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0~12.31
늦은밤 산쪽에서 점점 다가왔던 불빛의 주인공도, 희미하게 켜진 텐트 속 렌턴과 나를 발견한 모양인지 현격하게 속도가 줄었다.
지금 생각하면 연말의 칼바람이 불어대는 산 속, 9시를 넘긴 상황...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깜깜한 밤중에 마루금 소로 위에 선 두 주인공들은 추워서가 아니라 놀라서 그렇게 얼어붙은 상태로 점차 거리를 좁이고 있었다.
여행기간 : 2016.12.30~12.31
작성일 : 2017.10.10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누가 먼저 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더 무서웠던 사람이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반갑습니다~
누구 입에서 나왔던 간에 물론 거짓말이었을 터.
전혀 반가울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지척까지 다가오자, 서로를 잠시 살핀다.
고작 몇 초 그렇게 흘렀을까? 그는 텐트 앞에서부터 더욱더 걸음을 늦추긴 해도 멈추진 않았는데, 지나쳐갈 시간보다 더 짧은 찰나에, 정말 순식간에 불안과 공포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심지어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까지 교환했다. 서로 같은 처지라는 걸 대번에 알아채 버린 것.
주황색 톤의 상하의와 비슷한 색의 단촐한 배낭을 맨 그는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었다.
허나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좀 의외였다.
맥주 한 잔 얻어 마실까요?
그제서야 좀전까지 돼지삼겹살로 허기를 채우고 달랑 한 병 사 들고 간 맥주캔을 들고 교교한 월광을 즐기던 중이었음을 깨닭는다.
컵을 찾아 반잔씩 나눠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좀 나눈다.
그분은 새벽3시에 일어나 김밥을 손수 말고, 양산-부산 지경고개를 출발, 금정산, 엄광산, 구덕산을 거쳐 마지막 아미산을 관통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보통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분들의 마지막 두 구간을 하루에 섭렵하고는 지하철이 끊어지기 전에 집에 가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란다.
너무 과하게 중무장을 한 비박 산행과 최소한의 생존식량과 물만 들고 장거리를 쾌속질주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산행 중 우연히 이 밤에 만난 두 사람^^
텐트도 너린데, 술이라도 좀 더 있으면, 마 낑겨서 하룻밤 신세지면 딱 좋겠구만...
독고다이 산행으로 백두대간은 수차례, 9정맥까지 전부 왕복해 봤다는 그분은, 이번엔 동백섬에서 출발~백운산을 걸쳐~몰운대까지의 거대한 "부산 13봉 완주"를 오늘로써 마무리 하는 중이란다.
그래도 비박은 아직 못 해봤다며 맥주캔 하나만 달랑 들고 온 걸 못내 아쉬워하며 농을 붙인다^^.
이제 막 낙동정맥을 시작하는 나에겐 대선배다.
주말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면, 저렇게 짐을 가볍게 하고 속도를 올리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비박의 즐거움을 버릴 수는 없는지라... 나중 나중에 시도해 보리라 맘 먹고 서로의 길에 건투를 빌어주며 만날 때처럼 깔끔하게 헤어졌다.
그나저나 맥주는 왜 한 캔만 들고와서는... 그 마저 반씩 나누고 나니 긴긴밤 무료함이 엄습해 왔다.
이럴 걸 대비해서 들고온 아이패드로 영화까지 한 편을 봤지만 좀체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들리는 낙동강변대로의 덤프들 오가는 소리에 끝도 없이 울어대는 바람소리, 거기다가 인근 김해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 줄은 몰랐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그렇게 중무장을 해 가서 추우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만... 아무리 중무장을 했다고 해도 발의 체온이 좀체 오르질 않았다. 보통은 보온수낭(유단포)에 끓인 물을 넣고 침낭 안 발 쪽에 놓고 자면 금새 따뜻해지거늘, 뭔 생각으로 물은 고작 500ml만 챙겼고 텐트를 치고 보니 이미 입 헹굴 정도만 남아있었다는...
