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19
여행기간 : 2013.4.18 - 4.23
작성일 : 2016.8.26
동행 : 인턴기자, 박사코스 유학생 그리고 존경하는 그
여행컨셉 : 영상 촬영 출장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보낸 그와 나, 그리고 여 기자 한 명.
여기에 현지 가이딩을 자처하며 일정 소화와 통역을 도와주기로 한 박사 유학 중인 청년 한 분이 렌트카를 가지고 도착했다.
우리 네 명은 7시 반쯤 길을 나섰다.
런던에서 민스미어까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에서 포항 정도의 거리였다. 마침 영국이 크기나 땅 모양이 우리와 비슷하기도 했고, 진행 방향도 딱 그랬다. 구글 지도상에서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로 표시되었다.
날씨가 너무 청명했다. 우리 가이드 박사님도 어떻게 늘 흐리멍텅한 영국 날씨 속에서 이렇게 좋은 날을 골라 왔냐며 신기해 했다.
"태양소년 에스테반"
'아재'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단어 조합이긴 하지만, 우리 또래 중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좀 있을 이름이다. 내 별명이기도 하고.
MBC에서 우리 어린 시절 기똥찬 TV 애니메이션을 몇 편 보내 준 적이 있다. 물론 KBS의 '미래소년 코난'에 범접할 순 없지만, '나디아'라고 한창 사춘기를 시작하려는 우리들에게 섹시함으로 어필했던 이 인디오 소녀는 당시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로 '나디아' 시리즈 직전에 방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남미계의 에스테반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로드 무비형 모험담이 바로 이 "태양소년 에스테반"이었다. 주인공이 좀 어리벙벙한 캐릭터인데다가 무엇보다 남자였다는 점때문에 나디아 만큼의 본방사수 의지를 주진 못했지만...
내 별명이었던 이유는 오로지 "태양"때문이었고, 대학시절 이 별명을 지어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상하게 내가 잡은 MT 일정, 야외 행사, 여행 등등 그 어떤 것들도 내가 잡기만 하면 비가 멈추고 태양이 내리쬐는 게 아닌가.
아마 에스테반이 누군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나의 이 별명을 강요했던 것 같다^^.
어느 지역 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촬영차 머물렀던 그 해가 압권이었다. 원래 비가 많기로 유명했던 이 영화제는 그해 영화제 기간 내내 단 한 차례의 비도 볼 수 없었다.
내가 서울로 가면 부산에 비가 오기 시작했고, 홍수가 나서 가제도구가 떠내려 가고 집안이 침수되었다고 난리였는데 다시 내려오면 그때부터 서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부산은 쨍쨍한 날이 이어졌다.
훌륭한 농사꾼이 꿈이지만 이래서야 어디 농사를 할 수야 있겠는가 싶을 정도로 이런 말도 안되는 징크스는 매번 이어졌고, 영국에서의 며칠간 우리는 영국신사들이 들고 다닌다는 우산을 사용해 본 기억은 없다. 오히려 선글래스를 들고 오지 않았음을 후회해야 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이내 영국의 전원 풍경이 차창에 나타났다. 낮은 구릉들과 방목하는 소, 양, 말들.
사이사이 한적한 낡은 농가들까지.
2시간 남짓 달려와서, 민스미어 입구 안내판에 이르자 시원시원하고 웅장한 나무들이 조밀한 숲이 시작되었다. 한때 여기가 목재 벌목 지역이었음을 짐작케 해 주는 광경이었다.
민스미어 습지 보호구역으로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메인 공간이다. 건물은 나즈막 하지만 규모는 제법 컸다.
입구로 들어서면 로비처럼 넓은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전시물이나 탐조 망원경을 둘러싸고 토론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매장이다. 여기서는 탐조에 필요한 장비, 의류는 물론이고, 학술서나 안내서, 새 먹이 등도 있지만, 새를 상징하는 아이디어 충만한 각종 기념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민스미어는 국가 지정 공원이면서, 새를 탐조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연회원 제도가 있어서 인근에서든 멀리서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탐조 인구들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계절별로 탐조 포인트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끼리 여기 모여서 정보도 교환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하는 곳이다.
관찰할 수 있는 새의 종류와 탐조 포인트를 표시한 총 천연색의 안내판이다. 사진과 약도가 있어서 처음 방문한 사람들도 습지에 대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매장의 안쪽은 간단한 식사부터 음료까지 판매하는 식당이다.
