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6~1.7
첫 비박의 끔직한(?) 경험으로 두손 두발 다들고 물러설거라 생각한 마눌님 덕분에...
오히려 해내보이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더욱 충만해진 걸까?
채 진압되지 않은 근육들의 반란을 애써 외면하고 다시 금요일 밤, 전의를 불태운다.
일주일 내내 절룩거리면서 다니던 놈이 금요일 출근길에 다시 장구통 같은 배낭을 메고 나타나자 모두들 혀를 내두르는 분위기...
비박은 계속된다.~
여행기간 : 2017.1.6~1.7
작성일 : 2017.10.12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텐트 구매
배낭 3.7 > 2.5 (구매 필요)
우모복 1.5
텐트 폴+팩 1.7 > 1.5
텐트 3.5 > 2.0 (구입필요)
폼매트 0.5
우모침낭 2.5
아이패드 1.0
반찬류 비닐 1.5 > 1.0
돼지고기 약간
조미료통 1.0 > 0.5
코펠 0.9 > 0.5
가스 1.0
여벌옷
양말 0.2
타프
보조배터리 1.0 > 0.5
비상약품 0.5
물 1.0 + 1.0(침낭용) + 0.5*2
햇반2 + 라면1 : 1.0
잡주머니 2.0
우의 0.5
스틱 0.5
지난 산행 후 집에 들어와서 바로 정리한 비박 장비의 무게다. 텐트 무게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 바로 구매한 텐트는 하루만에 배달되어 왔다. 더 가볍고 더 좋아보이는 텐트들은 많았지만 마눌님 눈치에 가장 저렴한 것으로 질러야만 했다.
산행에서 텐트의 용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텐트란,
옷갈아 입을 프라이버시와
침구를 이슬로부터 보호하는 용도만 중요하지
나머지는 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기능들...
이 두가지 조건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야 하고(매쉬는 안됨), 결로가 적어야(싱글월 안됨) 한다. 무게를 최대한 줄이면서 가격이 저렴한 걸로 찾아보니 그나마 2.1kg의 절충선에서 저것이 낙점될 수 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퇴근하고 추어탕이나 한 사발 하러 가던-구덕 꽃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덕운동장 쯤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이미 완벽하게 깜깜해진 꽃마을 종점에 내려선다.
지난 주엔 해발고도 제로에서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230m에서 출발하는 게 어딘가^^
배낭무게는 실측 23kg. 지난 번 무게에 비해 -7kg^^.
그래도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또 지난 번 바람소리에 잠못 이룬 경험으로 고도를 조금만 올려서는 바로 텐트를 친다.
정상은 바람이 심할테고, 인가와는 약간 떨어진 곳 중턱 적당한 곳. 비박지 설정에도 나름 노하우가 생긴다.
텐트는 왠만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상이 좋다는 주의지만 저렴하게 구입한 텐트에 너무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는 법. 그래도 다 쳐 놓고 보니, 아주 흡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만듦새가 그렇게 엉망이진 않다. 패킹시 폴대의 길이가 좀 긴게 조금 아쉽긴 하네.
엥?
근데 후라이 문쪽에 작은 구멍이 있다. 택배를 받고 바로 확인해 보지 못했으니... 뭐 이 정도 구멍이야 뭔 대수랴. 텐트가 추위를 이기기 위한 거라는 생각이라면 몰라도 난 그럴 의도는 없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삼겹살도 과감하게 포기했다. 무게가 크게 줄진 않았지만, 쌀+물 조합도 무겁다고 햇반으로 ...
단 1g이라도 줄이는 게 핵심임을 이미 온몬으로 체득한, 아니 진저리 친 자의 무게에 대한 공포심.
대신 밥 짓는데 아낀 물을 인스턴트 북어국에 할애한다.
실은 이번 비박에서 절실하게 깨닭은 것은 바로 물 사용량에 대한 노하우. 이건 무조건 경험이라는 것.
보온용 1리터 말고 1박시, 식수를 도대체 얼마를 들고 움직여야 하는 걸까?
지난 번엔 산에 있겠지하고 너무 조금 들고 갔다가 낭패였는데, 배낭이 무거워지면서 땀이 많아지니 심한 갈증으로 금새 물이 떨어졌다. 배낭무게와 연동하는 땀 분비 수준을 예상하고 자기만의 물 사용량을 체킹하는 것도 노하우가 될 것 같다. 물론 계절적 요인도 고려해야 하고.
인가 바로 위였던 아미산의 비박지와 달리 이곳은 제법 거리가 먼 모양이다. 차량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지난 주와 달리 바람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꿀잠 잤다^^
엄광산
일찍 잠든 덕분일까? 새벽 3시 반에 눈을 떴다.
