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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Dec 30. 2017

팔라완여행 23_아지자 조식, 미운 만큼 다 먹어준다

2016.8.23

아지자 호텔은 호텔x닷x 에서 미리 예약을 했었는데, 팔라완 호텔 중에서는 꽤 가격대가 있는 수준이었다. 
따지고 보면 원래 방값에, 배상금 5만원 가량, 거기다가 즐거운 저녁이긴 했지만 예상 외의 식사비까지...
계획에 없던 지출을 초래했으니, 이게 다 말도 안되는 아지자의 요구 때문이라는 생각에 우린 있는 동안 최대한 모든 서비스를 맘껏 이용하리라 맘 먹게 된다만...
 




여행기간 : 2016.8.16 ~ 8.23
작성일 : 2017.7.20
동행 : 마눌님, 두 꼬맹이들
여행컨셉 : 가족여행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오전 7시20분.
최소한 보딩 마감시간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는 게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아지자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공항 샌딩 벤의 첫차 출발이 새벽 5시다.
그래서 자는 놈들 거의 들쳐 업다시피 해서 로비로 끌고 나왔다.
 




팔라완 여행의 대중화 가능성


막상 벤이 도착하니 승객이라고는 우리만 달랑^^.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가 이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꼭두새벽부터 잡아 타는 사람들은 없는 거지. 우리처럼 마닐라에서 트랜짓을 해야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모를까. 
그만큼 여긴 아직 한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직항이 구비되어야 여행의 선택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 
보통 우리가 직항지로 아는 곳들은 그만큼 여행객이 많이 찾으니까, 즉 수요가 많으니까 노선이 생긴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 
지금 직항 노선들이 새로 생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즉, 직항이 생기면 수요가 따라온다.
여행업계에서는 충분한 여행 인프라, 풍부한 레져 및 관광 자원, 저렴한 물가, 되도록이면 가까운 거리 등등, 수요가 금새 따라올 만한 곳을 전방위로 물색하고 최적지 인근 공항에 노선을 증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세부, 보라카이, 다낭, 코타키나발루 등의 동남아 유명 관광지는 다 그런 사례들이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 중에서 그나마 제반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있거나, 갖추는데 드는 매몰 비용이 다소 적은 곳을 상대로 수요 예측을 한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누구보다 먼저 여행 수요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매몰 비용만 치르고 수요가 금새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종의 모험이다.)을 골라서 직항 항공편을 그 도시의 공항에 깐다. 
물론 이렇게 노선 하나 증설하는데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실행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시장 형성의 안정성이 엿보이기 훨씬 이전에 이런 작업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수요 예측은 거의 도박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이쪽 업계가 진화하는 방식이랄 수 있겠다. 

만일 성공적인 투자가 이뤄졌다면 수요창출의 스타트 곡선이 시작되었다가 피크를 칠 때까지는 꽤나 이익률이 좋다. 그리고 틈새시장으로 진입하는 후발 주자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어느새 이익률의 하향 곡선 주기로 접어들고, 다시 신규투자처를 물색하는 일련의 거대한 사이클... 
바로 뫼비우스의 띠같은 게 이 바닥의 생리로 보인다. 어느 산업계나 비슷하지 않을까 마는...

여기서 하나 짚어할 점은 최초의 진입 업체는 선점의 혜택을 누리기 위한 초기 투자비가 상당하다는 점과 그런 투자 이후 무조건 수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조심스런 점이긴 하다.
그래서 공간적 확장 시기에는 실질적이든, 정보들을 공유하는 노련한 방식이든, 컨소시엄(?)에 버금가는 형태로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우선 독박의 불안함이 없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항공사나 대형 여행사가 특정 지역에 쏠린다는 말은 시장에 공급되는 유행 상품이 바로 그 특정 지역이 된다는 것.
기존 상품 진열만 하고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을'의 입장인 영세 여행사들(소매업이라 보면 이해가 쉬울 듯)은 이 새로운 지역의 수요 창출에 몰두할 수 밖에 없으니('갑'에 의한 강압적 요소도 없지 않고), 대형 여행사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시기 새로운 지역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요 예측도 가능하고...

시장의 상품 종류가 공급에 의해 주도되고 한 종류(지역)의 상품이 일정한 사이클에 따라 흥망성쇠의 단계를 거치는 것, 마치 스타크래프트 유저가 새로운 기지를 점령하고 자원을 채취하면서 성장하더라도 또 다른 콜로니즘 확장을 하지 않으면 결국 승리를 도모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니 매우매우 현지에 대한 착취의 형태를 뛴다 할 수 있다. 

이런 착취를 견딜 만큼 화수분같은 생명력을 가진 곳(발리, 시엡립 등)이나 여행업계에 의해 발굴된 곳이 아닌, 즉 관광업이 전체 도시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소 낮은 곳(마닐라, 방콕, 호치민 등 각 나라의 수도들)들은 치고 빠지는 곡선의 피해를 덜 받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어디 이게 여행업계만의 문제인가, 원주민의 정주권을 앗아가는 뉴타운 방식의 재개발 지정구역 안에 사는 사람들이나 개발 광풍으로 조상 대대로 농사짓던 산천을 헐 값에 매각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이촌향도 해야하는 사람들은 어제 오늘의 풍경이 아니니...
 
