 구경해 본다. 울릉도는 모두 덧벽이 있는 구조. 예전부터 그렇게 다들 살았나보다.
어제 뜻하지 않게(?) 답사했던 길을 따라 걸었다. 오로지 길에만 집중하고 갔던 밤이라서 아침에 가도 훤했다. 나리는 가구 수가 꽤 되는 마을. 그래봐야 거의가 다 식당이었지만, 그래도 오지마을은 아닌 듯.
나리는 원래 울릉도 원주민들이 최초에 자리를 잡은 곳이고 유일하게 벼농사가 가능했던 곳이었단다. 이제는 벼농사와 과수원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밭에는 고사리라던가, 더덕 등의 나물류가 울릉도 특산품으로 팔리기위해 재배되고 있다.
어제의 그 부부는 나리의 유일한 교회 목사내외였다. 그러니
"저희집에서 차나 한잔..."
하고 헤어져서는 위치도 묻지 않은 나나, 가르쳐 주지도 않은 당신들이나 참... 하고 한심해 했었는데, 아침에 'J'의 얘길 듣고 알게 되었다. 눈에 잘 띄도록 마을의 한 가운데 교회가 있다. 마침 목사님은 운동가셨고, 사모님만 계셨다. 안으로 드니 그림들이 많다. 사모님이 화가란다. 호젓한 곳으로 와서 호젓하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듯. 분당 살다가 온 지 만 4년 되었다는데, 도회의 지식인 느낌이 물씬 나는 우아함이 있다.
"믹스커피드릴까요? 원두커피드릴까요?"
"믹스로 주세요."
오지마을로 분류되었던 나리마을에서 원두커피는 좀 그렇지 않은가? (당시의 우리들에겐 인스턴트가 입맛에 맞기도 했고^^)
이후 일정에 대한 조언까지 얻고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천부'라고 나리에서 곧바로 해변가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있다는 마을로 가서, 도동항까지 시계반대방향으로 일주를 계획했었는데, 절경들은 그 반대쪽에 모여있다고 꼭 가보라신다.
일단 근처에 있다는 용출수부터.
어제 우리가 잤던 곳을 야영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 야영지라고 지정한 곳은 나리분지 안에 있었다.
그마저 때가 지나 몇 사람 없긴 했지만... 야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우리 더러 최고로 좋은 곳에서 야영을 했다고 부러워들 했다. 나리의 야영지라는 곳은 벌써 사람들이 다녀간 지 꽤 지났는지 풀들이 허리까지 자라 꽉 메운 터들이 대부분. 역시 휴가철을 피헤서 오길 잘했다는...
여기저기 개발공사가 진행되기는 울릉도도 육지와 다름이 없었다. 독도에 대한 관심 증폭으로 울릉도 관광객도 많아졌으리라. 더 이상의 도로나 편의시설이 없어야 울릉도의 맛이 보존 될텐데라고 느끼면서 용출수에 다달랐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듯이 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곳은 아니라는.
맑은 물이 어디서 솟는지는 몰라도 얌전하게 저장되어 그 주위의 온도를 상당히 떨어뜨리고 있는 작은 상수원이다.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민물이 그 정도로 올라오는 것이 울릉도에선 대단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더구나 그 계곡 끝에 수력발전소가 있고, 거기서 생산되는 전기가 울릉도 전체를 담당한다니 더더욱.
다시 나리로 왔다.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움직였던지라 좀 여유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고작 1시간을 걸었지만 베낭을 진다는 것이 자체가 끔찍한 고통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들이 과도하게 짐을 꾸린 거지 뭐.
목사님 부인께서 꼭 가보라고 추천한 섬목까지는 버스로 가기로 결정. 일단 근처 식당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 물었다. 새벽의 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벌써 온몸은 땀 투성이다.
버스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갈 생각을 않는다. 버스라고 해야 미니 버스지만, 울릉도처럼 구불구불한 산 길에는 대형버스보다는 저게 더 낫겠네 하며 주억거린다.
첨부터 버스 시간을 물어 본 우리들에게 식당 아줌마가 말을 건넨다.
"버스 안 탔어요?"
"예?"
버스는 벌써 가고 없었던 것.ㅜㅜ
그럼 우리가 기다린 저 버스는? 어쩐지 '전세'라는 글자가 있더라니... 시골이라서 비수기, 성수기 전천후로 그렇게 전세버스로도 사용했다가 대중교통으로 운행도 했다가 하는 줄로만 알았더니, 우리 앞에서 막걸리를 나눠드시던 일행분들이 우리 대화를 듣더니,
"저건 우리가 전세낸 버슨데..."
