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 1구간] 02몰운대 앞 아미산 어디쯤

2016.12.30

by 조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 겨울이니 얼어죽지 않을 취침 장비들(텐트, 우모침낭, 폼매트, 우모복, 보온용 1리터 물주머니) 챙기고
- 혼자서 밥 해 먹어야 하니, 쌀과 반찬들, 비상식량으로 라면과 비스킷들, 맥주 1캔과 모카포트와 로스팅한 원두, 버너, 코펠, 가스류
- 그리고 물... 산행 정보가 거의 없으니 혹시 식수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식수만 2리터 챙겼다
- 산에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더냐. 그래서 몰운대 앞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도 약간 끊고, 긴긴밤 외로울까봐 아이패드에 추우면 광탈하는 모바일 기기들을 위한 대용량 보조배터리까지
- 순수 배낭 무게만 3.7kg

전체를 매고 저울에 올라서니 내 몸무게보다 딱 30kg 더 나왔다. 물론 여기서 옷과 양말, 등산화는 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길 뿐이지만, 그만큼 홀로 비박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고,
이제 내 몸이 예전같지 않음도 눈치채지 못했음이 분명한... 그냥 웃긴다 ㅎㅎㅎ





여행기간 : 2016.12.30~12.31
작성일 : 2017.9.3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원대한 계획은...
낙동정맥을 몰운대부터 거꾸로 타고 구간별 북진을 해서 올해 안에 태백의 매봉산까지, 그러니까 백두대간 분기점까지 종주하는 것.

일단 몰운대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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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는데 연말 평일의 퇴근 만원 버스안에서부터 우선 민폐다. 왠만한 사람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배낭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는 호리낭창한 아저씨를 모두 쳐다보는 듯^^
괴정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몰운대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소에 내렸다. 다대포 해수욕장만 몇 번 와봤지, 사실 몰운대까지 직접 걸어가 보는 것도 처음이다.
다대포는 겨울인데도 네온사인부터 오가는 가족, 연인들이 몇몇은 보인다. 네비가 말해주는 길을 따라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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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 입석에 검은 색 글씨를 음각한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그 옆에는 이런 낙동정맥 안내판도 있다.


허허, 딱 나를 위한 안내판도 다 있구만 .
밤에 시작하니 오늘은 얼마 못 갈테니 아미산 자락에서 하루 자고,
내일 하루만에 구덕산, 백양산 다 탈 수 있을까?
다 타면 바로 금정산으로 진입해서 밤 늦게라도 집으로 걸어가고, 다 못타서 백양산 쯤에 또 1박을 해야하면 새해 일출 보고 그 다음날 여유있게 집에 도착하면 되지


아직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단계란 거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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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부터 일이 꼬인다.
몰운대는 군사작전지역이란다. 그래서 일몰 이후엔 출입이 안된다고...
이 입간판도 한참만에 찾았지, 실은 입구를 몰라서 몰운대 주차장을 가로질러 해변길로 가 보려고 하다가 푸드트럭으로 커피를 파는 사장님이 밤에 그리 가다가 총 맞는다고 일러줘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나와서 보니 이런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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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없이 몰운대는 포기하고 바로 아미산 쪽으로 오른다.
정확하게 아직 산행은 아니다.
낙동정맥의 마지막 자락인 아미산은 얼마전부터 대단위 고층 아파트가 점거해서 아파트 사이로 난 길을 찾아야만 했다. 산에서 길 찾는 거 보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목적한 입산 루트까지 가는 게 더 어려운 일 같은...

폰에서 지시하는 네비게이션 루트만 의지해서 간다. 일치하는 지점이 나오면 안심하면서 불안한 길찾기를 계속한다. 응봉초등학교 앞부터는 상당한 기울기의 고갯길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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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마지막 산아래 아파트가 나타났다.
근데 뭐지, 온 몸에 땀투성이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어깨는 과도한 무게가 짓눌려 피도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이태 전에 자전거 사고로 다친 어깨 인대들이 욱씬하니 모반을 준비하고 있음도 느껴진다. 배신하기 전에 좀 달래야 할 듯...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화단에 걸쳐 앉아 잠시 쉰다.
이 추운 겨울에 왜 이렇게 땀이 많이 날까?
당연하지 안 얼어 죽으려고 내복에 솜바지까지 입었으니... 평소 추위를 많이 타고 저체온증도 경험한 적이있어서 추위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좀 가지고 있는 편이라 과하게 옷을 껴 입긴 했다. 그래도 웃통은 거의 다 벗고 이미 내복 바람인데도 우중 산행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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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내리고 다시 지는 것 자체가 고통인 배낭을 도로 짊어지고 조금 더 가니 아파트 단지가 끝나고 드디어 캄캄한 산이 앞을 막아 선다.
또 한번 쉬었던 것 같다. 몸도 몸이고, 마음가짐도 새롭게 가다듬고, 이제 정말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입구 바로 옆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슈퍼마켓 앞에서는 추운 날씨도 잊은 입주민 몇몇이 거나하게 소주잔을 기울이고들 계시다가 거대한 봇짐을 진 내복 바람의 어설픈 산꾼을 망연자실 바라본다.
여튼 모든 상황이 웃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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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매단 랜턴 하나에 모든 걸 의존하고 오로지 네비가 가리키는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각도가 심해질수록 바람이 심해질수록 다리는 더욱 후덜거리고 숨소리만 거칠어 진다.
어느덧 홍티고개까지 왔다. 뒤를 돌아보니 제법 인적이 드문 곳이다. 정맥이니 대간이니 하는 코스 자체가 산의 마루금(주변에서 가장 높은 길)을 따라 가는 거다보니, 좌우로 멀리 도로가 그렇게 밝게 빛날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 얕은 산이라 그런지, 차소리가 그렇게나 멀리 시끄럽게 울리는 지도 몰랐다.

