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 민스미어 05_자전거 도시, 런던

2013.4.19

by 조운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8.26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런던의 자전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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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도로를 사이에 두고 게스트하우스 건너편은 예술관련 대학이 있었다. 서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이내 큰 도로를 만나는데, 큰 도로라고 해도 4차선이고 차선이 좁아서 그렇게 넓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지내는 동안 런던에서 4차선 이상의 도로를 만나진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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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버스가 다니기 위태롭게 보일 정도로 도로가 다들 좁았다. 그래서 어딜가나 우리나라 중소도시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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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출근하는 사람들의 바쁜 모습은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런던 자전거 타기 정책>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우선 모든 자전거 라이더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로 다니는 자전거는 없었다. 모두 차도의 가장 바깥쪽 차선을 이용했다. 우리도 그렇게 타는 경우가 있지만, 차량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인도쪽 노란선 안쪽, 아니면 거기에 바짝 붙어서 주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그랬다가는 빵빵대는 차량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창문을 내리고 욕지거리하는 운전자와의 대면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당당하게 자전거가 한 차선을 그대로 차지했다. 차량은 자전거가 없을 때는 그대로 주행을 하지만, 자전거가 다닐 때는 그 뒤를 따르거나 다른 차선을 이용해서 추월하기만 할 뿐 일절 빵빵대거나 하지 않았다. 자전거 이용률을 올리기 위해서 따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전거에게 한 차선을 내어 주는 정책을 펼친다? 이게 오히려 이상적이지만, 신선했다.
자전거가 없으면 차량은 제 속도로 가면 되지만, 자전거가 있으면 자전거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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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저 그린 존(Green Zone)이다. 교차로 정지선 맨 앞에 자전거가 설 수 있는 곳을 존으로 설정해 두고, 차량은 그린 존 앞에서 신호대기를 해야한다. 자전거들은 차선에 상관없이 존 안에 쭉 서 있다가 신호가 바뀌면 차량들 보다 먼저 출발한다. 다시 자전거가 가장 바깥쪽 차선으로 주행을 시작하면, 그 뒤에 차들은 자기 차선에서 속도를 올려 지나간다. 어차피 스타팅은 자전거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교통 흐름에 방해를 주지도 않는다.

멋졌다.
어느 순간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시를 다시 찾아오는 이 기발한 방법은 시스템이나 예산을 크게 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인식을 전환하는 방식이며, 거부감이 크지 않은 방식이었다. 도로의 물리적 구조나 시스템의 전환보다 이런 연착륙 정책이 행정의 의지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자연스레 정착되면 성공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좁은 런던 도로에서 가능하지 않은 자전거 전용도로 같은 방식보다 훨씬 괜찮지 않은가.

한 두 해 전, 후배들 모임에 갈 일이 있어서 집에서 모임 장소까지 한 시간 정도를 자전거 타고 간 적이 있다. 그렇게 나타난 나를 두고 여자 후배 몇 명이 그러지 말라고...
차 몰고 가다가 그런 자전거 만나면 정말 짜증난다고...
한 바탕 설전을 벌인 기억이 있다. 도로가 마치 자동차들의 전유공간인 듯한 인식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 실상 차도는 자전거, 우마차, 오토바이 모두가 이용하도록 되어 있고, 특별히 자동차 전용도로라고 해서 자동차만 운행할 수 있도록 한 도로가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자전거를 차도에서 타는 건 정말 위험 천만한 일이다. 아주 위협적인 차들도 많고 그런 사고도 빈번하다. 불가피하게 자전거가 인도로 다니다가 행인을 치는 사고도 많다. 대책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서 실제 그렇게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에는 버젓이 불법 주차 차량들이 있고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경우가 있거나 중간 중간 끊어지고 짧은 구간만 생색내기로 설치된 곳도 많다. 재밌는 건 그렇게 자전거가 도로에 나다니는 걸 짜증내다가도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만나면 별로 짜증내지 않는다. 그냥 피해 갈 뿐이다. 어느 쪽이 더 잘못인지는 더 견주지 않아도 다들 잘 알지만, 인식 변화를 줄 만한 건강한 정책 의지와 유도책을 만나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런던은 평지가 많아서 자전거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이 좋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경우 언덕이 너무 많아서 자전거가 교통 수단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그 유명한 언덕 전차를 개조해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했고, 급경사의 몇몇 언덕들만 그런 전차 또는 트램을 도입한다면, 부산같이 언덕이 많은 도시도 충분히 자전거를 대체 교통 수단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이건 행정의 의지 문제이지, 가능성 타진의 문제이거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차량으로 점령당한 도시를 되찾는 방식으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트램이다. 지하철처럼 천문학적인 건설비용이 들지도 않고, 유지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게다가 대구지하철화재 사건같은 위험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큐슈의 가고시마 같은 곳은 오래전 도시화를 겪으면서 형성한 촘촘한 도심 전차를 지금까지 잘 운영하고 있다. 그냥 잘 운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교차로에서 전차에게 최우선의 진입 권리를 주면서 느리지만 목적지에 더 안전하게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통사고의 위험률도 떨어뜨리고 도심의 대기환경이나 주차난 등, 각종 교통문제를 확 줄일 수 있는 이 멋진 전차를 왜 없애고 그 자리에 기껏 한 두 차선의 차도를 만들겠는가?
이건 런던의 명물 2층버스가 단순히 명물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작은 에너지, 더 적은 환경 비용으로 더 효율적인 대중교통 망을 추구하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브라질 꾸리찌바의 "굴절버스"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은 트램과 자전거를 결합하는 모델을 교통난 해결의 핵심 전략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으로 사례가 드문 뛰어난 산, 바다, 강을 모두 품고 있는 도시, 산복도로 같이 시가지 자체가 관광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 부산이다. 지하로 다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이동형 테마 관광 자원이 지천인데, 기껏 2층 버스 몇 대가 관광객을 태우고 다녀서는 그 가치를 충분히 활용한다고 할 수도 없다.
전차나 트램으로 일상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다 같이 이런 가치를 누리도록 한다면, 또 다른 부가 창출과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환경적, 경제적, 안전상의 조건들이 모두 월등한데도 정책 방향은 대체로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전거를 중심에 두어도 갑작스런 변화로 불만과 거부반응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런던의 실험이 충분히 입증해 주고 있었다.

