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 3구간] 01금정산성 동문~나비암~고당봉

2017.1.13~1.14

by 조운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낙동정맥 종주를 올해 목표로 잡고 매주 오르고 있는데 아직도 부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ㅜㅜ
이번 산행의 목표는 탈부산~




여행기간 : 2017.1.13~1.14
작성일 : 2017.10.13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굳이 사무실에 배낭을 매고 가야할 이유가 별로 없어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 부산의 도심들은 빠져 나온 셈, 이제 부산의 끝부분이라 오히려 집에서 출발하는 게 조금 더 가깝다.
금요일 저녁,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간다. 그리고 미리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바로 출발, 화명동으로 갔다.
산성마을을 종점으로 둔 버스 노선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온천장에서 산의 동쪽면을 따라 가는 것,
또 하나는 화명에서 산의 서쪽면을 타고 올라가는 버스다.

IMG_1329-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6시 정도인데 이미 밤이 깊어버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잔설. 아래쪽이랑은 기온 자체가 다르다는 거.~

IMG_1330-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산성마을 버스 종점에서 동문까지는 길을 잃을 걱정이 전혀 없는 외길이다. 물론 길도 하나, 사람도 하나인 시각^^
언제부터인지, 마을에서 북문까지도 길이 뚫려, 차로도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IMG_1331-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가는 동안 길은 눈 때문에 미끄럽다. 밑에선 눈 구경을 전혀 할 수 없었는데, 여긴 같은 위도상에 있으면서 완전히 다른 계절이다. 그렇게 시멘트 위에 내린 눈 길을 홀로 발자국을 새기면서 나아간다.





나비암


동문까지 갔으나 사방은 이미 완전히 캄캄하고 랜턴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 걸었던 길을 따라 성곽을 따라 북문쪽으로 난 마루금을 되짚는다.
오늘의 목표지점에 나비암.
나비암이 숨은 비박지로 각광 받는 곳이라 듣기만 했지, 아직 한 번도 직접 가 본적은 없다. 다행히 maps.me에 지점이 표시되어 있어서 앱을 따라 찾아간다. ‘맵스미’는 유저들이 직접 지도상에 지점 표시를 할 수 있고, 그걸 공유할 수 있기에 다른 누군가의 수고로 위치 정보를 늘리는 영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위키백과처럼... 우린 이미 전문가가 주는 정보가 아니라 정보의 상부상조 시대를 살고 있다.

IMG_1336-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몇 번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힘겹게 나비암을 발견했다. 산행로에 바로 인접해 있지는 않다. 나비암은 성벽과 성벽 사이에 있는데 아래는 절벽이다.
절벽에 있는 바위를 이용해서 성벽을 연결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나비암 인근의 등산로는 성벽에서 조금 안쪽으로 나 있고, 나무들에 가려서 성벽이 보이지는 않는다. 아예 마루금을 따라 가자면 성벽을 따라 가야하긴 하나 나란히 바로 옆으로 난 편한 등산로를 따르다 보면 쉽게 놓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캄캄한 밤인데.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만 보이면 성벽쪽으로 들어가 보다가 어느 한 군데서 정말 나비의 날개 모양으로 비스듬이 솟은 두 개의 거대한 바위와 만나게 되었다. 아무 표지판도 없었지만 한눈에 나비암임을 알아챌 수 있게 말이다.
성과 바위 사이에 딱 1~2인용 텐트를 한 두 개 칠 만큼의 평지가 있다. 바위 좌우 중 어디서 칠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바위를 넘나들기는 상당히 위험한데, 절벽을 살짝 점프해서 건너뛰어야 한다. 아이들은 불가할 듯. 컴컴한 밤에 나도 비박 위치 선정을 위해 왔다갔다하면서 아찔했다.
금정구민들이 내뿜는 불빛을 앞에 두고 나비암의 오른쪽 평지에 텐트를 친다. 이쪽은 나비암 바로 아래 자연적으로 생긴 비트가 있어서 바람을 완전히 막으면서 취사가 가능한 곳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산에서의 비박이 금지된 곳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화재의 우려가 가장 클 것이다. 사실 약간의 부주의로 공공자산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니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 하지만 최근까지도 고위 공무원이 국민을 가리켜 개나 돼지로 지칭할 정도로 “국민의 자율의지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행정력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가 취하는 “비박금지”는 내겐 또 하나의 반항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 놈의 반골기질^^
나이가 들어도 반항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랴~. 다만 나이가 드니 반항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게되는 정도랄까. 그래서 산에서 가장 긴장할 때는 화기를 다룰 때다.
이런 면에서 나비암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우리들 백패커에게 최상의 비박지가 되는 듯하다.