더 전진하다가는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서둘러 텐트를 칠만한 자리를 찾으면서 걷는다.
최소한 텐트가 놓인 수 있는 평지는 있어야 할 텐데, 좀체 마땅한 곳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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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등산 각도가 좀 수월해 지나 싶더니 제법 너른 땅이 나타났다. 마침 무덤도 두 어개 있다. 무덤 뒤 쪽에 텐트를 치면 좋겠다 싶어 바로 배낭을 내려 버렸다. 더 가라해도 갈 수 없을 만큼 일단 허기가 져서 안되겠다. 당이 떨어지니 몸까지 후달린다.

산행시 두 개의 앱을 주로 사용하는데,
하나는 <maps.me>
오프라인 지도를 지원하고 내 위치를 비롯 지도상에 지점 등록이 쉽다.
또 하나는 <산너머산>
오래된 앱이긴 하지만, 전체 트랙을 기록할 수 있어서 배터리 소모를 각오하고 켠 채 잊어버리고 캠핑지 또는 종주 후에 코스만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 모든 건, 나중에 구글지도로 옮길 수 있는데, 확인해 본 결과, 고작 이날 2.5km 정도 걸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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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너무 심해서 바닥에 패킹을 안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 텐트를 친 곳은 등산로 바로 옆인데, 솔갈비가 두껍게 떨어져서 겨울 땅 같지 않게 푸석한 흙으로 되어 있다. 잠만 자면 된다는 심정으로 대충 팽팽한지 어떤지도 모르고 텐트를 쳤다.
이 텐트, 비박용은 아니다. 3인용인데다가 무게도 3.5kg이나 나간다.
아이들과 간단한 비박시 사용하기 위해 구매했는데, 무게 100g 줄이는데 비용은 기하급수로 증가해서 절충해서 저렴한 것으로 구매한 것. 이걸 매고도 잘 다닌 건, 그 동안 배낭 이외의 다른 물품들을 여러명이 나눠서 갔기 때문이리라... 절대 1인용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무게의 텐트를 첫 홀로 비박에 들고 온 것이다. 미쳤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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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샀던 삼겹살은 이미 꽁꽁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다. 일일이 펴서 굽는다. 냄새와 소리에서 허기가 더 심하게 밀려온다. 익었는지 어떤지 확인 할 새도 없이 바로 입속으로 투하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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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살짝 면할 즈음 튀는 기름때문에 펼친 신문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자 신문을 들고 왔는데, 하필 펼친 부분이 세월호로 희생당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영정사진이다.
캔 맥주를 따고 간단하게 조의를 표한 다음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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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J'와 대마도 캠핑때 시도한 모카포트에 커피 내려 마시기 이후,
산행시 원두는 기본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번엔 더욱 욕심을 내어서 커피 가루를 들고 온 게 아니라 홀빈과 핸드밀까지 배낭에 쑤셔 넣었다는... 미쳤지 뭐.

기왕에 넣은 거니, 정성스레 갈았다. 그리고 모카포트에 넣고 진한 커피를 내린다.
뜨겁게 내린 에스프레소에 맥주를 좀 부어서 적당한 온도로 맞추고 한 모금...


그래 이러려고 미친 척하고 이 모든 걸 들고 온거라니까!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정말 이 모든 고생을 유의미한 작업으로 승화시켜 주는 이 알송달송한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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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 간다.
현재 기온 영상2도. 비록 해발고도래 봐야,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도 산 속이니 몇 도 더 내려갈 테고, 영하의 기온에 바람도 제법 심해서 팽팽하게 치지 못한 텐트는 계속 혼자서 울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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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잔뜩 허기를 달래고 땀이 식어 다시 양껏 꺼 입고는, 텐트 밖으로 나와서 커피와 맥주를 음미하고 있는 차에, 멀리서 불빛이 하나 흔들리며 다가온다.

이 시간에 누구지?
사실 우리나라에서 모든 산에서의 캠핑은 지정된 곳 이외는 전부 불허하고 있다. 혹시 이 추운 겨울 밤 단속을 하러다니는 야경꾼은 아닐텐데...
그리고 몰운대 쪽에서라면 모를까, 반대쪽이면 더 깊은 산속에서 오는 걸텐데...
도대체 누구지?

일단 귀신은 아니렷다. 흔들리는 모양새가 분명 전등인데, 귀신이 전등 들고 다니지는 않으니...
상당한 속보로 점점 다가오는 불빛에 약간 긴장하면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만 있다.

이윽고 텐트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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