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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Dec 29. 2017

팔라완 여행 22_ 파손된 유리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2016.8.22

오늘 밤 자고 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보면 파란만장했던 여행이지만, 가족들끼리 의기투합으로 모든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던 것 같다.... 라고 하기엔,

호텔에 도착해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지하강투어 출발 전에도 호텔 매니저와 잠시 만났다. 
전날 밤 욕실 유리 파손 경위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오후에 시간을 좀 내 달라 했었지만, 불편을 준 것에 대한 보상문제를 얘기하려는 건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행기간 : 2016.8.16 ~ 8.23
작성일 : 2017.7.19
동행 : 마눌님, 두 꼬맹이들
여행컨셉 : 가족여행






지하강에 짚라인까지 대만족의 하루를 보내고 우선 샤워부터 하려는데, 도착하자마자 매니저가 잠시 와 달란다.
간단하게 씻고 나와서 애들에겐 수영장에서 놀아라 하고는 부부가 매니저를 따라갔다.
2층에 있는 회의실로 가니 두 명의 다른 매니저가 이미 자리하고 있다.
무거운 표정들을 보았지만,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구나 싶었을 뿐...

정장 차림의 세 여인(매니저 나이는 다양했다)이 하는 말은 잘 통하지 않는 영어였지만, 파손된 유리 공사비를 우리가 부담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오후 3시경부터 릴레이 협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만해도 호텔측에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관리가 되지 않은 시설물이라 누구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어필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아, 정말 이럴땐... 왜 사람들이 가끔 "사장 나오라 그래~" 하는 지 이해가 되는 그런 순간이 왔다.
실상 이들은 월급 받는 사람들이고, 스스로 부실 관리를 인정하게 되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렇더라도 봉변을 당한 고객한테 금전적 책임을 전가하는 것까지 오냐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
이들은 실제 메뉴얼대로만 언급을 하는 것 같아서, 호텔 사장한테 전화해라고 했다.

잠시 통화를 하고 난 매니저는 우리더러,


사장님은 법대로 해란다. 고객이 계속 고집을 피우면 경찰을 불러라고 전하란다.


허걱!!

애초에 이 사람들의 목적이 협상이 아니라고 본 우리들은 영사관으로 연락을 했다.
영사관은 오후 4시반이면 직원들이 퇴근을 해서 당직자 한 명만 근무중이라서 자세한 상담이 되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우리나라 영사관이 우리편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긴 했는데... 우리편이 아니라는 건 오버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당직자의 말은,


필리핀 호텔에서 요구하는 금액을 주시라. 아니면 법정까지 가야하는 문제가 되고, 그들은 한국인들이 체류기간이 짧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억울하지만, 그게 최선이다. 비슷한 건이 많이 접수되는 상황인데 우리도 대부분 그렇게 안내를 해 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라는 거였다. ㅜㅜ 이런...

그래도 도저히 억울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우리 부부.
좋다. 그럼 나머지 가족들은 먼저 집으로 보내고 나혼자 남아서라도 끝까지 해결을 하리라 맘을 먹었고, 관련한 체류비나 내가 받을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책임을 묻겠다는 얘기까지 했는데, 

매니저 중 가장 나이 어린 친구가 "그래라"고 한다.
그리고는 경찰한테 전화를 했다.

음...
이게 사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행 막바지에 갑자기 이게 무슨 변인지...
몇 시간 째 애들은 물놀이만 하고 있고, 가끔 젖은 수영복 바람으로 회의실까지 올라와서는 언제 끝나냐고 묻고는 다시 가서 놀기를 반복...

이 모든 문제가 혹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는 문제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흥분하니 더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늬앙스까지 제대로 전달할 통역이 혹시 없냐고 물었더니,
마침 호텔 투숙한 다른 한국인이 있단다. 그리고 곧잘 영어를 하는 것 같으니, 룸에 있으면 좀 도와달라 말해 보겠단다.

그렇게 불려서 회의실로 안내된 분은 우리 또래 여성 한 분과 우리 큰 애보다 약간 커보이는 꼬마다.

매 방학이면 6학년 아들을 마닐라로 어학 스쿨에 보내고 있다는 분인데, 
실제 통역은 6학년 꼬맹이가 맡기로 했다.
영어 실력이 좋다기 보다는 쉬운 단어로 필요한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친구였다. 매니저와 꼬맹이의 대화는 따로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대충의 상황을 얘길했고,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1만 페소", 우리돈으로는 당시 24~25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하라는 게 맞았고, 자신들의 관리 부실 문제가 아니라 이용자의 부주의로 파손을 한 거라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내가 핸드폰으로 찍은 당시 상황 사진을 보여주면서 우리 쪽 주장을 전달토록 하자, 한참을 듣기만 하던 통역사의 어머니^^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같은 동포라서가 아니라 객관적 상황으로 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우리 가족들은 장장 4시간을, 생면부지의 이 한국인 가족들은 1시간 동안의 긴 토론 끝에 경찰을 불렀던 것도 취소를 하고 "2,000페소"를 우리가 지불하는 것에 합의를 했다.
다소 억울한 면이 있었지만, 외교부의 말이나 도와주러 오신 분의 말이나 이게 최선인 듯 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호텔 측에서 미안해서 디너 뷔페권이라도 증정하면서 무마할 사안을 이렇게 금전 보상까지 하게 되니...
그래도 당황스럽던 상황에서 우군을 만나 한화로만 20만원 정도를 절약하는데 성공한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우리야 그렇다치고 이분들은 또 무슨 죄로 여기 붙잡혀서 간만의 가족여행을 이렇게 해괴하게 보내야 하는 건지...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 대접을 해 드리기로 했다.

