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6~1.27
배낭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90리터 배낭에 진저리 친 이후 새 배낭을 하나 샀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그래니트 기어_블레이즈 AC 60"
눈치가 보여서 감히 새걸 살 용기는 없고, 중고를 물색하던 중... 새것 같은 걸 발견하고는 바로 질렀다.
여성분이 매던 거라는데 사이즈가 작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깨에 매쉬로 된 쿠션을 따로 덧 대었고, 따로 구매해야 하는 배낭헤드까지 같이 주셨다. 다시 한 번 감사~
배낭 무게가 1kg 밖에 되질 않으니 놀라울 뿐^^
그래니트기어의 투박한 느낌이나 단순한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들었지만, 실제 사용시에는 주머니가 부족한 점과 헤드로만 수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좀 불편하긴 했다. 배낭 정면과 측면에 고탄력(마치 스타킹같은...)의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배낭 용량이 60L라서 폼매트 수납을 그림처럼 정면에 하고나니 가장 큰 주머니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려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 겨울 비박에서 나처럼 대형 폼매트까지 휴대하는 사람은 60L로는 약간 부족하다.정말 심시티를 잘 해서 정리하고도 헤드 위에 텐트를 얹어야만 짐꾸리기가 가능해서 패킹과 언패킹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흠이 되곤 하더라는...
그래도 지금 사진상의 배낭 무게는 딱 19kg.
아직 목표로 하는 17kg까지는 멀었지만 애초 30kg 배낭을 매건 것에 비하면 솜털이 따로 없었다.
여행기간 : 2017.1.26~1.27
작성일 : 2017.10.16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다음날 부터 설날 연휴^^
이날도 퇴근을 살짝 일찍했다. 마눌님한테 양산-부산 지경고개까지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해야했다. 올해 초 우리집에서 동면고개를 넘어서 명륜동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증설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집은 아직 교통 오지ㅜㅜ
뭐 신나는 일이라고 꼬맹이들도 모두 동승을 해서는 지경고개에서 이별의 세러모니 한 판 즐기고 부웅 소리와 함께 식구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정말 혼자다. 그 동안은 부산이라는 거대 도시의 중심을 가로 지르기도 했고, 금정산은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산이라 사람없는 데가 없었는데, 여기서부턴 좀 다를 것으로 예상.
이렇게 가족들과 헤어지고는 14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지경고개에 난 다리(경부고속도로 위를 가로 지르는)를 건너, 부산CC로 들어가는 길로 간다. 근데 이상하게 가도가도 계속 골프장을 끼고 걷게 되는 것이... 역시 알바를 뛰고 말았다.
다시 다리까지 내려와서 보니, 한쪽은 골프장 길, 한쪽은 경부고속도로라서 좁게 솟은 흙더미(정말 좁다)를 놓치고 말았던 것. 이건 뭐 낮에 와도 쉬이 놓칠 수 밖에 없는... 길이라고 하기도 뭐한 산짐승이나 다닐 정도의 길이 있었다.
남락고개
시작도 전에 알바를 뛰었지만 약과에 불과...
산길은 누군가 계속 다녀야 길이지, 인적이 드물면 길이 사라져 버린다. 종종 갈잎이 덮어버려서 길을 잃기도 하고, 네이게이션에 표시된 낙동정맥 루트와 멀어지면 나뭇가지를 헤치고 다시 찾기를 여러 번.
그렇게 알바 아닌 알바를, 길 아닌 길을 가면서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은 "마루금"이다. 헷갈리면 마루금, 즉 제일 높은 줄기를 따라 길을 잡아서 가면 그래도 심하게 알바를 뛰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오르막 길을 움직였는데, 나중에 지도상에서 궤적을 찾아보니 결국 부산CC 둘레를 빙 둘렀던 것에 불과했다^^. 아마 골프장이 생기면서 원래 마루금 길이 사라져서 우회해야만 하는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북쪽 방향으로 가면서 다소 험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몇 채의 인가가 나타나고 이내 4차선 도로를 만나는데, 바로 남락고개다.
남락고갯길은 천성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둘로 쪼개진 생활권을 가지게 된 양산시(주로 양산시청쪽과 석계쪽이라 부른다)를 연결해 주는 산마루 고갯길이다.
고갯길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이런 체육시설이 있다. 남락마을 주민들 해봐야 몇 명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동면 사람들 전체를 위한 시설이라기엔 너무 외지고 먼 곳에 있는 셈이다. 나도 동면 사람인데 여태 이런 시설을 몰랐으니...
여튼 체육시설 외에는 불도 잘 없는 고갯길을 건너서 캄캄한 와중에 입산로를 찾아야 했다.
모르면 일단 네비게이션.
