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1
산중턱을 타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마루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 쓰고 있다. 아예 산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가 덜 할텐데, 이렇게 시가지와 산을 번갈아 지나게 되니 오히려 입산 루트를 발견하는 게 더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건, 30kg의 배낭의 압력이 주는 어깨 고통은 이미 초월. 다만 다리들이 말을 안 듣는게 문제다.
여행기간 : 2016.12.30~12.31
작성일 : 2017.10.11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옥녀봉 & 대티고개
삼성여고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벗어나 산쪽으로 방향을 튼다.
낡은 시멘트 포장 길마저 끝나갈 무렵 만난 성불사.
정확하게는 천마산에 있지는 않지만 퉁쳐서 천마산 성불사로 호명해 버린 듯.
마침 스님이 나와 계시길래, 수돗물이라도 좀 떠가게 해 달라 부탁을 드렸고,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또 한번 양컷 병들을 채웠다.
그렇게 스님과 헤어져서 고작 몇 백 m 지났을까?
끽해야 해발 250m 정도의 고개지만, 들어갈수록 각도가 기울어진다. 심리적인 요인이겠지만, 한 걸음도 더는 내디딜 수 없을 것처럼 번아웃이 찾아왔다.
언덕 중간 쯤에서 아까 마트에서 산, 전복죽에 초코바, 건빵을 쑤셔 넣는다. 지나는 등산객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그렇게 숨을 몰아쉬면서 살겠다고 막 쑤셔 넣은 내가 참...
90리터 배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산행중에 없어질 소모품이 거의 없는데다가 보온수낭까지 식수로 꽉꽉 채우고 쓰레기들까지 주렁주렁^^
왜 그랬는지 잠은 좀 편하게 자겠다고 넓은 폼매트를 구입했던 것도 마구 후회가 된다. 좁은 산길에서 자꾸 걸리적 대기 일쑤라 휘청이는 다리를 더욱 괴롭히기만 한다.
속절없이 날씨만 쾌청^^
정상쪽은 53사단의 예비군 훈련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마루금을 지키면서 가야한다는 강박이 사라지자, 대략적인 방향만 잡고 정말 딱 한 발자국씩 꾸역꾸역 나아간다.
마루금을 돌아가는 임도를 홀로 걷다 부시럭 대는 소리에 올려다보니,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가 있다.
내가 신기한 듯 바라보는 고라니 한 마리...
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어도 움직일 생각도 않는다. 아까부터 내가 오는 걸 쭉 지켜봤을테고, 그런 소걸음으로는 전혀 위협적 대상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는 건지도^^
이제 한 고개만 넘으면 대티 고개가 나타난다.
표지판이 있는 곳은 여러 갈래길의 교차로 쯤 된다. 벤치도 있고... 그래서 핑계 삼아 또 쉬었다.
바로 아래 샘터가 있다. 하지만 1m도 허투로 움직일 여유가 없다. 이미 수돗물이지만 잔뜩 지고 있으니 통과.
돌탑 꼭대기에 시멘트로 만든 표지석에 "우정탑"이라 씌여 있다.
근데 옥녀봉 정상의 우정탑에서 내리막을 바라보고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우선 신발, 양말을 벗저 제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발가락들이 앞으로 뒤로 말려 든다. 마비와 뒤틀림은 이미 달래거나 할 상태를 넘어서 버렸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놈의 자율 신경계^^
급하게 근육이완 로션을 꺼내들고 다리를 둥둥 걷어서는 종아리부터 발가락까지 한참을 주물렀다. 그렇게 30분 정도 양쪽 발을 다 주물렀을까.
고맙게도 자율신경계가 보인 놀라운 반응은 약간 수그러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 포기하려면 감천 삼거리에서 집에 갔어야 했다.
한 두 차례의 등락을 거쳐 옥녀봉 정상 구간을 통과한다. 한쪽으로 영도와 남포동 일대가 한 눈에 잡힌다. 그리고 아래에선 못 봤던 산 속 마을과 집들이 숲 속에 자리한 모습도...
마루금 일대 능선이 전부 묘지다. 가도가도 하늘아래 묘지만 있다. 마루금에 이렇게 묘들이 즐비한 풍경은 첨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괴정공동묘지'였다.
이제 내리막만 남았고 묘지와 떼 일색이던 공간도 끝나간다.
저 멀리 구덕산 기상 관측기지가 눈에 들어온다. 대티고개로 내려가서 다시 저곳까지 가야 하나? 과연 오늘 지금 이 몸 상태로 저길 갈 수 있을까?