우리도 네 가족, 이들도 네 가족. 비슷한 나이의 아들만 둘^^
이렇게 여덟 식구가 선택한 곳은...
그렇지. 무난한 제리스그릴^^
각각 트라이시클을 잡아타고 어제 갔던 로빈손몰로 이동~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하루종일 좋아하는 물놀이를 원 없이 했던 우리 꼬맹이들은 갑자기 생긴 형아, 친구들과 같이 밥 먹으러 간다니 그저 좋단다. ㅋㅋㅋ


경기도 용인 수지.
고마운 마음에 남편분에게 전화번호도 받았다.

방학만 되면 엄마와 아들이 같이 마닐라로 어학연수를 온 다는데, 아예 아파트를 하나 잡아서 엄마는 애들 뒤치닥거리를 하는 방식으로 같이 한 달 정도를 지낸단다. 벌써 3번째라고...
고작 몇 달 띄엄띄엄 마닐라로 어학연수를 온 것 치고는 영어 실력이 좋다면서 우리들에게 이런 영어 교육 방법을 권한다^^
우리야 뭐, 방목이 교육 컨셉이라...
 
이번 팔라완 여행은 홀로 남은 아빠가 휴가를 받아서 건너온 김에,
국내에서 오려면 직항도 없어서 꺼릴 곳이지만 마닐라에서 출발하니 한 번쯤 팔라완에 가 보자고 해서 온 거란다.

자기들이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니 다행이고, 특히 애써 고생해서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보람도 찾게 되어 우리더러도 고맙단다^^.
서울 경기 쪽 과외나 사교육 분위기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현실을 마주한 건 처음인데... 아주 특별한 케이스도 아니란다. 돈도 별로 없는 일반 가정에서 이 정도지 더 심하다고 언질을 준다.
 
먹성 좋은 머시마들이 넷이나 되니 거하게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우리 가족의 팔라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니... 놀라울 뿐이란다.
우린 윗지방의 사교육 붐이 더 놀라울 뿐인데...^^
  

저녁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된 꼬맹이 넷은 돌아오자 마자 같이 풀에서 놀기로 약속까지 했다.
우리는 "아지자 호텔"에 만정이 떨어졌지만, 억울한 만큼 최선을 다해서 즐길 것 다 즐기자는 심정으로 밤늦도록 노니는 걸 허락하고...^^

그렇게 아빠들까지 6명이서 놀고 있자니, 용인댁(?)이 집에서 사온 귀한 컵라면을 들고 내려온다.
 

그렇게 먹고도 금새 배가 꺼진 꼬맹이들...
그보다 빨간 국물의 컵라면이 얼마나 맛났겠는가.

한가지 팁을 말하자면,
여행보험을 가입하고 왔다면 이런 금전 배상에 대한 부분까지도 보험처리가 된다. 물론 보험금 지급을 받으려면 실제 공사를 언제 어떻게 진행했다는, 즉 우리가 손해 본 금액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쓰였다는 것까지 증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육하원칙에 맞게 당시 정황을 자세하게 적어서 보내기도 해야하고... 
또 하나 핸드폰을 물에 빠트린 것도 보험 적용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핸드폰은 2년 넘게 사용한 것이기도 하고, 이날 배상책임을 진 건 아주아주 억울한 거지만, 실제 지불한 돈은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니라...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도 우리 여행의 추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사람 착한 용인시 한 가족과도 친구가 되기도 했고^^. 굳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면 이미 보상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당시에는 "아지자 호텔"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인터넷상에 욕을 해대리라 맘을 먹었지만... 차츰 분이 삭으면서 꼭 그럴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단기 체류로 휴가를 즐기는 여행객이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손해배상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오너의 마인드는 너무 밉지만, 그런 오너들 밑에서 지시를 받고 있는 매니저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곤혹스런 상황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지만, 본인들이 생각해도 억지 주장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배상 요구를 하고 있다는 자괴감 같은 걸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지자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할지라도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필리핀의 관광산업의 수준인 거지, 특정 호텔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더니 독기 품은 마음이 좀 누그러졌달까.

여튼 길고 긴...
정말 새벽부터 밤까지 끊임없는 일이 이어진 하루,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우린 늦게까지 쭉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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