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22
우리 여행도 이제 종반부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잡긴 했으나, 막상 따져보면
아침부터 어디 놀러 나가는 건 오늘이 겨우 세 번째^^
호핑 두 번에, 이렇게 세계자연유산 한 군데. 이게 다구나~
괜찮아... 양보다 질이잖아... 라고,
아빠는 나머지 식구, 특히 마눌님께 늘 이야기 하지.
그리고 우린 매일 매일 사건 사고 속에서 늘 많은 추억들을 안고 오니까
하루종일 빡빡하게 정신없이 여기저기 들렀다 빠지는 여행하곤 다르지 않냐고^^
여행기간 : 2016.8.16 ~ 8.23
작성일 : 2017.7.18
동행 : 마눌님, 두 꼬맹이들
여행컨셉 : 가족여행
조식까지 든든하게 먹고 로비로 나선다.
살짝 이슬비가 좀 뿌리긴 하지만, 여기 살인적인 더위를 생각하면 차라리 선선하고 좋은 날이다.
늑장을 부리는 꼬맹이들을 독촉하는 한국 엄마^^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로비앞에 벤이 도착했다.
애들은 오늘 또 벤 타고 어디가냐고...
어제 질리도록 탔으니... 그런데 어쩔 것인가 오늘도 이걸 타고 2시간 정도 가야하는디.
팔라완은 동북에서 남서로 긴 섬인데, 그 한 가운데 그것도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도시가 푸에르토프린세사다.
우리가 오늘 가려는 지하강(언더그라운드 리버)는 북쪽 바다인 사방비치로 가야하는데,
약간 과장하자면 중간에 산맥을 넘어야 한다. 직선거리도 만만치 않지만, 좁은 산길을 달려야 하니 오늘도 좁은 벤에 묻혀 비오는 팔라완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우리 차에는 다국적한 분위기... 미국에서 온 부자(아들이 내 또래였으니 아버지는 연로하시지만 건강해 보였고 농담을 잘 했다)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우리가 신청한 지하강투어 대행 업체는 푸에르토프린세사 공항 인근에 있는 "플로랄 투어"라는 곳인데, 젊은 남자 가이드가 안내를 했다. 물론 올 잉글리쉬^^
너무 나대지 않고 자분자분 설명도 잘 한다. 더러 차안 전체를 박장대소하게 만들기도 하고... 우리 가족만 빼고 말이다.^^
그는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일종의 "욜로"족.
불과 며칠 전 사방비치로 가면서 보이는 트레킹코스를 다녀왔다면서 폰 속 사진을 보여준다. 몇 박을 산에서만 하면서 초췌해진 모습의 사람들이 보인다.
부럽다...
어느새 사방비치에 도착.
비는 그쳤지만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지하강으로 가는 방카를 타기 위한 선착장엔 예전보다 관광객이 많이 줄어 있었다.
선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호를 만들고 있는, 완만한 사방비치에는 가마우지 두 마리가 노닐고...
참 한가로운 풍경이다.
같은 팔라완인데도 남쪽 바다와는 물 빛부터 파도의 느낌까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저 멀리 이어진 육지와 하늘, 바다, 그 가운데 떠 있는 방카까지 참... 좋다.
햇살이 가득했던 날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예 한산한 곳은 아닌지라...
약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러고보니, 예전엔 반드시 본인이 본인 신분증을 들고, 시청(시티 콜로세움)에 들러서 지하강투어 신청을 하고 인지를 발급받아야만 했는데, 이번엔 그런 절차없이 바로 여기로 왔다.
그새 정책이 바뀐 건지... 아님 그때 우리를 안내한 친구들이 잘 모르고 그런 건지...
여튼 번거롭게 새벽부터 시내 중심가의 시청에 갔다가 다시 산을 넘어오지 않아서 좋았다.
이 부분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얘들아, 지루하니?
짬만 나면... 우리 가족은 입에 달게 되는 말...
어디 망고쥬스 파는데 없나?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모든 장소에는 망고주스 파는 곳이 꼭 있다.^^
망고 천국 필리핀!!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나보다. 가이드가 부른다.
늘상 그렇듯, 일행들 맨 꽁무리를 따라 방카로 간다.
출발~
식구들은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없다. 다만 박쥐를 볼 수 있는 동굴이라고만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정보가 많아봐야 선입견만 생기고 원래 영화도 줄거리 모르고 봐야 더 재밌는 거잖나.
출발하기 직전 먹던 망고주스를 다 마셔가니,
벌써 도착이다.
가이드가 촌스런 컨셉 촬영을 강요한다. 못이기는 척... 그래도 이런 게 남는 거란다.
그때다. 경고문으로 절대 손대지 말라고만 되어 있던 코모도 도마뱀이 나타났다.
느릿느릿 걸어가지만 맘만 먹으면 잽싸게 깨물고는 휑 사라져 버린단다.
꼬맹이들은 야생 동물을 만나면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좋아한다. 아빠한데 찍으라고 난리 난리...
근데 얘들아, 도마뱀에 초점 맞춘다고 니들이 좀 흐린데... 상관없지?^^
지난 번엔 모든 게 낯설어서 그랬는지 방카도 아주 오래 타는 것 같았고, 배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간 것 같은데, 두 번째라서 그런가 뭐든 짧다.
금새 지하강 인근까지 도착해 버렸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없으니 금새 차례도 돌아온다.
같이 벤과 방카를 타고 움직인 일행들이 다시 동굴로 들어가는 배에 같이 올랐다.
맨 앞이 미국서 온 부자고 그 다음이 우리가족, 그리고 맨 뒤는 자카르타 출신들인데 지금은 영국인지 어딘지 유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람들이다.
가이드는 우리 카메라를 달라고 해서는 곧잘 사진을 찍어준다.
지하강은 여전했다.
사실 내가 정말 가족들과 함께 누리고 싶었던 건, 맑디맑은 지하수와 바다가 만나는 경이로운 물 빛이었는데... 어제 폭우로 온통 흙탕물이 되어 있었던 점이 아쉬웠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댔나?
지난 해 그 어렵다는 천왕봉 일출을 맛봤으니 우리 조상님들 3대 덕은 증명이 되었는데...
스콜이 잦은 이곳에서 지하강의 맑은 물빛을 만나려면 도대체 몇 대가 덕을 더 쌓아야 한단 말인가^^.
일상의 어떤 순간도 다 조건과 시간, 특히 내 정서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되고 그에 따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리라. 5월에 와서 만났던 지하강은 나의 지하강이고, 우리 가족들에게는 또 이런 흙탕물이지만 그것대로의 지하강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뭐.
이런 역동성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같은 곳을 다시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 이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지난번엔 촬영을 해야한다는 강박으로 카메라 노출 조절하느라 제대로 누리지 못했으니 이번엔 되는대로 사진 몇장만 찍고 오롯히 눈에 담는 걸로...
어두운 곳인데다가 박쥐들이 날아다녀서 애들이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어른들 보다 더 잘 즐긴다.
동굴 천장 가득 붙어 있는 박쥐들을 보면서는 심지어 귀엽다는 둘 째.
둘째 녀석은 동물을 만나면 뭐든 친구라 생각하는 듯^^
그다지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아쉬워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잘 데려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빠하고 다니는 여행이...
좀 고달파도 일상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코모도 도마뱀이나 박쥐 떼, 두동가리 같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고 기억해 주길 바래본다.
아빠는 그냥 사랑하는 너희와 함께 하는 거라면 뭐든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방향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아서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