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 2구간] 02부산의 명산, 금정산

2017.1.7

by 조운

이제 정말 익숙한, 어린 시절 놀이터나 진배 없던 곳으로 진입한다.
얼마나 많은 올챙이와 진달래가 내 어린 시절 감성을 위해 희생되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약수물을 길어 우리집 물동에 채워댔던가^^
삼밭골 약수터 위 꼬치친구들의 비트는 아직 그대로 있을까?

마치 고향땅이라도 밟는 것처럼, 설레임으로 금정산에 들어선다.





여행기간 : 2017.1.6~1.7
작성일 : 2017.10.12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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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고개를 지나 조망이 가능한 곳에서 잠시 쉬면서 돌아본다.
왼쪽은 해운대 옆 장산, 오른쪽은 기상관측소가 있는 걸 보니 구덕산인가 보다. 그 사이 낮으면서도 오뚝한 '배산' 뒤로 보이는 것이 해운대 들어가는 초입에 생긴 마천루의 상징 마린시티의 건물들이다.
사진에 연하게 수평선도 잡이긴 했군.

배산은 고대 부산의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고분군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국가와 국가가 국경선을 두고 인접해 있던 시절 이전, 그러니까 공해상처럼 육지에도 국가 사이에 완충 구역이 있던, 다른 말로 하면 중앙의 행정 장악력이 없던 변방이 존재할 수 있던 시절 부산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발견된 곳이다.
어떤 이들은 그걸 "거칠산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국가가 없이도 공동체가 가능했다는 게 더 매력적인데 굳이 국가명을 붙일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생각. 고분의 시기는 4~5세기 정도라고 한다. 이건 8세기 신라가 통일되기 직전 "동래"라는 명칭으로 부산이 신라의 행정범위 안으로 복속되기 몇 백 년 전을 그려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단다.
여튼 고대의 중심지(혹은 고립된 자치구)를 가운데 두고 현대의 마천루를 한꺼번에 사진으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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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과 금정에 낀 쇠미산을 벗어나, 금정산에 접어들자마자 귀중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금정산은 수량이 대단히 풍부한 산이다. 워낙 오래전부터 난개발에 시달려서 많이 말라버려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그네의 갈증을 달래줄 정도의 샘터들은 곳곳에 많다.
어릴때부터 금정산이 놀이터이기도 했기에 모든 산에는 그렇게 다 바로 떠서 먹을 수 있는 개울물이나 샘물이 많은 줄 오해하기도 했던 것.
이제는 안다. 산에 갈때는 반드시 물을 많이 들고 가야한다는 것. 비록 남아서 버릴 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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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만덕골의 아파트들도 점점 멀어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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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519m 지점이다. 세 갈래 길목인데, 금강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의 좀점 바로 위다. 낙동정맥길은 동문방향이지만 바로 옆이라 다들 남문을 찍고 오르기 마련.
금정산성은 금정산 정상에 무척 길게 형성된 성인데, 당연히 왜구에 대한 대비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동래읍성처럼 도심에 있었다면 세월에 따라 많이 훼손되었겠지만, 산 위라서 자연 훼손 외에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박정희시절 어설프게 복원한다고 여기저기 시멘트를 발라 놓은 곳들이 옥에 티긴 했는데, 그마저도 세월이 흐르고 나니 봐 줄만한 정도다.

난 가베얍게 무시하고 가던 길만 간다만 초행이라면 남문에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비록 복원한 것이긴 해도 남문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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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에 여럿 있는 망루 중에서 제2망루. 정말정말 오랜만에 올라왔더니 예전 모습은 간데 없이, 망루 앞에 잔디를 깔아 잔디공원처럼 조성해 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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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행동식을 먹을 겸 잠시 망루앞 바위에 걸터 앉아 있는데, 사진이 하나 도착한다.

실은 현재 집에는 아무도 없다. 마눌님은 꼬맹이들 데리고 서울에 갔는데, 간 김에 광화문에 가 볼꺼라 더니... 우리 꼬맹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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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에게 마음만 함께한다고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사진 동봉해서 답장을 보낸다.
각자가 최고 중요한 곳에서 최고로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믿으며...

산성은 원래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 살짝 복원이 추가된 곳도 있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세월따라 무너진 곳이 훨씬 많다. 하지만 성벽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만큼 남아있다.
제2망루부터의 산성은 낙동정맥의 마루금과 일치해서 시원스런 경관과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가는 맛이 남다르다.
또한 이 길은 부산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 능선길이기도 하고.