상대적인 교통 약자인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은 약자들이 더 행복해 지도록 노력하려는 공동체, 행정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약자들이 손해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환경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는 길이다.
최근 오존 농도에 대한 경보가 적색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뉴스가 잦다. 오존을 만드는 주요 원인 중에 차량 배기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도시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건강, 비용면에서 손해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발상도 일리기 있긴 하다.
'도시에서의 삶이 위험하고 건강에 해로우면 시골에서 살던가' 라는... 근데 도시에서의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는데도 무시하는 건, 행정의 태만이다.
어쩔수없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서민들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도시를 누리게 할 방법을 외면하는 것, 이건 인권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타국은 무조건 옳고 우리나라는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불평하는 듯 해서, 글을 쓰면서도 괜한 오해를 부를까 저어되긴 한다.
글의 의도는 "부러움"이다. 자전거에게 한 차선을 주는 것이 짜증나는 일이 아니고 크락션을 울려대야 하는 일이 아닌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도시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한 부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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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자전거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런 자전거 거치대야 우리나라에도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저 사진을 담은 이유는 거치대 때문이 아니다. 거기 있는 자전거들 때문이다.
설핏 봐도 10년 이상 되어 보이는 저 철이나 크로몰리 재질의 얄삭한 프레임을 보자.
가끔 최신형 알루미늄이나 카본 자전거들도 보이긴 하지만, 70~80년대 생산된 듯한 철 소재의 자전거가 많았다. 심지어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러그드 방식"으로 프레임을 연결한 자전거들도 수두룩했다.
우리의 자전거 문화는 동호회 문화로만 쏠리고 있진 않을까? 자전거를 대체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힘든 조건에서 여가 취미로 일환으로 시장이 형성되었고 수많은 동호인들은 강변에 새로 조성된 자전거길이나 산악 트레킹 도로를 따라 주말이나 휴가때 자전거를 탄다. 그게 잘못된 현상은 아니지만, 그러다보니 생활도구가 아닌 취미와 마니아를 위한 고가, 트렌드 중심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경향도 있다는 거다.
나도 철인대회 참가를 위한 카본 프레임 사이클로크로스가 있다. 이건 속도를 위한 취미용 자전거이다. 하지만 투어링 사이클도 있다. 도난당하기 전에는 하이브리드도 있었다. 모두 철 자전거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려면 매일매일 타야하고 자동차 10년 타기처럼 오래되어도 변형이나 피로도에 강한 철 재질의 자전거가 제일 유리할 수 밖엔 없다. 스피드를 관건으로 업힐이라는 목표를 위한 경량화나 고급화의 필요성도 별로 없다.
생활 자전거가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나라에선 생활 자전거는 비동호회적인, 사구려의 부식이 잘 되어 조금 타다가 버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생산된 지 10년에서 수 십년 되어 보이는 저런 자전거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우리의 자전거 정책이 되었으면 한다.
4대강에 헛짓거리 한 거 만회하려고 여론 호도용으로 자전거 도로 만드는 일은 좀 그만하고.

런던이 자전거 도시라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자전거 도시를 표방하는 우리의 모 지자체 보다 더 적극적이고 부드럽게 그 길로 가고 있다. 그들은 그걸 자전거 도시로 가는 길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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