무엇보다 오전에 위내시경을 받는다고 엊저녁부터 굶은데다가, 생각보다 위내시경때 구역질을 많이해서 식도도 좀 다쳤는지 점심도 잘 못넘겨서 대충 대충... 그리고는 이렇게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더니 더부룩한 속이 불편한 것도 잠을 못이루게 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결국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언뜻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깬 듯하다. 등산객들이었다.
여긴 아파트 촌 근방이고 산이 낮기도 하지만 봉수대처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아침 산책 코스로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 같았다.
허둥지둥 일어나니 이제 막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후다닥 정리를 하고 행동식으로 가져간 과자 한 봉지와 남아있는 유일한 수분인 귤 하나만 먹고 바로 출발했다.
근데...
어, 이것봐라 다리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32kg의 배낭은 역시 무리였나 보다.
이제 와서 어쩔겨...
결론부터 말하면, 첫 비박의 산행 전체 경로는 예상과 달리 애개~ 할 수준으로 짧다. 오밤중 산중에서 만났던 그분이 간 거리의 1/3 정도^^.
그렇게 어그적 거리면서 조금 가자, 시야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능선을 타며 돌아보니 몰운대쪽 바다에서 정말 맑고 동그란 해가 벌써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무 가지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에서 황홀한 기운을 받으며 한참을 서서 바라 본다.
오래 그렇게 하진 못했다. 벌써 어깨로 전해오는 압박이...
평평한 길은 잠깐이었다. 경사도가 약간만 있어도 숨이 심하게 차고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평소라면 경사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그런 각도에서 말이다.
응봉봉수대
길게만 느껴졌지만 실제 아주 가까운 곳에 응봉봉수대가 있었다.
산책이나 새벽 운동 삼아 올라와 있다가 잠시 쉬는 분들 사이에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육중한 배낭을 내려놓는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저녁 노을과는 또 다른 맛.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어가는 저녁놀과 달리 더 짧고 그래서 찰나만 허락하는 장관을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러고 있는 내게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서는 이 지역의 산세나 특징, 더러 출근을 산으로도 하면서 거의 매일 오른다는...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 준다. 뭐든 관심많고 오지랖 짱인 나지만, 평소의 나는 거기 없었다.
저 혹시, 근방에 샘이 있나요?
짧게 대답을 들었지만 듣고 싶은 답은 아니었다.
없는데요.
약간 멋대가리 없이 재현해 놓은 봉수대에 비친 나와 그 아저씨의 그림자에서도 실망스런 내 기분이 그대로 투영이 되는 듯^^
아침에 고작 30분 정도 걸었는데도 갈증이 이만저만 아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또 고행의 시작.
아미산 자락을 벗어나는 내리막에서 또 한 번 몸의 반란을 느낀다. 내 다리에 어떤 근육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설명하는 듯한 통증들이 쭉 이어지더니 무릎 위 앞 대퇴부는 경련과 마비 증상까지 왔다.
핀을 끼고 바다 수영을 하다보면 과욕으로 장딴지에 가끔 쥐가 날때가 있는데, 앞쪽 대퇴부는 실로 처음이지 싶다. 다행이라면 쥐가 오는 전조를 느끼고 살살 달래는 방법은 그 동안 바다수영으로 좀 숙지한 편이라는 거^^
그렇게 엎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내리막 끝자락 쯤에 절이 하나 있고, 그 아래 샘이 있다. 먹을 수 있는 물 같지는 않아보였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게재가 아닌지라 빈통이라는 빈통에는 물을 다 담았다.
다대고개와 구평가구거리
가파르게 이어지던 내리막 앞으로 도로가 보인다.
다대고개다.