민스미어 습지에는 지역민들이 고용 되고, 그 수익은 지역에 환원되는 모델로 운영된다고 한다. 매년 10만 명이 찾고 있다는 이곳은 사실 서포크 지역의 경제 기반을 떠 받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란다. 직접 고용인구는 100여 명 이지만, 방문객들이 이 지역에서 쓰고 가는 비용은 한 해 수 십억에 달한다.
물론 영국 어디나 그렇다고 하긴 하던데, 음식이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다만 '피쉬앤칩스' 말고 포크 나 빵 종류도 있다는 것에 위로를...
"이안"은 민스미어 홍보 담당이다. 그는 식당에서 제법 오랜 시간동안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우리들을 위해서 민스미어의 역사부터 운영까지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다. 가뜩이나 잘 안되는 영어에 영국식 발음이라 영어인지도 잘 모르겠더라만은...
다음에 번역할 요량으로 영상으로 설명을 쭉 담고는 식사를 좀 일찍 마치고 건문 뒷마당으로 갔다.
아니 근데 저 녀석을 만난 거다. 장기였다.
우리나라 꿩보다 좀더 화려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분명 장기였다.
우리 민요 '새타령'에도 나오 듯, 우리에게 꿩은 보양식을 위한 사냥의 대상이었다. 낙동강 촬영 때, 수풀 속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푸다닥 도망치는 꿩에 몇 번을 놀란지 모르겠다. 그래서 꿩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는 참 힘든 일이었고, 겨우 멀찌감치 있는 녀석을 최대 망원으로 겨우 잡아냈던 기억이 있는데, 아 글쎄 영국 땅에서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이 녀석과 조우할 줄이야.
1080i 영상에서 캡쳐를 해서 화질이 영 별로지만, 거의 2-3m 앞에서, 도망은 커녕 나를 그다지 경계하지도 않는 꿩을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열이었다. 저 작은 날개로 제 덩치를 순간적으로 띄우려고 늘 용을 쓰고 푸닥거리며 낮게 겨우겨우 건너편 기슳이나 강건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까지 죽을 힘을 다해 날아가던 꿩들만 보다가 저렇게 유유자적 걸어다니는 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상했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세대를 거친 학습의 결과일 거야 분명.
나중에 런던 한 복판에서 만났던 기러기가 내가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도 잠을 청하던, 심지어 그 새근거리는 숨소리조차 다 들리던 생생한 경험까지. 여기 새들 정말 사람 따위 일상에서 크게 중요한 비중이 없는 듯한 무심이들이다.
본격적으로 습지 방문에 나섰다. 차량을 이용해서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한 후, 제법 더 들어가야 했다. 우리 안내를 맡아준 저 리암니슨 필 좀 나는 분의 이름은 "폴"이다. 그는 현재 민스미어 습지가 직장인데,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이 곳 습지를 방문한 인연이 지금에까지 이어졌단다.
2차 대전이 종전 한 후, 습지화한 이곳을 그대로 보전할 것인가 개발할 것인가를 두고 정부와 RSPB(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 영국왕립조류보호협회) 사이에 줄다리기 협상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지역민들은 개발을 원하는 쪽도 있고, 전쟁 전처럼 다시 팀버 목재 벌목지로 쓰이길 바라거나, 습지 보전을 원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협상이 난항을 겪는 와중에 100년 동안 관찰되지 않던 새 한마리가 우연히 날아왔다. 전쟁이 오히려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계기가 되었고, 쓸모없이 방치되었다고 생각한 곳에는 사라졌던 동식물이 돌아왔다. 이 새의 등장은 협상을 종결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결국 1947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동안 민스미어를 보고 자란 많은 영국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내가 어떤 관계인지를 보고 듣고 자라나게 되었으리라. 바로 '폴'처럼.
그래서인지, 처음 간 곳도 아이들이 놀면서 자연에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마련한 놀이터였다. 새 그림이 있고 버튼을 누르면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는 나무 그루터기며, 동물들이 사는 환경과 비슷하게 꾸며 놓은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만든 시설들도 있었다.
놀이터라고 해서 유락시설이 있는 게 아니었다. 원래 자연 그대로의 것들이 아이들이 놀기 가장 좋은 곳이니까.^^ 좀더 자연을 이해하고 친해질 수 있도록 몇 가지 조치만 취한 정도가 딱 좋았다.