이 근처에 샘터가 있다는 정보를 듣기도 했고, 지도상에도 표시가 되어 있어 찾아나선다. 등산로로 다시 내려와서 반대쪽 억새밭으로 들어섰다. 길이 있었다. 초입에 샘터 표지판도 보인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정도를 헤매고 다녔으나 끝끝내 샘터는 못 찾았다. 억새가 우거진 중간 중간 텐트를 쳐도 될만한 곳들을 몇 군데 발견한 걸 성과로 여기며 지도에 표시하고 다시 텐트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절벽아래 야경이 정말 끝내준다. 그것도 한 손에 맥주캔 부여잡고 절벽에 다리를 걸터앉아 양컷 입김이 나는 이 계절에 말이다. 나비암을 더 자주 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멧돼지는 어느 산이나 있다


처음 홀로 비박을 했던 아미산에선 여러 요인들로 쉬 잠들 수 없었는데, 그것도 적응이 되는지 초저녁에 자는 재미가 솔솔~
그리고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상쾌함...
비박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그런 기대감에 미리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평온해진다. 이 나이가 되어 참 낯설지만 충만해지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날은... 한 밤 중에 잠이 깨어야만 했다.

가지고 간 삼겹살이 조금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누룽지와 함께 먹을 요량으로 이너텐트와 플라이 사이의 좁은 공간에 그대로 두고 침낭속으로 들어가 쉰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꿈인가 했더니 실제 텐트 바깥에 돼지가 아닐까 싶은... 킁킁 대는 소리와 깊게 콧바람을 내뿜는 소리가 들린다. 각진 발가락이 바닥을 지치는 소리까지... 분명 돼지다. 가축은 아닐테고... 그럼...
갑자기 몸이 바짝 긴장한다. 잠은 이미 달아났고 누에고치처럼 침낭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있다. 녀석이 목표로 삼던, 삼겹살 조각이 든 코펠 뚜껑 확보에 성공한 듯 딸그락 소리가 계속 이어지더니 잠시후 사방이 조용해진다.
비박을 금지하는 이유로 드는 것 중에 하나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 구성의 야경적 취지도 포함되었으리라. 애초 이런 상황에 접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 말이다. 그에 반항을 했으니 그 책임 또한 내게 있다.
사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돼지가 간 것 같다. 숨죽이고 텐트 밖에서 잠복할 정도의 지략을 겸비한 놈들은 아닐테니...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한참을 숨죽이고 있다가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텐트의 지퍼를 열고 빼꼼히 내다본다. 텐트 한 쪽은 절벽이라 반대쪽 출구로 천천히 나가본다.
물티슈 봉지와 코펠 뚜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을 뿐 짐승의 모습은 없다. 볼일을 보러 절벽 쪽으로 가보니,

IMG_1333-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저런 눈 발자욱이 남아있다. 빼딱구두 신은 돼지 발^^
밤에 내가 어지러이 남긴 발자국을 살짝 덮을 정도의 눈이 날렸는데, 그 사이 낸 발자국이다. 소리로만 짐작했던 텐트 밖의 녀석에 대한 확증을 보자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발자국 크기로 봐서는 그리 큰 놈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IMG_1338-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다시 잠이 오지는 않을 것 같다. 텐트 위 교교한 달빛과 멀리 도심의 불빛 말고는 깜깜한 이른 시간이다.

IMG_1341-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텐트 속은 어지럽다. 2인용 텐트라서 넉넉하니 혼자 쓰기 딱 좋은 듯. 1인용이면 저렇게 하고 자지도 못할테지?
잠시 다시 잠을 청할까 고민을 하다가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로 맘을 고쳐먹는다. 대신 누룽지로 간단하게 먹자했던 조식 계획을 취소하고 나름 진수성찬을 차려 먹는 여유를 부리기로...
커피부터 한 잔 할까?^^

output_2583430035.jpg?type=w773
IMG_1344-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장비를 정리하고 성벽을 따라 걷는다. 한 두 시간 전에 그 돼지가 만든 발자욱이 내내 이어진다. 이녀석도 낙동정맥 마루금을 따라 가기로 한 건가?^^
나비암에서 조금만 오르막을 오르면 제4망루다.

IMG_1347-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그리고 동문과 북문 사이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는 원효봉.
숭유억불의 영향이었는지, 절들이 산으로 쫓겨 올라가면서 산에 원래 기거하던 신과 결합하면서 제법 큼지막한 산들은 독특한 ‘선불 공동 신성구역’이 되었다. 힌두교가 석가를 수많은 힌두신 중 하나로 인식하듯 우리나라 불교는 석가와 산신령을 같은 신으로 모신다. 물론 파워(영험함?) 차이야 다르겠지만...
여튼 산 봉오리마다 원효, 의상 등 대사님들의 이름을 빌린 곳들이 많다. 금정산에는 의상봉과 원효봉이 서로 이웃하고 있을 정도.