비박시 해가 지면 사실 별로 할 게 없다. 특히 겨울엔 좁아 터진 텐트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술잔 비우기 뿐이지 않을까? 지난번보다 소주 한 병 추가했지만 맥주 한 캔과 소주 두어 잔을 비운 게 고작이다. 아무리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지만 혼자기도 하고,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모르니까 약간의 긴장감은 가지고 있어야겠기에 술이 그렇게 막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찍 잤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아침형 인간인 내게는 그동안 아침형을 살 수 없게 하는 도시 생활이 계속해서 생활리듬을 좀 먹고 있던 차에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비박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랜턴에 의지해서 마루금을 따라가니 금새 엄궁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쪽(남)은 영도대교 주위로 가장 밝고, 부산항대교나 남항대교의 조명까지 다 보인다.
북쪽으로는 이곳 엄광산과 맞은편 백양산 사이 주례부터 개금, 서면으로 이어지며 부산의 동서를 연결하는 주 도로를 따라 불빛이 호를 그리고 있다. 그래도 역시 서면이 제일 밝긴 하구만^^
엄광산에서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정맥로 하산길은 거의 일자에 가깝다. 구간도 상당히 짧은데... 다른 말로 하면 하산길 각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뜻.
어두우니 길 찾기가 더 힘들었다. 아주 크게 알바를 한 번 뛰었고, 소소하게 몇 번씩 알바 천국(?)을 헤맸다. 꼭두새벽이라 등산객은 아무도 없었으니 혼자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특히 뻔히 개금쪽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연이어 알바를 뛰고 나니, 부아가 좀 올라온다. 결국 길 찾기는 포기하고 방향만 잡고 길을 만들어 가기로... 관목숲을 헤치고 갔다.
배낭에 매달아 둔 폼매트에 걸려 전진이 더디다. 가끔은 나뭇가지에 배낭 윗부분이 걸려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다행히 어느 정도 내려가다가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은 것 같은 급경사 오솔길을 만났다... 아님 내가 그냥 길이라 생각한 걸 수도 있고^^
백양봉이 되고 싶은 '백양산'
그렇게 내려선 어느 아파트 동을 빠져 나오니, '인제대 백병원' 앞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됐지 뭐... 한 번 벗어나는 게 어렵지 마루금 길에 대한 강박은 훨씬 줄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정맥루트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고는 있지만...
원래 산을 타다보면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게 더 힘들기 마련. 백병원에서 지하철 개금역까지는 상당한 거리기도 했고, 발도 욱씬 거렸다.
꼭두새벽에 개금역 안에는 사람도 없다. 이제 갓 오늘 운행을 시작한 듯한데,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치와 세수를 해결. 원래 그럴 계획은 없었는데 완전 중심 도심을 통과하자니 남들의 시선도 있고... 누가봐도 노숙 패션이기에^^
큰 도로를 몇 개 지나 백양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산 바로 아래 마지막 집은 초등학교 였다.
오늘 날씨도 무진장 맑다.
백양산은 금정산 다음으로 큰 부산의 대표적인 산이다. 엄광산의 워밍업이 좋았던 건지 전 주보다는 산 정상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다.
능선 가까이 올라서니, 멀리 오늘 지나가야할 백양산 능선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시정거리가 상당히 좋은 날임에도 개금, 서면쪽 일대는 흐릿하다. 밤새 탁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떠날 방향을 못잡고 그대로 침잠해 있다. 저런 곳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는 거지...
한편 반대방향 낙동강 쪽도 비치는 모습은 비슷한데, 저건 김해라는 급성장한 도시의 탁한 공기와 강과 바다의 아침 안개가 만난 덕분에 더욱 짙은 회색빛을 띠는 것 같다.
갓 모양이라서 갓봉이겠지? 갓봉 근방의 기암괴석들 모습이다. 공룡능선까지는 아니라도 이 일대 루트는 저런 기암절벽을 따라 진행한다.
이미 상당한 고도로 올라왔다. 바다를 조망하는 등산의 묘미는 고도차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는 건데, 한라산만은 못해도 여기 느낌도 비슷하다.
갓봉을 시작으로 삼각봉 - 유두봉 - 백양산정상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한국의 명산들 부럽지 않은 경관과 지형을 보여준다. 부산 안에서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시민들에겐 축복이다. 극히 일부만 누리겠지만 말이다. 최대 수혜자들은 저렇게 표지석을 세워주기도 한다. 물론 조직의 이름을 드날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거고^^
유두봉에 이르기 직전, 네 방향으로 난 갈림길이 있고,
이내 유두봉이 나타난다. 거진 600m에 육박.