하셨다.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에나 있단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용출수 가는 방향을 물었봤던 봉고 기사아저씨가 있었고 그 봉고에 "우산버스"라고 딱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럼 혹시...
그랬다. ㅋㅋ
울릉도의 옛 이름이 우산국이었지? 그리고 봉고가 버스역할을 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진즉에 떠난 버스가 간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는다. 시간은 아침 10시 50분.
텐트까지 울러매고 울릉도를 그렇게 도보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단다.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되었나? 나리마을 어귀에서 옥수수며, 오징어를 파는 아줌마들이 젊은 사람들이면 30분이면 천부까지 간다고 걸어가면서 경치도 구경하라며 농을 거신다. 웃음은 나지 않았다.
결국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지나는 차도 별로 없는데 가끔 오가는 건, 관광버스거나 택시였다.(울릉도 택시는 전부 4륜구동이다. 무쏘가 가장 많았다)
배삯 왕복 10만원씩, 포항에 세워둔 차 주차비 만5천원, 기름값 2만원, 부식비 여우분까지 각자 15만원씩 가져온 돈으로는 택시 등은 절대 안될 말이었다.
한참만에 승용차 한 대가가 세워준다. 안에는 운전자까지 3명이나 타고 있다. 트렁크에 우리 짐을 넣으니까 차가 뒤로 눌려진다. 그렇게 끼여서 뒷자리에 탔다.
3명 다 해군들이었다. 운전하는 사람의 명찰을 보니 김OO상사. 천부까지 생하니 달렸다. 짐으로 인해 차바닥 긁히는 소리가 났다. 우리 짐때문이리라. 윽... 표정들이 안좋다. ㅋㅋ
천부에 도착하니 아까 우리가 놓친 봉고버스가 보인다. 해군들과 작별하고 900원씩을 내고 버스로 옮겼다.
손님은... 우리뿐.
출발시간이 남아서 다리 뻗고 계시던 아저씨도 우리가 타자 시간과 상관없이 바로 출발해버리셨다. 울릉도 버스는 출발 시간, 뭐 그런 거 정확하게 믿으면 안된다. 연착은 봤지만,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으니.
버스는 선창까지만 간다. 거기서 섬목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기암 절벽과 바다 위의 괴석들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여길 놓칠 뻔 했다 생각하니...
섬목이다. 바다와 절벽, 그리고 식당하나만 있다.
섬목에서는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담수로 씻어야 할 텐데, 그곳 식당도 몇 킬로 밖에서 물을 길어오는 데라서 만일 담수로 몸을 씻다가 주인한테 들키면 맞아 죽을수도 있다고 낚시꾼이 농담반 진단반으로 핀잔을 주어서 포기했다.
깎아지른 절벽들을 한참 올려다본 수,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한번 히치하이킹으로 재미를 본 우리는 재차 시도해 보지만...
섬목과 천부사이는 자가용으로 관광하는 사람들만 오는 코스라서 우리를 태워줄 빈 자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배로 자가용을 섬으로 들이는데만도 20만원이 드는데 한 두명 타려고 그 돈을 내지는 않았으리라. 다들 꽉꽉 채운 자가용들이라서 엄지손가락 들 일도 없었다.
가까스로 천부까지 다시 되돌아왔다. 아까는 정신없이 지나쳐 버려서 몰랐는데, 섬목쪽에서 천부로 되돌아오는 방향의 입구에는 꽤 잘 꾸며진 노천 풀장이 있었다.
오후 1시 반, 우리는 일정이고 뭐고 바로 옷을 벗어 풀장으로 뛰어든다. 샤워시설도 최고~
풀장은 철 지나서 아무도 없었다.
바다와는 고작 5미터 정도. 이런 깡폰에 해수풀이 있는 모습도 낯선데 아무도 없이 우리만 점거하다니...
참나, 누가 이런 거까지 준비해 놔 가지고...
한가지 아쉽다면 풀의 깊이가 허리까지만 온다는 거~^^
아마도 애들을 위해서 만든 거겠지? 잔잔한 풀에 시들해져서 방파제가 있는 쪽으로 나간다.
그래봐야 5미터 앞이지만, 거기 물은 꽤나 차가웠다. 풀이 하루종일 햇빛을 받고 뜨뜻해진 것과는 달리...
대신 물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당시만 해도 아직 바다수영을 하던 때는 아니지만 역시 야생이 주는 오묘한 싱그러움이란... 피에 그런 게 타고 흐르는가?^^
우리는 출출해서 점심을 라면으로 떼우기로 하고 신나게 멱질을 해댄다. 그러다가 바위들 위에 수없이 달린 소라에 눈이 갔고, 신기해서 몇 마리 잡다보니 양이 꽤 되었다.