야영지
처음 출발하고부터 남락고개까지 온 거리만큼 다시 숲으로 들어 간 것 같다. 인가 근처만 가면 멀리서 내 발소리를 듣고 개가 짖어댄다. 더러는 사람이 사는 집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그냥 빈집.
주인이 이사가고 빈집은 농막으로 쓰는 듯하다. 그렇게 낮에만 사용하는 모양이다. 비어있는 밤 동안, 주인은 떠나고 개만 지키는 거지.
캄캄하고 낯선 숲에서 멀리 개 짖는 소리만 들리는 건 그닥 즐길만한 요소는 아니다.
특히 개줄이라도 끊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생길만큼 악을 쓰고 울어대는 굵직한 성대의 저음을 내는 녀석들 소리란...
배가 고파온다. 적당한 곳을 찾아 텐트부터 쳐야겠다 생각한 지도 꽤 지났는데, 아무리 가도 그 '적당한' 곳이 안보온다. 좁아터진 외길 밖은 자잘한 나무들이 빼곡하다. 작은 텐트 하나 칠 평지가 전혀 안보인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평평한 곳으로 보이는 숲 속으로 좀 들어갔다. 그리고 텐트 각을 맞춰보고 크게 방해가 되는 잔 가지들은 좀 부러뜨리고 무작정 텐트를 쳤다.
멧돼지가 나와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그런 외진 숲에서 말이다.
급하게 밥을 지어 먹고, 모카포트에 커피까지... (아무리 무게를 줄이더라도 산에서의 커피 호사를 줄이는 건... 다른 걸 좀 더 줄이더라도 이건 참 못 버릴 듯 하다)
아침에 일어나도 사람이라고는 없다. 아니 이런 곳에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은 곳이다.
텐트를 쳤던 자리만이 갈비들이 납작해져 있을 뿐 야영을 했던 흔적도 오늘 밤 바람이 불면 또 사라져 버릴 게다. 다시 와도 이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칠 가능성은 없다는 거~
꼼꼼하게 다시 패킹을 하고 자랑스레 사진으로 남긴다.^^ (첫 사진과 동일한 곳. 각도만 약간 더 옆으로)
조금 더 가자 최초의 표지판을 만났다. 어제밤 지났던 길에도 이런 게 있었을 지 모른다. 컴컴해서 못 봤을 수도...
길도 없는데 길 이름은 붙어 있다. 그것도 '누리길' .
누리면 '세상'이라는 뜻 아냐? 사람이 없는 세상이라...
표지판으로부터 겨우 100m, 야영했던 곳으로부터 겨우 200m 쯤 되려나.
이런 평평한 개활지를 만났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란...^^ 이런 넓은 곳이 길가에 있는데... 그 좁아터진 곳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니...
혹시 남락고개에서 군지고개로 넘어가는 백패커가 있고 야영지가 필요하면 군지고개 쪽에 약간 더 치우쳐 있는 이곳을 적극 추천한다. 2인용 텐트 2~3동은 너끈할 만큼 넓다.ㅜㅜ
오전 9시.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전혀 등산을 다닐 것 같지 않은, 길도 아닌 산길에서 한 사람이 다가온다.
남루하기 그지없는 외양. 분명 백패커고 하루 이틀 비박 중인 사람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타서 까맣고 외투는 때 꼬장물이 줄줄 흐르는데 여기저기 구멍도 많다. 일단 냄새로 얼마나 오래 산에서 머물렀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처럼 폼매트를 매고 있는데 배낭 정면 하단에 가로로 맨 폼매트의 양 끝단은 너덜너덜하다. 좁은 산길을 헤치고 다니면서 자연스레 나뭇가지에 걸려서 조금씩 떨어졌을테지. 그 정도로 헤지려면 수십박은 해야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지 몇 십 년 비박만 해도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을텐데...
감히 말을 붙이지도 못할 포스(그리고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데 나 같은 거 안중에도 없다는 듯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는다. 겨우 14시간만에 처음 만난 사람인데...
스치면서 지나도록 숨소리 조차 느낄 수 없다. 마치 고스트같다. 배낭은 7~80리터 쯤으로 보이지만 나처럼 빵빵하지도 않다.
역시 강호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은 법.^^
군지고개
그와 헤어지고(지나치고) 금새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군지고개란다.
여긴 남락고갯길에서 여락마을로 연결되는 샛길이다. 길이 산에서 끝나 버리는데 군지고개는 그 중간쯤이다.
트럭 한 대가 휑하니 지나는 동안 앉아서 좀 쉰다. 도로로 내려서면 바로 안내지도가 세워져 있는데, 고작 남락고개에서 2km 온 거란다.^^
운봉산까지 앞으로 4km 정도에 천성산(원효봉을 뜻하는 거겠지)까지 다시 7.5km.
