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9
오늘 하루 예정되었던 일정은 어떻게 모두 소화를 했다.
동행중인 친구 'B'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를 만나기로 해서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한다.
때마침 그 언니라는 분은 하이난에 건너와서 여행사에 다니고 있다는데, 오랜 시간 연락을 못하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돈독했다. 특히 말 술을 즐기는 스타일하며...^^
여튼 이산한 가족이 상봉한 듯 반기는 것이 불길한 느낌이 들 정도...
그래서 회포를 풀자며 'B'가 먹고 싶다는 "훠궈(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다만)" 집으로 간다.
여행기간 : 2016.12.8~12.12
작성일 : 2017.8.16
동행 : 그새 사귄 이웃 여행사 친구 "B"와 함께
여행컨셉 : 여행지 답사
이곳은 '지양구', 그러니까 산야강 중앙에 있는 거대 하중도의 번화한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름은 '중경남산훠궈'.
중국은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별로 조리법이나 먹는 법이 다 다르다는데,
샤브샤브 하면 중경이란다.
거리만 보면 그냥 오피스텔이 많은 오피스 거리 같은데
중간에 식당들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저녁식사 시간으로는 약간 이른 시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식당 직원들이 한창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고 쪼그리고 앉아서 트리 장식도 하고 벽면에도 반짝거리는 것들을 붙이고 있다.
2층으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도 하기 전에 손님 한 명당 이런 물건들을 내어준다.
중국 식당 어딜가도 나오는 개인 접시는 이제 익숙하고,
젓가락은 왜 이렇게 짧은 걸 두 개 씩?
그리고 비닐 장갑을 준다면 뭔가 뜯어 먹으라는 걸텐데, 두꺼운 비닐 봉투는 왜?
젓가락에 대한 의문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금방 풀 수 있었다. 검은색 젓가락의 은태 쪽은 구멍이 나 있다. 거기에 대나무로 된 젓가락을 끼워서 쓰는 거두만^^.
이렇게 말이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버렸지만 보통 이렇게 하는 곳이 많다는 설명을 해 준다.
중국은 위생에 대해서 우리보다 덜 신경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외식시 식기 등의 위생에 의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느 식당에선 아예 식기들과 함께 뜨거운 물주전자가 같이 나오던데 손님이 직접 뜨거운 물에 그릇을 소독한 후 사용토록 하기 위함이라나...
비위생적일 지 모른다는 의심을 안심으로 바꾸기 위한 조치겠지만, 그만큼 서로간의 불신이 강하다는 반증 같기도 하고...
중국은 꽌시(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종의 "패밀리즘"이겠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가족, 친지, 이웃, 친구 등 꽌시로 연결된 집단 내부의 구성원끼리 서로 더욱 보살펴주고 편의를 봐 주는 게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는...
최근,
관계에 대한 역학 조사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같은 나라 사람에 대해 얼마나 믿느냐를 알아보는 설문 답변에서 북유럽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한 걸 봤는데, 우리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사람들에 비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예를 들어 길가 벤치에 카메라가 놓여 있다면 분명 누군가 흘리고 간 걸테고, 이때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그걸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단다.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올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두는 게 제 주인이 찾아갈 확률이 가장 높다고 본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경찰서 등에 갖다 주거나 자기가 가진다는 답변이 많았다. 그대로 두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져갈 게 뻔하니, 차라리 공권력에 위탁을 하거나 가져갈 누군가의 몫이라면 이왕이면 그게 나여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조사 결과...
중국과 우리나라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와 묶여 있는 사람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가 하늘과 땅 차이니까 그룹 내부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 그러니까 "공생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나에게도 유리한 전략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패밀리즘도 서양인들이 보기엔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지니스로 술자리에 가도 어느새 행님, 동생이 되어야만 안심하고 2차, 3차 혹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세상이 나의 바운더리 기준선을 중심으로 친밀함과 증오로 확연하게 나뉘는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현상이겠지만, 우리나 중국이 겪은 불운하고 힘들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생존을 모색하는 인간 본성에 미친 영향이 패밀리즘이나 꽌시의 문화로 정착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생판 모르는 식당 주인이 식기를 어떻게 다뤘는지에 대한 신뢰는 제로에 가까울 터.