몰운대부터 거친 모든 곳들보다 하늘에 제일 가까운 곳이다. 봉오리의 호칭은 가 보면 왜 그렇게 지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근데 대체 이런 이름들은 누가 짓는 거지?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 앞바다에 있는 바위 이름도 '유두바위'(멍게가 많다고 멍게바위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다. 파도에 따라 일렁거리면서 보였다 말았다 하는 두 개의 바위인데 동백섬 전망대에서 보면 바로 보인다.
백사장에서 유두바위까지 갔다 오는 거리는 제법 멀어서 매번은 아니고 일 년에 몇 번 정도 그 코스로 수영하기도 한다. 근처 물 속엔 돌이 많아서 돌돔이나 군소, 멍게들이 많다. 수영하는 입장에서 잡아도 가져나올 방법은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온지만. 여튼 누구나 유두바위라 부른다.
백양산 정상이다.
어라, 근데 정상이면서도 지금까지의 봉오리들에 비해 좀 밋밋하다.^^
저라고 영산마루가 되고 싶어서 되었겠나? 장자 승계의 원칙에 따라 가장 높은 봉오리의 이름을 그리 호명하는 것을... 밋밋하지만 그대로도 평온해 보이는 게 봄날 업드린 소 등 같이 보인다.
'산'이 부담스러우면 내려놓고 너도 그냥 '봉'해라.
'쇠잔등봉' 어떠냐?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 직전에 이런 곳이 있다.
이런 건 좀 안했으면 좋겠는데... 이쁘지도 않고 어울리지 않고...
밋밋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본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642m라는 숫자로 권위 부여도 좀 해 드리고, 그 옆에 잘 생긴 좌우대칭 종모양의 돌탑도 하나 지어 주시고 말이다.
아랫마을 풍경이 확 달라졌다.
바다는 이제 너무 멀어져 버려서 가시거리 밖에 놓여있다.
저 아래 보이는 원형 건물은 부산아시안게임 종합운동장이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동네 이름들과는 달리, 초읍, 거제, 사직, 동래라는 단어들이 들어가는 동네다.
부산의 멋 옛날, 다운타운이던 곳. 사실 조그만 포구였던 부산항과는 발생 연원도 다른 동래부에 해당하는 고도심이다.
부산이라는 도시
어찌보면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나 부산만의 정체성의 원형은 이런 도시 발달사를 조금 알면 빨리 이해가 된다.
거칠게 표현해서, 가야를 다른 중앙집중형 왕국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씨족연합체라 전제하고,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에서 봐도 부산은 변방 중의 변방,
서울에서 남쪽으로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이씨 조선왕조의 관심영역권에서도 변방인 곳이 동래부였다.
나랏님 땅에 행정력은 미쳐야 하기에 최소한의 행정타운이 이 지역 동래부의 역할이지 않았을까?
끽해야 신라의 문물에 관심있는 일본인들의 유학 노선이거나, 조선통신사가 바다로 가기 위해 잠시 기거한 정도겠지.
그러다가 개항 이후, 해양세력이 육상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기 위해 부산포를 반 억지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독점, 이곳을 기점으로 물자(전쟁, 상업 등) 수송 라인들이 이리저리 사통팔달하면서 지금의 메트로폴리탄이 되어 버렸다.
국가 단위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역 내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서울의 타율로 기획되고 관리된 지방이지만, 부산은 또한 외부세력의 기획으로 그 형질과 필요역할이 급변한 곳이기도 하다.
변화의 진행 속도는 의지의 강도 만큼... 무척 빨랐다. 바다를 매워 매축지 위로 역과 중앙대로가 나타났다. 인근 김해처럼 농지가 있나 뭐가 있나, 어업으로 입에 풀칠하던 곳에 물류라는 시스템이 발생하자 돈이 모여들었고 이어서 사람들도 몰려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땅이 부족해지자 야산까지 주거지로 활용해야 했다. 산복도로를 비롯한 좁디좁은 골목들은 '거대한 타율적 기획' 안에서 그나마 자발적인 필요로 생겨난 셈이다.
물류 중심과 가공업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 유리했던 수준의 교통망이 전부였던 시절, 물류기지라는 정체성은 자연스레 가공, 제조업과 연결되어야 했고, 지금의 사상공단 등 대표적인 공장단지가 만들어진다. 이촌향도랄까?
부산포라는 촌동네가 금새 도시화되면서 인근 촌(예전엔 부산포보다 도회였지만)에서 노동을 수혈해야만 했고, 그렇게 인구가 폭발하자 사람들은 더욱 산쪽까지 파고 들어서 촌락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곳곳에 돌출한 야산들 때문에 집과 공장 사이 노동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자, 고갯마루마다 도로가 넓어지고 아예 고갯마루로 넘어갈 것 없이 그 아래로 터널을 뚫어 버리고, 길을 놓을 터가 모자라자 고가도로를 여기저기 설치한다.