이 정도야 뭐 충분할 것 같은데,
원효봉에서 비로봉(천성2봉)까지 4km. 거기서 다시 주남고개를 거쳐서...
헉, 안내판 지도는 주남고개까지만 있다. 많이 머니까 "아서라"는 뜻이겠지?
오늘 코스를 어디까지 해야한단 말인가?
남락에서 통도사까지의 천성산 줄기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중간에 치고 들어올 만한 곳이 없는데...
일단 가 보자. 정 안되면 2박을 하는 거지 뭐~
첫날 잠자리가 많이 불편했기에 다음 번을 위해 텐트를 칠만한 곳들이 보이면 사진으로 담아놓기로 한다. 이곳은 군지고개를 지나 몇 십 미터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
한 번씩 잊을 수 없는 "죽음의 각도" 오르막길을 만나는데,
대티고개에서 시약산 오르는 길
장군봉에서 다시 내려서서 계명봉 오르는 길
바로 이들이대표적으로 강한 인상을 준 고바위 길이다.
그리고 이곳 군지고개에서 법기임도 정자 전에 426m 지점까지의 길을 하나 더 추가해야 했다. 아침식사의 모든 에너지를 다 가져가 버렸으니...
산 중간에 이런 임도를 가끔 만난다.
허가된 트럭만 운행가능하고, 산을 관리하려는 목적인데, 여차하는 순간 개방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지자체마다 관광지를 못 만들어서 애를 태우는 요즈음엔 더욱 그러하다. 양산만 해도 천성산 원효봉으로 오르는 1월1일해맞이와 5월 철쭉제 행사를 위해 임도를 몰래 만들다가 들켜서 큰 웃음거리가 되었고, 한때 원효봉 레이저기지가 있던 군 연병대 자리에, 대형 풍차 놀이기구를 세우려는 야욕을 부린 적도 있었다.
때문에 내원사의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조사를 시작했고, KTX터널이 뚫린다는 더 큰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이 나라에서 최초로 인간이 아닌 생물이 소송 당사자가 되는 재판 기록을 낳았다. 재판에서 이겼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대법원까지 갔던 '도롱뇽 재판'은 정확하게 패소라고 보기도 어렵다. 소송당사자를 인정받지 못해서 소가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로 3심을 마쳤던 것.
지금 양산시는 자동차길 말고 모노레일이라는 색다른(이미 타 지자체가 선 보였기에 베끼는 거겠지만) 아이디어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개발의 콩고물 아래 입 벌린 자들 모두에게 면죄부가 되는 "지역의 관광지화 모색"은 최소한 양산에서는 필요없지 않을까? 굳이 모든 도시가 관광객들을 끌어모아야 하는 걸까?
죽음의 오르막에서 고갈된 에너지도 보충할 겸, 정자에 걸터앉아 누룽지를 꺼내 먹는다.
아침에 물을 끓여서 보온통에 넣고, 누룽지를 넣어두었다. 예상한 대로, 몇 시간이 흐르자 누룽지탕이 되어 있다. 물을 조금 더 넣으면 먹기 훨씬 수월할 것 같다. 점점 비박의 노하우가 는다. 대신 보온통이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애로(무게를 줄여야 하는데...)가 발생했지만.
운봉산까지는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여기도 역시 안내판의 끝엔 주남고개까지만 표시되어 있다.
하루에 거기까지가 맥시멈이라고 계속 주입하는 듯.
임도 쉼터를 벗어나자 심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오르막이다. 보통 산 정상 인근은 다 그렇듯이.
온통 자잘한 나무들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더구나 산정 부근이라 정확하게 마루금으로 난 산길은 지금까지 걷던 희미한 길의 흔적과 달리, 뚜렷하게 길로 구분하기 쉬웠다.
운봉산 정상이다. 예전엔 군지산이라 불렀나 보다. 지도마다 두 이름이 번갈아 나타난다.
애개~ 싶은 야트막한 곳이고 작은 표지석이 전부지만, 534m면 그렇게 낮다고만 할 수는 없는 곳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성산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관문 같은 느낌.
그리고 산 정상이라 바람이 심하겠지만, 축대로 평탄하게 만들어진 사이트가 몇 개 있어서 다수가 야영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멀리 오늘 거쳐가야 할 준봉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고지는 570m로 운봉산이나 비슷하지만, 여기서도 하얗게 보이는 저 길은 대체 뭐지?
가파른데 일직선으로 난 저런 길이 바로 "죽음의 각도" 잖나...
하루에 죽음의 각도를 두 번이나 올라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길이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급이 다른 괴물이 기다리고 있다. 그걸 미리 알게 된 게 다행일까 불행일까?