더러는 산성 보호를 위해서 또, 깎아지른 절벽 위의 성이 위험해서 통행을 막아 놓은 곳들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소중하고 감사한 장소로 추대되는데 하등의 영향도 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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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은 부산의 크기에 대비해도 실로 방대한 규모의 터를 차지한다. 그만큼 많은 샛길과 등산로가 있거니와, 어디를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동네로 바로 접근할 수 있기도 하다.
예전엔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는데 능선 내내 이런 이정표들이 많이 보인다. 오가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다니던 시절이 좀 더 운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만...
그랬거나 말았거나 중요한 건... 바로 저 호국사.
호국사야 말로 금정국민학교 앞에 사는 아이들의 주요 놀이터. 호국사 인근에 물웅덩이가 많이서 도롱뇽, 올챙이를 많이 잡았다. 더러 운이 좋으면 바위 밑에서 가재가 잡히기도 했던 시절이었으니...
"호국"의 기호적 의미야 커 가면서 거부감이 늘었지만, 내겐 "호국사"라는 단어가 주는 노스탤지어가 상당부분 그런 거부감을 순화해 준 측면도 없지 않다.^^
그때 그 별나고 새까맣던 친구놈들 중 이제 남은 사람은 나 밖엔 없어 소주라도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같이 꼬꼬마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사람들을 보면, 늘 그냥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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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게 무슨 일 이래?
산성고개 위에 저 돌다리는 언제 생긴 걸까?
온천장부터 산성으로 가는 고불길 도로의 정점, 산성고개. 여기만 돌면 산성마을이 나타난다.
도로 폭이 좁아져 보이는 거야 내가 컸으니 그렇다치고, 등산객을 위해서 아예 도로 위에 성곽 모양을 닮은 고가다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문쪽에서 산성고개로 내려오는 바위들과 다시 동문쪽으로 올라서는 바위길이 참 운치가 있었는데, 그 자리를 이렇게 덮어버린 건 아쉽다. 순전히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가 그대로 보전되고 있길 바라는 내 입장에서 말이지만.
너무 놀라운 광경에 굳이 내려서서 사진으로 담아둔다. 산성마을과 온천장을 오가는 버스 정류소는 그대로 있더라. 쇠미산에서 금정산으로 들어오는 만덕 1터널 위의 고갯길에도 이런 게 있긴 했지만, 추억의 장소가 변하는 건 역시 충격이 더 크다.

예전에 중학교 친구들 중에 산성마을 녀석들이 많았다. 산성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학교는 금성초등학교.
당연히 애들이 졸업하면 남학생은 전부 우리 중학교로 왔다. 재밌는 건 산성버스는 일반시내버스 요금이 아니라 좌석버스 요금이었는데, 산성마을 사람들만 그냥 시내버스 요금을 받았다. 산성에 사는 친구집에 같이 놀러가도 우리는 몇 갑절의 버스비를 내야하는 게 그렇게 억울하고 아까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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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다. 어짤까 싶다.

'식량도 이제 다 떨어졌고 해도 뉘엇뉘엇...
보통 산성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은 곳이 동문인데 개미새끼 하나 없다. 이미 다 하산했을 터.
집에 가도 아무도 없을텐데 남은 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내일은 그냥 무동력으로 양산으로 넘어가볼까 한다. 훨씬 가벼워진 배낭 덕에 죽을 것 같진 않지만 우선 당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2박째를 하자니 용기가 나질 않는 것도 사실... 게다가 이제 저 문을 지나 더 가면 꼬박 하루길을 가야하는데, 만약 내일 양산지경고개까지 가지 않고 북문이든 어디든 하산을 해 버리다면, 다음 번 등산시 출발지점까지 오는데만도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 판.
구간 종주는 구간을 잘 짤라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가 없거늘...
에라 모르겠다. 가보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걸음은 이미 동문을 지나 오르막에 접어들고 있다. 굵은 소나무들 아래를 걷다보니 사위는 더 어두워지고 나비암 쯤에 텐트를 칠 요량으로 걷는 동안 현기증과 함께 식은땀, 한기까지 찾아든다. 팔 다리가 후다리는 게 이러다간 나비암까지도 무리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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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다시 되돌아 내려와 동문 안에 인접한 화장실 앞 벤치에서 당보충부터 한다.
화장실에 물도 콸콸 나오겠다, 아무도 없겠다. 화장실 냄새는 좀 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정신은 없는 상태.
꿀맛이다. 남은 스팸까지 다 털어넣고 끓인 라면은 최고의 밥상이 되어 준다.
그리고 다시 동문을 지나 금정구 방향으로 버스정류소가 있는 도로까지 내려간다.
동문에서 도로까지 난 오솔길과 너른 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산성고개에 없던 고가다리가 생긴 정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지형자체가 변했고 어디 사적지에 있을 법한 깔끔한 공원이다.
동네 애들과 봄이면 쑥 캐러 많이 왔던 그 넓던 동문 앞 터는 이제 그냥 인공적인 공원이 되었구나.
내 아이폰5로는 담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어둑해져 사진을 찍진 못했다. 아니 별로 찍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착찹하니... 호불호의 차이일진데 다만 추억과 현실이 분리되는 걸 확인한 게 아쉽기만 했나보다. 늙어가는 거지 뭐^^

여튼 지난 번보다 배낭무게를 줄였더니, 훨씬 즐거운 산행과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다. 아직 1박 이상을 혼자 해 내지 못한 건 숙제로 남는다. 그나마 익숙한 곳이고, 비상 조치에 용이한 도심구간에서 2박에 도전해 봤어야 하는데...

나에겐 또 다음 주가 있지 않은가^^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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