그래서 남이 먹던 게 아닌 새것으로 내어야만 하지만, 비용 발생이 너무 크니까 음식과 침이 닿는 부분은 새것으로 손으로 잡는 부분은 재활용으로 비용과 신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약간은 우울해 지려고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비닐은 바로 이렇게 사용하라고 주는 것.
최근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니까, 주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데 뜨겁고 기름많은 음식이 튀어서 망치거나 하지 않도록 비닐 옷을 내어 놓은 거란다^^.
온통 홍등으로 장식한 식당은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주문은 여기 살고 있는 그 언니분이 척척 알아서 한다. 우린 뭐 들어도 모르는 소리고...
육수에 고기를 넣고 살짝 데쳐서 먹는 음식인 샤브샤브가 원래 몽골이 원조라고 알고 있고, 중국식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만 여기고 기다린다.
우리 자리는 코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내 맡은 편 벽에는 중국 4대기서로 불리는 서유기, 수호전, 삼국연의, 홍루몽이 양장본으로 놓여있다. 그것도 석가의 두상과 함께.^^
4대 기서라는 것 자체를 몰랐던 내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원래는 홍루몽 대신 금병매가 4대 기서이긴 한데, 워낙에 19금으로 낙인 찍혀서 그 자리를 홍루몽이 대신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홍루몽과 서유기는 아직 읽어보질 못했고, 수호지와 삼국지연의는 어릴때부터 많이 접한지라...
근데 보통 삼국지, 수호지와 함께 초한지가 영웅서사로 먼저 떠오르는데, 초한지는 기서라기 보다는 그냥 역사서로 분류되는 모양인지 빠져 있다. 4대 기서가 모두 역사를 기반으로 덧붙인 허구로 된 것만 있는 건 아닌 것도 같고... 서유기는 만화, 영화 등 접할 기회가 많았으니 차치하고 다음에 홍루몽에는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싶었다.
동행한 중국분들은 반가워하면서도 방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지라 홍루몽은 자기들도 안 읽어봤단다^^.
주문을 마친 그 분은 우리더러 양념을 가지러 가잔다. 양념장은 셀프~
원래 샤브샤브는 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이 관건이긴 하니까.
국내에서도 땅콩을 갈아서 넣은 고소한 것부터 간장과 와사비만 넣은 탁 쏘는 깔끔한 것까지 식당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념이 또한 유명세에 일조하는데, 여기서는 기호에 따라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는...
허걱!!
근데 무슨 양념 종류가 이렇게도 많단 말인가.
자기 취향대로 양념을 만들어서 가져가면 된다고 하는데 원재료를 그대로 둬도 뭐가 뭔지 모를 판에 이렇게 곱게 다지니거 썰어 놓았으니 당최 알수가 없는 것들이 색깔만 달리하고 놓여 있는 거지 뭐.
친절한 우리의 언니분^^
원래 중경 샤브샤브의 특징은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자극적으로 먹어야 참맛이라는데,
한국분들이고 하니 약간은 순화된 맛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모든 양념의 한국어 재료명과 맛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신다. ㅋㅋ
그 중에서 기본 베이스로 콩을 갈아서 만든 것과 간장 비스무리 한 것, 그리고 매운 맛을 조금 내는 것들을 조금씩 섞고 상큼한 맛을 내는 것까지 넣어서 가지고 왔다. 사실 뭘 넣었는지는 들어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극적이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 했는데도 극소량만 입에 넣어도 혀가... 마비 직전이다.^^
그렇게 각자 원하는 것들을 넣은 양념장은 색깔도 농도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진기명기에 가까울 정도로 매워 보이긴 매 한가지^^
자리에 돌아오니 바로 메인 등장.
내가 상상했던 비주얼의 육수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에 육수 지리를 주는데... 이건 전혀 맑은 국물이 아니다. ㅜㅜ
중간에 하얀 국물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뿌옇다. 그리고 해자처럼 둘레에 가득한 국물은 붉다.
그 붉은 육수에 빼곡하게 매운 고추가 떠 있고...
사진상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고추 사이사이 떠 있는 작은 알갱이들은... 제피 씨앗이다.