부산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대한 애초 필요는 핵발전 원리처럼 다음 현상을 낳았고, 그 현상이 또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다 보니, 부산은 복잡하고 난해한 길들이 얽히고 설켜, 그야말로 "길의 도시"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한국 전쟁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면서 생겨난 더 높은 곳의 달동네까지 실핏줄같은 길이 생겨났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경계가 아예 없어진 뜨내기들이 인구의 전부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부산 사람은 모두 노마드다. 그래서 노마드의 사고와 행동패턴이 자연스럽다. 부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토지에 대한 것 하고는 좀 다르다. 핏줄이나 지연으로 뭉쳐진 집단이 아니라서 셈이 빠르다. 반면에 모두들 독고다이의 설움과 외로움을 안고 있다. 그래서 정을 주면 끝까지 간다. 조직적으로 보호받은 경험의 부재는 의리로 해결한다.
그리고 끈질기고 악착같고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비단 바닷사람의 그것이 준 영향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미 부산이 커지면서 해양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극히 일부였기에...
도시발달이 원형질의 변천을 겪은 만큼, 융통성의 도시라는 정체성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변화나 새로운 것에 대해 개방적이고 수용성이 높다.
누구는 본대없다고 하기도 하고, 사납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마도 고도심의 원주민이있던 동래부 사람들은 지금의 부산 정서와는 달랐을 거다.
여튼 아직 다른 동네에 비해 제일 고상함이 많이 남아있는 곳을 내려다보며 지난다^^
2인자 불웅령
다시 동북쪽. 백양산 자락 너머 거대한 고원처럼 보이는 금정산이 버티고 있다.
오늘 저기까지는 가야할텐데...
지난 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목표 설정에 자조하면서 살짝 소심해졌나보다. 목표를 낮게 잡고 있다. 백양 내려서서 몸상태보고 판단하자.
2016년의 마지막 날, 산 정상인데도 부산은 부산이구나. 밤새 얼었던 성에가 녹으면서 진창길로 변해 있다. 아무래도 동쪽 면이라 더욱 그러한 듯.
진창길은 조심해야 한다. 미끄럽다. 그리고 점점 발이 무거워지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고^^
백양산 정상 부근에 사람들이 좀 있어서, 불웅령과의 사이 한적해 보이는 길가 안쪽 숲에 들어가서 아침을 챙긴다. 누룽지 한 사발만 마신 이후 쭉 산행을 이어왔더니, 주유램프가 계속 깜빡거려서 더는 못갈 판이다.
식사 중에 나무에 붙은 홍보물 발견.
역시 홍보 마케팅의 핵심은 정확한 타켓 설정과 타켓층의 유동성이 높은 지점에 집중 역량을 투하하는 것이랄까^^ 해외 원정 등산이건 울릉도건 관심층은 산에 있다는 걸테지.
그래도 나무에 이렇게 하는 게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전달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만...
백양산 봉오리들은 다 나름 멋스럽다. 불웅령은 간발의 차로 정상의 자리를 내주었으나 이름이 주는 느낌처럼 웅장하다.
불웅령이 백양산의 마지막 꼭지점이다. 저 아래 아파트촌(만덕)으로 내려가면 백양 루트는 마친다.
야산은 오르기 쉬운 반면 조망이 열악하고 반면 큰 산은 조망을 보기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알고 있지만, 백양이나 금정은 후지산같은 화산처럼 봉오리 하나를 정점으로 된 원추형이 아니라 여러 봉오리를 이어주는 능선을 따라 트레킹할 수 있는 곳이다. 그게 또한 초반에 어느 정도 에너지만 투자하면 길게 유유자적하며 즐길 수 있어서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고.
백양산을 거진 다 내려와서 끝부분에 이런 곳이 있다.
상당한 부지에 테크 벤치 등도 잘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 쇠미산에 접어든다.
쇠미산은 만덕터널 바로 위에 있는 산이다.
만덕은 오래전부터 아파트촌으로 개발이 되었고 지금은 다시 재건축으로 더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는 곳이다. 백양과 금정산 사이의 골, 만덕고개라는 만만찮은 높이까지 기실 그렇게 넓은 땅덩어리도 아니지만 인구가 밀집해 있다.
그 때문인지 행정구역의 경계이면서도 아주 넓은 면적의 침엽수로만 된 숲을 잘 조성해 놓고 있다. 마치 소나무들이 사열받고 있는 듯 오와열을 어치나 잘 맞춰 심어뒀는지...
이번 산행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단위 위주로.
뿐만아니라 행정구역도 바뀐다.
각자 구청에서 만들어 둔 입간판들이 묘하게 다르면서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