여튼 팔라완도 "물색" 담당자의 입장에선 꽤 괜찮은 입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직항 노선이 없다. 초기 투자비를 분담하고 그 투자비를 회수할 여행 사업 모델이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 보이는데, 더 뛰어난 예비 수요처에 이미 많은 물량이 투하되었다거나 아직 다른 지역의 이익률이 크게 하향곡선으로 접어들지 않았다거나... 등의 여러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튼 이번 여행은 여행업계의 눈으로 보면


직항이 없는 곳에 한국인도 없다.


는 정답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새벽 5시 땡하면서 출발했는데도 공항엔 사람이 없다. 
심지어 공항청사의 문도 잠겨있다. ㅜㅜ
우리만 아직 동도 트지 않은 공항 앞마당에 저러고 있다는... 

5시 반 쯤 되니 공항청사도 오픈 한다. 
우리 가족이 공항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맨 먼저 들어선다. 색다른 경험 참 많이 한다.
그리고 10분만에 공항세도 납부하고, 보딩패스도 끊고. 항공사 직원이 보딩 패스를 내 주면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마닐라에서 연착 출발하는 바람에 9시나 되어야 보딩이 가능하단다.
허걱!.
마닐라발 부산행 비행기는 오후3시니까 트랜짓 시간에는 별 문제 없지만... 여기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니, 자는 애들 들쳐 업고 왔는데...
이때 마눌님이 기가막힌 묘안을 제출하신다.^^
  
 

여긴 다시 아지자 호텔. 
우린 막 공항에 손님을 내려주고 있는 트라이시클을 잡아 탔다. 그리고 아지자호텔로 가달라 한다.
뭔가 억울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지자 호텔에서 이미 체크아웃까지 했지만, 원래 요금에 포함된 조식을 꼭 거기서 먹자는 아이디어^^.
 

공항 인근에서 밥을 먹는 게 어쩌면 더 편하고 택시비까지 생각하면 더 이익일 수도 있겠으나(결과적으로는 호텔 조식을 공짜로 먹고 트라이시클 두 번 타는 게 훨씬 이익이더라는...), 우리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게 주안점이라 호텔 도착 후, 바로 조식당으로 갔다. 
식당도 막 오픈한 상황^^
 

입구에 저렇게 여러가지 색으로 팬케이크를 구워주는데 무려 3장이나 시켜서 먹었던 것 같다. 
애들은 왜 그렇게 아침 일찍 깨워서 공항에 갔는지, 
그러고는 왜 다시 호텔로 왔는지, 
어른들 하는 일이 뭐 이런가 싶은 표정이었지만, 저 팬케이크 앞에서 무장해제^^
 

형에 이어 그렇게 자기가 기다려서 얻어 낸 둘째 녀석의 저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란...


도대체 이렇게 이쁜 걸 어떻게 먹어?


엄마한테 포장해서 집에 기념품으로 들고 가자던 녀석은...
 

되도록 저 지팡이 든 소년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먹더니, 

결국 눈동자 하나만 남았다^^
그걸 어른들 몰래 주머니에 넣더라는... ㅎㅎㅎ
 

실컷 먹고 다시 트라이시클을 타고 공항에 왔는데도 8시 전. ㅜㅜ
예상했던 대로 2시간 연착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렸던 것 같다.
 

공항 한쪽에 정말 조그맣게 어린이 놀이 시설이 있다.
우리 애들이 놀기엔... 더 어린 애들을 위한 곳으로 보이긴 한데... 그래도 여기 공항에서는 가장 나이 어린 이놈들이 지겨움을 견디다 견디다 결국 저기라도 들어가서 뒹군다 ㅋㅋ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는지...
필리핀에서 비행기 연착은 당연한 거라 여겨라는 말 답게 누구 하나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겨우겨우 필리핀에어에 올라탔고 1시간 남짓 비행하고는 

익숙한 마닐라 국내선 청사에 도착.

이젠 뭐 동네 슈퍼 가듯 식구들끼리 알아서 척척... 아빠의 존재감은 살짝 희미해지누만 ㅠㅠ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연착이 되는 바람에 잠시라도 마닐라의 바깥 공기를 쐴까하던 계획은 취소하고 청사에서 마지막으로 핫도그 하나씩으로 필리핀과의 석별의 정을 대신한다.
 

이번 여행 재밌었어?
라는 물음에 저런다.
우문현답. 
모양빠지게 한 마디 더한다. 

아빠하고 여행하면 원래 재밌어~

이제 저 비행기에 오르면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늘 그렇듯 미묘한 감정.
 

갑자기 기내 방송으로 지들 이름이 나오니 신기하다고 난린데, 실은 아빠도 신기방기^^
손을 들었더니, 애들용 기내식이 따로 있다며 갔다 준다.
 

그리고 아동 기내식 선물이라며 봉지도 하나씩...
안에는 세면도구가 들어있다.
근데 내가 비행기 예약할 때 이런 걸 신청한 기억이 없는데... 그냥 애들 연령을 보고 알아서 지급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근데 왜 갈때는 없었지?^^ 
몰라... 여튼 전체 좌석 중 우리 애들만 이런 특별 선물을 받는 기분은 좋았다.
 

아동용 선물 말고도 황홀한 노을을 맛보게 해 주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해 준다.
 

노을보다 더 환한 이 사람들의 미소까지...
 


당신도 어설픈 여행 설계에 아무 불평없이 잘 따라준다고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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