심심찮게 녹색 톤의 입성을 한 연세 지긋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문 탐조 장비까지 들고 다니는 이런 분들은 그냥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일반인이다. 탐조가 취미 활동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작은 실천일 뿐인 거다. 실상 영국인들의 새 사랑은 남다르다. 런던 한 복판에 있는 주택들 앞 마당 혹은 가로수 옆에는 새 먹이 통이 매달린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 소리들.
도시 한 가운데 그렇게 많은 새들을 불러 모으려면 그건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일테다.
습지라고는 하지만 습지외의 다양한 지형들을 경험할 수 있다. 놀랍게도 민스미어는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인공습지라고 한다. (이때만 해도 공식적으로 논을 습지에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 때인지라 그랬겠지. 전세계의 논이야 말고 가장 크고 많은 면적을 자랑하는 훨씬 이전부터 조성한 인공 습지니까.)
오솔길로 차를 타고 가다가 내린 곳은 시골의 코티지처럼 생긴 곳인데, 인턴을 교육하는 민스미어의 후세 양성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곳이었다. 여기 교육생 중에 한 명인 10대 소녀에게서 자신이 받고 있는 교육 내용과 하고 싶은 일, 포부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어떤 설명들 보다, 타인에 대한 스스럼도 없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신감도 뚜렷한 그가 사실은 10대라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드디어 새들이 잔뜩 있는 습지로 왔다. 저 멀리 보이는 제방이 해변과의 경계다.
탐조를 위한 집이 군데 군데 배치되어 있어서 실제 새들의 먹이 활동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민스미어 강이 여기 습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수원이다. 근데 강이라기에는 좀 민망하다. 지금은 복개해 버려서 볼 수 없지만 어린 시절 우리집 앞으로 흐르던 개울도 이거 보다는 크고 수량이 많았는데... 유럽에서 큼찍하게 아끼고 보호한다는 유명한 환경 자원들을 방문하면 더러 규모를 보고 실망한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이 작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600만이나 되는 RSPR의 회원들이 합심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 부러움의 대상이다.
애초에 자연 발생한 습지가 아니라 2차 대전 시기 해안으로 상륙하는 독일군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이 들어서면서 해안가를 따라 길게 참호를 겸한 제방을 쌓으면서 습지가 된 곳이라서 지금도 이 습지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를 해야한단다. 수량이 부족하면 민스미어 강(?)에서 습지로 물을 공급한다.
이 관은 습지가 형성된 곳 끼리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서 지하로 연결된, 높이가 동일한 입구의 모습이다. 한 군데만 물을 공급해 줘도 구역이 나뉘어진 습지들이 동일한 수위를 알아서 조절 가능하도록 고안한 장치인 셈이다.
크고 작은 벙커에는 저렇게 창이 뚫려 있어서 망원경으로 탐조 가능하다.
탐조 마니아인 엄마, 아빠를 따라 온 저 꼬마 녀석의 표정이 재미있다. 분명 놀이동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가리라, 그리고 더 많은 것과 나누려고 할 것이다.
해안쪽 제방으로 올라서서 바라본 민스미어 습지의 전경이다.
누구의 눈에는 그냥 놀리고 있는 빈땅과 웅덩이들로 보일 테지만, 이들은 여길 지키고 가꾸면서, 영국의 자랑으로, 이 지역의 경제 밑천으로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그들은 끝없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을 수 있었다. 배를 갈라서 그 알을 꺼내려고 하지만 않으면, 이 거위는 계속 알을 낳아 주고, 또 자부심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해안쪽에는 전쟁 당시 흔적인, 콘크리트 더미들이 아직까지 박혀 있었다. 굳이 그 흔적을 치워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여기서도 예의 그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이 한창 탐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는 저렇게 핵 발전소가 들어서 있었다.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동해안 라인을 핵 발전 시설들로 채우는 건 동일한가 보다. 다만 우리는 부산, 양산, 울산, 경주 등 대도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면 여긴 그나마 인구 밀집지역에서는 다소 떨어진 곳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석양이 물들고 있는 저 해안 건너는 네델란드란다.
민스미어에 대한 해설만 듣고 대략적인 포인트만 주마간산했던 우리는 근처 숙소를 잡은 뒤, 하루 더 살펴보기로 하고 인근에 있는 호텔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호텔보다는 여관에 가까운 시설이지만, 주위 환경하나는 호화 리조트 못지 않았다. 평야에 덩그러니, 그러나 건장한 나무들에 둘어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여지없이 다음날 아침에도 10km 정도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서 만난 그가 사진기를 들고 호텔 앞의 나무들을 찍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