흔히 서울사람들이 "산초"로 잘못 알고 있는, 추어탕 먹을 때 극소량을 넣어서 깔끔함을 더해주는 진한 향의 그 향신료 말이다.ㅜㅜ
우리 시골에서도 많이 채취하기 때문에 잘 아는데 어렸을 때 초록색의 씨앗은 가을이 깊어가면서 붉은 색으로 변한다. 그걸 따다가 햇볕에 말리면 씨앗 껍질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에 검은색 씨와 분리가 된다. 보통 껍질을 갈아서 먹는데, 이 놈을 "제피가루"라고 한다. 검은 씨는 모아다가 짜서 기름을 내고 등불을 켤 때 쓰곤했다.
어쨌거나... 이 독한 걸 열매째 그냥 들이부어 놓았다.
이런 걸 사람이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게 맞을까?
고기류... 소고기가 왔지만,
그 외의 것들은 도대체 뭔가 싶다.
저기 연한 주황색을 띤 놈은 오리의 식도인지 위인지 여튼 가금류의 내장이다.
왜 저런 것까지 먹어야만 하는 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나중엔 저거에만 손이 갈 정도로 식감이 쫄깃하고 맛있었다.^^
이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천엽이다.
늘 잘게 썰어놓은 것만 보긴 했지만 색깔과 돌기가 돋아있는 표면의 비주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뭐 였느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여튼 그 외에도 가금류의 혀라는 것과 또 다른 특수부위들이 몇 개 더 있었는데 아예 손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자, 그리고 말 술 잡숫는 이 분들 다짜고짜 빼갈을 대자로 하나 시킨다. 술 못하는 나를 위해서 칭따오 맥주 1병과 함께.
직원이 가져온 술병은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바로 건네받아 뚜껑부터 오픈~
직원이 술잔을 내려놓자, 작은 잔은 필요없다며 도로 들고 가란다. 소주잔보다 약간 작은 앙증맞은 잔이었는데...
대신 맥주컵 보다는 약간 작은 저 글라스에 빼갈을 따른다. 그나마 7부까지만.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자, 한잔합시다. 첫 잔은 건배~
란다. 중국에서 '건배'는 우리의 "짠~"하고는 다른 늬앙스라는 것 쯤은 알고 있거든...
저녁 식사 자리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 이분들 발음을 알아듣기가 점점 힘들어 진 것 중국어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먹고 싶은 거 있음 더 시켜라던 분들이... 시간이 흐르고 술병이 비어 두번째 병으로 넘어 갈 즈음엔, 중국에 왔으니 대륙 음식을 제대로 맛보라며 달라고 하지도 않은, 뭔지도 모르는 재료를 붉은 국물에서 건져서는 내 앞접시에 쌓는다.ㅜㅜ
하얀색 국물은 그나마 먹을 만했는데, 붉은 색 국물은 어떤 재료를 데쳐도 같은 맛 밖에 나질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미 내 혀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 완전히 마비된 미각은 그냥 맵다는 고통의 유무만 판단하는 통점 외엔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었다. 하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맥주 한 병을 혼자 먹고 나도 약간 알딸딸해진 상태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가게 된다.
가는 길에 갑자기 차를 세운다.
작은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맥주를 또 잔뜩 산다.
맹그로브호텔 객실에서 입가심으로 한 잔 더 하자는...
그리고 어김없이 삥랑도 산다.ㅜㅜ
나를 위해서 순한 맛이라며 포장된 것도 두 종류나... 저번 방문때 처음 삥랑을 영접한 이후, 삥랑은 내게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 음식으로 낙인 찍인지라 입에 대지는 않았지만.
워낙 야자가 흔한 곳이라 구멍가게에도 이렇게 주렁주렁 내 놓고 팔고 있다.
아침에 떠난 호텔에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는데 야간 당직 직원의 가슴에 태극기 배지가 달려 있다^^.
나같은 아니키스트도 중국인이 가슴에 달고 있는 태극기 하나에 반가운 맘이 먼저 든다. 외국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마치 숙소에 며칠만에 돌아온 느낌이다. 그만큼 오늘 하루만에 많은 일들이 있기도 했고... 근데 아직 끝나려면 좀 멀었지 싶다.
두 사람이 그대로 'B'의 방으로 가 주셨으면 했으나, 나를 여자들 방에 데려가기는 그렇지 않냐며 바로 내방으로 밀고 들어와 버렸으니... 굳이 맥주 입가심에 동참시키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은데...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술 마시는 건 중간중간 피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두어 시간을 더 못자고 버텨야만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