주로 고갯마루는 도로가 나 있는데, 역시 큰 도로가 가로 막고 있고 고갯마루에서 비스듬한 오르막을 따라 삼환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이도 없고, 밤새 바람과 사투를 벌이고 근육들의 작은 통증에 몰두하다보니 도회를 만나도 낯설기만 하다. 고작 하루만에 이렇게 맘이 달라질 수 있다니...
허나 완만해도 오르막... 죽을 것 같은 몸을 끌고 온 내게 이 광경은 너무한 거 아닌가?
계단이 어디까지란 말인건지...
마침 계단 맞은편에 마트가 하나 있다. 물이 없어 아침식사도 하지 못하고 마른 비스킷 몇 개로 버티니 더 힘이 들기도 했고, 우유와 빵을 몇 개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산도 아닌 것이 도회도 아닌 것이... 부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산비탈 골목길을 걷는다. 온 천지가 다 공장이다. 구경가구거리가 인근이라, 일대는 전부 가구만드는 공장이다.
본드냄새와 가죽냄새, 그리고 뭔진 모르겠지만 썩 기분 좋지 않은 냄새들이 산 언덕을 감싸고 있다.
공장이라지만 대부분 가내 수공업 같은 느낌이고 버려진 재료들이 냄새와 함께 세월에게 방치되어 있는 곳이다.
산 비탈에 늘어선 공장들이 끝나는 곳에 저런 간판이 나오고,
뒷면의 누추한 분위기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깔끔한 거리가 이어진다. 가구를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치장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달라지는군.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의 가구 혼수 물량의 대부분을 공급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가구들도 브랜드들이 장악하면서 과거만큼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부산에서 가구하면 아직 구평을 먼저 떠올린다.
실물은 처음봤는데, 산 하나가 거대한 가구 촌이라 보면 된다.
가구를 사러, 또 팔러 다들 이곳 하늘아래까지 온다. 이른 시간이라도 부지런한 공장, 매장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틈을 빠져 나오면서 한 컷!
산 정상 모양새가 원래 그런건지, 가구단지가 들어서면서 정상을 평평하게 만든 건지, 마루금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침 산 꼭대기 밭에서 일하시는 아저씨한테 물어 다시금 낙동정맥 등산로를 찾을 수 있었는데, 도로를 따라가면 도시로 내려가 버려서 안되고 밭 사잇길로 가야만 한다.
봉화산
동쪽 바다 위와 달리 진행방향 하늘은 점점 파래지는 시간.
죽을 것 같은 와중에 간간히 보이는 감천항과 하늘이 그나마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동인이 되어준다.
봉화산 정상에 오른다.
태극기 모양새를 보니 365일 걸려있는 듯 하고...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동네 청년회나 장년회에서 구국의 단결력 보여주시는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시설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역시나 비닐로 한기를 꽁꽁 사맨 저 간이 건물은 어른들의 위락시설이다.
특이한 건 위락의 도구가 탁구라는 것^^ 보기와 달리 제법 넓어서 안에는 탁구대가 두엇 보였던 것 같다. 한창 '핑'과 '퐁' 소리와 농담이 오가거나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바로 옆에 봉화산 표지석이 있다만,
해발고도를 표시할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한 낮은 산에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안쓰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손바닥 보다 작은 표시석이다.
이번 코스는 말 그대로 낙동강 동쪽 능선을 따라 부산의 한 가운데를 주파하기에 산과 시가지를 번갈아 갈 수 밖에 없는데, 봉화산에서 내려오면서 뻔히 장림고개의 아파트가 보이건만 짧게라도 가끔 알바를 뛰고 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달까. (보통 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하게 가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걸 '알바뛴다'고 그런다)
초행길이라 어쩔 수 없는 건데, 이 놈의 과도한 배낭 무게때문에 불과 몇 십 m의 알바에도 심란해졌다.
저 울타리 길로 들어섰어야 하는 건데...