아예 본격적으로 따기 시작. 수없이 많지만 너무 빨라서 잡기 힘들었던 방게도 몇 마리 생포.
나무에 생기는 깍지벌레 비슷한 모양의 놈도 땄다. 어찌나 바위에 세게 붙어 있는지 결국 칼까지 동원해야 했다. 그렇게 딴 것이 잠깐 사이에 한 냄비가 되었다. 우리는 냄비 하나에는 라면을 또 하나에는 그 놈들을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제법 구수한 냄새가 났다. 일단 먼저 익은 라면을 먹고, 연이어 그 놈들을 파먹기 시작했다. 두 주 전에 우리 시골 냇물에서 땄던 조그만 고동이 아니라 꽤 먹을 만한 크기의 소라들이라서 양도 푸짐했다. 이럴 땐 탱자나무 가시가 최곤데, 있을리 만무하고 어디 굴러다니는 대나무 조각을 칼로 쪼빗하게 깍아서 파 먹었다. 방금까지 생생하게 유지하던 생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 놈들 속살이 그렇게 쫄깃하고 감칠맛 날 수가 없었다. 게들도 등딱지 빼고는 홀라당 다 먹었다. 국물은 전혀 간이 맞지 않아서 먹을 수 없었지만, 우리 두 사람은 마지막 한 놈까지 핧고 빨았다.
얼추 배가 든든해지자, 다시 한번 더 멱질을 하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샤워물에 몸을 씻고서야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런데 왜 그렇지? 누적된 피로인가? 아니면 시원하게 샤워를 한 나른함인가? 몸이 영 전같지 않다.
천부를 벗어나서 조금만 가니까 "천연에어컨"이라는 풍혈이 보였다.
지하수가 노출이 되어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라는데 지금은 아예 돌집을 지어서 이중 유리로 된 창과 문까지 만들어뒀다. 문을 열자마자 정말 에어컨 빵빵하게 튼 실내로 들어서는 기분.
좀 오래있고 싶었으나 자가용 세우고 들어온 아저씨들이 시킨 커피나 마시지, 레지 아가씨한테 육담을 하며,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심정 상해서 바로 나와 버려야 했다.
이제 아예 대놓고 필사적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이번엔 트럭을 얻어탔다. 해변도로를 따라 트럭 뒤에서 시원하게 달리는 맛이란...
마을 시가지가 아름답다고 목사님 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현포로 갔다.
현포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거기 일단 가방을 맡기고 느긋하게 마을을 구경한다.
울릉초교 분교가 있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은 다음에 울릉도를 가더라도 무조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운동장을 침엽수 울타리로 동그랗게 둘러싸게 만들었고(정말 특이하게도 운동장이 둥근 계란 모양) 시멘트인지 시멘트 블록인지로 만든 조회대를 지나 50칸은 족히 됨직한 계단 위로 단층의 교사가 있다. 그 끝에는 조그맣게 병설 유치원까지.
여기오면 관전 순서가 있다.
우선 교사 현관 앞까지 계단을 올라와서, 쉼호흡을 하고 운동장 쪽으로 뒤돌아 봐야한다.
침엽수 꼭대기 너머로 끝도 없는 바다가 만드는 장관.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안고 있는 학교가 세상에 또 있을까? 감탄하느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할 지경이다.
전국에 세 군데 뿐이라는 진주 세공품이 진열되고 판매되는 박물관도 공짜로 구경을 하고 나니 5시. 해도 슬슬 기울기 시작하는데 원래는 반 정도 진행했어야 할 일주 목표량에 턱없이 모자란 지점에 있던 우리는 뒤늦게 좀 서두른다. 물론 히치하이킹의 재미와 순박한 사람들이라 잘 태워주는 것에 안일해진 우리는 현포에서 태하로 넘어가는 비탈길을 그 시간에 겁도 없이 도전하고 만다. 아뿔사.
왜 그리 안세워들 주시나?
차들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계속 질주한다. 그렇게 걷다가는 밤이 깊어야 도착할 듯 한데...
언덕길을 30분 쯤 걸었을까? 예초기 등을 실은 트럭이 왼쪽 깜박이를 켜고 우리 앞에 차를 멈췄다(왼쪽 깜박이를 보는 순간 바로 기뻐서 뛰어가게 마련이다. 히치해 본 사람만이 안다).
기사분 왈, 이 길은 88도로라고 구불어진 길과 골짜기 사이의 다리들을 건너는, 차량으로 이동하기 좋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 우리는 오픈카(?)로 그 멋진 풍광과 급격한 고도의 변화를 온 몸으로 즐기고 순식간에 태하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