어디서 끝을 내던 여긴 아니었으니 다시 내려갔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자칫 실족이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경사라 바짝 긴장했고 아마 올라올 때의 시간이나 비슷하게 걸려서 인가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한 쪽이 탱자 나무로 된 울타리가 있는 길이 마지막 코스다.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린 탱자나무 울타리가 여태 남아있군.
서구의 숲 트레킹 코스 표시가 아예 길 바닥에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제주 올레길의 대성공으로 전국 지자체는 하나같이 '길 브랜드'화에 용맹정진 중이다. 부산도 갈맷길을 비롯해서 구청단위의 트레킹 코스를 많이 만들고 있다.
만들고? 원래 길은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화살표와 거리 정보를 표시하고 호칭,의미, 거기에 스토리까지 부여하는 작업 중인거지만.
대티고개까지 침엽수가 늘어선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는 길은 조용하고 상쾌해서 좋긴 하다.
대티고개. 고갯마루까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여기서는 대신동 일대가 훤히 다 내다보인다. 대신동과 괴정동을 연결하는 유일한 산마루 고개지만, 산 중간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오가는 사람이나 차량이 부쩍 줄어든 그냥 조용한 동네다.
대티고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입간판이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다.
점심 시간은 벌써 지났고, 대티고개에는 물 한 통 살만한 곳도 보이질 않고 이차선 도로만 건너니 다시 시약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고... 무작정 쉬었다.
땀에 젖어 한참을 있자니 점점 체온이 내려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해야지 뭐...
구덕산_545m
시약산 쪽으로 붙어 있는 집들은 거의 절벽에 서 있다. 계단의 경사는 수직처럼 느껴진다.
한 집 대문에서 그 다음 집 대문까지가 천리길같다.
이내 그 마저도 없어지면서 눈 앞에는 거대한 절벽같은 시약산이 침범을 불허하려는 태도로 앉아있다.
시약산.... 아, 시약산...
뭔 산이 절벽이냐....
시약산 중턱까지 천편일률적으로 가파른 길... 도로가 아니라 등산로인데도 지그재그로 나 있다.
보폭이 신발 길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속도다. 그래봐야 390m 약간 더 되는 정상까지 가는데만 꼬박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가끔 물병 하나 들고 세월아 네월아 오르시는 어르신들이 나를 추월하고도 가뿐하게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코스같다.
중력을 거스르는 급경사에 거진 100kg을 지탱하며 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
시약산까지 곧바로 갈 힘도 없어서 그나마 지그재그 길이 끝나는 평평한 곳을 만나자마자 배낭을 벗어 던진다. 그래봐야 대티고개에서 불과 얼마 오지도 않았건만...
바로 라면을 끓였다. 이렇게 대낮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길목이지만 시선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뭐라더 넣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마지막 남은 수낭의 물을 탈탈 털어야 했다. 그렇게 갈급한 허기만 메우고 죽을동 살동... 가 보자.
시약산은 사실 구덕산의 방사형 자락 중 하나가 살짝 솟은 곳일 뿐. 구덕산은 다시 수직 200m 고도 상승을 해야한다. 목표는 멀리서 보았던 기상 관측기지
그래도 멀리서 보았던 기상 관측기지가 점점 가까워지긴 했다.
뒤돌아서 밟았던 길을 살펴본다.
정남 방향, 저멀리 영도와 천마산 아래를 잇는 남항대교가 보인다.
천마산의 오른쪽으로는 어제 저녁 이 미친 짓거리의 첫 시발지인 몰운대다.
바다끝에서 여기까지 아미산(사진상 오른쪽, 가장 멀고 제일 높은 봉우리)을 비롯 여러 동산을 훑고 꾸역꾸역 오긴 했구나.
서쪽으로는 낙동강 하구 위로 이미 지는 햇살이 반사되어 눈 부신 금색을 만들고 있다.
아, 끝이 보인다.
구덕산 정상에 있는 기상 관측소가 코앞이다.
관측소 관내를 통과할 수 없어 살짝 둘러 가자. 관측소가 끝인 산정도로가 나온다.
뒤돌아 해를 등지고 있는 관측소를 마주하자 감개가 참 무량...
왜 이런 표현을 만들어 냈는지 100% 공감이 되는 순간이다.
멀리서 볼때는 여기까지 어떻게 올까 싶었던 몸상태를 이끌고 결국 중도 포기하지 않고 너를 코앞에서 눈에 담고 있긴 하구나~.