IMG_1349-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대낮이었다면 원효봉의 경관은 참 멋질텐데.
나비암을 비롯, 절벽의 기암괴석들이 좌우로 한 눈에 보이는 뷰를 제공하는 곳. 지금은 새벽이라 이렇게 남산동 일대의 야경과 저 멀리 구름 뒤로 시시각각 떠오르는 여명만이 보일 뿐.

IMG_1350-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밤길을 낮보다 훨씬 덜 피곤하고 덜 지루하다... 고 흔히 느껴진다. 시야가 좁기 때문이리라. 불과 얼마 오지 않았는데 벌써 북문이다. 산성의 관문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듯하다.
북문은 바로 앞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기도 하고, 산장도 있다. 그리고 유명한 범어사와 연결된 등산로도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금정산 등산에서 필수 코스로 넣는 곳이다. 물론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짧은 코스를 제공하는 곳이니 더욱.

IMG_1351-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산장 앞에는 사시사철 콸콸 물이 솟는 샘터가 있다. 명색이 산 이름이 “금정” 아니던가?
금색의 우물.

출처 : http://www.akg.or.kr/

고당봉 근처 실제 ‘금샘’이라 지칭되는 바위 웅덩이가 있기도 하다. 서쪽으로 노을이 내릴 때 비친 물빛은 그야말로 금색이다. 거대한 바위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판 건지,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 용천수는 아니고 빗물이 고인 거다.
하지만 금샘이 아니라도 산에서 금보다 귀한 물이 어디서나 풍부하게 샘솟는 산이 금정산이니, 금샘 하나에 유래를 모두 짊어지게 하는 것보다는 산 전체가 금샘 천지라고 하는 게 더 나을 성 싶다만...

사위가 밝아지자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북문을 찾아든다. 나도 수통들 가득 물을 채우고 나머지는 배에도 가득 넣고서는 때를 기다린다. 시간대와 날씨를 보니 어쩌면 해돋이를 고당봉 정상에서 맞을 수도 있을 듯. 너무 일찍 올라가서 찬바람 맞고 떠느니 시간 맞춰 오르는 게 낫다는 건 ‘친절’ 행님과의 지리산 등산 때 배운 바.

IMG_1352-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때가 되었다. 온통 귤빛이더니 삽시간에 그 마저도 옅어진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싶다. 걸음을 조금 재촉해 본다. 고당봉은 자연스레 이어지던 평탄한 능선에서 툭 튀어 올라온 높은 바위 봉오리다.
해 뜰 시간 정상이 어디나 그렇듯 사람들이 이미 많다. 모두들 미어캣처럼 바람 속에 오들거리고 서 있다^^

IMG_1353-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산들의 그라데이션하며, 멀리 은색으로 빛나는 오륜대 수원지까지 그림이 따로 없다.

IMG_1355-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IMG_1360-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고당"이면, 나 많은 시할매 쯤 되려나? 이름의 유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천왕이나 대청이니 하는 이름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산 정상에 여성성을 부여한 것도 멋진 발상이라 생각한다. 금정산은 물이 많아 습하고 그래서 음기가 센 곳이라는 얘길 어릴때부터 동네 어른들한테 들어 왔는데, 아마도 욕쟁이 할매처럼 드세지만 속정 있는 의인화 이미지를 부여 받아 왔던 건지도 모를 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표지석과 본인의 독사진을 차례로 찍어대는 바람에 두 사람이 교차하는 찰라를 노려 오롯히 표지석만 한 컷 잡아냈다. 웃긴 건...
내 뒤에 아주머니가 내 차례라며 가서 서란다. 그러려고 올라온 게 아닌데, 정말 등떠밀려서 저렇게 한 장을 박야야 했다.^^
아이폰의 HDR 기능을 활성화해도 도저히 잡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실은 머리 위로 보름달이 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쩜 일월을 동시에 알현^^ 할 판이다.

IMG_1362-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파노라마 기능에선 아예 HDR이 비활성화되는 듯...ㅜㅜ

IMG_1365-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IMG_1368-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IMG_1371-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바다 위, 구름이 일자로 깔린 공간을 뚫고 정말 손톱만큼 틈이 벌어진다. 그리고는 동전 같은 게 쑥 올라온다.

IMG_1376-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IMG_1369-_Wide1080mark%EB%B0%94%EB%9E%8C.jpg?type=w773

그래서 동과 서 양쪽에 일월을 동시에 즐기는 호사를 누리면서 제법 몸이 으실거릴 때까지 남아있었다.
멧돼지 덕에 일찍 일어나 끓여 놓은 보온병 속 커피가 약간은 추위를 녹여주기도 했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