바다와 강과 산에 막힌 언덕 동네들
구평고개. 고갯마루엔 어김없이 아스팔트가 넘어다니고 있다.
인근 감천항부터 장림일대는 냉장, 냉동 창고들이 흔하다.
길 건너 창고 옆으로 난 경사로 또 올라야 한다. 이젠 1도만 기울어진 길도 두렵다는... ㅜㅜ
아직 오른쪽은 감천항이 끈질기게 따라 오고 있다. 정말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부산의 야산은 온통 예비군 훈련장이다. 대구나 서울같은 분지도시들의 예비군 훈련장은 과연 어디일까 궁금할 정도^^
산의 지형 특성상 수많은 야트막 산들 정상은 어김없이 예비군 훈련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나저나 저 유격 훈련장을 왜 따라 간 걸까...
맥을 따라 종주하다보면 쉽게 걸린다는 병에 걸려든 것 같다.
바로 "마루금 관철병"(물론 내가 지어낸 말이다^^).
더러 정맥 인근을 융통성 있게 움직이면 될 것을 꼭 마루금만 고집하게 되는 병이다. 나처럼 리버럴한 사람에겐 택도 없는 병이라고 코웃음 쳤는데, 고된 육체적 고통에 이성은 이미 달아나버렸고 본성이라 여긴 자유주의마저 위폐되어 버린 걸까. 어느새 마루금만 고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저 유격 훈련장 정 중앙을 가다가 알바임을 깨닭고 다시 돌아와,
빙그레 둘러쳐진 임도를 따른다. ㅜㅜ
배낭만 없다면 까짓 한달음일 거리의 야산 아래 해동고등학교가 보인다.
해동고라... 우리 고등학교시절, 영화 '바람'의 주인공들 같은 행님들이 많기로 유명했던...^^
산 중턱에 있는 학교 앞에 넓게 펼쳐진 밭(모두 불법이리라만^^) 사잇길을 택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감천 삼거리까지 올 수 있었다.
정맥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산줄기의 흐름선이라, 바로 옆 서쪽의 동매산, 동쪽의 천마산이라는 제법 큰 독고다이형 산들은 낙동정맥 마루금 길에서는 빠져 있다. 그래서 아직은 고작 해발 고도 200~300m의 작고 야트막한 야산들 무리를 지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다.
사실 지금 지나면서 보이는 고갯마루의 집들은 모두 전쟁통에 전국에서 모인 피난민들이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산동네를 이어서 판자촌을 이루면서 형성된 곳들일텐데, 동쪽으로 바다와 서쪽으로 낙동강, 북으로는 구덕산이나 엄광산에 막혀 부산역 부둣길만이 도회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라, 도시이면서도 변방의 독창성을 확보하고 있고, 반면에 농토가 없어서 오래전부터 어업과 상업을 수단으로 삼아야 했던 곳이다.
이런 점들은 지리적 조건상 아직까지는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부산이 개항이후 급 팽창한, 본대 없는(우리 고장이니... 다른 지방사람들이 이런 말하면 발끈하는 게 또한 부산사람의 기질) 부산만이 가진 부산 기질의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더욱 부산만의 맛이랄까 뭐 그런 걸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
그나저나 이제 야트막한 산들은 거진 다 거쳤고, 부산 도심의 대표적 산이라 불리는 구덕산, 엄광산을 목전에 둔 마당에 맘만 달리 고쳐먹으로면 지금이라도 버스타고 집에 갈 수도 있는 산복길을 걷고 있다.
일단 하루는 잤지 않나, 첫 술에 배부르랴? 이거면 무라도 벤 셈이니 영 쪽팔지는 않을텐데.
무슨 소리냐, 최종 목적지인 양산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작 여기서 접을 수야...더구나 아직 오전인데 갈 수 있는데까지는 가야지 않나?
머리속에서 <인사이드아웃> 영화 한편을 찍고 있는 줄 뻔이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다.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두 다리는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는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