관측소 장비와 레이더 기지 사이에는 저런 기암괴석 절벽을 덤으로 볼 수도 있었다...만 거기까지 갔다 오는 길을 보고도 애써 외면한다. 사치다. 그냥 저 끝에 서서 바라보일 풍경을 상상만 하자^^.
실은 이곳이 구덕산의 최정상은 아니다. 마루금은 이어지고 레이더기지 앞 삼거리 표지판은 길도 아닌 곳을 향해 구덕산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당연히 저 길을 따라 갔다.
하지만 구덕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 향했던 곳엔 항공산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시급... 알바를 또 하고 말았다는...
하는 수 없이 하산길을 따라 임도를 걷기로 한다. 이제 뭐 마루금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뿐^^
구덕산의 서쪽으로 난 하산길은 지금까지 씨뷰의 등산코스와 달리 리버뷰가 이어진다.
사상일대와 삼락둔치, 낙동대교 너머 강서구쪽, 그리고 그 뒷 배경이 되는 김해의 산자락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집인데... ㅜㅜ
하산길 임도. 사랑의 나라구나^^
이제 네비게이션이고 뭐고 아무것도 의존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고도를 낮추는 길만 추구한다.
임도 중간에 만난 샛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자마자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로 향한다.
구덕산 자락에 인공적인 공원을 꾸며 놓았다.
더러 뽀족구두 신은 아가씨와 총각이 사진도 찍는 걸로 봐서는 이제 산길은 더 이상 없으렸다.
공원 맨 하단부에 있는 관문.
꽃마을 가는 길이란다.^^ 드디어. 구덕꽃마을이구나.
하지만...
일자로 난 계단을 수없이 내려서야만 하는 마지막 난 코스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그 끝에 영혼없는 인사말 "안녕히 가십시오"라 적혀 있지만
정말 이제 끝입니다. 수고했습니다.
로 읽힌다.^^
구덕고개_꽃마을
"J"나 "곡's"와 일이 막힐때 바람도 쐴 겸, 추어탕 한 그릇씩 하러 올라왔던 바로 그 꽃마을.
거리 표시대 바로 아래 편의점 앞 테이블에 도착, 생수 한 통을 사서 벌컥대며 원샷을 하고는,
그래 여기까지다. 더 가면 죽을 꺼야
혹시 이게 스스로 포기하는 거나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되뇌어 생각해 봤지만, 이 짐을 가지고 하루 더 행군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식량도 전혀 없었고...
여기서 마을버스를 타면 남포동이나 부산역 쪽으로 갈 수 있지만 집에까지 갈 먼 길을 생각하니...
도로는 없지만 그냥 구덕재 마을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로 한다.
발 아래 구덕터널 끝 부분, 학장쪽이면 낙동강을 따라 운행하는 버스나 지하철만 타도 집에 충분히 빨리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하지만 끝났다 생각하니 긴장이 풀린 탓일까?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걷는 내리막길은 주저 앉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마지막에 올라탄 지하철 2호선에선 내 주위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때문에 나도 괴로웠으니까^^
그래도 뭐 죽지않고 이렇게 첫 단독 비박의 경험을 무사히(?) 종료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나?
몸을 가볍게 하고 굳이 비박을 하지 않아도 한나절이면 움직일 거리를 만 하루 가까이 움직여도 결국 첫 목표였던 양산까지는 커녕 엄광산까지도 못가고 그 앞에서 좌절하다니...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바로 퍼질러 누워야지 생각했는데, 바로 짐을 모두 풀었다.
그리고 각각의 장비 무게를 실측했다. 그리고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싹 제했다.
딱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만 추가하고...
그렇게 하니, 23kg정도.
지금의 타톤카 배낭이 3.2kg 정도고 3인용 텐트가 실측 5kg 정도(분명 4kg이라고 했는데)니까 이것만 해결해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내 주머니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가벼운 초경량 텐트와 60~70리터 배낭을 알아본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바로 결제.
곧 도착할 텐트는 2.1kg. 품질은 중요하지 않다. 산 위에서 부는 먼지 바람이 자는 내내 내 코로 들어오지만 않으면 된다. 매쉬로 된 가벼운 거나 싱글월의 가벼움도 살짝 구미가 당겼지만, 결로로 인한 무게의 증가나 먼지까지 생각하기로...
배낭은 디자인과 무게가 맘에 들었던 그레니트기어를 또 기웃거렸지만, 너무 비쌌다. 음...
이번 뼈저린 경험을 토대로 완전히 비박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로 한다. 그리고 비박은 계속되어야 한다. 담 주엔 엄광산에서 양산 다방동까지 진행하는 걸로.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