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19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8.26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핀즈베리 파크는 제법 넓었다. 푸른 잔디가 쫙 깔려있고, 고즈넉하게 오솔길이 이어졌다. 참나무 종이 많았고 상록수들도 보이긴 했다.
수종은 넓은 면적을 독차지 하도록 널찍하게 심겨져 있었는데, 아름드리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운치를 더했다.
공원 뿐만아니라 길가에도 크고 나이 많은 나무들이 줄 지어 있는 모습이 보기좋았다.
우리의 가로수들은 이렇게 굵은 나무들이 참 귀하다.
어릴 때 동네마다 있던 수양버들이며 거대한 소나무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새롭게 도로를 내었다가 뜯었다가 하거나, 재개발한다고 동네 전체를 들어내고 아파트를 올리면서 나무때문에 길을 돌아낸다거나 하진 않는다.
그렇게 새로 만든 도로며, 아파트단지에도 제법 높은 나무들이 재배치된다. 얘들은 기업적 양모장에서 급하게 공수해 온 것들이고, 싯가가 기 천만원을 호가하는 것들도 있다.
기존에 있던 나무를 파내고 살려서 옮기는 것 보다, 1년에서 몇 년까지 생육에 대한 보장 혹은 보험이 가능한 이런 나무가 건설 비용면에서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나무들은 폐자재와 비슷한 취급을 당하고 사라진다.
낙동강에서 봤던 아름드리 버들만 해도... 남지의 버들 군락, 임해진의 버들 군락, 내성천의 그 오래된 버들 군락들은 기계톱에 둥치만 남거나 둥치 마져 뽑혀져서는 폐목재와 함께 방치되거나 깊숙한 곳으로 옮겨져 분쇄기에 빨려들어 가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강이나 아파트 단지, 새로 생긴 도로에는 야리야리한 어린 가로수들이 다시 심겨진다. 2주 전 쯤 폭염 주의보가 내려졌던 날, 물금에서 함안보까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길을 갔던 적이 있다. 어디 한 군데 쉴만한 그늘은 없었다. 이제 갓 심은 나무들은 더위 속에 나보다 더 지쳐 보였고, 물가에 심어서는 안되는 나무들이 심겨져 고사한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내 손목 굵기나 될까 싶은 어린 나무들은 더위에, 땅 속 물기에 못견디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애들도 그렇게 자라나서 다시 높고 굵은 나무들이 되길 바라지만, 언제 또 무슨무슨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싹 걷어내고 또 다른 어린 애들로 교체할 지 알 수 없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런던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로 한 노인이 유유자적 길을 걷는다.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런던에 다시 가로수를 심었겠지. 아마 그가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가 꼬맹이 시절, 벌써 제법 자라난 저 나무 그늘들 사이를 지나 다녔을테고. 이 나무는 그가 자라고 늙어가고 아들과 손자들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까지 한 자리에서 꾸준히 지켜봤겠지. 한때 그가 짝사랑했던 여자애의 이름을 나무 어딘가에 새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그의 마음에도 나무의 생채기에도 그때의 흔적이 희미해졌겠지만... 여느때와 같이 오늘도 그 늙은 나무 아래 노인은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일상 속에 거대한 생명체가 흔하게 보이는 건, 실용적인 면은 물론이고 우리 정서에도 바람직한 것 같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더.
우린 그걸 포기하고 다른 걸 선택했다. 그 선택이 강요된 것이겠지만, 이제는 누구도 또다른 길을 요구하지 않는다. 태어나서부터 신도시에 자라난 내 아이들은 송충이가 득시글했던 소나무와 축축 늘어져 이른 봄이면 연두빛 잎들이 꾸물거리던 그 커다란 수양버들의 기억 같은 건 애초에 없다. 기껏해야 2층 3층 높이의 벚나무가 가장 거대한 생명체이리라. 그의 삶에도 영향을 주지 않고 그도 그 나무의 삶에 관심이 없고... 한 아름으로도 허리를 다 안을 수 없는 큰 나무들이 갖가지 모양과 상상을 자극하는 모습으로 새벽 어스름의 실루엣으로, 대낮 그늘로, 밤길에 나타나 친근함이나 경외감을 주는 대상으로... 그런 거리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여기 런던의 한 귀퉁이에 아니 런던 전역에 아무렇게나 생겨서 굵어진 나무들 아래 걷고 있는 이들이 부러운 이유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공원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이 녀석은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예전에 상원사 위 적멸보궁에서 만난 다람쥐 같다. 누구하나 괴롭히는 사람없고, 불자들이 태반인 등산객 모두가 먹을 것을 주니, 사람을 무서워하기는 커녕 지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던 그 놈들말이다. 청설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이 놈들도 거대한 생명체(우리)가 일상 근처에 있다는 것 말고는 공포감을 가지고 우릴 대하지 않았다.
공원의 중앙 쯤에 이런 인공 호수가 마련되어 있다. 영국인들은 인공호수를 정원 안에 두길 좋아하는 것 같다. 거기 떠 다니는 새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정착 저 오리류들은 이른 시간 호수 옆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독차지하고 돌아다녔다.
호수 안에서는 어렵사리 물닭 한마리가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